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 나이프 - 왼팔과 사랑에 빠진 남자
하야시 고지 지음, 김현화 옮김 / 오렌지디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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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급변에 대비해 대기하는 하루하루. 연애, 결혼, 부부 생활, 친구 관계 말고도 여러 가지를 희생해야 한다. 그나마 얻을 수 있는 건 약간의 자부심과 자존심뿐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술의 완성도에 따라 실력이 판가름 나는 외과의에게는 그것도 부질없다. 위에는 또 다른 위가 반드시 존재하고, 그 정점에 선 외과의사만이 '톱 나이프'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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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외상으로 머리에 고인 혈전과 급성 경막하혈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14세 소년 소에노 요이치. 사실 교통사고가 아니라 어머니가 자기를 죽이려 했다는 증언을 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 '외계인'이라며 황당한 소리를 하는데, 처음에는 의학소설의 탈을 쓴 미스터리인가 했지만, '카프그라 증후군' 증상의 시작이었다. 얼굴을 보고 '엄마'라는 시각 정보는 인식하지만, 애정이나 정서를 느끼는 부위와의 회로가 끊어져 있어 친근한 감정이 조금도 솟구치지 않는 것이다. 엄마를 봐도 생판 남을 볼 때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데, 겉보기에는 엄마이지만 애정이 느껴지지 않으므로 뇌가 이상하다고 판단, 결국 엄마를 엄마가 아닌 외계인이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도토종합병원 신경외과 차장으로 일해온 미야마는 가정과 일 중 일을 선택한 의사였다. 유학 중 만난 남편과 결혼, 딸 마미를 낳았지만 도토종합병원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인 후부터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기란 역부족이었다. 딸의 '맨 처음'을 항상 놓쳐야 했던 엄마. 남편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지만 출산 후에도 3개월만에 복귀하여 응급실 최전선에서 한 달에 3-6회 당직을 서야 했고, 가사와 육아는 대부분 남편의 몫이었다. 미야마가 딸아이와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내줬으면 남편의 바람은 무산되었고, '뇌동맥류와 뇌혈관문합술의 전문가'로서 톱 나이프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던 중이던 마미야는 결국 이혼하고 현재까지 이른 것이다.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워온 요이치의 엄마와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며 가출한 마미와 함께 생활하던 미야마의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톱 나이프]는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네 명의 의사들이 등장한다. 전국에서 실력을 기르고자 하는 신경외과 전문의들이 모인 지옥 훈련장 같은 도토종합병원. 이 곳에서도 천재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구로이와는 세계 최고의 신경외과의에게 주어지는 톱 나이프상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상했다. 여자관계도 화려한 그에게 닥쳐온 하나의 시련. 그리고 언제나 냉철한 판단과 실력으로 차기 '톱 나이프' 자리를 노리는 니시고오리, 성적이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신경외과를 지망한 고즈쿠에가 의사로서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박진감 넘치는 수술장면이 감동적인 이야기와 어우러지며 감동을 전달한다.

 

일본 작가들이 그리는 병원 이야기에는 대체로 따스함이 빠지지 않는다. 병을 치료하면서 자신의 마음도 들여다보며 의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겪는 고뇌를 바라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 적이 많았다. [톱 나이프]에 등장하는 의사들도 실력은 최고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상처와 시련을 간직한 인물들로, 환자들을 만나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더 따스해지거나, 분연히 다시 일어나는 굳건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문적인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는 한편 울컥하게 만드는 사연들이 절묘하게 엮여 있어 한편 한편의 이야기를 음미하며 읽어나갔다.

 

그런데! 왓??!! 표지가 너무 아쉽다!! 작품 면에서는 훌륭한데 표지가 그 매력을 잘 못살려주고 있다는 느낌. 게다가 그냥 [톱 나이프]가 아니라, '왼팔과 사랑에 빠진 남자'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 처음에는 그런 의사가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어떤 환자의 병증 중 하나였다. 일본 원서 표지에 이렇게 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표지에 공을 들였다면 독자들 눈에 확 들어왔을텐데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다.

 

여러분, 표지는 제 취향 아니지만, 이 책 재미납니다!

** <orange D> 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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