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 上 - 신화적 상상력으로 재현한 천 년의 드라마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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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역사를 다룬 책들 중 제가 기다리고 있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스티븐 세일러의 <로마 서브 로사> 라는 작품으로, 주인공 고르디아누스(이 이름을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니!) 가 정계의 암투와 모략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에요. 엄격히 구분하자면 인문서적이 아니라 소설로, 여느 추리소설처럼 범인을 색출해내는 과정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그보다 몇 배 더 재미있는 것은 그 속에 녹아있는 로마 역사였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도 그렇고 여러 작가들이 로마를 주제로 수많은 책을 집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로마가 우리 삶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것은 아닐텐데요.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흥미와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결여되어 있으면 익히기 어려운 분야 중 하나라서, 로마의 길고 장대한 역사를 단순히 '학문'으로 접하고자 한다면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까 싶네요.

 

스티븐 세일러의 <로마 서브 로사> 시리즈는 소설이기 때문에 허구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저에게는 '로마'라는 세계에 대해 또다른 관심과 흥미를 일으켜 준 매우 고무적인 작품이에요. 그런 <로마 서브 로사> 시리즈가, 지난 1년 동안 어찌된 일인지 출간되지 않아 노심초사하던 중이었습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로마] 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단숨에 '스티븐 세일러'가 떠올랐고, 내용과 상관없이(당연히 로마 관련 이야기이기는 했지만요), 구성도 보지않고 그의 이름만으로 선택한 작품입니다. <로마 서브 로사> 시리즈의 주인공이 고르디아누스라면 [로마]의 실제적인 주인공은 '파스키누스'라고 해야 할까요.

 

파스키누는 로마의 유서깊은 가문인 포티티우스 집안에 오랫동안 전해내려오는 호신부입니다. 늑대의 아들로 전해지는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로마를 세우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시대의 시작부터 바로 이 파스키누스가 함께 해요. 포티티우스의 이름과 파스키누스를 물려받은 가문의 자손들과 함께 펼쳐지는 로마 역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흥미롭습니다. 포티티우스 가문과 함께 하는 로마의 알려진 인물들과 그들의 욕망, 희생과 사랑, 죽음 등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져요. 마치 파스키누스에 저의 영혼 한 조각이 흘러들어가 그들과 같이 숨쉬고 울고 웃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드라마틱한 사건들에 지지 않을만큼, 자연스러운 로마 역사의 전개 또한 탁월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는 그들의 모습은 현실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죠.

 

이렇게 장대한 시간을 다룬 책을 읽고 나면, 역사의 기나긴 시간 속을 지나 우리들이 숨쉬고 있다는 것에 대해 늘 이름붙일 수 없는 아련한 감정이 가슴 속을 휘젓곤 했는데, 작가는 그 감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난밤까지만 해도, 카이사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의 할아버지가 치른 끔찍한 희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가 모르고 있는 일이 얼마나 더 많을 것인가? 그 엄청난 무지에 그는 그만 숨이 막혔다. 파란만장했을 수많은 인생에 대해 그는 완전히 무지했고 이후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클레오파트라가 뭐라고 했던가?

 '과거는 미래와 마찬가지로 알 수가 없는 거야.'

불현듯 자신의 존재는 두 개의 무한한 어둠-이전과 이후-사이에 난 지극히 작은 틈으로 비쳐든 빛-현재-에 비치는 조그마한 점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p316 

좋은 책은 늘 책장을 덮은 후에 한 번 더 읽고 싶다는, 고이고이 간직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으면, 그 책들과 함께 저의 역사도 만들어져가는 것 같거든요. 지금은 [로마] 를 허구에 집중해 정신없이 읽었다면, 다음에는 좀 더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되짚어가면서 다른 인문서적과 함께 읽어나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새해부터 좋은 책과 함께 해서 기분이 좋아요! 무엇보다 추수밭, 어서어서 [로마 서브 로사] 를 이리 내놓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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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고양이는 없다 - 어쩌다 고양이를 만나 여기까지 왔다 안녕 고양이 시리즈 3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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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의 앙증맞고 놀라운 사진으로 만족감을 채워주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책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전개됩니다.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가 계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저변에 깔려있는 감정은 분명 '슬픔'과 '안타까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저자가 이번 책을 통해 분명히 전달하고 싶었던 메세지는 바로 제목 그 자체일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나쁜 고양이는 없다.' 고양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은 비단 도시뿐만은 아닌 듯 해요.(도시는 어떤 동물에 대해서든 관대함이 부족한 곳이긴 하겠지만요) 저자가 생활하는 시골에서도 시골 사람들의 '풍성한' 인심은 이미 옛말이 되어버린 듯, 그 어떤 연민 없이 음식에 쥐약을 섞어 내놓고 그 음식으로 인해 피해를 본 고양이들을 또 아무렇지 않게 내버리는 모습이 비일비재한 듯 합니다. 거기에 어린 아이들의 돌팔매질과 같은 짓궂은 장난, 혹독하고 잔인한 겨울까지 합세하면 우리의 고양이들이 마음 놓고 생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죠.

 

 

제가 저자의 메세지를 제대로 간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책에서는 유난히 고양이들의 고달픈 생활이 눈에 들어옵니다. [명랑하라 고양이] 에서부터 쭉 인연을 같이 해 온 달타냥은, 고양이 좀 묶어놓으라는 이웃들의 성화를 못이긴 주인할머니가 목줄을 매어놓는 바람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역시 [명랑하라 고양이]에서 벗을 잃고 홀로 외로움을 달래던 덩달이도 가을에 철장에 갇혀 여름 장마철이 되어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까지고 상처받은 덩달이의 모습에 제 마음이 온통 생채기가 난 기분이었어요. 그럼에도 어째서 도망치지 않았느냐고, 저자는 한숨 섞어 이야기합니다. 개울집에 살던 여울이의 아기고양이 중 세 마리는 주인이 텃밭에 쥐약을 놓는 바람에 고양이별로 떠나기도 했어요. 고양이라는 존재 자체가 싫다면 그냥 피해버리면 될텐데, 시골에서는 농작과 관련이 있어 그냥 놓아두기도 쉬운 일은 아닌 듯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생명을 해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모습에 오싹, 소름이 돋았습니다.

 

하루만, 딱 하루만 고양이들의 생활모습을 살피다보면 어쩌면 그 분들의 마음도 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저의 헛된 희망인 걸까요. 형제들과 함께 햇빛을 받으며 해바라기를 하고, 식빵을 구우며 눈을 꼭 감고 있는 털북숭이 생명체들. 혹독하고 추운 겨울이지만 눈밭에서 구르며 발라당을 하고, 마치 사람처럼 위험에 처한 다른 냥이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들을 본다면 그들도 우리처럼 지구별의 경이를 체험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텐데요. 사람들의 인정없는 처사에도 불구하고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장난을 치고 있는 고양이들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인간으로 산다는 것과 동물로 산다는 것의 차이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립니다.

 

 

저자는 -차라리 고양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훨씬 속 편한 여행가로 살았으리라. 그러나 알고는 차마 '이곳'을 떠나지 못하겠다-라고 합니다. 그의 애정으로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 춤>이 세상빛을 볼 수 있었던 거겠죠. 집에서 한 마리씩 길고양이들을 책임지라는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굳이 먹이를 때 되면 챙겨주라는 이야기도 아닐 겁니다. 저도 고양이들을 사진으로 보는 건 매우 좋아하지만, 길가에서 앙칼지게 우는 고양이들은 무서워하거든요. 하지만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웃을 위한 안내서라는 그의 인사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에 대해, 하나의 생명에 대해 조금이라도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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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브레이크 호텔
서진 지음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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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지나가고 나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일까-요. 통계를 낼 수는 없겠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결심이 아닐런지. 행복했던 기억, 달콤한 순간으로 되돌아가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사람들의 바람으로 '하트 브레이크' 호텔이 만들어졌습니다.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그 사랑을 오랫동안 지속시키기 위해 호텔을 찾아오는 사람들. 그들은 그 곳에서 꿈을 꾸지만 그것이 꿈인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소중했던 시간을 반복시킵니다. 그런데 그 꿈에서 깨어난 후 그들의 삶은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요.

 

호텔의 첫 번째 고객은 여교수와 여제자입니다. 처음부터 등장하는 파격적인 소재와 묘사에 오옷! 하는 느낌이지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선택'이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 곳에는 그저 한 인간과 또 다른 한 인간의 깊고 안타까운 감정만 존재할 뿐입니다. 다른 방에는 떠나간 아내와 다시 만난 남편이 있습니다. 한 때 열렬히 사랑했지만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간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를 잊지 못해 다시 아내를 찾아온 남편입니다. 어떤 방에는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온 여자가 있고, 또 다른 방에는 잘못된 거래로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남자가 있으며, 또 어떤 방에는 미래의 존재와 대화를 나누는 여자도 있고, 이룰 수 없는 꿈을 찾아 라스베가스로 온 남자가, 한여름 밤의 꿈처럼 모든 것이 몽롱하게 흘러간 시간을 보낸 여자도 있죠. 그리고 다시. 마지막은 여교수를 사랑한 여제자의 진심이 담긴 방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하트 브레이크'라는 이름의 호텔에 머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연관성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 모두는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과거의 사랑, 과거의 잘못, 과거의 꿈을 좇아 하트 브레이크를 찾았습니다. 독특한 구성과 몽환적인 분위기로 전체를 이끌어가는, 현실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아리송한 내용들이지만, 때때로 그들의 감정에 이입이 되어버리는 것은 왜였을까요. 지나가버린 시간들에 대한 후회, 그 순간이 다시 내게 온다면 지금 알고 있는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 현실을 외면하고 꿈 속에서만 살고 싶어하는 그들의 바람이, 어리석고 헛되이 보인다 해도,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자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한편으로는 작가가 너무 많은 것을 이 작품 안에 담으려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몽환적인 분위기, 현재에서는 절대 일어날 리 없는 이야기로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놓을 수는 있겠지만, 이야기들이 깔끔하지는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황령산 드라이브 paer1>과 <part2>로 구조의 연결성을 시도하기는 했으나 중간에 놓인 작품들이 허공에 붕 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하트 브레이크'라는 호텔 뿐만 아니라 각자의 인물들의 연관성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주었다면, 제가 이 작품을 통해 느낀 인연의 오묘함, 운명의 허무함 등이 조금쯤은 짙게 표현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여보려 읽은 해설 부분도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한 두편, 이 작가의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지금 이렇다 저렇다 확정짓기에는 어정쩡한 기분이거든요.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만약 실제로 '하트 브레이크' 호텔이 존재해서 그 곳에서 잃어버린 사랑의 꿈을 다시 꿀 수 있다면, 한 번쯤은 시도해 보시려나요? 저는. 가지 않으렵니다. 꿈은 꿈일 뿐이니까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놓아두고 싶기도 하고, 꿈에서 깨고 난 뒤에 밀려올 더 큰 아픔과 고통을 감내할만한 자신이 없거든요. 결국 우리는 이 쪽 세상에서 끝까지. 살아나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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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눈 프리키는 알고 있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4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부희령 옮김 / 비룡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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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시작한 오츠 여사의 [천국의 작은 새]를 끝마치지 못하고 계속 붙잡고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 복잡하기는 하겠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난항에 버리지도, 그렇다고 인내심 있게 계속 읽어내려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어요. 그런 중에 만난 [초록눈 프리키는 알고 있다]. 사실 같은 작가의 같은 소재를 읽어도 될지 고민은 됐지만 오기가 생긴 거죠. 어떻게든 다 읽어버리고 말겠다는, 조금은 바보같은 오기. '가족'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천국의 작은 새]는 성인버전, [초록눈 프리키]는 청소년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조금은 더 이해하기 쉽고 술술 읽히며 성장소설의 요소까지 갖추고 있거든요. 나중에 [천국의 작은 새]를 완독하고 나면 그 때는 또다른 평가를 내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주인공 프란체스카, 일명 프랭키의 내면에는 강인하고 당당한 '프리키'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 다중인격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저 프랭키가 평소의 나약한 자신의 모습과 대비되는, 순간적으로 분출되는 강인한 에너지와 당돌한 모습에 또다른 이름을 붙인 것 뿐이랍니다. 겉으로 보기에 프랭키의 가족은 완벽합니다. 한 때 뛰어난 선수였고 지금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해설가로 활동하는 매력적인 아빠와, 그 옆을 지키는 아름다운 엄마, 거구의 운동선수인 오빠 토드와 귀여운 여동생 사만다. 그리고 학교에서 가장 빠른 수영선수로 활동하는 프랭키. 언제부터였을까요. 그런 가정에 균열이 생긴 것은. 언제까지나 아빠의 '아내'로만 살아낼 수 없었던 엄마의 갑작스러운 변화. 그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던 프랭키는 엄마를 미워하고 괴로워하지만, 엄마의 실종으로 더 큰 충격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나약한 프랭키로 있을 것인가, 진실을 아는 프리키로 모든 것을 밝힐 것인가. 선택은 그녀의 몫. 그리고 그 선택으로 말미암은 결과도 그녀의 몫입니다.

 

아이에게 부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겠죠.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으로 한 인간의 생애에 태초부터 개입하게 되는 운명의 굴레는, 경탄할만한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경탄을 훨씬 뛰어넘는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 많은 생각과 노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일일텐데 때로 아이를 '도구'로 사용하는 부모가 작품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 현실에서도 빈번하게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일까요. 어쨌든. 불화로 인한 가정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역시 어린 아이들입니다. 사랑받고 싶어하는 본능, 그 어느 쪽에도 버림받고 싶지 않지만 한 쪽이 자신을 버렸다고 느낀다면 남은 한 쪽에 대한 절실함은 배가 됩니다. 그로 인한 감정의 왜곡, 사건의 은폐. 프랭키의 입장에서는 그 무엇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시즌이 시즌인지라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신데렐라처럼 왕자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생활을 그리는 것도 아닌데 누군가를 만나고 마음을 열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생활을 보내는 것이 왜 그리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일까요. 결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한몫 하겠지만, 타인에 대한 완전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할 수 있다는 불안함, 같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는 사랑이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망설임. 그리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당당함의 결여. 프랭키의 부모도 한 때는 많이 사랑했었을텐데요. 그 사랑이 어떻게 그런 격렬한 증오로 변해갈 수 있는지 무서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프랭키는 살아냅니다. 어쨌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과오로 묻혀버릴 뻔 했던 진실을 파헤치고 두렵고 아프지만 당당하게 현실을 마주보기로 했으니까요. 그로 인해 나머지 한 쪽의 사랑마저 잃게 되었다고 해도 프랭키의 삶은 계속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만 등장하던 프리키는, 이제 프랭키 삶 속에 녹아들어 프랭키+프리키의 모습으로 변모해가고 있어요. 아픔과 고통을 뛰어넘어 성숙해지는 소녀의 이야기를, 잔혹한 가족사를 통해 그려내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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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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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에 태어나 1992년에 사망한 일본 추리문학의 전설로 불려지고 있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이라 그런지,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추리소설입니다.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한 편의 오래된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이 계절에 어울리는 눈의 이미지가 더해져, 고요한 분위기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점이 특징이랄까요.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사건의 길을 따라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지만, 흔히 읽히는 추리소설과는 달리 커다란 감정의 기복도, 격렬한 증오나 분노같은 것도 쉽사리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작품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이제 막 결혼한 데이코의 남편 우하라가 출장을 간 후 행방불명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결혼하기 전 몸담고 있던 회사의 가나자와 지점의 일을 정리하고 도쿄 본사로 올라오기 위한 마지막 출장이었죠. 맞선으로 만나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 없이 시작한 결혼이었지만, 앞으로 차차 알아가면 된다 생각하며 그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던 데이코는 남편의 행적을 따라 가나자와로 향합니다. 남편의 실종과 함께 벌어지는 몇 건의 살인사건들. 그 속에서 데이코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진실을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크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간에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 사건의 진실 때문이었죠. 남편 우하라는 어째서 사라진건지, 그 뒤를 이어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연유는 무엇인지-그 궁금증 하나에 의지해 책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자극적이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들에 익숙해진 탓일까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데이코의 사건에 대한 추측과 정리, 큰 파동없는 전개가 추리소설임에도 '지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의 유명작가들이야 마쓰모토 세이초를 문학의 아버지 혹은 정신적 스승으로 추앙하고 있는 듯 하지만, 저는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니까요. 그가 딱히 뛰어난 작가라는 생각은 특별히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설경을 배경으로 한 데이코의 내면묘사는 꽤 인상적입니다. 남편이 일했던 차가운 북국, 따뜻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추운 곳. 포근하게도 느낄 수 있었던 눈들에 뒤덮힌 진실을 찾아 충격 속에서도 차분하게 남편을 찾아 헤매는 데이코의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이미지로 계속 남아있습니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조금 연상되기도 했고요. 마지막으로. 책 맨 앞장에 노도 반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한국해'라는 표기가 눈에 띕니다. 원서에는 어떻게 표기가 되어 있었을지 살짝 궁금해지는걸요.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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