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찬 여행기
류어 지음, 김시준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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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도 더 전인 1903년에 씌여진 소설이고, 그 장르도 생소한 '견책소설(정치나 사회의 비리를 폭로하고 규탄한 소설)'이라 하여, 솔직히 재미없을 줄 알았다.

그래도 『아주주간』 추천 중국 소설 100선에 포함된 작품이라 하니, 한번 읽어볼까나 하는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의외의 즐거움을 만나 아주 행복한 책 읽기였다.

 

저자 류어는 생몰 연대도 불분명한(1857~1909로 추정) 중국의 관료이다. 자신의 행적을 토대로 하여 1903년에 <라오찬 여행기>를 저술하고, 1905년에 그 속편을 써낸 것이 그가 남긴 소설의 전부다.(치수 공사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운 경험으로 치수 관계 책은 다수 저술하였다 한다) 책을 내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정부미를 매매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1909년 유배지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사실 그가 체포당한 이유는 정부미 매매가 아니라, 위안스카이 정부를 향한 과격한 비판이었다 한다.

 

이 책에서 류어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청나라의 정치와 사회상을 폭로, 비판하고 있다. 주인공 라오찬은 먹물 깨나 먹었으나 과거에는 떨어지고 훈장이 되려고 해도 불러주는 곳도 없고, 나이가 많아 장사꾼 노릇을 하기도 여의치 않은, 먹고사는 게 고민인 사람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모든 질병을 고친다는 도사를 만나 그로부터 몇 가지 비방을 익혀, 남의 병을 고쳐주고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간다. '찬'은 그의 호이고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여 '라오찬'이라 불러주었다.

 

라오찬이 천하를 돌아다니며 겪은 일들이 때로는 분노를 자아내며, 때로는 긴장감을 조성하며, 때로는 감탄을 터뜨리게 하며 쉼 없이 이어진다. 여러 차례 그려지는 관리들의 부패상을 보며,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다 거기서 거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욕을 했다는 이유로 사사로이 백성들에게 누명을 씌워 잡아다 죽이는 위센이라는 관리를 보며, 도미니카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가 떠올랐다.(나는 몇 달 전에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통해 이 독재자의 가공할 만한 행각을 알게 되었다) "입 조심하십쇼. 이곳에서야 말씀하셔도 괜찮지만, 성내에 가시면 그런 말씀 마십쇼.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없는 곳에서는 나랏님 욕도 한다는데, 위센이란 자 뒤에서는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 목숨을 잃는다.(트루히요 손아귀의 도미니카공화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라오찬은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을 만나면 나서서 그 누명을 벗겨주기도 하였는데, 이때는 한 편의 추리소설이 되어 흥미로움을 더해준다. 한 집안에서 가족 13명이 함께 죽임을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용의자도 잡혔고, 증거물로 독극물이 든 월병도 확보되었다. 하지만 용의자는 극구 혐의를 부인하고, 증거물도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 사건을 라오찬이 어떻게 풀어가는지, 도대체 그 일가족은 어떤 방법으로 죽은 건지 그 과정이 자못 흥미진진하다.

 

뜻밖에 추리소설의 즐거움까지 안겨준 이 책과의 만남은 상당히 즐거웠다. 책꽂이에 소중하게 꽂아두고 두고두고 읽어볼 만하다. 다만 더 만나볼 저자의 다른 책이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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