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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특별판) ㅣ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심장은 뛰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가장 뜨거운 성기가 된다. 그곳에서 가장 아픈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그 심장이 차가워질 때 아이들은 어디로 가서 태어날 별을 찾을까.
아직은 뛰고 있는 차가운 심장을 위하여 아주 오래된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 _ '시인의 말' 중에서.
처음으로 접한 허수경 시인의 시집이었다. 시인의 책이 처음은 아니다.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과 장편소설 『아틀란티스야, 잘 가』를 바로 얼마 전에 읽었더랬다. 시인의 책을 시집이 아닌 다른 책으로 먼저 접한 것이 조금 열없긴 하지만, 그런 글들을 통해 막연하게 시인의 시는 이러이러한 느낌이지 않을까, 추측해보기도 하며 기대에 차 시집을 펼쳤다. 그러니까 내가 기대한 시는 조금쯤 '말랑말랑한', 이를 테면, '읽기 쉬운' 그런 시들이었다.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대감에 조금쯤 설레기도 했었는데, 처음 접한 시인의 시는 내 예상과 달리 내겐 조금 어렵게 다가왔다.
의미를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시들. (어쩌면, 시의 '본질'일지도 모르겠지만, 시에 무지한 독자로서는 다가가기 어려운.)
허수경 시인의 시가 대체적으로 이런 분위기인 것인지 아니면 이 시집만 이런 것인지는 기존 시집을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시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시인에게 이 시집은 어떤 의미에서는 '첫 시집'이라고 했다(이 시집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기존에는 시를 쓸 때 선배 시인들의 영향을 받았다면, 이 시집은 후배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서 쓴 시집이라고. 시인은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를 참 좋아한다고 했다. '외계'에서 온 시 같아서 좋다고. 시인이 '외계'에서 온 것 같다고 표현한 그러한 시집은, 또한 내가 어렵게 생각해 다가가길 주저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젊은 시인들의 '외계'에서 온 시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이 시집은 내게 쉽게 그 의미를 내어주지 않는 어려운 시집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꼬치구이였다. 어머니의 육체 한 부위는 꼬치였고 다른 부위는 갈비였으며 간과 염통과 내장 역시 구이거나 볶음이었다. 그녀의 털과 가죽은 인간의 시린 등이나 목과 발을 덥혀주었다.
그리고…… 말하자면 (내 이빨 사이로 지나가는 드문드문한 증오를 당신은 보셨는가? 초식동물의 이빨 사이에는 식물의 애도만이 있다. 바람은 식물들 사이를 일렁이다가 내 이빨을 통과하고 위장으로 들어온다. 바람아, 내 핏속에서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나는 양이다.
어머니의 네 개의 위는 개의 먹이였다. _ 「카라쿨양의 에세이」 부분
'나의 어머니는 꼬치구이였다'로 시작하는 이 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카라쿨양의 에세이'. 화자는 '카라쿨양'이다. 어미가 '꼬치구이'로 변해버린. 자신 또한 어미의 배 속에서 인간들에 의해 억지로 꺼내어진,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을 운명이었던. 한 인간 여자의 필요에 의해 살아 남아, 인간의 젖을 빠는 양 한 마리. 장장 13쪽에 달하는 이 한 편의 시를 읽는 동안 인간의 잔인한 욕망('아기의 연하고도 부드러운 가죽털을 얻기 위하여 인간들은 이제 수태 시기가 임박한 어미를 죽여 그 자궁에서 아기를 끄집어낸다. 그 아기의 털가죽을 벗긴다. 그 털가죽은 페르시안이라고 불리우는 고급 가죽이 된다. 검은 아기 털가죽. 아직 양수가 묻어 촉촉한 그 가죽. 그 가죽을 위하여 어미와 아기는 도살되는 것이다')에 진저리를 치기도 했고, 그동안 내 배 속으로 들어왔던 수많은 고기들이 일시에 떠올라 속이 메스껍기도 했다. 그 동안 아무 생각없이 걸치고 먹었던 것들이 살아 있는 '원형'이었을 때의 모습들이 한꺼번에 나를 공격해와, 조금쯤 괴로웠던 시간이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나는 앞으로도 또 입고 먹을 테지만, 예전처럼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미(美&味)를 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카라쿨양의 에세이」는 내게 그만큼 강렬한 시였다.
무리를 이루며 사는 우리들은 무엇보다 무리에 속한 이들의 안녕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살아남기 위한 미덕. 흩어지면 육식 동물들의 표적이 되므로 우리라는 종이 이 지상에 태어나던 처음부터 배려라는 미덕을 우리는 본능처럼 갖는다. 그 본능은 인간이 우리를 사육화했던 역사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미덕으로 나를 보호하려들지 말라, 나의 무리여. 어머니는 꼬치로 구워졌다. 머리와 살을 발겨낸 뼈는 국솥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내 어머니는 어떤 풀밭에도 어떤 산악에도 없다는 것을. 국솥에 든 어머니의 머리에 달린 눈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무서워라, 뜨거운 국솥에 들어가 있으면 눈은 무엇을 보게 될까? 보지 못하는 눈은 눈의 형체만을 남긴 채 단백질이나 무기질이나 하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까? _ 「카라쿨양의 에세이」 부분
내게 이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시 외에도, 시인의 낭송회에서 시인의 음성으로 혹은 동료 시인들의 음성으로 들었던 시들을 만나면 참 반갑기도 했다. 눈으로 글자를 읽으면서도 귀로는 그날 들었던 낭송이 생생히 재생되는 듯 해 그렇지 않은 시들에 비해 더 애틋하고 깊은 느낌을 남겨주었다. 비록 이 시집과는 내 예상만큼 깊은 교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시인의 다른 시집들은 어떨지 궁금해져 계속해서 시인의 시들을 만나게 될 것 같다. 바라기로는, 이 시집은 시인의 '첫 시집'이니까, 기존의 시집은 이와 조금쯤 다른 느낌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어찌 되었든, 올해 시인의 오랜만의 고국 나들이를 기념해 시인을 직접 뵙게 되고 시인의 글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참 뜻깊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시인을 가슴에 새기며……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차 소리가 났다 잎새들이 바깥에서 지고 있었다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단 한 번도 뿌리와 소통을 해보지 않은 나뭇잎
울 수도 없었다 울기에는 너무 낡은 정열이었다
뿌리에서 떠나 다시 뿌리를 덮어주는 나뭇잎
웃을 수도 없었다 웃기에는 너무 오랜 정열이었다 _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