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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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가끔 읽을 때면 내게 책을 추천해 달라던 사람이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서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추천 받은 책이 바로 <스타일>이었다.

작년 초여름 쯤이었으니까, 이 책이 나온 지 몇 달 지나지 않아서였는데, 웬일로 그 친구는 이미 이 책을 읽어봤으며, 내게 추천해 줄 만큼 재밌다고 했다. 어떤 책이기에? 하는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었고, 얼마 후 나도 이 책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스타일>이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보게 되는 일일 드라마를 빼고는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지만 왠지 드라마 <스타일>은 챙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드라마 보기에 앞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원작 소설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피서를 떠난 지난 주말에 드라마가 이미 시작된 것 같았다!!! 흐윽.)

 

이 책을 언제 읽었던가 작년 수첩을 뒤적거리다가 그때 남겨놓은 간단한 메모도 함께 발견했다.(작년에는 서평 이벤트로 받은 도서 외에는 서평을 남기지 않아, 한두 줄의 짧막한 메모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그때의 감상평은 "잡지사 기자 이서정의 일과 사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라고 적혀 있었다.(진짜 짧다.)

아, 저때는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던가?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는 <악마는...>을 전혀 떠올리지 않았기에 조금 의아했다.

역시, 같은 책이라도 처음 읽느냐 다시 읽느냐, 또는 언제 읽느냐 등에 따라서 그 느낌이 무척 다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패션지 8년차 기자 이서정이다. 위의 짧막한 감상평에 쓴 것처럼 그녀의 일과 사랑,으로 압축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그 외 좀 더 세부적인 소재들이 더욱 매력적이기도 한 책이다.

나는 이름을 들어도 모르는 수많은 패션 아이템들, 결코 뚱뚱하지 않은 몸매가 뚱뚱하다고 취급 받는 세상에서 더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리고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지는 제니칼 복용 후기,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소문의 이해관계, 꼭 한번 그렇게 써보고 싶은 음식 비평 등이 모두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를 제공해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다이어트 약 '제니칼' 복용 후 이야기. 제니칼은 먹어본 적도, 그 약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본 적도 없는 나이지만, 너무나 생생한 묘사에 나도 모르게 제니칼이 배출 시켜 준 기름띠가 절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실제로 있는 약이었다. 제니칼 복용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먼저 읽고 조금 더 고려할 것을 권해주고 싶다. 제니칼 먹고 데이트를 망치고 싶지 않다면.

 

드라마 <스타일> 소개를 언젠가 잠깐 보긴 했는데, 여주인공이 김혜수라는 것 말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박우진은 누가 맡았을지, 책 속 인물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 줄지 무척 궁금하고 기대된다. 비록 첫 회는 놓쳤지만, 재방송을 찾아 보고서라도 기어이 드라마 <스타일>이 보고 싶은 것은, 박우진이라는 캐릭터 때문이기도 하니까. 여기까지 쓰다가 궁금해져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박우진 역을 류시원이 맡았다. 이를 어쩌지. -_-a(→급 당황하여 나도 모르게 이모티콘까지 튀어나왔다. 흑) 류시원이라는 배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아마 진작 이 사실을 기억했더라면 원작과 드라마를 비교해 보는 재미를 누리고자 소설 <스타일>을 다시 읽는 일은 없었을 텐데. 흠, 뭐 덕분에 재미있는 소설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드라마 청취는, 글쎄 고민 좀 해봐야겠다.(갑자기 냉랭해진 글의 분위기. 이를 어째.) 가장 좋은 경우의 수는, 그래도 꿋꿋이(?) 드라마 챙겨보고, 류시원을 박우진이라는 캐릭터처럼 좋아하게 되는 상황이 되겠다.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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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ㅣ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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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

2004 / 마음산책

 

처음 읽은 날 : 2006년 5월 19일

네 번째 읽은 날 : 2009년 7월 29일

 

 

2006년에 처음 이 책을 만난 후, (의도한 건 아니지만) 1년에 한 번씩 다시 펼쳐보았다. 내게도 해마다 펼쳐들게 되는 책이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

 

올해, 이 책을 네 번째로 읽었으니까, 이 책과의 만남이 4년째, 그리고 이 책으로 김연수 작가를 알게 된 지도 4년째. 이 책 한 권으로 인해 지난 4년 동안 내 삶의 일부분이 바뀌었으니, 이 책과의 만남이 내게는 어떤 운명의 예고였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한 문장을 찾아서'

이 책에는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문장이 나오고, 그 문장들과 함께 풀어내어진 작가의 문장은 또 젊은 날의 나를 사로잡고. 이 책뿐만 아니라, 이 책과의 인연 덕에 만나게 된 김연수 작가의 수많은 문장들이 나의 '청춘의 문장들'이 되었다. 4년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그의 문장에 밑줄을 그었던지.

 

내가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책날개에 실린 작가 소개글 때문이기도 하다.(예스24 文音親交에 실리는 소개글과 함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소개!) 간단하게 출신지, 출신학교, 저서 목록 등을 알려주는 무미건조한 소개글과 달리, 이 책의 저자 소개는 그 자체가 맛있는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 시작도 전에 그만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만들고 만다. 빵의 영향을 받은 본성을 지녔다는 사람, 이과에 적합한 머리가 이상과 김수영과 김지하의 시를 읽으며 이상해져 결국은 시인을 거쳐 소설가가 되었다는 사람, 천문학과를 지망했다가 영문학과에 들어갔다는 사람. 이런 정보들은 '소설가 김연수'를 구성하는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지만, 한창 청춘의 최절정을 지나던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_ 좋아하는 것은 낯선 지방의 음식, 그리스인 조르바, 나이가 많은 나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자리, 중국어로 읽는 당나라 시, 겨울의 서귀포와 봄의 통영과 여름의 경주, 달리기. 싫어하는 것은 소문을 알리는 전화, 죽고 싶다는 말, 누군가 울고 있는 술자리, 오랫동안 고민하는 일. (책날개의 저자 소개글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이덕무의 글을 읽었고, 당나라의 시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으며, 지나간 팝송을 듣고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야 했고, 하이쿠라는 (내게는) 새로운 문학 세계를 알았으며, 내가 바라는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 바뀌었고, 끝없는 질투를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젊은날을 사로잡은 한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후, 내 삶의 열정 상당 부분을 김연수와 그의 책에 쏟아부었으니 말이다.

 

_ 때로 취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 그게 바로 젊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같은 것. 꿈꾸다 깨어나면 또 여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곳. (164)

 

_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132)

 

사무엘 울만이,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고 했었지.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이 책을 처음 읽은 20대의 나도, 이 책을 네 번째 읽은 30대의 나도, 이 책을 수십 번쯤 읽었을지도 모를 5,60대의 나도, 변함없이 모두 청춘일 거란 느낌이 든다. 청춘을 갈망하게 만드는 책, 청춘을 사랑하게 만드는 책, 청춘에 눈물 흘리게 만드는 책.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청춘의 책'.

그리고 이 책이 남긴, 청춘에 관한 최고의 명언 하나.

 

_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141)

 

 

어렸을 때 숱하게 들었던 "장래 희망이 뭐니?"라는 질문에 버금갈 만큼, 많이 들어본 질문 중 하나는 "김연수 작가가 좋은 이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책에 마법 가루가 솔솔 뿌려져 있어. 그의 책을 펼치는 순간 책장 사이사이에서 마법 가루가 흩날려 나를 온통 사로잡아 버리는 거지. 그리곤 꼼짝없이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거지." 물론, 말도 안 되겠지만, 삶에는 종종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 거니까. 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사람들에게는 "청춘의 문장들을 읽어보세요."라고 말해줘야겠다.(이 두 가지 모두 통하지 않을 경우-케이블 티비 인터뷰같은!-에는 또 이런저런 이유를 찾아야겠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문장 몇 개 더.

 

_ 그나마 삶이 마음에 드는 것은, 첫째 모든 것은 어쨌든 지나간다는 것, 둘째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34)

 

_ 여전히 삶이란 내게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비슷하다.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151)

 

_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 가정법 문장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웠고 3차 방정식을 그래프로 옮기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알게 된 일이다. 내 안에는 많은 빛이 숨어 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란 그 빛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다.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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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42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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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에 가슴을 데었었다.

평소에 시를 많이 접하지 않는 탓에 오규원이라는 시인의 이름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의 다른 시집을 보고 싶어 찾다가 <두두>를 만나게 되었다.

(한 온라인 서점에서 2008 최고의 시집을 투표하는데, 그 후보에 올라 있었다.)

 

시집을 펼쳐들다가 '시인의 말'에서, 그 짧막한 네 줄 글귀에서 시선이 오래오래 머물고 말았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2007. 1. 21

                          오규원

 

시인은 2007년 2월 2일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는 문장이 어쩐지 곧 다가올 시인의 마지막 안식을 말해준 것 같아서 가슴이 찡해졌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그 길이가 다 짧다.

맨 마지막에 실린 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한 페이지에 들어오는 분량인데, 다섯 줄 미만의 시도 제법 많고, 대부분이 열 줄 안팎이다.

시집 뒷부분에 실린 '해설'을 읽으면서, 시인이 생전에 짧은 시편들만 모은 시집을 따로 준비했던 사실을 알았다.

1부 '두두'와 2부 '물물'이 시의 길이에서 차이가 조금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상당히 짧은 시들로만 엮인 시집이라는 점이 내겐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무에서 생년월일이 같은 잎들이

  와르르 태어나

  잠시 서로 어리둥절해하네

  4월 하고도 맑은 햇빛 쏟아지는 아침 ('4월과 아침' 전문)

 

  잎이 가지를 떠난다 하늘이

  그 자리를 허공에 맡긴다 ('나무와 허공' 전문)

 

내가 태어난 4월, 나하고 같은 날 태어났을 '생년월일이 같은' 수많은 잎들을 이제서야 생각해보며 나도 잠시 어리둥절.

그 잎들은 이미 가지를 떠나고 그 자리에는 허공이 들어차고, 이듬 해 또 다른 잎들이 같은 날 와르르 태어나고 또 가지를 떠나고...

그들은 그렇게 생몰을 반복하며 자라나고, 나는 처음 태어난 그 몸을 가지고 이렇게 자라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묘하다.

갑자기, 몹시 사무치게 그 잎들이 그리워졌다. 같은 날 태어났다는 인연으로.

 

이 시집에는 꽃과 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시를 읽으며 만나게 되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머릿속 정원에 심었다

제비꽃, 베고니아, 제라늄, 라일락, 애기똥풀, 조팝나무, 산수유, 층층나무, 붉나무, 쥐똥나무, 비비추, 때죽나무, 수국, 배롱나무...

시집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내 머릿속에 꽤 근사한 정원 하나가 태어났다.

꽃을 좋아하다보니, 꽃이 등장하는 시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이 시집이 더욱더 마음에 들었다.

 

  빗방울이 개나리 울타리에 솝-솝-솝-솝 떨어진다

 

  빗방울이 어린 모과나무 가지에 롭-롭-롭-롭 떨어진다

 

  빗방울이 무성한 수국 잎에 톱-톱-톱-톱 떨어진다

 

  빗방울이 잔디밭에 홉-홉-홉-홉 떨어진다

 

  빗방울이 현관 앞 강아지 머리에 돕-돕-돕-돕 떨어진다 ('빗방울' 전문)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한 나에게 '어울리는 법'을 가르쳐 주기라도 하듯 '**과 ##'식으로 짝꿍을 이루는 제목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대와 산', '봄과 밤', '라일락과 그늘', '조팝나무와 새떼들', '산과 길', '덤불과 덩굴', '아이와 강', '발자국과 길', '쥐똥나무와 바람'...

상당히 많은 시의 제목이 혼자가 아닌 둘이었다.

나도 가만히 '나와 ...' 제목을 지어보았다. 나와 가족, 나와 강아지, 나와 책, 나와 친구, 나와 사진, 나와 여름...

내 옆에 많은 존재가 함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지고 푸근해졌다. 시의 제목들에서 어울리는 법을 배워본다.

 

아름답고 향긋하고 다정하고 싱그럽고 가끔은 헛헛하게 만들기도 하는 시들을 만나는 시간이 무척 행복했다.

시인과 고향이 같은 걸 알고 더욱 반가웠는데, 시인 생전에 한 번 뵙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 앞으로 기회가 없으니...

대신에 시인이 남긴 시집들을 한 권 한 권 더 많이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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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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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을 처음 알게 된 건, 모 영화 잡지에 실린 칼럼을 통해서였다.

영화를 즐겨보진 않지만, 칼럼을 쓰는 두 작가를 좋아하다보니, 그 칼럼은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

그 칼럼 연재 초반에 소개되었던 영화가 바로 <렛미인>이었다.

렛미인의 촬영지인 스웨덴 블라케베리에 다녀온 소감과 함께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그때는 영화에 대한 내용은 봐도 모르니 그저 작가의 재미난 '입담'에만 푹 빠져 읽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이 책 제목을 보고서 그때 봤던 칼럼을 떠올렸다. 아, 그 작가가 소개했던 영화의 원작 소설이구나!

이런 인연으로, <렛미인>을 읽게 되었다는, 아주 쓸데없는 잡담.

 

공포를 못 견뎌하는 저질 심장을 데리고 사는 탓에, 공포물은 웬만하면 보지 않늗데, 위의 '인연'으로 읽게 된 <렛미인>.

천만 다행으로(!) 심장이 오그라들게 무서운 책은 아니었다. 사람의 목에 이빨을 꽂고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며 공포보다는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을 더 많이 느낀 듯 하다.

 

이 책의 '인간 주인공' 오스카르는 늘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학교에선 '돼지새끼'라고 놀림당하며 집단 괴롭힘에 시달린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신문을 뒤져 살인 기사를 스크랩하고, 근처 숲으로 가 나무를 '살해'한다.(이 녀석 언젠가 큰일 내겠구나 엄청 조마조마...)

그의 옆집에 사는 엘리는 열두 살 쯤 된 '뱀파이어 주인공'이다.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고 부모의 이혼으로 외로운 소년 오스카르와 뱀파이어라는 신분 때문에 외로울 수밖에 없는 '소녀' 엘리는,

외로움이라는 공통점 때문이었는지, 집 근처 놀이터에서 만난 후 우정과 사랑 사이를 오가는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 두 주인공 주변의 많은 이야기들.

엘리를 향한 호칸의 안타까운 사랑, 오스카르를 괴롭히는 악당 무리들, 작은 마을 블라케베리를 공포로 몰아 넣는 살인 사건, 굶주린 앨리에게 희생당한 또다른 '감염체'의 등장……

이야기는 거의 마음 놓을 틈을 주지 않고 시종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하게 달려나간다.

등장 인물이 조금 많아서 계속 앞쪽을 뒤적여가며 읽어야 하는 괴로움이 있었지만(사람 이름 못 외움),

그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져 더욱 풍성한 '만찬'을 즐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재미있는(?) 점은, 이 책이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빼고는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이야기 속에서 뱀파이어를 쏙 빼내어 버려도, 전혀 허전하지 않고 꽤 흥미진진한 '성장 소설'처럼 느껴진다.

(첨엔 이 책에 '자전적 소설'이라는 표현이 붙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세상에 뱀파이어가 정말 존재한단 말이야?!!!" 정말 심장이 얼어붙어 버릴 뻔 했다는. 흠.)

오스카르처럼 작가도 청소년기에 그런 괴롭힘을 당했던 것인지…… 뱀파이어보다 무서운 학원 폭력!

 

민망하게도 엉뚱하게 결론이 나 버렸네.

 

아, 영화 <렛미인>도 무척 궁금하다.

원래 영화화 된 소설이 있으면 원작 소설만 읽고 영화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앞서 말한 칼럼에서 눈 덮인 블라케베리의 모습이 소개된다. 어쩐지 그 장면을 꼭 봐야 할 것 같은, 그러고 나면 소설의 느낌이 더욱 깊게 다가올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영화도 꼭 찾아봐야겠다.

(오늘 저녁에 있는 특별상영회에 당첨되었지만, 갈 수 없는 이 안타까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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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맨발로 걷다
이희영 지음 / 브리즈(토네이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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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나이를 나타내는 그 숫자가 보이면 귀가 솔깃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다른 숱한 여행서들에 묻혀서 내 눈에 띄지 않았을지도 모를 이 책은 바로 그 숫자 때문에 내 눈에 들어왔다.

저자 이희영, 그녀 나이 서른에 그녀는 맨발로 걸으며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았을까?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늙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지금 이 순간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서른, 아주 좋은 지금, 바로 지금을 껴안아야 한다.

그토록 소중한 서른에 우리는 최대한 행복해야 한다.

할 수 있는 만큼 꿈꾸고

후회 없이 사랑하고

슬픔을 감추지도, 과장하지도 않으며

온전한 나로 지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천천히 나이 드는 법이다.(16)

 

지금, 이 순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서른'을 보내고 있는 나는 이 책의 구절구절에 깊이 공감하고 감동하며

이미 이만큼 지나온 나의 서른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 지내야 할 서른의 모습을 그려봤다.

이 책을 통해 꽁꽁 언 내 마음이 추위를 피하는 법을 배웠고, 타인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 얼마나 유쾌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으며,

한 해가 바뀔 때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에 가면 동양여성은 마음껏 키스를 나눌 수 있다는 흥미로운 정보도 얻었고,

낯선 나라를 사랑하는 이유가 굳이 거창할 필요는 없음에, 때로는 커피향 같은 사소한 것이 나를 매료 시킬 수도 있다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슴에서 일제히 붉은 열망들이 일어선다.

시간이 더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뜻밖에도 많은 것을 하고 싶게 만든다.(91)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담은 예쁜 사진들.

그 사진들에는 유난히 '사람'이 많다.

사람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

길거리에서 둘의 사랑을 서슴없이 확인하는 키스하는 연인, 낯선이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주는 따뜻한 사람들,

어딘가로 떠나고 어딘가에서 돌아오는 사람들,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골목을 걸어가는, 어느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이들,

같은 추억을 회상하는 듯,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노부부……

그렇게 사람이 담긴, 사람이 느껴지는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뚜렷한 대상도 없이 괜스레 누군가가 그리워졌다.

 

사랑은 결코 소모적이지 않다.

길든 짧든, 깊든 얕든, 모든 사랑은 저마다 영혼을 한 뼘씩 자라게 한다.

그러니 사랑은 모두 다 성공이다.(117)

 

이 책은 저자가 '서른의 길목에서 찾아낸 삶의 지도'이다. '떠나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떠나보지 않은 나는 알 수 없는 것들.

저자의 '삶의 지도'를 나눠보며, 어영부영 흘러간 내 서른의 일곱달을 가만히 떠올렸다. 슬몃 미안해진다. 나의 서른에게.

나는 나에게 어떤 삶의 지도를 그려줄 수 있을까, 머릿속에 괜한 그림만 그려보다 말았다.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 구하려던 나에게, 이런 책이라도 짜잔하고 나타나 준것이 그래도 얼마나 행운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참, 자전거 배우기와 사랑의 공통점은?

둘 사이에 이런 공통점이 있다는 건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재미있다.

나도 여전히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그리고 차라리 자전거 배우기를 포기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만다……

 

처음엔 용기가 필요하다.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속도를 조절하지 못해 넘어질 수도 있고,

방향을 잡지 못해 불안하게 흔들릴 수도 있다.

넘어지면 큰 상처가 날 수도 있고,

나중에서야 미세한 상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차라리 자전거 배우기를 포기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덤빌 수도 있다.

사랑이 그러하다.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42)

 

어찌되었든, 나는 '아주 좋은 지금'을 보내고 있고,

그러니까, 그토록 소중한 서른에 최대한 행복해야 한다! 지금 바로, 지금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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