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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ㅣ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
2004 / 마음산책
처음 읽은 날 : 2006년 5월 19일
네 번째 읽은 날 : 2009년 7월 29일
2006년에 처음 이 책을 만난 후, (의도한 건 아니지만) 1년에 한 번씩 다시 펼쳐보았다. 내게도 해마다 펼쳐들게 되는 책이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
올해, 이 책을 네 번째로 읽었으니까, 이 책과의 만남이 4년째, 그리고 이 책으로 김연수 작가를 알게 된 지도 4년째. 이 책 한 권으로 인해 지난 4년 동안 내 삶의 일부분이 바뀌었으니, 이 책과의 만남이 내게는 어떤 운명의 예고였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한 문장을 찾아서'
이 책에는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문장이 나오고, 그 문장들과 함께 풀어내어진 작가의 문장은 또 젊은 날의 나를 사로잡고. 이 책뿐만 아니라, 이 책과의 인연 덕에 만나게 된 김연수 작가의 수많은 문장들이 나의 '청춘의 문장들'이 되었다. 4년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그의 문장에 밑줄을 그었던지.
내가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책날개에 실린 작가 소개글 때문이기도 하다.(예스24 文音親交에 실리는 소개글과 함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소개!) 간단하게 출신지, 출신학교, 저서 목록 등을 알려주는 무미건조한 소개글과 달리, 이 책의 저자 소개는 그 자체가 맛있는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 시작도 전에 그만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만들고 만다. 빵의 영향을 받은 본성을 지녔다는 사람, 이과에 적합한 머리가 이상과 김수영과 김지하의 시를 읽으며 이상해져 결국은 시인을 거쳐 소설가가 되었다는 사람, 천문학과를 지망했다가 영문학과에 들어갔다는 사람. 이런 정보들은 '소설가 김연수'를 구성하는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지만, 한창 청춘의 최절정을 지나던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_ 좋아하는 것은 낯선 지방의 음식, 그리스인 조르바, 나이가 많은 나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자리, 중국어로 읽는 당나라 시, 겨울의 서귀포와 봄의 통영과 여름의 경주, 달리기. 싫어하는 것은 소문을 알리는 전화, 죽고 싶다는 말, 누군가 울고 있는 술자리, 오랫동안 고민하는 일. (책날개의 저자 소개글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이덕무의 글을 읽었고, 당나라의 시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으며, 지나간 팝송을 듣고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야 했고, 하이쿠라는 (내게는) 새로운 문학 세계를 알았으며, 내가 바라는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 바뀌었고, 끝없는 질투를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젊은날을 사로잡은 한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후, 내 삶의 열정 상당 부분을 김연수와 그의 책에 쏟아부었으니 말이다.
_ 때로 취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 그게 바로 젊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같은 것. 꿈꾸다 깨어나면 또 여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곳. (164)
_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132)
사무엘 울만이,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고 했었지.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이 책을 처음 읽은 20대의 나도, 이 책을 네 번째 읽은 30대의 나도, 이 책을 수십 번쯤 읽었을지도 모를 5,60대의 나도, 변함없이 모두 청춘일 거란 느낌이 든다. 청춘을 갈망하게 만드는 책, 청춘을 사랑하게 만드는 책, 청춘에 눈물 흘리게 만드는 책.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청춘의 책'.
그리고 이 책이 남긴, 청춘에 관한 최고의 명언 하나.
_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141)
어렸을 때 숱하게 들었던 "장래 희망이 뭐니?"라는 질문에 버금갈 만큼, 많이 들어본 질문 중 하나는 "김연수 작가가 좋은 이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책에 마법 가루가 솔솔 뿌려져 있어. 그의 책을 펼치는 순간 책장 사이사이에서 마법 가루가 흩날려 나를 온통 사로잡아 버리는 거지. 그리곤 꼼짝없이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거지." 물론, 말도 안 되겠지만, 삶에는 종종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 거니까. 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사람들에게는 "청춘의 문장들을 읽어보세요."라고 말해줘야겠다.(이 두 가지 모두 통하지 않을 경우-케이블 티비 인터뷰같은!-에는 또 이런저런 이유를 찾아야겠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문장 몇 개 더.
_ 그나마 삶이 마음에 드는 것은, 첫째 모든 것은 어쨌든 지나간다는 것, 둘째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34)
_ 여전히 삶이란 내게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비슷하다.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151)
_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 가정법 문장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웠고 3차 방정식을 그래프로 옮기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알게 된 일이다. 내 안에는 많은 빛이 숨어 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란 그 빛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다.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