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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함은 분만실에 두고 왔습니다
야마다 모모코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평점 :
섹시함을 분만실에 두고 왔다니, 아기를 낳아본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잠시 저의 곰돌군 출산 당시를 떠올려보자면, 섹시함이요?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이런 느낌입니다. 곰돌군은 예정일보다 8일 먼저 세상 빛을 보았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양수가 먼저 터져서 유도분만을 했답니다. 오전 10시부터 약이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고통은 곰돌군을 낳을 때까지 장장 7시간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많은 산모님들이 말씀하시는 무통천국, 저는 무통주사 맞으려고 의사 기다리다가 시기를 놓쳐서 천국은 맛보지도 못했네요. 가족분만실에 같이 들어온 짝꿍이 옆에서 로맨틱하게 땀 닦아주고 같이 호흡해주려고 했지만, 그 손길, 그 호흡법 모두 매몰차게 거절하며 ‘저리가!’를 외쳤더랬죠. 불쌍한 짝꿍님이 조용히 소파 구석에 앉아있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히 떠올라, 그 생각만 하면 미안한 마음만 한가득이에요. 하지만 아기엄마들이라면 아마 저에게 공감해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섹시함은 분만실에 두고 왔습니다]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야마다 모모코가, 임신과 출산을 거쳐 아들 류를 낳은 1년 여간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과 해시태그가 엄청난 공감을 이끌어내며 이렇게 책으로 출간된 것이죠. 이름과 어울리는 강렬한 핑크빛 표지의 그녀는, 발로 바운서에 탄 아기를 흔들어주며 한입에 밥을 털어넣고 있는데요, 흡사 아저씨같은 외모로 표지의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출산 후 수염까지 났다고 하니 얼핏 보고 아저씨로 오해한 저의 착각이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321/pimg_7085421941867417.jpg)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그만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겪었다면 분명 당혹스럽고 창피했을 검진 시 원피스 사건부터 발견하고 말았거든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곰돌군은 저의 뱃속에서 겨울과 봄을 함께해서 달랑 원피스만 입고 갔던 적은 없었는데, 웅? 류는 우리 곰돌군과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네요. 이 모모코님은 어떻게 원피스만 달랑 입고 가셨는지 그것 또한 불가사의입니다. 책 자체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재미있습니다. 웃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어요.
하지만 과연 재미있고 웃음만 나는 시간들이었을까요. 곰돌군을 낳고 제가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후처치를 마친 후 병실로 옮겨가기 전 누워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꼬리뼈와 갈비뼈 통증에 시달리며 제대로 앉지도 못했고, 한 번은 병원에서 기절해 바닥에 머리를 그대로 부딪치는 바람에 뇌MRI까지 찍었으며, 조리원 생활은 수유에 뭐에 바쁘기 그지없었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어요. 신경은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서 짝꿍과 다투는 일도 잦아졌죠. 그 시간들을 이제야 되돌아보며 ‘그땐 그랬지’하며 웃을 수 있지만, 하루하루의 순간순간들은 고되고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그런 육아생활을 보낸 부모들에게 섹시함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자신을 꾸밀 시간에 잠 한 번 더 자고 싶고, 제대로 갖춘 밥상을 차리기보다 한입에 먹을 수 있는 간단식이 최고고,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루 종일 푹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요.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기에 대한 사랑과, 이 시간들이 정신 차리고 보면 순식간에 훅 지나가서 어느 순간 그리워하게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다시 한 번 그 시간들이 다가올 걸 생각하니 겁나기는 합니다만.
새롭게 얻은 생명 앞에 예전의 섹시함은,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죠.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은 채 여전히 아기와 고군분투하는 엄마아빠들이야말로 최고의 섹시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