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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ㅣ 클래식 클라우드 24
이연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평점 :
드가의 작품 중에서는 <에투알> 정도만 기억하고 있다. 무대 위의 발레리나를 묘사한 작품으로, 드가! 하면 누구나 이 작품을 떠올리지 않을까. 처음 이 그림을 접했을 때만 해도 무지했던 터라 '발레리나의 그림을 참 예쁘게도(?) 그려놓았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러 그림 해설 책을 읽고나서 깜짝 놀랐다.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발레리나들은 최하층 계급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부유한 후원자와의 만남을 통해 생계를 이어나가기도 했는데, 작품 뒤쪽에 정체 모를 남자가 그려져 있는 연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뒤쪽의 남자에게 더 신경이 쓰였는데, 클래식 클라우드 [드가 x 이연식] 편을 통해 다양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드가는 발레 무대를 많이 그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그가 그린 그림 중 무대 위를 그린 작품의 비중은 적은 편이다. 대부분 공연 시작 전이나 공연이 끝난 직후의 모습,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주제로 했다는데 발레에 대한 환상을 깨트릴 정도라고 해도 좋을만큼, 작품 안에서는 고통과 괴로움 등이 느껴지기도 한다. 몽환적인 분위기와 비참한 현실의 공존. 굉장히 이질적인 두 가지가 뒤섞여 있는 그림들을 통해 순간을 포착하면서도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던 화가의 신념같은 것이 보이는 듯 했다.
우리에게는 '드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본명은 '일레르 제르맹 에드가르 드가'다. 이탈리아에서 부를 축적한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풍족한 삶을 살았기에 귀족적이면서도 부르주아적이었던 드가. 계급적인 상승 욕구가 없었기 때문인지 여기에서 비롯된 초연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드가는 19세기 파리 미술계를 대표하는 고전주의의 앵그르, 낭만주의의 들라크루아의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차분하고 체계적인 앵그르적인 경향을, 후기에는 자유분방한 들라크루아적인 경향을 띠게 된다.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풍경을 주된 주제로 삼고, 인위적이고 타산적인 도시가 아니라 원초적인 그리움, 과거로의 회귀본능을 자극하는 것을 예술의 절대적인 것으로 여겼던 것과는 달리, 드가는 자연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온갖 모순과 악덕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도시를 향했고, 사람과 현실에 관심을 가지면서 노동하는 여성, 공연하는 사람들을 그렸다. 인상주의에 속했지만 풍경이 아니라 인물을 그렸던 그의 목표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뀌는 세계의 모습을 붙잡는 것이었다. 그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본능적이고 직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마네와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 두 사람은 19세기 회화에서 화면 속의 인물을 가장 '잘 자르는' 이들이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은 [절단된 신체와 모더니티]에서, 19세기 회화에 이런 식으로 곧잘 나타나는 절단은 프랑스 혁명 이래 자아가 파괴되고 사회체제가 해체되는 양상이 미술에 반영되었다고 설명한다. 저자 이연식님은 드가의 절단은 섬세하고 아름답다고 이야기했다. <발레 수업> 속 절단을 통한 발레리나의 다리는 화면에 역동성을 부여한다고.
무엇보다 드가의 매력은 '플라뇌르'적 성향에서 잘 드러난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유유자적하게 대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을 의미하는 플라뇌르. 산업화와 함께 성장한 거대한 도시의 모습, 그리고 그 도시 속의 사람들, 도시가 낳은 유흥과 구경거리를 그렸던 드가는 가장 플라뇌르다운 존재로 작품을 완성했다. 군중을 바라보고 군중 속을 누비는 관찰자. 그와 함께 카페의 성장배경에 대한 기술은 어쩐지 드가라는 존재가 가진 낭만을 한층 강화해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완벽주의와 지리멸렬함이 공존했던 드가. 말년에는 <열네 살의 어린 발레리나>를 조각하며 '조각의 혁명'이라는 극찬까지 받았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여성들을 경외하고 동시에 여성 예술가들을 인정했던 예술가.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통해 '드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 가슴이 벅차다. 파리라는 현대적인 도시를 '드가'의 시선으로 관찰할 수 있었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