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특별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심장은 뛰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가장 뜨거운 성기가 된다. 그곳에서 가장 아픈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그 심장이 차가워질 때 아이들은 어디로 가서 태어날 별을 찾을까.

  아직은 뛰고 있는 차가운 심장을 위하여 아주 오래된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 _ '시인의 말' 중에서.

 

처음으로 접한 허수경 시인의 시집이었다. 시인의 책이 처음은 아니다.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과 장편소설 『아틀란티스야, 잘 가』를 바로 얼마 전에 읽었더랬다. 시인의 책을 시집이 아닌 다른 책으로 먼저 접한 것이 조금 열없긴 하지만, 그런 글들을 통해 막연하게 시인의 시는 이러이러한 느낌이지 않을까, 추측해보기도 하며 기대에 차 시집을 펼쳤다. 그러니까 내가 기대한 시는 조금쯤 '말랑말랑한', 이를 테면, '읽기 쉬운' 그런 시들이었다.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대감에 조금쯤 설레기도 했었는데, 처음 접한 시인의 시는 내 예상과 달리 내겐 조금 어렵게 다가왔다.

 

의미를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시들. (어쩌면, 시의 '본질'일지도 모르겠지만, 시에 무지한 독자로서는 다가가기 어려운.)

허수경 시인의 시가 대체적으로 이런 분위기인 것인지 아니면 이 시집만 이런 것인지는 기존 시집을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시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시인에게 이 시집은 어떤 의미에서는 '첫 시집'이라고 했다(이 시집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기존에는 시를 쓸 때 선배 시인들의 영향을 받았다면, 이 시집은 후배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서 쓴 시집이라고. 시인은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를 참 좋아한다고 했다. '외계'에서 온 시 같아서 좋다고. 시인이 '외계'에서 온 것 같다고 표현한 그러한 시집은, 또한 내가 어렵게 생각해 다가가길 주저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젊은 시인들의 '외계'에서 온 시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이 시집은 내게 쉽게 그 의미를 내어주지 않는 어려운 시집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꼬치구이였다. 어머니의 육체 한 부위는 꼬치였고 다른 부위는 갈비였으며 간과 염통과 내장 역시 구이거나 볶음이었다. 그녀의 털과 가죽은 인간의 시린 등이나 목과 발을 덥혀주었다.

 

  그리고…… 말하자면 (내 이빨 사이로 지나가는 드문드문한 증오를 당신은 보셨는가? 초식동물의 이빨 사이에는 식물의 애도만이 있다. 바람은 식물들 사이를 일렁이다가 내 이빨을 통과하고 위장으로 들어온다. 바람아, 내 핏속에서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나는 양이다.

 

  어머니의 네 개의 위는 개의 먹이였다. _ 「카라쿨양의 에세이」 부분

 

'나의 어머니는 꼬치구이였다'로 시작하는 이 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카라쿨양의 에세이'. 화자는 '카라쿨양'이다. 어미가 '꼬치구이'로 변해버린. 자신 또한 어미의 배 속에서 인간들에 의해 억지로 꺼내어진,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을 운명이었던. 한 인간 여자의 필요에 의해 살아 남아, 인간의 젖을 빠는 양 한 마리. 장장 13쪽에 달하는 이 한 편의 시를 읽는 동안 인간의 잔인한 욕망('아기의 연하고도 부드러운 가죽털을 얻기 위하여 인간들은 이제 수태 시기가 임박한 어미를 죽여 그 자궁에서 아기를 끄집어낸다. 그 아기의 털가죽을 벗긴다. 그 털가죽은 페르시안이라고 불리우는 고급 가죽이 된다. 검은 아기 털가죽. 아직 양수가 묻어 촉촉한 그 가죽. 그 가죽을 위하여 어미와 아기는 도살되는 것이다')에 진저리를 치기도 했고, 그동안 내 배 속으로 들어왔던 수많은 고기들이 일시에 떠올라 속이 메스껍기도 했다. 그 동안 아무 생각없이 걸치고 먹었던 것들이 살아 있는 '원형'이었을 때의 모습들이 한꺼번에 나를 공격해와, 조금쯤 괴로웠던 시간이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나는 앞으로도 또 입고 먹을 테지만, 예전처럼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미(美&味)를 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카라쿨양의 에세이」는 내게 그만큼 강렬한 시였다.

 

  무리를 이루며 사는 우리들은 무엇보다 무리에 속한 이들의 안녕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살아남기 위한 미덕. 흩어지면 육식 동물들의 표적이 되므로 우리라는 종이 이 지상에 태어나던 처음부터 배려라는 미덕을 우리는 본능처럼 갖는다. 그 본능은 인간이 우리를 사육화했던 역사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미덕으로 나를 보호하려들지 말라, 나의 무리여. 어머니는 꼬치로 구워졌다. 머리와 살을 발겨낸 뼈는 국솥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내 어머니는 어떤 풀밭에도 어떤 산악에도 없다는 것을. 국솥에 든 어머니의 머리에 달린 눈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무서워라, 뜨거운 국솥에 들어가 있으면 눈은 무엇을 보게 될까? 보지 못하는 눈은 눈의 형체만을 남긴 채 단백질이나 무기질이나 하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까? _ 「카라쿨양의 에세이」 부분

 

내게 이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시 외에도, 시인의 낭송회에서 시인의 음성으로 혹은 동료 시인들의 음성으로 들었던 시들을 만나면 참 반갑기도 했다. 눈으로 글자를 읽으면서도 귀로는 그날 들었던 낭송이 생생히 재생되는 듯 해 그렇지 않은 시들에 비해 더 애틋하고 깊은 느낌을 남겨주었다. 비록 이 시집과는 내 예상만큼 깊은 교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시인의 다른 시집들은 어떨지 궁금해져 계속해서 시인의 시들을 만나게 될 것 같다. 바라기로는, 이 시집은 시인의 '첫 시집'이니까, 기존의 시집은 이와 조금쯤 다른 느낌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어찌 되었든, 올해 시인의 오랜만의 고국 나들이를 기념해 시인을 직접 뵙게 되고 시인의 글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참 뜻깊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시인을 가슴에 새기며……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차 소리가 났다 잎새들이 바깥에서 지고 있었다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단 한 번도 뿌리와 소통을 해보지 않은 나뭇잎

 

  울 수도 없었다 울기에는 너무 낡은 정열이었다

 

  뿌리에서 떠나 다시 뿌리를 덮어주는 나뭇잎

 

  웃을 수도 없었다 웃기에는 너무 오랜 정열이었다 _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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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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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은 뛰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가장 뜨거운 성기가 된다. 그곳에서 가장 아픈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그 심장이 차가워질 때 아이들은 어디로 가서 태어날 별을 찾을까.

  아직은 뛰고 있는 차가운 심장을 위하여 아주 오래된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 _ '시인의 말' 중에서.

 

처음으로 접한 허수경 시인의 시집이었다. 시인의 책이 처음은 아니다.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과 장편소설 『아틀란티스야, 잘 가』를 바로 얼마 전에 읽었더랬다. 시인의 책을 시집이 아닌 다른 책으로 먼저 접한 것이 조금 열없긴 하지만, 그런 글들을 통해 막연하게 시인의 시는 이러이러한 느낌이지 않을까, 추측해보기도 하며 기대에 차 시집을 펼쳤다. 그러니까 내가 기대한 시는 조금쯤 '말랑말랑한', 이를 테면, '읽기 쉬운' 그런 시들이었다.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대감에 조금쯤 설레기도 했었는데, 처음 접한 시인의 시는 내 예상과 달리 내겐 조금 어렵게 다가왔다.

 

의미를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시들. (어쩌면, 시의 '본질'일지도 모르겠지만, 시에 무지한 독자로서는 다가가기 어려운.)

허수경 시인의 시가 대체적으로 이런 분위기인 것인지 아니면 이 시집만 이런 것인지는 기존 시집을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시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시인에게 이 시집은 어떤 의미에서는 '첫 시집'이라고 했다(이 시집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기존에는 시를 쓸 때 선배 시인들의 영향을 받았다면, 이 시집은 후배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서 쓴 시집이라고. 시인은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를 참 좋아한다고 했다. '외계'에서 온 시 같아서 좋다고. 시인이 '외계'에서 온 것 같다고 표현한 그러한 시집은, 또한 내가 어렵게 생각해 다가가길 주저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젊은 시인들의 '외계'에서 온 시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이 시집은 내게 쉽게 그 의미를 내어주지 않는 어려운 시집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꼬치구이였다. 어머니의 육체 한 부위는 꼬치였고 다른 부위는 갈비였으며 간과 염통과 내장 역시 구이거나 볶음이었다. 그녀의 털과 가죽은 인간의 시린 등이나 목과 발을 덥혀주었다.

 

  그리고…… 말하자면 (내 이빨 사이로 지나가는 드문드문한 증오를 당신은 보셨는가? 초식동물의 이빨 사이에는 식물의 애도만이 있다. 바람은 식물들 사이를 일렁이다가 내 이빨을 통과하고 위장으로 들어온다. 바람아, 내 핏속에서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나는 양이다.

 

  어머니의 네 개의 위는 개의 먹이였다. _ 「카라쿨양의 에세이」 부분

 

'나의 어머니는 꼬치구이였다'로 시작하는 이 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카라쿨양의 에세이'. 화자는 '카라쿨양'이다. 어미가 '꼬치구이'로 변해버린. 자신 또한 어미의 배 속에서 인간들에 의해 억지로 꺼내어진,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을 운명이었던. 한 인간 여자의 필요에 의해 살아 남아, 인간의 젖을 빠는 양 한 마리. 장장 13쪽에 달하는 이 한 편의 시를 읽는 동안 인간의 잔인한 욕망('아기의 연하고도 부드러운 가죽털을 얻기 위하여 인간들은 이제 수태 시기가 임박한 어미를 죽여 그 자궁에서 아기를 끄집어낸다. 그 아기의 털가죽을 벗긴다. 그 털가죽은 페르시안이라고 불리우는 고급 가죽이 된다. 검은 아기 털가죽. 아직 양수가 묻어 촉촉한 그 가죽. 그 가죽을 위하여 어미와 아기는 도살되는 것이다')에 진저리를 치기도 했고, 그동안 내 배 속으로 들어왔던 수많은 고기들이 일시에 떠올라 속이 메스껍기도 했다. 그 동안 아무 생각없이 걸치고 먹었던 것들이 살아 있는 '원형'이었을 때의 모습들이 한꺼번에 나를 공격해와, 조금쯤 괴로웠던 시간이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나는 앞으로도 또 입고 먹을 테지만, 예전처럼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미(美&味)를 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카라쿨양의 에세이」는 내게 그만큼 강렬한 시였다.

 

  무리를 이루며 사는 우리들은 무엇보다 무리에 속한 이들의 안녕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살아남기 위한 미덕. 흩어지면 육식 동물들의 표적이 되므로 우리라는 종이 이 지상에 태어나던 처음부터 배려라는 미덕을 우리는 본능처럼 갖는다. 그 본능은 인간이 우리를 사육화했던 역사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미덕으로 나를 보호하려들지 말라, 나의 무리여. 어머니는 꼬치로 구워졌다. 머리와 살을 발겨낸 뼈는 국솥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내 어머니는 어떤 풀밭에도 어떤 산악에도 없다는 것을. 국솥에 든 어머니의 머리에 달린 눈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무서워라, 뜨거운 국솥에 들어가 있으면 눈은 무엇을 보게 될까? 보지 못하는 눈은 눈의 형체만을 남긴 채 단백질이나 무기질이나 하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까? _ 「카라쿨양의 에세이」 부분

 

내게 이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시 외에도, 시인의 낭송회에서 시인의 음성으로 혹은 동료 시인들의 음성으로 들었던 시들을 만나면 참 반갑기도 했다. 눈으로 글자를 읽으면서도 귀로는 그날 들었던 낭송이 생생히 재생되는 듯 해 그렇지 않은 시들에 비해 더 애틋하고 깊은 느낌을 남겨주었다. 비록 이 시집과는 내 예상만큼 깊은 교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시인의 다른 시집들은 어떨지 궁금해져 계속해서 시인의 시들을 만나게 될 것 같다. 바라기로는, 이 시집은 시인의 '첫 시집'이니까, 기존의 시집은 이와 조금쯤 다른 느낌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어찌 되었든, 올해 시인의 오랜만의 고국 나들이를 기념해 시인을 직접 뵙게 되고 시인의 글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참 뜻깊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시인을 가슴에 새기며……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차 소리가 났다 잎새들이 바깥에서 지고 있었다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단 한 번도 뿌리와 소통을 해보지 않은 나뭇잎

 

  울 수도 없었다 울기에는 너무 낡은 정열이었다

 

  뿌리에서 떠나 다시 뿌리를 덮어주는 나뭇잎

 

  웃을 수도 없었다 웃기에는 너무 오랜 정열이었다 _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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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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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었던 이 시집을 다시 꺼내어 읽었다. 다이어리를 살펴보니 꼭 일 년만이다.

이미 리뷰까지 올린 책은 다시 읽는데도 리뷰를 새로 쓰지는 않는데, 이 시집은 기어이 또 리뷰를 써야겠다.

그 일 년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고 하면, 문학 계간지에 실린 심보선 시인의 시를 몇 편 만나고는 그만 마음에 하트가 뜨고 말았고, 한 시인의 낭독회에서 시인을 직접 보고 시인의 목소리로 낭송되는 시를 듣고는 마음이 아주 훈훈해졌더랬다. 그리고 생각했지.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내가 읽었던가? 이미 읽고 리뷰까지 썼음에도 기억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작년에 쓴 리뷰를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어렵다'고 했더라. 어려워서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영 멀리하고 싶지는 않은, 다시 꺼내어 보고 싶은 시집이라고.

그런 사실 같은 거 기억했거나 못 했거나, 어쨌든,  며칠 전 밤 문득 시인이 생각나 시집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이미 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던 시집에 또 수많은 밑줄들을 보탰다.

참으로 가슴 설레고 벅찬 시들이었는데, 작년에는 '어렵다'는 평만 남긴 걸 보고 조금 놀랐다. 아니, 일 년 사이에, 같은 시를 대하는 내 마음이 이렇게나 달라졌단 말인가? (그래서 리뷰를 다시 쓰기로 마음 먹었지!)

 

  오늘은 휴일입니다

  저녁 내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부재중 전화가 두 건입니다

  아름다운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사랑하는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문득 창밖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허공이라면 뛰어내리고 싶고

  구름이라면 뛰어오르고 싶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이토록 평화로운 날은

  도무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_ 「휴일의 평화」 부분

 

이번에 새롭게 밑줄을 그은 구절. 이 시를 읽던 날이 바로 '휴일'이었고, '부재중 전화'가 온다면 떠올려볼 '아름다운 그대', '사랑하는 그대'가 생각났고, '도무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평화로운 날'을 보내고 있음에 감사하며 공감했던 거겠지.

사람도 책도, 그때 내 마음에 딱 들어올 그 '타이밍', 그 '시절 인연'이 참으로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이번 만남.

그런 평화로운 휴일 속에서 시집은, 첫 만남때와 달리, 내 마음속 깊이깊이 들어와 자리했다.

 

  나는 그저 고독한 아크로바트일 뿐

  굳이 유파를 들먹이자면

  마음의 거리에 자우룩한 구름과 안개의 모양을 탐구하는 '흐린 날씨'파

  고독이란 자고로 오직 자신에게만 아름다워 보이는 기괴함이기에

  타인들의 칭송과 멸시와 무관심에 연연치 않는다

  즐거움과 슬픔만이 나의 도덕

  사랑과 고백은 절대 금물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단코 침묵이다. _ 「구름과 안개의 곡예사」 부분

 

즐거움과 슬픔만이 나의 도덕, 사랑과 고백은 절대 금물!

이런 시구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작년에 그었던 밑줄에 다시 밑줄을 보탠다. '사랑과 고백은 절대 금물'이라는 문장에 밑줄 긋는 마음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이 시를 만난 다른 이들은 그냥 지나칠지도 모를 구절들에 큰 의미를 두며 '나만의 시'를 완성하는 기쁨의 손을 들어준다. 작가의 시인의 손을 떠난 작품은, 독자에게서 각자 나름의 형태로 완성된다는 말도 문득 떠오르며, 내 안에서 새롭게 완성하는 한 권의 시집.

 

작년에 계간지에 실린 시인의 시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난 달에 낭독회에서 시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 시집을 다시 펼쳐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아찔하다. 내 생의 소중한 한 페이지를 놓칠 뻔 했지 않은가.

내가 늘 곁에 두고 수시로 펼쳐보는 시집들과 함께 이 시집도 앞으로 언제고, 몇 번이고 계속 펼쳐보게 될 것 같다.

행복하다. 그렇게 펼쳐볼 시집이 한 권 늘어났다는 것이.

 

 

  생은 균형을 찾을 때까지 족히 수십 번은 흔들린다. 그러다가 쓰러진 이들은 정말 완벽하게 쓰러진 것이다. 다시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혁명일까? 아버지, 여태 빈 링거병 꽂고 누워 계세요?

 

  보도블록에 다리가 끼인다. 누구인가, 나를 이토록 무지막지하게 흡입하는 자는? 서서 생각해본다. 우리쯤의 나이면 삶은 몇 번의 암전(暗轉)을 겪고도 남는 것이다. 이제서야 막(幕) 끝의 술처럼 나풀거리는 깨달음. 아버지, 이렇게 장성해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내가 당신이 남긴 그 숱한 혼잣말의 잔뿌리들 중 하나일 줄이야! _ 「대물림」 부분

 

 

  규칙과 감정 모두에 절박한 나

  지난 시절을 잊었고

  죽은 친구들을 잊었고

  작년에 어떤 번민에 젖었는지 잊었다

  오늘 나는 달력 위에 미래라는 구멍을 낸다

  다음 주의 욕망

  다음 달의 무(無)

  그리고 어떤 결정적인

  구토의 연도

  내 몫의 비극이 남아 있음을 안다

  누구에게나 증오할 자격이 있음을 안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애절한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늘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 _ 「오늘 나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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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닦이 삼총사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2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 시공주니어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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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를 읽고 충격 받아, 이 작가는 원래 이런 이야기를 쓰는가(언젠가 지인에게 로알드 달의 동화는 잔인하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그제야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니면 그 책만 그런 것인가 궁금해 바로 이어 작가의 또다른 책을 빼 들었다.

이번에는 『창문닦이 삼총사』다.

얼핏 보니, 앞의 책처럼 잔인하거나 괘씸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아, 다행이다.

천진난만한(하지만 원대한!) 꿈을 가진 소년이 '창문닦이 삼총사' 기린, 원숭이, 펠리컨과 친구가 되어, 친구가 되어, 음, 창문 닦는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창문 닦다가 도둑도 잡고 그 덕에 소년과 창문닦이 삼총사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런 이야기다.

아, 그렇군, '꿈이 이루어지는 이야기'!

자신들의 장기를 살려 열심히 일한 동물 친구들이 꿈에도 그리던 맛난 음식을 실컷 먹고, 꼬마 친구 빌리도 자신이 원하던 과자 가게의 주인이 되어 전세계에서 공수해 온 과자를 가게에 진열하고 친구들에게 선물도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과자들이 참 재밌다.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할 것 같은 (그 말썽꾸러기 형제가 만들어 낼 것 같은!) 그런 과자들!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를 읽고 불쾌해진 마음이 『창문닦이 삼총사』를 읽고 얼마간 가셨다.

로알드 달의 책을 두 권을 사놓길 잘했다는 생각.

어느 한 권의 책만 읽고 그 작가를 내치지는 말아야겠다는 것도 오늘의 '교훈'이라면 교훈.

이 책은 조카에게도 재미나게 읽어줄 수 있겠다.

(하지만, 앞으로 로알드 달의 책을 또 읽게 된다면, 그땐 좀 더 신중하게 고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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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14
로알드 달 지음, 김연수 옮김, 퀸틴 블레이크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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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렇게 고약한 이야기 책을 봤나.

밤에 머리가 무거워 가볍게 아이들 책을 읽으며 머리 좀 식히려던 것인데, 읽고 나서 헛웃음만. 헛헛헛.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말썽꾸러기 조지가 할머니를 골탕먹이기 위해 마법의 약을 만드는 이야기다.

아무리 여덟 살짜리 어린 아이라지만, (아무리 이야기 책이라지만), 요 쪼꼬만 녀석 좀 보게나.

할머니 드시라고 만들 약에 온갖 '잡것'을 다 집어 넣는다.

자세한 목록 생략하고, 우리네 욕실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것들, 엄마 화장대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것들, 외양간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것들, 차고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것들 다 쏟아부어 넣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대충 어떤 '잡것'들을 넣었는지 짐작이 가겠지.

아니 그래 녀석아, 할머니 드시라고 만들 약에 그런 걸 넣니?

 

그렇게 만든 '마법의 약'이 마법을 정말 발휘하네.

그래서 할머니가 지붕도 뚫고 올라갈 정도로 키가 쑥쑥 자랐네.

아니, 그런데 이번에는 조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할머니의 사위 좀 보게나.

지붕 뚫고 올라간 장모님은 거기 그렇게 좀 계시란다. 평소에 장모님이 꽤나 성가셨다는 티를 팍팍 내며 아들 구슬러 마법의 약 더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거 만들어서 동물들에게 먹여 슈퍼 동물을 사육할 생각인 거다.

2탄, 3탄, 4탄 만들어낸 마법의 약은 만들 때마다 효과가 다르다.

마지막에 만든 약은 작아지고 작아지고 한없이 작아지는 약인데, 그걸 먹고 장모님이 먼지만큼 작아져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는데, 요 괘씸한 사위, 꽤나 통쾌하다는 티를 팍팍 낸다. 그것도 장모님의 딸, 그러니까 자기의 부인 앞에서. 그것도 "만세!!"를 부르면서.

동화도 이쯤 되니 재.수.없.다!!

 

요즘 안 그래도 핵가족화로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해질 기회도 많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 냄새난다며 싫어하는 아이들도 많다는데,

그런 아이들이 요런 동화책 읽고 제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마법의 약' 만드는 생각을 하며 통쾌해 하려나?

그러다가 정말 할머니 할아버지 드실 음식에 요런 몹쓸 장난이라도 치는 건 아니겠지?

아이들도, 이건 그냥 '이야기 책'일 뿐이라는 걸 알 테니까 말이다.

그래, 그냥 이야기 책일 뿐인데, 왜 이렇게 괘씸하고 재수없다니.

내 조카에게는 안 읽어주련다. 이런 동화책 아니어도, 세상엔 읽을 게 넘치고 넘친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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