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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저녁 ㅣ 마이노리티 시선 17
문영규 지음 / 갈무리 / 2002년 12월
평점 :
찜 해 둔 책들을 사러 인터넷 서점에 접속했다가 이 계절에 어울리는 책으로 소개 되어 있는 이 시집을 봤다.
제목이 딱 이 계절을 위한 시집이었다. 겨울에는 이런 제목의 시집 한 권 만나는 것도 의미있지 않겠는가는 생각도 들고, 여튼 제목이 무척 끌렸으므로 얼른 구입했다. 그리고 마침 이 시집이 도착할 즈음에는 온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제목은 이 겨울에 무척 잘 어울리지만, 시집은 전체적으로 추운 계절에 읽기에는 더욱 춥고 뼈마디가 저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추운 계절에 만났기에 이 시집의 느낌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문영규 시인은 (이 시집에 실린 시에 의하면) 선반공이다. 선반공이 정확하게 무엇하는 직업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시들을 통해서 대충 감은 잡힌다. 그러니까 엄청 힘든 육체 노동을 하는 직업이다.
이 시집에는 그의 고단한 노동의 현장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조질나게 날씨는 또 왜 이리 더운지 / 땟국물이 눈으로 파고든다 / 시장기가 도는 걸 보면 / 점심때도 다 된 모양 / 깐깐한 수입검사 기분 구슬리며 / 납품 마치고 나니 / 씨부랄, 팔다리에 쥐가 내린다'('노역일기' 부분) 같은 문장이나, '공단에서는 방금 누가 또 / 기계에 치여 죽었다는 / 전화가 왔다 // 환장할 것 같다'('장마 4' 부분) 같은 문장은 차라리 어느 노동자의 일기 한 부분을 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사로잡힐 정도다. '씨부랄' 이니 '환장할 것 같다'는 표현에 웃음이 팍 날 것 같으면서도, 웃으면 무언가 죄 짓는 기분 들어 이내 다시 정색하며 시를 읽게 되었다.
한 편의 고즈넉한 겨울 시를 생각하고 시집을 펼쳐들었다가 무언가에 호되게 당한 기분이다.
왜 그럴듯한 눈 풍경 사진과 함께 올릴 만한 시들이 눈에 띄지 않는 거지, 제목에 낚인 건가, 하는 생각으로 시집을 넘기다가,
어느 틈엔가 이 시집의 제목이 뭐였는지, 내가 무얼 기대하고 시집을 펼쳤는지는 잊었다. 나는 한 노동자의 일기에 빠져들었다.
그제야 제목이 아닌 표지 그림이 마음에 들어왔다.
표지 그림은 G.꾸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 1849>라는 제목이었다. 열심히 돌을 깨고 있는 두 노동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의 옷은 모두 찢어지고 해어져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들의 간난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 시집과 정말 잘 어울리는 건 이 시집의 제목이 아니라 바로 표지 그림이었다.
나는 육체 노동자가 아니다. 나의 그럴듯한 육체 노동의 기억은 청소년기를 보낸 시골에서 부모님의 농사 일을 가끔 거든 게 거의 전부다.
물론 비닐하우스에서 한참을 일하다 보면 '씨부랄, 팔다리에 쥐가 내'리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한증막에 한참을 있은 것처럼 숨이 턱 막히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 알량한 육체 노동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내가 이 시집에 이리 마음을 빼앗기고 공감한 것은, 평생을 육체 노동으로 살아온 우리 부모님이 생각나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 고된 마음을, 우리 부모님이 읽는다면 더더욱 공감할 것 같다. 그래서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모든 고된 노동자들을 위한 헌시,라는 생각이다. 몸 어느 세포에 고된 노동의 기억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시집을 읽으며 격한 공감과 또 그 공감에서 오는 후련함을 맛 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시집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마음, 많이들 나눠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