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1909년에 태어나 1992년에 사망한 일본 추리문학의 전설로 불려지고 있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이라 그런지,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추리소설입니다.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한 편의 오래된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이 계절에 어울리는 눈의 이미지가 더해져, 고요한 분위기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점이 특징이랄까요.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사건의 길을 따라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지만, 흔히 읽히는 추리소설과는 달리 커다란 감정의 기복도, 격렬한 증오나 분노같은 것도 쉽사리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작품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이제 막 결혼한 데이코의 남편 우하라가 출장을 간 후 행방불명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결혼하기 전 몸담고 있던 회사의 가나자와 지점의 일을 정리하고 도쿄 본사로 올라오기 위한 마지막 출장이었죠. 맞선으로 만나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 없이 시작한 결혼이었지만, 앞으로 차차 알아가면 된다 생각하며 그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던 데이코는 남편의 행적을 따라 가나자와로 향합니다. 남편의 실종과 함께 벌어지는 몇 건의 살인사건들. 그 속에서 데이코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진실을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크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간에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 사건의 진실 때문이었죠. 남편 우하라는 어째서 사라진건지, 그 뒤를 이어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연유는 무엇인지-그 궁금증 하나에 의지해 책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자극적이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들에 익숙해진 탓일까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데이코의 사건에 대한 추측과 정리, 큰 파동없는 전개가 추리소설임에도 '지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의 유명작가들이야 마쓰모토 세이초를 문학의 아버지 혹은 정신적 스승으로 추앙하고 있는 듯 하지만, 저는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니까요. 그가 딱히 뛰어난 작가라는 생각은 특별히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설경을 배경으로 한 데이코의 내면묘사는 꽤 인상적입니다. 남편이 일했던 차가운 북국, 따뜻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추운 곳. 포근하게도 느낄 수 있었던 눈들에 뒤덮힌 진실을 찾아 충격 속에서도 차분하게 남편을 찾아 헤매는 데이코의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이미지로 계속 남아있습니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조금 연상되기도 했고요. 마지막으로. 책 맨 앞장에 노도 반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한국해'라는 표기가 눈에 띕니다. 원서에는 어떻게 표기가 되어 있었을지 살짝 궁금해지는걸요.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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