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나를 떠나라 - 옛 습관과의 이별
웨인 W. 다이어 지음, 박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나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팍팍 불어넣어 준 책.

 

새해를 맞이하면서, 올해에는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작년에 야심차게 세웠던 계획 중에 실천한 게, 이뤄진 게 하나도 없었다는 생각에 내심 부끄럽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해서였다.

내게 지금 필요한 건, 새해에 무엇을 하겠다는 결심이나 각오보다도, 나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건 나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지만,

그래도 내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격려해 줄 '스승'의 손길이 있다면 마음을 다잡는 데도, 새 각오를 실천하는 데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동안 멀리해왔던 자기계발서가 무척이나 그리웠다.

그리하여 난 2010년의 첫 '스승'으로 이 책을 골랐다. '옛 습관과의 이별 - 오래된 나를 떠나라'

"스승님! 제가 제발 저의 오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거듭 태어나게 도와주세요!"

 

이 책이 집에 도착하기를 기다려 받자마자 그날 다 읽어버렸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책 속에 빨려 들어가, 책에서 주는 이 긍정적인 기운을 한 줄기라도 놓칠새라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

마음이 닫혀 있으면, 책에서 어떤 말을 해도 흥, 핏, 칫, 정도의 소리밖에 나오지 않게 된다.

반대로 마음이 열려 있으면, 이 한 권의 책에서 우주의 기운이라도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영적인 스승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경청에 또 경청을 하며 '옳습니다!' '믿습니다!'를 외치게 된다.(그러니까, 적어도 내 경우에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은, 이보다 더 열릴 순 없다,의 상태로 활짝 열린 상태였다.

오래된 나를 떠나고자 하는 의지가 불끈 솟아 올랐고, 그 어떤 가르침이라도 기꺼이 받아 들이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자기계발서를 찾아 나섰으니까.

이 책과 나의 '시절 인연'이 아주 멋지게 잘 맞았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흡족하다.

 

우선 과거의 나와 헤어지기 위해서 일단은 내 증상을 알아야했다. 나를 '요모양 요꼴'로 만든 좋지 않은 습관은 뭐가 있을까.

"과거가 너를 변호하지 않게 하라"

이 책을 만나야겠다고 마음 먹게 한 가장 강한 글귀였는데, 그랬다, 나는 늘 과거의 내 모습을 가지고 나를 변호해왔다.

나는 원래 그래.

나는 원래 늦게 일어나, 나는 원래 모험을 싫어해, 나는 원래 글을 못 써, 나는 원래 사람 이름을 못 외워, 나는 원래 그런 데 소질이 없어...

내 삶을 '원래'라는 이름의 변호사에게 맡겨버리고 내가 정의한 그런 인간으로 살아온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인 것이다.

이제는 그 변호사를 해고하겠다.

더이상 내 삶에 어떤 변명도 갖다 붙이지 않겠다.

 

이 책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18가지 변명의 예를 들어보이고, 그 변명에 작별을 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변명들 중에는 내가 나 자신을 속이는 데 쓰는 변명들도 꽤 여럿이었다.

일테면 이런 것들.

하기 어려울 거야 / 너무 위험해 / 시간이 많이 걸릴 거야 / 가정 불화를 일으킬지도 몰라 / 나는 자격이 없어 / 그건 내 성격에 안 맞아 / 경제적 여유가 없어 / 그런 일은 해본 적이 없는 걸 / 난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 / 나는 겁이 너무 많아

그 중에서도 '하기 어려울 거야' '그건 내 성격에 안 맞아' '경제적 여유가 없어' '그런 일은 해본 적이 없는 걸'은 특히 내가 자주 써먹는 '변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것들이 변명이라는 의식도 별로 하지 못했던.

 

이제 이런 변명들과 작별하고, 나를 지금 '요모양 요꼴'로 만든 과거의 안 좋은 습관들과 작별하면, 오래된 나를 떠나, 2010년의 새로운 나,로 거듭 태어날 수 있는 거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찬 이 책이, 내 마음을 맑게 정화시켜 준 기분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오래된 나를 떠날 수 있는지 그 길을 가리켜 보였다.

이젠 내가 굳은 의지와 노력으로 열심히 그 길을 따라나가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나를 떠날 수 있을까?

올해를 정리하는 시점에 또다시 무릎 꿇고 OTL 이런 모습으로 좌절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정말이지 새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열정이 있다면 변명 따위는 필요치 않다. 열정 앞에서는 그 어떤 이유도 빛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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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의 법칙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법칙들
피터 피츠사이몬스 지음, 강성희 옮김 / 프리윌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 분야를 적기 위해 책 상세 정보를 찾았는데 '자기계발'이라고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220쪽의 이 책을 읽는 동안 단 한 번도 이 책이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은 못 했다. 아니 '자기계발'이라고 써진 걸 보고도 못 믿겠다.

이 책이 정말 자기계발서란 말인가?!

내 멋대로 이 책을 분류하자면 [8.유머]라고 썼을지도 모르겠다.

 

동생 집에 가져간 책을 다 읽고 동생의 빈약한 책꽂이를 훑어보다가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골라 든 것이 이 책이었다.

이 책에는 무지 많은 '법칙'들이 나온다. 법칙 하나 당 평균 두 쪽 정도가 할당 되어 있으니 거의 80~90개 정도의 법칙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조카를 돌보며 짬짬이 읽기에 좋은 구조로 되어 있었기에, 말 그대로 '짬짬이', 그러면서도 빠져들어 읽었다.

 

별점은 별로 안 주고 '빠져들어 읽었다'라고 하니 뻥치는 거 같지만, 책의 유익함이나 책의 질과 무관하게 책이 꽤나 흥미로운 건 사실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법칙들이 있다는데, 그리고 그 법칙들은 대부분 51%만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니, 도대체 이 법칙들은 다 무언가, 또 나는 과연 51%의 편인가 49%의 편인가 고민도 하느라 정말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다가 공감 가는 게 별로 없어서 초반에 덮었다는 동생이 희한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언니, 그 책 재밌어??"

그러니까 아마 나는 이 책의 51%에 공감을 한 독자 51% 중 한 명인 모양이고, 내 동생은 이 책의 51%에 공감을 못 한 49% 중 한 명이 되었던 모양이다.

수많은 법칙 중에 내가 정말 그렇군 그래! 하고 공감을 한 법칙은 몇 개 없고, 음, 그럴 수도 있겠군, 이라는 생각이 든 법칙까지를 모조리 꼽아보면 이 책의 절반 가량, 그러니까 51% 쯤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100% 공감할 필요는 없다. 51%만 공감하면 딱 저자의 의도에 맞는 결과인 것이다.

 

표지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법칙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말에는 49%의 공감만을 보낸다.

아니, 정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법칙들이 다 이 책에 실려 있다면 나머지 법칙들은 어쩌라고? 아마 저자가 모르는 정말 재미있는 법칙들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책을 읽어봐도 저자의 세계(호주, 스포츠 분야 등)에 크게 치우쳐 있는 법칙들이 많은 것 같은데, 저자가 속한 세계 외에도 재미있는 법칙들이 많을 것이라는 데 51%의 희망을 걸고 싶다.

 

이 책에 나온 법칙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법칙은 '애덤스의 법칙'이었는데, 이 법칙만큼은 51%가 아니라 100% 맞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니까 애덤스의 법칙이 뭐냐하면,


매주 책을 한 권씩 읽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

애덤스의 법칙에 의해 우리 모두는 좋은 사람! 혹여 독자들이 흥, 그런 게 어딨어,라는 마음이라도 가질새라 그 법칙에 이런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다양한 주제의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지성을 겸비하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욕구가 있다는 뜻이다. 또한 그것은 곧 다양한 생각들을 접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이 닫힌 마음의 비열한 정신을 가질리는 만무하다. 그러므로 매주 책을 한 권 이상 읽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는 것이다.'(199~200)

 

그리고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머피의 법칙'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역시 '머피의 법칙'은 누구나 한번쯤 겪어 봤을, 공감대 형성이 잘 되는 법칙인지라 아주 깔깔거리고 웃으며 허공에다 대고 '미투하기'를 클릭했다. 머피의 법칙에서 파생된 이른바 그 아들 법칙들인데, 일테면 이런 것들.


치통의 법칙 : 치통은 꼭 치과 문 닫는 토요일 오후부터 시작된다.

라디오의 법칙 : 라디오를 켜면 언제나 제일 좋아하는 노래의 끝부분이 나온다.

애프터 서비스의 법칙 : 고장난 제품은 서비스맨이 당도하면 정상으로 작동한다.

전화의 법칙 : 전화번호를 잘못 눌렀다고 판단하는 순간 상대방이 통화중인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법칙들은 다 내가 겪어본 것들이므로, 절대 공감.

이 책에는 이런 다양한 법칙들이 가득하다. 뭘 크게 얻을 것은 없지만, '파레토의 법칙'에서 확장된 한 법칙, '한 권의 책에서 취할 수 있는 가치의 80%는 그 책 20%정도의 페이지에서 나온다.'처럼 이 책의 20% 정도는 공감하며 웃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충분하지 않은가? 가볍게 머리 전환하며 한번씩 공감의 웃음도 터뜨려가며 재밌게 읽을 수 있으니까.

내 동생이 의아한 눈초리를 보냈던 말던, 나는 이 책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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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저녁 마이노리티 시선 17
문영규 지음 / 갈무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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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 해 둔 책들을 사러 인터넷 서점에 접속했다가 이 계절에 어울리는 책으로 소개 되어 있는 이 시집을 봤다.

제목이 딱 이 계절을 위한 시집이었다. 겨울에는 이런 제목의 시집 한 권 만나는 것도 의미있지 않겠는가는 생각도 들고, 여튼 제목이 무척 끌렸으므로 얼른 구입했다. 그리고 마침 이 시집이 도착할 즈음에는 온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제목은 이 겨울에 무척 잘 어울리지만, 시집은 전체적으로 추운 계절에 읽기에는 더욱 춥고 뼈마디가 저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추운 계절에 만났기에 이 시집의 느낌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문영규 시인은 (이 시집에 실린 시에 의하면) 선반공이다. 선반공이 정확하게 무엇하는 직업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시들을 통해서 대충 감은 잡힌다. 그러니까 엄청 힘든 육체 노동을 하는 직업이다.

이 시집에는 그의 고단한 노동의 현장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조질나게 날씨는 또 왜 이리 더운지 / 땟국물이 눈으로 파고든다 / 시장기가 도는 걸 보면 / 점심때도 다 된 모양 / 깐깐한 수입검사 기분 구슬리며 / 납품 마치고 나니 / 씨부랄, 팔다리에 쥐가 내린다'('노역일기' 부분) 같은 문장이나, '공단에서는 방금 누가 또 / 기계에 치여 죽었다는 / 전화가 왔다 // 환장할 것 같다'('장마 4' 부분) 같은 문장은 차라리 어느 노동자의 일기 한 부분을 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사로잡힐 정도다. '씨부랄' 이니 '환장할 것 같다'는 표현에 웃음이 팍 날 것 같으면서도, 웃으면 무언가 죄 짓는 기분 들어 이내 다시 정색하며 시를 읽게 되었다.

 

한 편의 고즈넉한 겨울 시를 생각하고 시집을 펼쳐들었다가 무언가에 호되게 당한 기분이다.

왜 그럴듯한 눈 풍경 사진과 함께 올릴 만한 시들이 눈에 띄지 않는 거지, 제목에 낚인 건가, 하는 생각으로 시집을 넘기다가,

어느 틈엔가 이 시집의 제목이 뭐였는지, 내가 무얼 기대하고 시집을 펼쳤는지는 잊었다. 나는 한 노동자의 일기에 빠져들었다.

그제야 제목이 아닌 표지 그림이 마음에 들어왔다.

표지 그림은 G.꾸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 1849>라는 제목이었다. 열심히 돌을 깨고 있는 두 노동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의 옷은 모두 찢어지고 해어져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들의 간난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 시집과 정말 잘 어울리는 건 이 시집의 제목이 아니라 바로 표지 그림이었다.

 

나는 육체 노동자가 아니다. 나의 그럴듯한 육체 노동의 기억은 청소년기를 보낸 시골에서 부모님의 농사 일을 가끔 거든 게 거의 전부다.

물론 비닐하우스에서 한참을 일하다 보면 '씨부랄, 팔다리에 쥐가 내'리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한증막에 한참을 있은 것처럼 숨이 턱 막히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 알량한 육체 노동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내가 이 시집에 이리 마음을 빼앗기고 공감한 것은, 평생을 육체 노동으로 살아온 우리 부모님이 생각나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 고된 마음을, 우리 부모님이 읽는다면 더더욱 공감할 것 같다. 그래서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모든 고된 노동자들을 위한 헌시,라는 생각이다. 몸 어느 세포에 고된 노동의 기억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시집을 읽으며 격한 공감과 또 그 공감에서 오는 후련함을 맛 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시집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마음, 많이들 나눠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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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늙으매 꽃꿈 창비시선 227
이선영 지음 / 창비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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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의 시배달을 통해 '섬'이라는 시를 만났다.

재미있는 시도 다 있구나 하며 설렁설렁 보다가 어느 문장들에서 그만 심장이 덜컹.

내 안에 숨어 있을, 나도 아직 모르는 어떤 가능성을 일깨워주는 글, 그래서 내가 나에게 더이상 좌절하지 않도록, 굽혔던 무릎 조금이라도 다시 펴게 해주는 글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그런 글을 만나면 다시금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

그래서 당장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여 이 시집을 찾았다. '섬'은 이 시집에 실려 있었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가슴이 너무 벅차서 쉬이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빨간 밑줄을 그으며 읽은 문장 또 읽고 또 읽으며 행복에 젖어 있었다. 그러다 무슨 까닭인지 절반 쯤 넘어가면서는 마음이 안정을 되찾고 차분하다 못해 덤덤해졌다.

그건 시집에 실린 시들의 느낌이 정말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앞에 너무 열정을 다 해 읽은 까닭에 뒷부분에서는 지친 건지(그럴 수도 있나?) 아무튼 그 까닭을 모르겠지만, 시집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훑어보니, 내가 그은 수많은 밑줄들이 다 앞의 절반에 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현상이라 생각했다.

 

이 시집을 만나게 된 건 '섬' 덕분이고, 그래서 '섬'에 가장 애착이 가지만, 그 외에도 내 마음을 사로잡은 시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산수유나무'를 읽었을 때의 그 신비스러움과 애틋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얼마 전에 대만 시인 席慕蓉의 '一棵开花的树(꽃 핀 나무)'라는 시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었는데, 그와 비슷한 감동을 전해주는 시였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모른다. 대만에 '一棵开花的树'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산수유나무'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느낌과 감동으로 내 마음을 흔드는 시를 두 편 만나다니, 이것도 내 복이다.

 


처음부터 그는 나의 눈길을 끌었다

키가 크고 가느스름한 이파리들이 마주보며 가지를 벋어올리고 있는 그 나무는

주위의 나무들과 다르게 보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기 위해 잠시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산수유나무라고 했다

11월의 마지막 남은 가을이었다

산수유나무를 지나 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이를테면 천 년 전에도

내가 그 나무에 내 영혼의 한 번뜩임을 걸어두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되풀이될 산수유나무와 나의 조우이리라는 것을

영혼의 흔들림을 억누른 채 그저 묵묵히 지나치게 돼있는 산수유나무와 나의 정해진 거리이리라는 것을

 

산수유나무를 두고 왔다 아니

산수유나무를 뿌리째 담아들고 왔다 그후로 나는

산수유나무의 여자가 되었다

 

다음 생에도 나는 감탄하며 그의 앞을 지나치리라 ('산수유나무' 전문)

천 년 전에 산수유나무에 내 영혼의 한 번뜩임을 걸어두었으며 다음 생에도 그의 앞을 지나칠 '나'와, 그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나기 위해 오백 년 간 부처 앞에 기원하고 그가 지나는 길에 한 그루 꽃핀 나무로 탄생한 '나'('一棵开花的树'). 이 두 시 때문에 난데없이 내 가슴이 심히 들뜨고 콩닥콩닥 한다. 어쩌면 나도 내 영혼을 걸어두었을지도 모를 나무 한 그루 만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걸까? 내 가슴은 마냥 설레고 두근두근.

 

엄마가 된 지 15개월 된 동생에게 권해주고 싶은 시도 많았다. 강아지를 키우면 어딜 나가서도 강아지 자랑을 하고 싶고, 아이를 낳으면 어딜 나가서도 아이 자랑을 하고 싶어지는 거 같은데, 아마 시인도 아이 자랑에 입이 근질거렸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물씬 묻어나는 시가 여러 편 실려 있다. 나는 그런 시들을 만나면 조카를 떠올렸다. 나도 녀석에게 바치는 헌시를 한 편 쯤 써봐야하지 않겠는가는 생각도 잠깐 해보고. 생각난 김에 조카에게 시 한 편 바쳐야겠다. 아직 잘 못 알아 들을 때, 이모 시가 손으로 쓴 건지 발로 쓴 건지 구분 못 할때(나는 손으로든 발로든 시를 써 본 적이 없으므로, 흠흠). 그리고 나중에 내가 너를 위한 시도 썼었노라고 공치사 좀 해야지. 제목은 '내가 천사를 키운다'로 해야겠다(시인의 시 제목은 '내가 천사를 낳았다').

 

마음이 자꾸자꾸 따뜻해지는 시집이니까 여름보다는 겨울에 읽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 그러므로 나는 아주 좋은 때에 이 시집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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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의 운동화 봄봄 어린이 4
원유순 글, 김병하 그림 / 봄봄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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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초등학교 교사이던 어느 날, 한 아이가 물 웅덩이에 빠진 운동화를 벗어 놓고 실내화를 신고 집에 가는 걸 봤다.

어째서 신발을 챙겨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이는 엄마에게 다시 사달라고 하면 된다는 참 천연덕스러운 대답을 했다 한다.

그렇게 운동장에 버려진 신발을 떠올리며 이 동화를 썼노라고 작가의 말에 밝히고 있다.

 

물질 귀한 것 모르고 풍요로움을 누리고 사는 우리나라 아이들과 전쟁과 가난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이 함께 나온다.

우리나라 아이 대표 석이.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공이 잘 차지지 않자 괜한 신발 탓을 하며 신발을 벗어 휙 집어 던져버린다.

엄마에게 축구화를 사달라고 할 참이다. 축구는 꼭 축구화를 신고 해야 하나보다.

그렇게 버려진 운동화는 깨끗이 잘 빨려 어딘가로 향한다.

전쟁의 공포 속에 살고 있는 아이 대표 모하메드.

한때는 석이의 것이었던 운동화는 이제 모하메드의 발에 신겨져 신나게 뛰어다니며 공을 찬다.

석이의 발에서는 공 한번 제대로 차지 못하던 운동화가 모하메드의 발에서는 뻥뻥 공을 잘만 찬다.

모하메드는 열심히 연습해서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이야기는 폭탄 폭발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모하메드가 오른쪽 운동화를 껴안고 자신의 꿈을 말하며 눈물 흘리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양 옆에 목발을 놓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모하메드의 뒷모습과,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단 말이야."라는 한 마디...

동화의 주인공이지만, 사실은 이 세계 곳곳에 실제로 존재하는 수많은 '모하메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겪어야 하는지도 모른채 겪고 있는 전쟁으로 다리를 잃고, 친구를 잃고, 가족을 잃고, 심지어는 목숨도 잃었을 수많은 '모하메드'들.

이런 표현 참 미안하지만, 그냥 '남일' 인 듯,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간간이 뉴스를 통해서나 접하고 있었으면서,

이 동화책 한 권으로 갑자기 마음 아파하고, 미안해 하는 것이 더 미안하고 염치 없다.

석이의 운동화가 모하메드의 품에 안긴 그 여정에, 앞으로는 나도 조금이나마 동참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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