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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로켓 ㅣ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1월
평점 :

이케이도 준의 작품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신비한 매력이 있다. 그의 대표작인 [한자와 나오키]에서도 그랬듯, 작가는 이야기의 초반에서는 독자에게 답답함을 넘어서 울화를 치미게 만드는 못되고 얄미운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뒷머리 잡고 쓰러져도 충분할만한 윤리도, 도덕도 모르는 인간들을 앞세워 고구마 백만개는 먹은 듯 가슴을 탕탕 치게 만든다.
잘 들어.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규율이 있어. 바로 윤리와 법률이지. 사람이 여간해서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건 법률로 금지됐기 때문이 아니야. 그런 짓을 해서는 윤리에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회사는 달라. 회사에 윤리는 필요 없어. 회사는 법률만 준수하면 무슨 짓을 하든 벌을 받지 않아. 다른 기업의 숨통을 끊어도 상관없어. 놀랍지 않아?
이번에 탐욕스러운 자들의 먹이감이 된 사람은 쓰쿠다 고헤이. 그는 과거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시험위성 발사 로켓에 탑재된 신형 엔진 '세이렌'을 개발했지만, 결국 실패, 그 후 7년동안 아버지의 공장을 이어받아 경영해오고 있다. 시련은 연달아 닥치는 법. 먼저 거래처인 게이힌기계공업에서 핵심부품을 자체 생산하게 되면서 쓰쿠다에게 맡겼던 엔진도 거래를 중단하게 된다. 적자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은행에 대출을 부탁하러 가지만 현재의 영업실적으로는 어렵다는 말을 들으며 굴욕적인 퇴짜를 맞았다. 여기에 나카시마 공업에서 쓰쿠다제작소에서 5년 전에 출시한 스텔라, 소형 엔진과 관련 부품을 제조하는 라인에 소송을 걸어온다. 쓰쿠다와 직원들이 매년 개량을 거듭한 끝에 사양을 대폭 변경한 최신형을 작년 봄에 출시했고 특허까지 신청했는데, 나카시마 공업에서 자사에서 개발한 엔진을 베꼈다며 특허 침해 소송을 걸어온 것이다. 손해배상액은 90억 엔. 이 말도 안되는 사건의 중심에는 돈이 될 것 같으면 일단 베끼고 상대방 기술에 트집을 잡아 풍파를 일으키려는 비열한 전략이 숨어 있었다.
한숨 쉬어갈 찰나, 이번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거대자본 데이코쿠중공업에서 쓰쿠다제작소가 소유한 엔진의 특허를 자기 회사에 팔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회사와 직원들을 위해서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기회. 하지만 쓰쿠다는 꿈과 사업 사이에서 번민하고, 이를 이해해주지 않는 직원들과 대립하게 된다. 꿈을 위해 자신들을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사원들 앞에서 로켓 발사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는 쓰쿠다. 그는 과연 직원들과 협력해 로켓 발사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난 말이야, 일이란 이층집과 같다고 생각해. 1층은 먹고살기 위해 필요하지. 생활을 위해 일하고 돈을 벌어. 하지만 1층만으로는 비좁아. 그래서 일에는 꿈이 있어야 해. 그게 2층이야. 꿈만 좇아서는 먹고살 수 없고, 먹고살아도 꿈이 없으면 인생이 갑갑해. 자네도 우리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었을 거야. 그건 어디로 갔지?
이케이도 준의 작품을 읽다보면 숨이 가빠온다. 초반에는 갖은 시련과 수모를 겪어 과연 이 고초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염려스러울 때도 있지만, 작가가 통쾌하게 상황을 반전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서 빨리 그 장면이 읽고 싶어 안달이 나는 것이다. 긴장감이 궤도에 올라 정상에 도달, 숨도 못 쉴 지경이 되면 그 동안 잘 참아왔다고 칭찬해주는 듯 빵! 독자의 목마름을 한방에 해소시켜 준다. 손바닥 위에 독자를 올려놓고 놀리는 실력이 아주 일품인 작가. 그런데 그 시간이 결코 싫지 않다. 읽을 수 있는 페이지가 몇 장 안남은 시점에서는 오히려 그의 손바닥 위에서 더 놀고 싶어질 지경이다.
그의 작품이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아니더라도 작품 속 세상의 소시민들이 '정의'라는 것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실이었다면 끝내 패배했을지도 모를 대결. 그 대결을 소설속에서나마 승리로 이끌어주며 사람들의 가슴에 희열과 살아있다는 생동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이케이도 준은 탁월하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독자를 쥐고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분야라, 아무리 이케이도 준이라고는 해도 나에게 어느 정도의 감동을 줄 수 있을 지 반신반의했는데, 결말 부분에서는 마음이 울컥해져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제 의심하지 않겠다! '이케이도 준'이라는 이름만 보이면, 그게 뭐든, 그냥 읽어버리련다! 145회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는데, 당연하다! 이 작품말고 그 상을 탈만한 이야기가 또 있었을까. 속편을 예고하는 마무리에 슬쩍 뒷날개를 펼쳐보니!꺄오~시리즈로 아직 세 권이나 더 읽을 수 있다! 너무 기쁘다!
** <인플루엔셜>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