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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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기계를 신호로 연결해 인간의 생활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려는 연구를 시행해온 하리마 테크. 이 회사의 대표인 하리마 가즈마사는 딸 미즈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내 가오루코와 이혼하기로 결정했다. 가즈마사의 바람이 파탄의 원인인 그들은 이른바 쇼윈도 부부. 미즈호를 유명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면접연습에 참여한 그들에게 딸아이가 수영장에서 물에 빠졌다는 연락이 온다. 의식을 잃고 뇌가 기능하지 않게 된 미즈호. 주치의 신도는 부부에게 뇌사 판정을 받고 장기기증을 할 의사가 있는지 묻고, 그들은 하룻밤 고민 끝에 미즈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부부는 미즈호의 손에서 움직임을 느끼고 결국 장기기증 의사를 철회, 어떤 방식으로든 미즈호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우리 딸은, 살아있어요.

죽지 않았습니다.

2018년 제31회 동경 국제 영화제 특별초대작 <인어가 잠든 집>의 원작소설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출간됐다. 뇌사한 것으로 보이는 딸 미즈호를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그녀를 지키려는 부모의 모습과, 한편으로는 간절하게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다른 가정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 진실로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기준 등을 역설한다. 기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과는 달리 범죄도, 범인과 피해자도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지만 잠든 듯 누워있는 미즈호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긴장감을 부여했다. [미등록자] 에서처럼 과학분야와 관련된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성을 살린 BMI, 이른바 브레인 머신 인터페이스라는 소재를 이용해 실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미즈호의 모습을 구현해내며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일인가 되묻게 만든다.

처음에는 미즈호가 장치 없이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던 가오루코는 점차 조금씩, 팔을 들어올릴 수 있게 된다면, 뭔가 반응을 보일 수 있게 된다면,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된다면이라는 욕망 속에 딸이 절대 죽지 않았다는 믿음을 굳건히 한다. 그저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즈호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그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같은 엄마로서 너무나 잘 이해가 되서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누워 있는 자식을 눈앞에 두고 언젠가는 깨어나리라는 믿음을 저버릴 부모가 얼마나 될까. 그것이 정상 범위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 자기만족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다른 부모의 모습을 잠깐 비춰주며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 현실과는 동떨어진 법과 제도를 꼬집는다.

오해가 없었으면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저희는 누군가가 하루빨리 뇌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기증자가 나타난다는 건

어딘가에서 아이 하나가 죽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슬퍼할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식 수술은 '선의'라는 베풂을 받는 것이지

요구하거나 기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뇌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간병을 계속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 아이 부모에게는 아이가 살아 있다고 여겨질 테니까요.

그 또한 소중한 생명 아니겠습니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질 수 없다. 부모니까 자식을 붙잡아두고 싶은 것이고, 부모이기에 어딘가의 누군가가 나타나 장기기증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스터리 작가임에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며 어느 쪽도 비판하지 않았다. 선택은 독자의 몫. 무엇이 인간의 삶과 생명을 결정지어주는지,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위해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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