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어 측정기 나의 한국어 측정 1
김상규 외 지음 / GenBook(젠북)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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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친구를 만났다.

끊임없이 책 이야기만 하면서 밤도 샐 수 있는 친구이기에, 이날도 책에 관한 이야기를 신나게 하다가 얼마 전에 오타가 엄청 많은 책을 봤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찾은 오타가 수십 개가 넘었다는 말을 하면서 이런저런 예를 들다가, "'떼를 쓰다'의 '떼'를 '때'로 썼더라"고 했더니, 친구가 그거 '때'가 맞는 거 아니냐고 했다. "아니야, '떼'야! ……'떼'일걸……아니다, '때'가 맞나?" 생각하면 할수록 이게 맞는 것도 같고 저게 맞는 것도 같고 헷갈려서 나중에 사전 찾아보지 뭐, 하고 끝냈다.('떼'가 맞다)

 

평소에 많이 쓰는 말이지만, 이렇게 불쑥불쑥 헷갈리는 말이 참 많다.

도대체 내가 맞춤법에 맞게 잘 쓰고 있는 건지, 이 단어를 알맞은 뜻으로 제대로 쓰고 있는 건지, 글을 쓰다가 헷갈려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는 늘 사전 검색을 하곤 하지만, 그래도 돌아서면 또 헷갈리기 일쑤다. 그러다가 종내는 나의 한국어 실력이 의심스러워지기도 하고 말이다. 내 한국어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한국어능력평가를 한 번 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목이 눈에 확 띄는 책이 있었다. <나의 한국어 측정기>! 오호라, 이 책으로 내 한국어 실력을 측정해보면 되겠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다.

 

이 책은 문제집 같다.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풀던 문제집. 한 꼭지마다 열 문제씩, 모두 600문제가 실려 있다. 사지선다 네 문제, 둘 중 고르기 세 문제, 주관식 세 문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다.(그런데도 정작 백 점은 드물게 나왔다. 이런) 우리말을 깊이 있게 공부하려는 사람 보다는 그냥 편하게 친구끼리 가족끼리 재미로 풀어볼 만하다. 열 꼭지씩 묶어서 '몫'이라고 나누고 있는데, 한 몫이 끝날 때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낱말에 어떤 뜻이 담겨져 있는지 알려준다. 늘 쓰는 낱말이면서도 그 말의 어원까지는 몰랐던 터라 흥미롭게 읽었다.

 

지금 내 한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 사람은 한번 들춰볼 만하다. 하지만 대체로 쉬운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내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구나!라고 생각하는 건 금물일 듯. 요즘 이 외에도 우리말 관련 책들을 몇 권 더 챙겨두었는데 함께 봐야겠다. 멀고먼 우리말 공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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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 채플린
염승숙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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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별점을 낮게 준 어떤 리뷰를 보고서였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낯선 우리말들이 잔뜩 나와 있어서 불편했다는, 그런 리뷰였는데, 거기에 예로 들어준 문장을 보며 나는 "오호~! 횡재라!!"를 외쳤다. 이 책, 꼭 만나봐야지! 하면서.

 

나는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헐겁게 매달린 눈밭의 엷은 막을 조심스레 헤쳤다. 그와 동시에 나의 시야는 믿을 수 없는 광경으로 뒤섞이고 얼크러졌다. 검실검실한 광경에 입이 딱 벌어졌다. 작은, 그러나 무수한 공룡들이 옹긋옹긋 모여앉아 눈을 뭉쳐 허겁지겁 입속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나는 얼먹은 표정으로 옴짝달싹 못한 채 하염없이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102~103쪽)

 

이 책에는 이런 문장들이 가득하다. 요즘 매일같이 사전을 들여다보며 예쁘고 독특한 부사어들에 관심이 많이 갔는데, 이 책에는 그런 부사어가 특히나 많이 쓰이고 있다. '검실검실(사람이나 물건, 빛 따위가 먼 곳에서 어렴풋이 자꾸 움직이는 모양)', '옹긋옹긋(키가 비슷한 사람이나 크기가 비슷한 사물들이 모여 솟아 있거나 볼가져 있는 모양)', '어빡자빡(여럿이 서로 고르지 아니하게 포개져 있거나 자빠져 있는 모양)', '생게망게(하는 행동이나 말이 갑작스럽고 터무니없는 모양)' 등과 같이 말이다. 사전을 통해서만 본 낱말들을 이 책에서 발견하거나, 낯설지만 재미있는 낱말들을 만났을 때의 행복감이 참 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옆에 준비해 둔 접착용 메모지에 부지런히 예쁜 우리말들을 옮겨 적느라 드바빴다. 그렇게 따로 적어 놓은 단어가 꽤 되어 신난다.

 

통통 튀어 다니는 것 같은 문장에 빠져서 아름다운 낱말들을 건져올리느라 이야기 자체에는 집중을 하지 못한 면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독특하고 흥미로워서 낱말 풍선에 매달려 날아가는 내 마음을 거머당겨주었다. 온 몸에 숫자를 가지고 태어난 '수의 세계'나, 갑자기 지도에서,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1-173번지 이야기 '지도에 없는'이나, '여봇씨요'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채플린으로 변하고마는 '채플린, 채플린', 우산을 들고 하늘로 날아가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피에로 행진곡' 등 젊은 감성이 돋보이는 이야기들이 달근달근하다.

 

이제 사전을 뒤적여 이 책 속에서 건져올린 단어들의 뜻을 찾아 본 뒤, 이 책을 되읽어 봐야겠다. 글맛이 두 배가 되지 않을까? 언젠가 모 작가가 '소설 읽으며 사전 뒤져야 하느냐!'는 항의를 많이 받아서 이제는 글 쓸 때, 우리말 사용을 자제하려 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염승숙 작가의 글에서는 앞으로도 예쁜 우리말 행진이 이엄이엄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만나게 될 그녀의 글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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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A.M. 홈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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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오늘은 지하철 안에서 무엇을 읽을까 고민하면서 이 책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가방은 이미 교재 두 권과 학생들 과제물로 꽉 차 있었기에 이 책의 두께와 무게가 조금 부담스러웠던 탓이다.

조금 얇은 책으로 챙겨 넣었는데, 계속 이 책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

왠지 이 책을 꼭 읽고 싶어, 가방 좀 무거우면 어떠랴 하고는 이 책을 챙겨갔다. 

덕분에 월요일의 지쳤던 내 영혼을 구원받을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운이 좋은가. 코도 멀쩡하고 날씨도 좋은데, 더이상 뭘 원하겠는가? 어쩌면 모든 사람이 운이 좋은데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을 때조차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것일까? (54쪽)

 

지난 월요일은 유난히 힘들었다. 주말 동안 지친 몸을 다 추스르지도 못한데다 유난히 가라앉은 분위기 탓에 수업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엉엉 울거나, 빨리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을 타고 책 속에 빠져들고 싶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나를 구원해준 것이 바로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와 토블론 초콜릿(내가 좋아하는 '3대초콜릿' 중 하나)이다.

지친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책 속 글귀들과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스티븐 킹의 추천사를 떠올렸다.

"이 책은 분명 누군가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적어도, 그 힘들었던 월요일 만큼은, 이 책이 나의 인생을 구한 것이 분명했다.

 

"일단 죽어가는 건 아니니 좋은 일이죠. 그게 중요한 점이기도 하고요. 선생님에겐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언제 호각 소리를 듣고 게임에서 퇴장하게 될지 알지 못하잖아요. 그때까지는 모든 것을 유용한 정보로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살아 있다는 걸 기뻐해야겠군요."

"우리 모두 그래야죠." (37쪽)

 

주인공 리처드 노박이 어느날 갑작스레 찾아온 통증으로 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됐다면, 나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이 책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매일매일이 같다고 지겹다고 생각하던 내게,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고, 내일 또한 오늘과 다를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준 책. 지치고 힘들어도, 책을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고, 언제고 읽고 싶을 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책.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축복임을 느끼게 해준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줄어드는 게 아쉬운 책,을 제대로 만났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해 얼른 읽고 싶으면서도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워 나는 결국 여러 날에 걸쳐 야금야금 그 행복을 맛보았다.

 

그러나 오늘은 모든 것이 다르고, 다르면서도 똑같고, 결코 다시는 같아질 수 없다. (8쪽)

 

그러니까 그날, 아주아주 힘들었던 월요일,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읽으며, 토블론 초콜릿을 먹으며 내 마음은 한결 평온해 졌고, 제목 때문인지 이 책이 내 인생을 구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더라는 그런 이야기이다. 이 보옴이 내게 내려준 선물, 이 책을 만나서 참 행복했다.

 

(한 가지 궁금한 건, 리처드 노박이 통증을 느끼며 '그것'인가,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못 찾았다. 죽음을 굳이 '그것'이라고 표현한 건가? 왠지 뭔가 더 오묘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누가 좀 알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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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눈물 - 사라지는 얼음왕국의 비밀
조준묵 프로듀서 외 지음, 박은영 글, 노경희 스토리 / MBC C&I(MBC프로덕션)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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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인터넷 기사에서 본 사진 한 장이 잊혀지지 않는다.

북극곰 한 마리가 조그마한 얼음 덩어리 위에 옹졸하게 몸을 올리고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기사 내용은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사라지면서 삶이 힘들어진 북극곰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이 난다.

제 몸 하나 올리기도 힘겨워보이는 얼음 덩어리 위에 앉아 둥둥 떠 있는 그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고 안타깝던지.

 

이 책 표지를 보는데 그때 그 사진이 떠올랐다.

'북극의 눈물'이라는 제목도 찡하고.

 

'환경재단 우수 추천도서'라는 이 책은 MBC 창사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북극에서 보낸 300일이라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책의 '들어가는 말'에도 이 대서사시를 기록하기 위한 마음이 쉽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그들에겐 낯선 곳을 향한 두려움이 있었다면, 나에겐 낯선 곳을 향한 기대감이 컸다.

지금까지 북극에 관한 책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을 주 독자층으로 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듯이 친근한 말투로 북극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냥의 계절 - 북극의 봄, 얼음 없는 북극의 여름, 사라지는 툰드라 - 북극의 가을, 얼음왕국의 정령들 - 북극의 겨울.

북극의 사계절이 담긴 기록을 따라가며, 북극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제목에서 예고하듯이 이 책은 단순히 북극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각 계절마다 북극의 모습이 예전과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변하고 있는 북극의 모습을 알리고,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일깨우고자 함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지도는 해가 다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마치 지우개로 쓱쓱싹싹 지우듯이, 북극은 조금씩 그 몸집이 작아져가고 있다. 책에 실린 사진을 보니 정말 놀라울 정도다.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북극에 사는 이누이트들의 삶도 바뀌고 있다. 썰매개를 타고 설원을 달려 사냥을 하러 가던 그들은 이제 사냥이 무섭다. 따뜻해진 북극은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고 이곳저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냥을 하다가 순식간에 눈 녹은 물이 덮쳐 오는 바람에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을 떠나거나 이젠 사냥꾼이 아닌 낚시꾼으로 삶의 방향을 바꾼다. 살기 힘든 건 사람뿐 만이 아니다. 북극곰도 북극늑대도 바다코끼리도 모두모두 힘들다. 기온이 바뀌면서 사냥도 쉽지 않고 몸을 쉬일 빙하도 마땅치 않아지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은 이미 많이 보고 들어왔지만, 이 책으로 다시 만나게 되니 와닿는 크기가 다르다. 지구온난화의 제일 큰 피해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북극의 모습을 1년 동안 기록해 보여줌으로써 그 심각성이 더욱 깊게 와닿는 것이다. 굶주림에 지친 북극곰 어미의 모습을 본다면, 따뜻해진 북극에서 사냥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이누이트들을 본다면, 북극이 흘리는 그 '눈물'을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에 아주 좋은 책이고, 어른들도 한 번쯤 읽어봤으면 싶은 책이다. 북극이 흘리는 눈물은 단지 북극만의 눈물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 인류의 눈물이 될 날이 머잖았다.

 

※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며 많은 이누이트들이 '에스키모'로 불리는 것을 모욕적으로 여긴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이누이트'는 '인간'을 뜻하는 그들의 언어라 한다. 앞으로는 에스키모가 아닌 이누이트라고 바르게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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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찬 여행기
류어 지음, 김시준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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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도 더 전인 1903년에 씌여진 소설이고, 그 장르도 생소한 '견책소설(정치나 사회의 비리를 폭로하고 규탄한 소설)'이라 하여, 솔직히 재미없을 줄 알았다.

그래도 『아주주간』 추천 중국 소설 100선에 포함된 작품이라 하니, 한번 읽어볼까나 하는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의외의 즐거움을 만나 아주 행복한 책 읽기였다.

 

저자 류어는 생몰 연대도 불분명한(1857~1909로 추정) 중국의 관료이다. 자신의 행적을 토대로 하여 1903년에 <라오찬 여행기>를 저술하고, 1905년에 그 속편을 써낸 것이 그가 남긴 소설의 전부다.(치수 공사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운 경험으로 치수 관계 책은 다수 저술하였다 한다) 책을 내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정부미를 매매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1909년 유배지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사실 그가 체포당한 이유는 정부미 매매가 아니라, 위안스카이 정부를 향한 과격한 비판이었다 한다.

 

이 책에서 류어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청나라의 정치와 사회상을 폭로, 비판하고 있다. 주인공 라오찬은 먹물 깨나 먹었으나 과거에는 떨어지고 훈장이 되려고 해도 불러주는 곳도 없고, 나이가 많아 장사꾼 노릇을 하기도 여의치 않은, 먹고사는 게 고민인 사람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모든 질병을 고친다는 도사를 만나 그로부터 몇 가지 비방을 익혀, 남의 병을 고쳐주고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간다. '찬'은 그의 호이고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여 '라오찬'이라 불러주었다.

 

라오찬이 천하를 돌아다니며 겪은 일들이 때로는 분노를 자아내며, 때로는 긴장감을 조성하며, 때로는 감탄을 터뜨리게 하며 쉼 없이 이어진다. 여러 차례 그려지는 관리들의 부패상을 보며,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다 거기서 거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욕을 했다는 이유로 사사로이 백성들에게 누명을 씌워 잡아다 죽이는 위센이라는 관리를 보며, 도미니카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가 떠올랐다.(나는 몇 달 전에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통해 이 독재자의 가공할 만한 행각을 알게 되었다) "입 조심하십쇼. 이곳에서야 말씀하셔도 괜찮지만, 성내에 가시면 그런 말씀 마십쇼.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없는 곳에서는 나랏님 욕도 한다는데, 위센이란 자 뒤에서는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 목숨을 잃는다.(트루히요 손아귀의 도미니카공화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라오찬은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을 만나면 나서서 그 누명을 벗겨주기도 하였는데, 이때는 한 편의 추리소설이 되어 흥미로움을 더해준다. 한 집안에서 가족 13명이 함께 죽임을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용의자도 잡혔고, 증거물로 독극물이 든 월병도 확보되었다. 하지만 용의자는 극구 혐의를 부인하고, 증거물도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 사건을 라오찬이 어떻게 풀어가는지, 도대체 그 일가족은 어떤 방법으로 죽은 건지 그 과정이 자못 흥미진진하다.

 

뜻밖에 추리소설의 즐거움까지 안겨준 이 책과의 만남은 상당히 즐거웠다. 책꽂이에 소중하게 꽂아두고 두고두고 읽어볼 만하다. 다만 더 만나볼 저자의 다른 책이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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