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쇼지 유키야 지음, 김난주 옮김 / 개여울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제목은 Mourning이다. Morning이 아닌.

우리글로 씌여진 '모닝'만 보고는 당연히 'morning'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이 책은 상복(mourning)을 입은 네 남자가 규슈에서 요코하마의 바다까지 차를 타고 달리며 과거를 추억하는 내용이다.

그냥 이런 설정이었으면 별로 흥미롭지 않았을텐데, 하필 이 책에는 대학 시절의 절친 '오총사'가 등장하며,

비록 서로의 마음속에 영원한 절친으로 남아있긴 하지만 이들 다섯이 한 자리에 모일 기회는 거의 없다.

바로, 나의 '오총사'처럼 말이다.

원주, 승희, 은진, 윤경, 선지. 고등학교 시절, 우리 오총사.

대학을 가며 흩어지고, 직장을 다니며 흩어지고, 시집을 가며 흩어지고, 여러 번의 헤어짐을 거치면서,

우리 오총사도 다섯이 모이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누군가의 결혼식 때 만나지는 것 말고는.

마치 이 소설 속 오총사가 그들 중 한 명의 장례식장에서야 모두 모이게 된 것처럼.

 

신고, 준페이, 와료, 히토시, 다이.

대학 시절 한 집에서 먹고 자고 함께 음악 활동도 하며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우정을 다지고 많은 추억을 함께 한 이들.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한 신고의 결혼식에서 다섯이 모인 뒤, 이십여 년 만에야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바로 신고의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마치고 각자 삶의 터전으로 떠나야 하는 때에, 준페이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터져나온다.

"난 자살할 거야."

신고를 떠나보내자마자 자살하겠다는 준페이 때문에 나머지 셋은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어떻게든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예약되어 있던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준페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끝까지 달리기로 한다.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준페이가 자살하려는 이유를 생각해 내면 자살을 '취소'하겠다는 대답을 받아내고서 말이다.

 

그러면서 이들의 추억 여행은 시작된다.

자살하려는 이유를 '생각해'내라니, 그럼 그들이 그 이유를 알고 있지만 잊었다는 것 아닌가?

그들이 그 이유를 알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 오총사가 함께 하던 시절에 있었던 어떤 일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그들이 동고동락한 그 4년 시절을 더듬게 된 것이다.

 

다섯 남자와 아카네, 유미코 자매.

그들 일곱이 함께 어울려 보낸 그 시절 이야기와, 그들이 선뜻 입밖에 내지 못 하는 비밀스러운 어떤 일.

이야기는 후반까지 흥미진진하게 흘러가다가, 조금은 기운 빠지는 반전을 드러내며 막을 내리다.

앞쪽에서 너무 긴장하며 달려온 탓인지, 마무리에서는 살짝 김이 새고 좀 아쉬운 느낌이 들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무엇보다도, 잊고 지내던 내 친구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이젠 또 누구의 결혼식에서 다섯이 모이게 될런지...

친구들이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픽션 -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
닉 혼비.조너선 샤프란 포어.닐 게이먼.레모니 스니켓 외 지음, 이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에 이 책 소개를 접했을 때,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도대체 제목이 뭐라는 거야?'

제목이 '픽션'이라는 건지, 아님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이라는 건지?

전자라면, 뒤의 기다란 괴상한 문장은 왜 붙어 있는 걸까?

후자라면, 아니 도대체 무슨 제목이 이렇게 긴 거야?!!

'정답'은 둘 다였다. 원서의 제목을 그대로 옮기자면 저렇게 긴 제목이 나오는 것이고, 한국어판에서는 고맙게도(!) '픽션'이란 간단한 제목을 붙인 것이다. 원서는 아마 세상에서 제일 긴 제목을 가진 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원서의 제목을 옮겨놓은 저 기다란 제목을 보면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조금은 짐작해 볼 수 있다.

'와', '과'에서 마침표를 찍어주면 각각이 이야기 하나의 제목이 된다.

(실제로 책에서 이야기 각각에 붙은 제목은 이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그리고 각 이야기를 쓴 저자는 모두 다르다.

일러스트만으로 된 이야기와 서문까지 포함하여 총 11명의 저자가 이 책에 참여했는데, 그 중에 내가 아는 이름은 단 둘뿐이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닉 혼비.

괴상한(!) 제목과 예쁘지 않은 표지 때문에 그냥 지나치려던 내 눈길을 잡아 끈 게 바로 조너선 사프란 포어,라는 이름이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글이 실린 책이라면 안 읽어 볼 수 없지!

그가 이 책에 참여해서 다행이다. 그냥 지나갔으면 섭섭했을 뻔 했다, 이 책.

 

물론 아홉 편의 이야기가 모두 다 내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글이 더 많았고, 다른 소설집들과는 차별화 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그림블)'였는데, '옮긴이의 글'을 보니 J.K.롤링이 자신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 최고의 이야기라고 극찬한 글이라고 한다. 게다가 지은이 클레멘트 프로이트 경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손자라는 흥미로운 '이력'도 있다! 어쨌든, 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을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으로 꼽고 싶다.

그 외에도 아주아주 조그만 마을 하나가 나라를 이루고 있는 '작은 나라 _ 닉 혼비', 가족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소심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겁나 소심한 아버지(라스 파프, 겁나 소심한 아버지이자 남편) _ 조지 손더스', 한 아이가 마을에 쳐들어 온 도적 일당을 소탕하는 이야기 '한심한 도적(카울릭에서 벌어진 시합) _ 리처드 케네디', 고양이만을 사랑하는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은 아들 이야기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사무어의 마지막 소원) _ 샘 스워프', 불행에 빠진 개를 구하게 해주는 전화기 '이상한 휴대전화(이상한 전화) _ 잔 뒤프라우' 등의 글은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봤던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6번째 마을)'은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 아쉬웠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태양새) _ 닐 게이먼', '괴물 _ 켈리 링크' 두 편은 조금 지루했다.

 

재미있는 글이든, 지루한 글이든 모두 독특하고 참신한 발상의 이야기들이어서 꽤 마음에 드는 책이다.

아참, 내가 본 책 중, 가장 재미있는 서문이 실린 책인 것 같다.(서문을 '패러디'한 옮긴이의 글도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냥 집에 있을걸 - 떠나본 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멋진 후회
케르스틴 기어 지음, 서유리 옮김 / 예담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올 여름 피서를 떠나면서 3권의 책을 챙겨갔다.

물놀이 외에 다른 할 일은 없는 계곡으로 떠나기에 책 읽을 시간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내가 피서지에서 펼쳐 든 이 책을 보고 가족들이 꺌꺌대며 웃었다. 왜 '그런 책'을 여행에 가져왔냐고.

물론, 제목 때문이었다. <그냥 집에 있을걸>!

 

내 경험에 따르면,

이 책은 한 가지 면에서는 여행에 아주 잘 어울리는 책이었고, 다른 한 가지 면에서는 여행에 절대 피해야 할 책이었다.

 

내가 집을 떠나면서 굳이 '그냥 집에 있을걸' 하는 후회가 가득 담긴 제목의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 책이 여행 에세이, 그것도 케르스틴 기어가 쓴 여행 에세이였기 때문이다.

(이 책 전에 그녀의 소설 몇 권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오늘 죽고 싶은 나>는 어찌나 재밌게 읽었던지, 그때 병원에 입원해 있던 동생 읽으라고 가져다 주려다가 엄마의 제지로 실패했다. 왜 '그런 책'을 병원에 있는 애에게 가져다 주느냐는 것이었다. 역시 제목 때문에!)

여행 에세이를 한 권 챙겨가고 싶었는데, 이왕이면 감성을 자극해서 자칫 진지해질 수 있는 글 보다는 케르스틴 기어의 그 유머와 재치를 만끽하며 즐기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이 선택은 아주 탁월했다.

한낮의 물놀이 외에는 그다지 즐길 것도 볼 것도 많지 않은 그곳에서 나는 계곡물 소리를 음악 삼아, 선풍기 바람 대신 시원한 계곡 바람을 쐬며 케르스틴 기어의 글 속으로 또다른 여행을 떠났다.

 

여행 에세이라고 해서 그녀가 다닌 많은 나라의 풍광이 담긴 사진이 실려 있고, 사진 옆에 시처럼 아름다운 글귀가 적혀있는 그런 책은 아니다.(요즘은 그런 책이 대세지만.)

오히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게 '여행 에세이'라는 건 까맣게 잊고, 그저 이 여행 좋아하고 조금은 호들갑스럽고 말 많은 '아줌마'의 수다를 듣고 있는 기분이다. 내가 기대한대로 아주 유쾌한 수다를!

비행기 공포증을 비롯해서 여행지에서 있을 수 있는 갖가지 공포증에 관한 이야기, 이탈리아 어를 둘러싸고 친구들 사이에 벌어진 신경전, 여행지에서 만난 귀신, 점쟁이의 말을 믿고 미래의 남편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섬, 세상에서 가장 추레한, 하지만 해마다 찾고 싶게 만드는 이상한 펜션 등등.

그 중에서도 금발머리 사촌 헬레나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었다. "할머니 최고!!"를 외치며 어찌나 유쾌하게 읽었던지.

'그냥 집에 있을걸'이란 제목이 무색하게 정말 후회스럽지 않고 유쾌상쾌통쾌한 여행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한참 물놀이를 하다 나와 젖은 옷 채로 대충 물기를 닦아내고, 계곡 물에 가져다 놓은 의자에 앉아, 두 발은 시원한 계곡물에 담그고 이 책을 읽다보니, 이제 더위가 살풋 수그러 들 시간이 되었던가, 그랬던 것 같다.

 

갑자기 배가 싸르르 아파졌고, 도저히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던 그곳의 간이 화장실에 가야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것도, 그날 저녁에만 스무 번 넘게!!!

책에 푹 빠져서 몸이 젖은 채로 너무 오래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두 발은 찬물에 담근 채로!

 

이 책을 읽다가 갑자기 화장실에 뛰어갔다가, 다시 책을 읽다가, 다시 화장실에 뛰어가기를 반복하고 있는 나를 보고 남동생이 한 마디했다.

"여행 와서 '그런 책'을 읽으니까 그렇게 되지!"

아, 역시 제목 때문인가?

가수는 자기가 부른 노래 가사를 따라가고, 영화배우는 자기가 맡은 배역을 따라가는 경우가 있다더니,

이 독자는 그만 읽던 책의 제목을 따라가고 말았다.(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상황이 그렇게 맞아 떨어졌으니 뭐.)

아픈 배를 움켜쥐고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속으로 한 마디 했다.

'아, 그냥 집에 있을걸...'

 

하지만, 책 제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상황 때문에 더욱더 잊을 수 없는 여행이 되었다나 뭐라나.

아무튼, 이 책도, 이 책을 읽다가 정말 제목과 꼭 같은 후회를 하게 되었던 올 여름의 피서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다음 피서에는 <나는 여기가 좋다>를 가져 가리라 다짐을!!)

 

잠깐 무겁고 진지하고 머리 아픈 책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 책 추천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케르스틴 기어 아줌마(왠지 '아줌마'라고 불러보고 싶다)가 들려주는 이 수다에 푸욱 빠져보자. 아, 그냥 집에서. 여행지에는 가져가지 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가끔 읽을 때면 내게 책을 추천해 달라던 사람이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서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추천 받은 책이 바로 <스타일>이었다.

작년 초여름 쯤이었으니까, 이 책이 나온 지 몇 달 지나지 않아서였는데, 웬일로 그 친구는 이미 이 책을 읽어봤으며, 내게 추천해 줄 만큼 재밌다고 했다. 어떤 책이기에? 하는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었고, 얼마 후 나도 이 책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스타일>이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보게 되는 일일 드라마를 빼고는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지만 왠지 드라마 <스타일>은 챙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드라마 보기에 앞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원작 소설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피서를 떠난 지난 주말에 드라마가 이미 시작된 것 같았다!!! 흐윽.)

 

이 책을 언제 읽었던가 작년 수첩을 뒤적거리다가 그때 남겨놓은 간단한 메모도 함께 발견했다.(작년에는 서평 이벤트로 받은 도서 외에는 서평을 남기지 않아, 한두 줄의 짧막한 메모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그때의 감상평은 "잡지사 기자 이서정의 일과 사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라고 적혀 있었다.(진짜 짧다.)

아, 저때는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던가?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는 <악마는...>을 전혀 떠올리지 않았기에 조금 의아했다.

역시, 같은 책이라도 처음 읽느냐 다시 읽느냐, 또는 언제 읽느냐 등에 따라서 그 느낌이 무척 다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패션지 8년차 기자 이서정이다. 위의 짧막한 감상평에 쓴 것처럼 그녀의 일과 사랑,으로 압축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그 외 좀 더 세부적인 소재들이 더욱 매력적이기도 한 책이다.

나는 이름을 들어도 모르는 수많은 패션 아이템들, 결코 뚱뚱하지 않은 몸매가 뚱뚱하다고 취급 받는 세상에서 더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리고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지는 제니칼 복용 후기,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소문의 이해관계, 꼭 한번 그렇게 써보고 싶은 음식 비평 등이 모두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를 제공해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다이어트 약 '제니칼' 복용 후 이야기. 제니칼은 먹어본 적도, 그 약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본 적도 없는 나이지만, 너무나 생생한 묘사에 나도 모르게 제니칼이 배출 시켜 준 기름띠가 절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실제로 있는 약이었다. 제니칼 복용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먼저 읽고 조금 더 고려할 것을 권해주고 싶다. 제니칼 먹고 데이트를 망치고 싶지 않다면.

 

드라마 <스타일> 소개를 언젠가 잠깐 보긴 했는데, 여주인공이 김혜수라는 것 말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박우진은 누가 맡았을지, 책 속 인물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 줄지 무척 궁금하고 기대된다. 비록 첫 회는 놓쳤지만, 재방송을 찾아 보고서라도 기어이 드라마 <스타일>이 보고 싶은 것은, 박우진이라는 캐릭터 때문이기도 하니까. 여기까지 쓰다가 궁금해져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박우진 역을 류시원이 맡았다. 이를 어쩌지. -_-a(→급 당황하여 나도 모르게 이모티콘까지 튀어나왔다. 흑) 류시원이라는 배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아마 진작 이 사실을 기억했더라면 원작과 드라마를 비교해 보는 재미를 누리고자 소설 <스타일>을 다시 읽는 일은 없었을 텐데. 흠, 뭐 덕분에 재미있는 소설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드라마 청취는, 글쎄 고민 좀 해봐야겠다.(갑자기 냉랭해진 글의 분위기. 이를 어째.) 가장 좋은 경우의 수는, 그래도 꿋꿋이(?) 드라마 챙겨보고, 류시원을 박우진이라는 캐릭터처럼 좋아하게 되는 상황이 되겠다. 흐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

2004 / 마음산책

 

처음 읽은 날 : 2006년 5월 19일

네 번째 읽은 날 : 2009년 7월 29일

 

 

2006년에 처음 이 책을 만난 후, (의도한 건 아니지만) 1년에 한 번씩 다시 펼쳐보았다. 내게도 해마다 펼쳐들게 되는 책이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

 

올해, 이 책을 네 번째로 읽었으니까, 이 책과의 만남이 4년째, 그리고 이 책으로 김연수 작가를 알게 된 지도 4년째. 이 책 한 권으로 인해 지난 4년 동안 내 삶의 일부분이 바뀌었으니, 이 책과의 만남이 내게는 어떤 운명의 예고였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한 문장을 찾아서'

이 책에는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문장이 나오고, 그 문장들과 함께 풀어내어진 작가의 문장은 또 젊은 날의 나를 사로잡고. 이 책뿐만 아니라, 이 책과의 인연 덕에 만나게 된 김연수 작가의 수많은 문장들이 나의 '청춘의 문장들'이 되었다. 4년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그의 문장에 밑줄을 그었던지.

 

내가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책날개에 실린 작가 소개글 때문이기도 하다.(예스24 文音親交에 실리는 소개글과 함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소개!) 간단하게 출신지, 출신학교, 저서 목록 등을 알려주는 무미건조한 소개글과 달리, 이 책의 저자 소개는 그 자체가 맛있는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 시작도 전에 그만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만들고 만다. 빵의 영향을 받은 본성을 지녔다는 사람, 이과에 적합한 머리가 이상과 김수영과 김지하의 시를 읽으며 이상해져 결국은 시인을 거쳐 소설가가 되었다는 사람, 천문학과를 지망했다가 영문학과에 들어갔다는 사람. 이런 정보들은 '소설가 김연수'를 구성하는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지만, 한창 청춘의 최절정을 지나던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_ 좋아하는 것은 낯선 지방의 음식, 그리스인 조르바, 나이가 많은 나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자리, 중국어로 읽는 당나라 시, 겨울의 서귀포와 봄의 통영과 여름의 경주, 달리기. 싫어하는 것은 소문을 알리는 전화, 죽고 싶다는 말, 누군가 울고 있는 술자리, 오랫동안 고민하는 일. (책날개의 저자 소개글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이덕무의 글을 읽었고, 당나라의 시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으며, 지나간 팝송을 듣고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야 했고, 하이쿠라는 (내게는) 새로운 문학 세계를 알았으며, 내가 바라는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 바뀌었고, 끝없는 질투를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젊은날을 사로잡은 한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후, 내 삶의 열정 상당 부분을 김연수와 그의 책에 쏟아부었으니 말이다.

 

_ 때로 취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 그게 바로 젊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같은 것. 꿈꾸다 깨어나면 또 여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곳. (164)

 

_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132)

 

사무엘 울만이,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고 했었지.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이 책을 처음 읽은 20대의 나도, 이 책을 네 번째 읽은 30대의 나도, 이 책을 수십 번쯤 읽었을지도 모를 5,60대의 나도, 변함없이 모두 청춘일 거란 느낌이 든다. 청춘을 갈망하게 만드는 책, 청춘을 사랑하게 만드는 책, 청춘에 눈물 흘리게 만드는 책.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청춘의 책'.

그리고 이 책이 남긴, 청춘에 관한 최고의 명언 하나.

 

_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141)

 

 

어렸을 때 숱하게 들었던 "장래 희망이 뭐니?"라는 질문에 버금갈 만큼, 많이 들어본 질문 중 하나는 "김연수 작가가 좋은 이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책에 마법 가루가 솔솔 뿌려져 있어. 그의 책을 펼치는 순간 책장 사이사이에서 마법 가루가 흩날려 나를 온통 사로잡아 버리는 거지. 그리곤 꼼짝없이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거지." 물론, 말도 안 되겠지만, 삶에는 종종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 거니까. 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사람들에게는 "청춘의 문장들을 읽어보세요."라고 말해줘야겠다.(이 두 가지 모두 통하지 않을 경우-케이블 티비 인터뷰같은!-에는 또 이런저런 이유를 찾아야겠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문장 몇 개 더.

 

_ 그나마 삶이 마음에 드는 것은, 첫째 모든 것은 어쨌든 지나간다는 것, 둘째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34)

 

_ 여전히 삶이란 내게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비슷하다.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151)

 

_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 가정법 문장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웠고 3차 방정식을 그래프로 옮기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알게 된 일이다. 내 안에는 많은 빛이 숨어 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란 그 빛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다. (1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