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는 힘들어 - 레벨 2 ㅣ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조성자 지음, 최정인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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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 조카를 데려오는 길, 조카가 방향 지시등처럼 "이쪽" "저쪽" 가리키는 쪽으로 돌아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 멀다.

(집에서 5분 거리인 어린이집을 조카와 함께 오면 1시간 반은 너끈!)

그러던 중, 이날은 어찌어찌 동사무소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우리가 민원에는 볼일이 없으니 2층에 마련되어 있는 문화센터 겸 책방으로 올라갔는데, 책 본 김에 동화를 몇 권 빌려 왔다. 한 시간 반 돌아돌아 집에 오는 길은 힘들었지만, 이날 빌린 동화들을 읽으며 동화책에 마음을 쏘옥 빼앗겨, 이모 '뺑뺑이' 돌린, 그리하여 이렇게 동화책도 만나게 해 준 조카에게 내심 고마운 마음.

 

주인공 설이는 이야기꾼이다. 할머니가 이야기를 좋아하셔서 손녀 이름을 '최이야기'라고 지으려다가 한 발 양보해서 지으신 이름이 '최설(說)'. 이름값 톡톡히 해내는 이 귀여운 꼬마 친구가 반 친구들 앞에서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를 재치있게 묘사해 들려주니 친구들이 무척 좋아한다. 계속 해보라며 부추기는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설이는 기어이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내어 할머니가 왕년에 가수였다고 내뱉고는 '아뿔싸!'하고 입을 막아보지만, 이미 일은 커져버렸다. '카수'가 꿈인 친구 가영이는 수시로 카수 할머니 만나게 해달라고 조르고, 선생님은 학예회 때 할머니를 초대 가수로 모시겠다고 한다. 흥에 겨워 툭 튀어나가버린 거짓말에 커다란 마음의 짐을 지게 된 설이. 표지 그림 속 설이는 '거짓말쟁이'라는 단어로 가득 찬 커다란 보따리를 힘겹게 어깨에 메고 있다. 그 어린 나이에 거짓말은 눈밭에 구르는 눈덩이처럼 한없이 커져만 가는 거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다. '카수 할머니'라는 거짓말을 지켜내기 위한 설이의 고군분투. 그리고 설이의 거짓말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재미난 이야기들.

 

'거짓말쟁이' 설이가 어떻게 될 것인가 흥미진진하게 읽느라, 잠깐 조카는 혼자 놀게 내버려 두었더랬다(조카님 미안!). 정신없이 책에 빠져 그렇게 읽다보니, 나 어린 날, 따뜻한 담요 덮고 누워 이야기 속 재미에 한없이 빠져들던 그때 생각도 아련하게 떠오르고, 그때 읽었던 동화책들도 무척 그리워지고.

작년에도 한 동화책을 만나 무척 행복해했고, '동화'는 '아이들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아이들만을 위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었는데, 앞으로 동화책도 많이 읽어야지 다짐 했었는데, 그 마음도 떠오르고 말이다.

순수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읽고 읽다보면, 내 마음도 깨끗하게 정화될 것 같다.

그나저나, 설이 이름 참 예쁜 걸. '최설', '최이야기'. 이야기를 사랑하는 할머니, 그 사랑을 손녀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

할머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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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53
강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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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본 것들을 믿지 마시고 내가 그린 것은 더욱 믿지 마시오
  당신이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만 겹의 얼굴 뒤에

  불온한 얼룩으로 묻은 시간의 고름일 뿐이오

  나를 믿느니 속옷에 묻은 당신의 부끄러운 땀 냄새나 오래 바라보시오

 

  내 얼굴이 문득, 꿈에 본 당신의 속마음으로 읽힌다면

  만 권의 책을 덮고 오래 켜둔 불빛을 잠그시오

  어둠 속에서 만개하는 그림들이 지평선을 바꾸는 순간,

  당신은 어디에도 없는 나의 유일한 그림자라오

 

  그렇지 않겠소?

  어찌해도 당신은 내게 속아 넘어갈 뿐,

  대체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용서하지 마시오 _ 「자멸의 사랑」 부분

 

어렵게 읽힌 시집 한 권을 막 덮고, 빼든 시집이었다. 그 밤은 유난히 시가 끌렸고, 이전에 읽어보지 않은 새로운 시인의 시를 읽어보고 싶었다. '첫 만남'이 주는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읽으면, 왠지 시집에, 시인에 더욱 애정이 샘솟을 것 같은, 조금쯤은 터무니없고 조금쯤은 그럴 듯한 이유로 연이어 시집 두 권을 읽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권의 시집 모두 내게는 조금 어려웠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시집이 내겐 어렵다. 내가 아직 시를 몰라도 한참한참 모르는 탓이겠지……)

 

그래서, 머리가 좀 딱딱해진 밤이었다.

 

시집 곳곳에는 그림이 함께 실려 있어 독특한 느낌이기도 했다. 그림들은 예쁘다기보다는, 대부분이 나신이며, 시의 분위기와 얼마쯤 닮아 있는 그런 느낌의 그림들이었다. 여러모로 신선한 느낌을 전해준 시집임에는 틀림없다.

 

지난해부터 벼르던 시집을 드디어 만났다는 기쁨을 가슴에 품으며, 다음에 머리가 좀 덜 딱딱한 밤에 다시 만나봐야겠다. 그때 혹 새롭게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 새로 리뷰를 작성한 그 시집처럼.

 

 

  낯설어진 몸 안으로 스며온 봄은

  전 생애를 통과해나간 기억보다 밝고 길어

  아무리 집을 옮겨 살아도

  내가 나를 만날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내가 처음 보는 풍경들은 언제나

  내가 처음 만든 풍경들일 터이나

  生時 전의 눅눅하게 물 찬 그림이

  걸레질 끝난 창밖에 액자처럼 떠오르는 광경을

  詩라고 부르려니

  식어빠진 내 육체의 화덕이 푸슬푸슬 비웃는 소리가

  봄밤의 질긴 불면보다 정겹게 허망하다

  누군가의 빈자리로 넘실대는 방 구석구석을 덧대어 잇는

  이 습관성 자기비하에

  이 작은 집이 만화처럼 들썩거리기만 한다면

  나는 또 웃을 수 있겠지만

  노을빛으로 산산이 쪼개지는 웃음은

  황혼 저편의 별자리처럼 욱신욱신

  내 몸에서 너무 멀다 _ 「이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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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특별판) ㅣ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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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심장은 뛰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가장 뜨거운 성기가 된다. 그곳에서 가장 아픈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그 심장이 차가워질 때 아이들은 어디로 가서 태어날 별을 찾을까.

  아직은 뛰고 있는 차가운 심장을 위하여 아주 오래된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 _ '시인의 말' 중에서.

 

처음으로 접한 허수경 시인의 시집이었다. 시인의 책이 처음은 아니다.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과 장편소설 『아틀란티스야, 잘 가』를 바로 얼마 전에 읽었더랬다. 시인의 책을 시집이 아닌 다른 책으로 먼저 접한 것이 조금 열없긴 하지만, 그런 글들을 통해 막연하게 시인의 시는 이러이러한 느낌이지 않을까, 추측해보기도 하며 기대에 차 시집을 펼쳤다. 그러니까 내가 기대한 시는 조금쯤 '말랑말랑한', 이를 테면, '읽기 쉬운' 그런 시들이었다.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대감에 조금쯤 설레기도 했었는데, 처음 접한 시인의 시는 내 예상과 달리 내겐 조금 어렵게 다가왔다.

 

의미를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시들. (어쩌면, 시의 '본질'일지도 모르겠지만, 시에 무지한 독자로서는 다가가기 어려운.)

허수경 시인의 시가 대체적으로 이런 분위기인 것인지 아니면 이 시집만 이런 것인지는 기존 시집을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시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시인에게 이 시집은 어떤 의미에서는 '첫 시집'이라고 했다(이 시집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기존에는 시를 쓸 때 선배 시인들의 영향을 받았다면, 이 시집은 후배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서 쓴 시집이라고. 시인은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를 참 좋아한다고 했다. '외계'에서 온 시 같아서 좋다고. 시인이 '외계'에서 온 것 같다고 표현한 그러한 시집은, 또한 내가 어렵게 생각해 다가가길 주저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젊은 시인들의 '외계'에서 온 시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이 시집은 내게 쉽게 그 의미를 내어주지 않는 어려운 시집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꼬치구이였다. 어머니의 육체 한 부위는 꼬치였고 다른 부위는 갈비였으며 간과 염통과 내장 역시 구이거나 볶음이었다. 그녀의 털과 가죽은 인간의 시린 등이나 목과 발을 덥혀주었다.

 

  그리고…… 말하자면 (내 이빨 사이로 지나가는 드문드문한 증오를 당신은 보셨는가? 초식동물의 이빨 사이에는 식물의 애도만이 있다. 바람은 식물들 사이를 일렁이다가 내 이빨을 통과하고 위장으로 들어온다. 바람아, 내 핏속에서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나는 양이다.

 

  어머니의 네 개의 위는 개의 먹이였다. _ 「카라쿨양의 에세이」 부분

 

'나의 어머니는 꼬치구이였다'로 시작하는 이 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카라쿨양의 에세이'. 화자는 '카라쿨양'이다. 어미가 '꼬치구이'로 변해버린. 자신 또한 어미의 배 속에서 인간들에 의해 억지로 꺼내어진,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을 운명이었던. 한 인간 여자의 필요에 의해 살아 남아, 인간의 젖을 빠는 양 한 마리. 장장 13쪽에 달하는 이 한 편의 시를 읽는 동안 인간의 잔인한 욕망('아기의 연하고도 부드러운 가죽털을 얻기 위하여 인간들은 이제 수태 시기가 임박한 어미를 죽여 그 자궁에서 아기를 끄집어낸다. 그 아기의 털가죽을 벗긴다. 그 털가죽은 페르시안이라고 불리우는 고급 가죽이 된다. 검은 아기 털가죽. 아직 양수가 묻어 촉촉한 그 가죽. 그 가죽을 위하여 어미와 아기는 도살되는 것이다')에 진저리를 치기도 했고, 그동안 내 배 속으로 들어왔던 수많은 고기들이 일시에 떠올라 속이 메스껍기도 했다. 그 동안 아무 생각없이 걸치고 먹었던 것들이 살아 있는 '원형'이었을 때의 모습들이 한꺼번에 나를 공격해와, 조금쯤 괴로웠던 시간이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나는 앞으로도 또 입고 먹을 테지만, 예전처럼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미(美&味)를 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카라쿨양의 에세이」는 내게 그만큼 강렬한 시였다.

 

  무리를 이루며 사는 우리들은 무엇보다 무리에 속한 이들의 안녕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살아남기 위한 미덕. 흩어지면 육식 동물들의 표적이 되므로 우리라는 종이 이 지상에 태어나던 처음부터 배려라는 미덕을 우리는 본능처럼 갖는다. 그 본능은 인간이 우리를 사육화했던 역사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미덕으로 나를 보호하려들지 말라, 나의 무리여. 어머니는 꼬치로 구워졌다. 머리와 살을 발겨낸 뼈는 국솥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내 어머니는 어떤 풀밭에도 어떤 산악에도 없다는 것을. 국솥에 든 어머니의 머리에 달린 눈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무서워라, 뜨거운 국솥에 들어가 있으면 눈은 무엇을 보게 될까? 보지 못하는 눈은 눈의 형체만을 남긴 채 단백질이나 무기질이나 하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까? _ 「카라쿨양의 에세이」 부분

 

내게 이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시 외에도, 시인의 낭송회에서 시인의 음성으로 혹은 동료 시인들의 음성으로 들었던 시들을 만나면 참 반갑기도 했다. 눈으로 글자를 읽으면서도 귀로는 그날 들었던 낭송이 생생히 재생되는 듯 해 그렇지 않은 시들에 비해 더 애틋하고 깊은 느낌을 남겨주었다. 비록 이 시집과는 내 예상만큼 깊은 교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시인의 다른 시집들은 어떨지 궁금해져 계속해서 시인의 시들을 만나게 될 것 같다. 바라기로는, 이 시집은 시인의 '첫 시집'이니까, 기존의 시집은 이와 조금쯤 다른 느낌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어찌 되었든, 올해 시인의 오랜만의 고국 나들이를 기념해 시인을 직접 뵙게 되고 시인의 글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참 뜻깊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시인을 가슴에 새기며……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차 소리가 났다 잎새들이 바깥에서 지고 있었다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단 한 번도 뿌리와 소통을 해보지 않은 나뭇잎

 

  울 수도 없었다 울기에는 너무 낡은 정열이었다

 

  뿌리에서 떠나 다시 뿌리를 덮어주는 나뭇잎

 

  웃을 수도 없었다 웃기에는 너무 오랜 정열이었다 _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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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일반판) ㅣ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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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은 뛰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가장 뜨거운 성기가 된다. 그곳에서 가장 아픈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그 심장이 차가워질 때 아이들은 어디로 가서 태어날 별을 찾을까.

  아직은 뛰고 있는 차가운 심장을 위하여 아주 오래된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 _ '시인의 말' 중에서.

 

처음으로 접한 허수경 시인의 시집이었다. 시인의 책이 처음은 아니다.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과 장편소설 『아틀란티스야, 잘 가』를 바로 얼마 전에 읽었더랬다. 시인의 책을 시집이 아닌 다른 책으로 먼저 접한 것이 조금 열없긴 하지만, 그런 글들을 통해 막연하게 시인의 시는 이러이러한 느낌이지 않을까, 추측해보기도 하며 기대에 차 시집을 펼쳤다. 그러니까 내가 기대한 시는 조금쯤 '말랑말랑한', 이를 테면, '읽기 쉬운' 그런 시들이었다.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대감에 조금쯤 설레기도 했었는데, 처음 접한 시인의 시는 내 예상과 달리 내겐 조금 어렵게 다가왔다.

 

의미를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시들. (어쩌면, 시의 '본질'일지도 모르겠지만, 시에 무지한 독자로서는 다가가기 어려운.)

허수경 시인의 시가 대체적으로 이런 분위기인 것인지 아니면 이 시집만 이런 것인지는 기존 시집을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시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시인에게 이 시집은 어떤 의미에서는 '첫 시집'이라고 했다(이 시집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기존에는 시를 쓸 때 선배 시인들의 영향을 받았다면, 이 시집은 후배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서 쓴 시집이라고. 시인은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를 참 좋아한다고 했다. '외계'에서 온 시 같아서 좋다고. 시인이 '외계'에서 온 것 같다고 표현한 그러한 시집은, 또한 내가 어렵게 생각해 다가가길 주저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젊은 시인들의 '외계'에서 온 시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이 시집은 내게 쉽게 그 의미를 내어주지 않는 어려운 시집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꼬치구이였다. 어머니의 육체 한 부위는 꼬치였고 다른 부위는 갈비였으며 간과 염통과 내장 역시 구이거나 볶음이었다. 그녀의 털과 가죽은 인간의 시린 등이나 목과 발을 덥혀주었다.

 

  그리고…… 말하자면 (내 이빨 사이로 지나가는 드문드문한 증오를 당신은 보셨는가? 초식동물의 이빨 사이에는 식물의 애도만이 있다. 바람은 식물들 사이를 일렁이다가 내 이빨을 통과하고 위장으로 들어온다. 바람아, 내 핏속에서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나는 양이다.

 

  어머니의 네 개의 위는 개의 먹이였다. _ 「카라쿨양의 에세이」 부분

 

'나의 어머니는 꼬치구이였다'로 시작하는 이 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카라쿨양의 에세이'. 화자는 '카라쿨양'이다. 어미가 '꼬치구이'로 변해버린. 자신 또한 어미의 배 속에서 인간들에 의해 억지로 꺼내어진,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을 운명이었던. 한 인간 여자의 필요에 의해 살아 남아, 인간의 젖을 빠는 양 한 마리. 장장 13쪽에 달하는 이 한 편의 시를 읽는 동안 인간의 잔인한 욕망('아기의 연하고도 부드러운 가죽털을 얻기 위하여 인간들은 이제 수태 시기가 임박한 어미를 죽여 그 자궁에서 아기를 끄집어낸다. 그 아기의 털가죽을 벗긴다. 그 털가죽은 페르시안이라고 불리우는 고급 가죽이 된다. 검은 아기 털가죽. 아직 양수가 묻어 촉촉한 그 가죽. 그 가죽을 위하여 어미와 아기는 도살되는 것이다')에 진저리를 치기도 했고, 그동안 내 배 속으로 들어왔던 수많은 고기들이 일시에 떠올라 속이 메스껍기도 했다. 그 동안 아무 생각없이 걸치고 먹었던 것들이 살아 있는 '원형'이었을 때의 모습들이 한꺼번에 나를 공격해와, 조금쯤 괴로웠던 시간이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나는 앞으로도 또 입고 먹을 테지만, 예전처럼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미(美&味)를 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카라쿨양의 에세이」는 내게 그만큼 강렬한 시였다.

 

  무리를 이루며 사는 우리들은 무엇보다 무리에 속한 이들의 안녕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살아남기 위한 미덕. 흩어지면 육식 동물들의 표적이 되므로 우리라는 종이 이 지상에 태어나던 처음부터 배려라는 미덕을 우리는 본능처럼 갖는다. 그 본능은 인간이 우리를 사육화했던 역사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미덕으로 나를 보호하려들지 말라, 나의 무리여. 어머니는 꼬치로 구워졌다. 머리와 살을 발겨낸 뼈는 국솥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내 어머니는 어떤 풀밭에도 어떤 산악에도 없다는 것을. 국솥에 든 어머니의 머리에 달린 눈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무서워라, 뜨거운 국솥에 들어가 있으면 눈은 무엇을 보게 될까? 보지 못하는 눈은 눈의 형체만을 남긴 채 단백질이나 무기질이나 하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까? _ 「카라쿨양의 에세이」 부분

 

내게 이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시 외에도, 시인의 낭송회에서 시인의 음성으로 혹은 동료 시인들의 음성으로 들었던 시들을 만나면 참 반갑기도 했다. 눈으로 글자를 읽으면서도 귀로는 그날 들었던 낭송이 생생히 재생되는 듯 해 그렇지 않은 시들에 비해 더 애틋하고 깊은 느낌을 남겨주었다. 비록 이 시집과는 내 예상만큼 깊은 교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시인의 다른 시집들은 어떨지 궁금해져 계속해서 시인의 시들을 만나게 될 것 같다. 바라기로는, 이 시집은 시인의 '첫 시집'이니까, 기존의 시집은 이와 조금쯤 다른 느낌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어찌 되었든, 올해 시인의 오랜만의 고국 나들이를 기념해 시인을 직접 뵙게 되고 시인의 글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참 뜻깊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시인을 가슴에 새기며……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차 소리가 났다 잎새들이 바깥에서 지고 있었다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단 한 번도 뿌리와 소통을 해보지 않은 나뭇잎

 

  울 수도 없었다 울기에는 너무 낡은 정열이었다

 

  뿌리에서 떠나 다시 뿌리를 덮어주는 나뭇잎

 

  웃을 수도 없었다 웃기에는 너무 오랜 정열이었다 _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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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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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었던 이 시집을 다시 꺼내어 읽었다. 다이어리를 살펴보니 꼭 일 년만이다.

이미 리뷰까지 올린 책은 다시 읽는데도 리뷰를 새로 쓰지는 않는데, 이 시집은 기어이 또 리뷰를 써야겠다.

그 일 년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고 하면, 문학 계간지에 실린 심보선 시인의 시를 몇 편 만나고는 그만 마음에 하트가 뜨고 말았고, 한 시인의 낭독회에서 시인을 직접 보고 시인의 목소리로 낭송되는 시를 듣고는 마음이 아주 훈훈해졌더랬다. 그리고 생각했지.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내가 읽었던가? 이미 읽고 리뷰까지 썼음에도 기억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작년에 쓴 리뷰를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어렵다'고 했더라. 어려워서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영 멀리하고 싶지는 않은, 다시 꺼내어 보고 싶은 시집이라고.

그런 사실 같은 거 기억했거나 못 했거나, 어쨌든,  며칠 전 밤 문득 시인이 생각나 시집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이미 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던 시집에 또 수많은 밑줄들을 보탰다.

참으로 가슴 설레고 벅찬 시들이었는데, 작년에는 '어렵다'는 평만 남긴 걸 보고 조금 놀랐다. 아니, 일 년 사이에, 같은 시를 대하는 내 마음이 이렇게나 달라졌단 말인가? (그래서 리뷰를 다시 쓰기로 마음 먹었지!)

 

  오늘은 휴일입니다

  저녁 내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부재중 전화가 두 건입니다

  아름다운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사랑하는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문득 창밖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허공이라면 뛰어내리고 싶고

  구름이라면 뛰어오르고 싶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이토록 평화로운 날은

  도무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_ 「휴일의 평화」 부분

 

이번에 새롭게 밑줄을 그은 구절. 이 시를 읽던 날이 바로 '휴일'이었고, '부재중 전화'가 온다면 떠올려볼 '아름다운 그대', '사랑하는 그대'가 생각났고, '도무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평화로운 날'을 보내고 있음에 감사하며 공감했던 거겠지.

사람도 책도, 그때 내 마음에 딱 들어올 그 '타이밍', 그 '시절 인연'이 참으로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이번 만남.

그런 평화로운 휴일 속에서 시집은, 첫 만남때와 달리, 내 마음속 깊이깊이 들어와 자리했다.

 

  나는 그저 고독한 아크로바트일 뿐

  굳이 유파를 들먹이자면

  마음의 거리에 자우룩한 구름과 안개의 모양을 탐구하는 '흐린 날씨'파

  고독이란 자고로 오직 자신에게만 아름다워 보이는 기괴함이기에

  타인들의 칭송과 멸시와 무관심에 연연치 않는다

  즐거움과 슬픔만이 나의 도덕

  사랑과 고백은 절대 금물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단코 침묵이다. _ 「구름과 안개의 곡예사」 부분

 

즐거움과 슬픔만이 나의 도덕, 사랑과 고백은 절대 금물!

이런 시구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작년에 그었던 밑줄에 다시 밑줄을 보탠다. '사랑과 고백은 절대 금물'이라는 문장에 밑줄 긋는 마음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이 시를 만난 다른 이들은 그냥 지나칠지도 모를 구절들에 큰 의미를 두며 '나만의 시'를 완성하는 기쁨의 손을 들어준다. 작가의 시인의 손을 떠난 작품은, 독자에게서 각자 나름의 형태로 완성된다는 말도 문득 떠오르며, 내 안에서 새롭게 완성하는 한 권의 시집.

 

작년에 계간지에 실린 시인의 시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난 달에 낭독회에서 시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 시집을 다시 펼쳐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아찔하다. 내 생의 소중한 한 페이지를 놓칠 뻔 했지 않은가.

내가 늘 곁에 두고 수시로 펼쳐보는 시집들과 함께 이 시집도 앞으로 언제고, 몇 번이고 계속 펼쳐보게 될 것 같다.

행복하다. 그렇게 펼쳐볼 시집이 한 권 늘어났다는 것이.

 

 

  생은 균형을 찾을 때까지 족히 수십 번은 흔들린다. 그러다가 쓰러진 이들은 정말 완벽하게 쓰러진 것이다. 다시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혁명일까? 아버지, 여태 빈 링거병 꽂고 누워 계세요?

 

  보도블록에 다리가 끼인다. 누구인가, 나를 이토록 무지막지하게 흡입하는 자는? 서서 생각해본다. 우리쯤의 나이면 삶은 몇 번의 암전(暗轉)을 겪고도 남는 것이다. 이제서야 막(幕) 끝의 술처럼 나풀거리는 깨달음. 아버지, 이렇게 장성해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내가 당신이 남긴 그 숱한 혼잣말의 잔뿌리들 중 하나일 줄이야! _ 「대물림」 부분

 

 

  규칙과 감정 모두에 절박한 나

  지난 시절을 잊었고

  죽은 친구들을 잊었고

  작년에 어떤 번민에 젖었는지 잊었다

  오늘 나는 달력 위에 미래라는 구멍을 낸다

  다음 주의 욕망

  다음 달의 무(無)

  그리고 어떤 결정적인

  구토의 연도

  내 몫의 비극이 남아 있음을 안다

  누구에게나 증오할 자격이 있음을 안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애절한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늘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 _ 「오늘 나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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