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울고 있었다. 그저 가는 숨소리인 줄 알았던가. 잠결에 새근거리는 소리로만 여겼던가.

하지만 어쩌나. 새벽은 너무 고요하고 내 작은 단칸방에 엄마의 울음소리가 숨을 자리는 없는데.

돌아누운 엄마의 등을 조심스레 어르며 토닥거렸다.

"집에 가기 싫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 엄마는 괜찮지 않구나. 살면서 엄마가 '진짜'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엄마를 위해 울지 않았으니까. 그랬던 엄마가 울고 있었다. 훌쩍 커버린 자식 앞에서

훌쩍 지나가버린 자신의 인생 때문에 울고 있었다.

엄마도 우는구나. 엄마도 힘들었구나. 아팠겠지. 갑자기 모든 게 다 미안해졌다.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엄마를 위해 내가 무얼 해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우선 엄마와 함께 '집을 떠나기로' 했다. 고향에 내려가야지.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지.

"엄마, 집 앞이야, 나와요."

 

_ 박상준 『엄마, 우리 여행 가자』 에서...


 

 

제게도 이와 비슷한 밤이 찾아온 적이 있어요.

9월의 마지막 날을 앞둔 밤이었고,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해야 하는 엄마가 무엇 때문인지 자정이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러다가, 엄마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 방에 가만히 앉아 심란해 하며 어떻게든 엄마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다고 생각을 하던 중에, 불현듯 떠오른 한 마디.

"엄마, 우리 여행 가자!"

그래, 그런 책 제목이 있었지!

얼른 책장을 뒤져 이 책을 꺼냈습니다.

우리의 가족 여행은 거의 항상 엄마가 먼저 "가자!" 말을 꺼내고, 엄마의 계획과 주도하에 이루어졌었기에,

한 번도 내가 먼저 여행을 계획해본 적은 없었지만, 그 밤에는, 난생처음, 제가 엄마와의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책의 도움을 받아 그날의 여행지로 정한 곳은 경북 영주 무섬마을.

강으로 둘러싸인 한옥마을이었어요.

강 좋아하고 한옥 좋아하는 엄마의 마음에 딱 들 듯한 곳이어서, 책을 보며 여행지를 상상하는 동안 저는 기분이 좋아졌더랬어요.

엄마 출근 시간에 여행지로 출발하기로 하고(네, 9월의 마지막 날은 평일이었고, 엄마는 생전 처음 일터를 '땡땡이' 쳐야 했답니다...)

저는 밤을 꼬박 새웠어요. 이미 새벽이 가까워오는 시간이었기에 잠들면 깨어나지 못할까봐.

그리고 엄마가 일어나자마자 쪼르르 엄마에게 달려가 말했죠.

"엄마, 여행 가자!"

 

어쨌든,

그렇게 해서,

난생처음으로,

계획에도 없이, 문득, 불현듯, 갑자기, 난데없이, 홀연히, 등등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허 참, 일을 다 땡땡이치고 놀러가네!" 하시면서도, 조금쯤 설레는 표정으로 기꺼이 제 청에 응해주셨어요.

출발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 '색다른 여행'에 흠뻑 젖어들었고, 아침 하늘을 보며,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연신 환호성을 내지르고 중간중간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고 흥에 겨웠더랬습니다.

길었던 그날 하루의 일을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그 여행 내내 엄마와 아빠와 나(와 강아지도 아마)는 무척 행복했고, 언제 우울했냐는 듯 모두 화창해졌답니다.

그날 아침 내가 내뱉었던 그 말은, 살면서 내가 했던 말 중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그런 말 하기 참 잘했구나 하고 기억될 그런 말이 되었어요.

그 말을 내게 '빌려준' 그 책에도 고마운 마음이...

 

 

그 여행의 사진, 몇 장 올려요.

여행 제목은, "엄마, 우리 여행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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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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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는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아니, '뭐'가 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나는야 시종일관 꿈도 없던 아이였고, 소녀였지. '장래희망' 칸을 채우는 일은 늘 어려웠고, 대충 '재미있게' 적어 넣었다가 교무실에 불려가 혼났더랬지.) 당연히, 모두가 그렇듯이 어느 나이가 되면 어느 것쯤은 되어 있으리라 생각했을 테다. '장래희망'에 무언가 적어 넣는다고 그게 되겠어? 때 되면 그냥 무언가 되겠지... (그때는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나이 먹는다고 '당연히' 무언가가 되어 있지는 않아. '아무 것'도 아닌 채로 세월을 견디는 사람도 세상에 널렸단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내가 아무리 '장래희망' 칸을 채워넣기 힘겨워했다지만, 그 때에도 전혀 짐작하지 못했고, 짐작할 수 없었던 사람이 되어 있다.

제출 직전까지의 그 네모칸과 같이, 나는 지금 '빈칸'이다.

 

 


 

 

 

소쩍새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그렇게 울어댔고, 나는 서른 넘어 빈칸이 되기 위해 어려서부터 그렇게 빈칸을 마주했던가 보다.

아무튼, 그렇게, 어쩌면 상상도 못했고, 어쩌면 '예지몽'처럼 마주하고 있던 그런 빈칸의 나.

 

전에는 나도 줄곧 무언가였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미취학아동이었고(노는 것이 의무의 전부인!),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 졸업까지 18년 동안은 학생이었고(그 후 잠시 쉬고 2년 간 또 학생이었으니 총 20년을 학생이었고!!), 통역사인 적도 있었고, '교수님' 소리에 거부감 들던 시간 강사였던 적도 있었고, 결코 과거형은 아니지만 과거형으로 말해야만 할 것 같은 번역가이기도 했고...(왜, 시제에는 '일시정지'형이 없는가. '번역가이었 곧 다시 번역가일' 뭐 이런 식으로.)

누군가가 "하시는 일이...?"하고 묻는다면 마지못해 "번역해요."라고 답하겠지만, 글쎄, 번역해서 통장 배불려준 게 언제였던가 까마득하다. 요즘 같아서는 차라리 이렇게 대답하고 만다. "놀아요."(이것은 '임시진행'형으로 하면 안 될까? '놀 곧 끝날' 뭐 이정도로.)

그래서 나는 요즘도 내가 참 궁금하다.('그래서 나는 요즘도 내가 참 한심하다'라고 써야 좀 더 옳겠으나, 『뭐라도 되겠지』를 읽고 난 후, 마음이 바꼈다.) 도무지, 나는 뭐가 되려는 걸까...? 내게도, '평생 직업'이라는 게 찾아오기는 찾아올까?

 

사실, 여기까지는 넋두리. 가만, 그러고 보니 그냥 넋두리는 아닌, 내가 왜 지금 이 책을 (한창 책을 멀리하고 있던 이 때에 사자마자) 펼쳐들었는지 그 배경화면 쯤 되겠다.

나는 정말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뭐가 하고 싶은지 몹시 궁금했다.(빈말이 아니고 정말로. 요즘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남는 시간을 주체 못해 시작했으나, 진심인지 대외용인지 종종 "곧 일어 번역가가 되겠어!"라고 큰소리 치고 있는 까닭이다. '넌 정말 뭐가 되려고 그러니?')

서른이 넘어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잠시 채워졌던 칸을 슬금슬금 지워버리고 다시 빈칸으로 마주하고 있던 이때,

무심한 듯, 냉정한 듯, 그러나 실은 위로의 말인 듯 들려온 음성.

 

"뭐라도 되겠지!"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아아, 그래 뭐라도 되겠지.

 

슬라이딩 퍼즐을 하다보면 꼭 그런 순간이 오더라. 거의 다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꼭 마지막 한 조각이 엉뚱한 곳에서 배회하고 있어서 모든 열을 다시 다 흐뜨려야 하는.(똑똑한 사람들은 그 순간 계산적이고 체계적으로 절묘한 슬라이딩을 선보이겠지만, 나는 그 한 조각을 맞추기 위해 애써 맞춰놓은 퍼즐을 죄 헝크러뜨리기 일쑤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 조각을 판에서 빼내어 '너의 자리'임이 분명한 그 자리로 갖다 꽂아버리고 싶지만(실제로 그렇게 뺐다가 다시 못 꽂은 퍼즐판이 있다) 얌전히 다시 흐뜨리고 현란한 (하지만 다시 맞춰지지 않을까봐 불안한) 손놀림을 해야 했다. 그 퍼즐들도, 그렇게 맞추다 보면 곧 뭐라도 될 것이었으니까. 꼭 어느 한 조각 삐그덕거려 "다시!" "다 됐다!" "앗, 또 한 조각! 다시!!"를 여러 번 반복해야 할지라도 마지막에는 뭐라도 되는 그런 순간이 올 것을 믿기에,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퍼즐판.

 

그깟 퍼즐판 하나도 믿고, 포기하지 않았는데, 내가 나를 의심하고 포기할쏘냐.

나도 뭐라도 되겠지. (가만... 애초에 퍼즐판은 반드시 '뭐'가 되도록 만들어졌지만, 나는 설마 '뭐라도 되겠니?' 버전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겠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점점 긍정적이어졌고, 점점 태평해졌고 ('너는 지금 태평해야 할 때가 아니란다!'), 점점 포근해졌고, (약발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믿고 버티고 싶어졌다.

그 끝에는 뭐라도 된 내가 있을지도 모르고, 끝내 '뭐라도 되겠니?' 버전의 불량품이었음을 확인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설마, 그렇기야 하겠니...), 나를 지탱해주던 긍정적인 연료들이 당장이라도 바닥을 드러낼 것 같던 때에 내 마음에 은혜와 같은 땔감 쌓아준 이 책이 있어, 나는 이 밤, 참 행복하다.

 

작정하고 웃기는 것도 아니고(아니, 이건 좀 작정했을지도 모르겠다. '글 멋있다는 말보다 웃기다는 말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니까), 작정하고 위로하는 것도 아니고, 작정하고 울리는 것도 아닌데,

웃었고, 위로받았고, 울었다.(사실, 이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흘린다면, 당연히 배꼽을 흘릴 줄 알았지... 도대체 어느 대목에서 울었느냐고 물어봐도 절대 대답해주지 않을 거다. 거기에서 왜 울었냐고 할 테니까.)

 

 

요즘으로는 참으로 이례적으로 책을 사자마자 읽고, 또 읽자마자 리뷰를 쓴다.

쓰고 보니, 몇 줄 빼고는 '제목을 읽고나서...' 혹은 '제목, 그 후 넋두리...' 뭐 이런 식의 제목을 달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뭐, 그래서 이 밤 내가 끼적끼적한 게 독후감도 아니고 리뷰도 아니고 그렇다면, 뭐,

 
 뭐라도 되겠지.


 

 

 

 

'재능'이란,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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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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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버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무한 긍정 에너지 채워넣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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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여행, 혹은 여행처럼』 에서 만난 어느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

 

 

1995년 2월 말,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소모뚜는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그날은 그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날이었다. 공항은 집에서 택시로 40분 정도 거리였다. 그는 엄마가 해준 콩 볶음밥을 아침으로 먹었다. 정확히 말하면 볶음밥이라기보다는 콩을 삶아서 밥이랑 양파랑 비벼먹는 빼뽁이란 요리였다. 그날 이후 그 요리를 두 번 다시 먹어보진 못했기 때문에 빼뽁의 냄새는 언제나 코끝에 감도는 그리움으로 남게 되었다. 부모와 동생 둘,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에에투와 함께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버마 양곤 국제공항이었다. 처음엔 난생처음 공항에 왔기 때문에 여기저기 구경을 했다. 그렇지만 비행 시간이 가까워오자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정말로 고향을 떠나는구나! 이제 몇 년 있어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한 3년쯤 걸릴까?' 탑승할 때가 되자 엄마가 그를 안아주고 양 볼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울기 시작했다. 

 

"내 큰아들, 건강하고 무엇보다 네가 가장 소중해. 너보다 소중한 건 없어. 이별엔 두 가지가 있다고 하지. 살아 있으면서 하는 이별, 죽어서 하는 이별. 살아 있으면서 헤어지는 건 견딜 수 없어. 하지만 죽어서 이별하는 건 견딜 수가 없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돌아와다오! 이렇게 건강하고 이렇게 믿음직한 모습으로."

 

소모뚜는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이대로 돌아올게요"라고 약속했다. 나머지 가족들은 울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다섯 명, 소모뚜는 혼자, 5대 1이니까 우리가 울면 안 돼.' 이렇게 생각하면서 참고 있다는 걸 소모뚜는 알 수 있었다. 이번엔 아빠가 말했다.

 

"앞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을 텐데 인내심을 갖고 살아라. 고통스런 것, 힘든 노동 다 참아내라. 하지만 단 하나, 올바르지 못한 건 참지 말아라."

 

소모뚜는 아빠에게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고 손을 흔들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소모뚜 소속 밴드 Stop Crackdown 앨범에서 들은 노래, '월급날'

 

 



오늘은 월급날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한참동안 받지 못했던 월급을 돌려준대요

나의 소중한 가족들 사랑하는 부모님

이제는 나의 손으로 행복하게 해줄게요

오 사장님 안녕하세요 오 사모님 내 월급을 주세요

나의 꿈과 희망이 담긴 조그맣고 소중한 내 월급

얼마 전 하얀 봉투 들고 퇴근했던 동료들

내 어깨를 두드리며 걱정 말라고 말하지

자정 시간이 넘어야 나의 일이 끝나네

봉투 없는 내 월급 오늘도 보이지 않네

나에겐 좋은 날이 언제 올런지...?

오 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그 동안 밀린 내 월급을 주세요

날 욕한 건 참을 수 있어요

내 월급만은 돌려주세요

 

_ '월급날', Stop Crackdown

 

 

 

 

다시 또, 정혜윤의 『여행, 혹은 여행처럼』으로 돌아와서,

 

 



_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물었어요.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나? 한국에서 너는 무슨 죄를 지었나?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같이 살아갈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IMF도 같이 겪었다, 우리도 월급을 삭감했고 우리도 야근 수당을 받지 않았다, 사장이 조금만 참고 견뎌보자고 하면 우리도 그렇게 했다, 월드컵 때도 함께 응원했다, 기쁨도 슬픔도 같이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 친구 아닌가?

 

_ 내가 노동자란 걸 인정해달라. 우리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걸 인정해달라. 우리는 Stop Crackdown이라고 외쳤어요. 그러다가 난 그 온갖 국적의 냄새 속에서 어떤 희미한 희망을 봤어요. 나는 당당했던 겁니다. 비자가 없는데도 나는 왜 당당한가? 나는 쫓겨날지 모르는데 어떻게 당당할 수 있는가? 나는 노동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비자의 도장 하나가 나와 우리의 노동자로서의 가치를 없앨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희망의 느낌으로 밴드 이름을 정했어요.

 

_ 나는 인권이 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인권은 나도 당신보다 못나지 않다, 그렇다고 잘나지도 않았다, 다만 나도 당신과 같은 인간이다, 마찬가지로 당신도 나보다 못하지 않다, 당신도 나와 같은 인간이다! 내겐 그런 것이 인권입니다.

 

_ 우리가 출발점으로 절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는 딱 한 경우뿐이다. 우리가 지금 있는 이 자리를 결코 떠나려 하지 않는 경우, 안주할 경우. 그러니 소모뚜의 여행은 계속된다.

 

 

 

 

 

 

추석, 모처럼의 여유를 맞아, 가족들과 근처 산길을 걸었다.

오가는 길에, 조금씩 다른 피부색의 이들을 종종 스쳤다. 타국의 명절에, 고국 생각 간절할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집에 돌아와 스탑크랙다운의 앨범을 틀었다. 씨디 플레이어가 따로 있지 않아 컴퓨터를 켜면 들어야지, 하다보니 씨디를 받고도 며칠간 듣지 못했다.

 

오, 노래 괜찮은걸.

제법 흥도 겨웠다.

신이 나서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노래에서 하던 일을 가만히 멈추고 노래에 더욱 귀를 기울이며 가사집을 펴들었다.

'월급날'...

외국인 노동자들의 '흉내'를 내며 '농담'의 소재로 많이 쓰이는 한 마디가 생각났다.

"사장님 나빠요!"

 

사장님이 나빠서,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슬퍼서, 사장님과 같은 나라 사람인 게 미안해서,

그만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정혜윤의 『여행, 혹은 여행처럼』을 펼쳐 소모뚜의 이야기를 읽으며, 더 그랬다...

 

나는 출발지점으로 돌아가기 힘든 사람이다. 지금 있는 이 자리를 떠나려 하지 않고, 안주를 바라니까.

나의 현실도 바꾸지 못하는 내가, 그깟 눈물 몇 방울로 뭘 할 수 있을까. 눈물 몇 방울 마저도 부끄러워진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어도, 이런 노래를 듣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혹은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보름달의 효험 같은 것 믿지 않지만, 그래도 추석 보름달 향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원 하나 빌고 싶어졌다.

한국인도, 외국인 노동자도, 사장님도 아닌, 그냥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오게 해달라고.

 

 

가장 곤궁한 자들의 외침에 귀를 막는다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_ 브레히트 

 



 

※ 스탑크랙다운은,

 

스탑 크랙다운은 공장에서 이주노동자로서 열심히 일하면서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노래로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다국적 노동자밴드이다.



2003년 11월15일 ‘고용허가제’ 도입과 함께 시작된 미등록노동자 단속에 맞서 결성되었다.

이주노동자 천막농성 중 만나게 되어 결성된 그룹으로 스탑크랙다운(stopcrackdown)의 이름은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반대의 뜻을 담은 ‘탄압을 중단하라’는 뜻이다.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노래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한 이들은 농성장인 천막 안에서 1집을 만들어냈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처럼 이들은 전기부품공장, 종이공장, 철판공장, 봉제공장 등에서 일을 하면서 주말에는 노래로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있다.



멤버들이 각각 인천, 동대문, 의정부 등에서 일하고 있어 연습이라곤 일요일만 가능하지만

휴일을 반납하고 최근 2집을 발매했다. 1집에서는 노동자의 수많은 요구사항을 담기 위해 상대적으로 '구호'로써의 성격이 짙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음악을 통해 모든 사람이 하나 되는 ‘화합’의 의미를 담았다. (출처: 스탑크랙다운 카페 http://cafe.daum.net/stopcrackdown/)

 

음반구매는 이곳에서 ☞ http://cafe.daum.net/stopcrackdown/Er4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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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흰죽 가게 - 중국 최고의 이야기꾼 스제천 스님의 유쾌발랄한 영혼 치유서
스제천 지음, 이경민 옮김 / 모벤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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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한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나보려 책장을 펼쳤다.   

눈썹이 희끗희끗해진 노스님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펼쳐본 책날개 속 작가소개에서 깜짝 놀라고 만다. 예상과 달리 사진은 없었지만, 이런 문장. '1985년 중국 출생.' 1985년이라니... 나보다도 훨씬 어린, '아가 스님'이다.('청년 스님'이라야 맞겠지만, 내 막냇동생 나이와 같다보니 어쩐지 '아가' 같은 이미지다.)  

지금껏 읽어온 '영혼 치유서' 혹은 '자기 계발서' 등은 모두 나보다 연장자들이, '인생 선배'로써의 경험을 나눠주는 책들이었는데, 나보다 어린 이에게 듣는 가르침은 어떤 느낌일까 하는 기대감이 하나 추가되었다. 

 

어렸을 적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담요 폭 덮어쓰고 읽던 어느 책이 생각났다. 

탈무드였겠지. 어리석인 범인들의 이야기에 현자의 가르침이 함께 어우러진, 재미난 '이야기 책'이었다. 당시에는 어린마음에도 무언가 깨달음 얻었겠지만 많은 시간이 훌쩍 지난 후 지금의 내 모습을 보니, 그 깨달음 내 안으로 소화시키지 못했던 듯하다. 헛 읽었다고, 자책하고 싶지는 않다. 재미있는 이야기 책을 읽었던 소중한 유년의 기억이 남았으니. 

이 책을 읽으며, '참된 인간'을 가르치던 그런 책들이 떠올랐다. 참으로 오랜만에 읽는 '영혼 치유서'다. 

맑고 담백한 흰죽처럼, 책속의 이야기들도 그렇다.   

왜 책 제목이 '스님의 흰죽가게'인지 알겠다. 참으로 공감가는 제목이다.

화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꾸미지 않고, 소박한 이야기를 젊은 스님의 감각으로 들려준다. 

아직 연륜이 묻어나기에는 많이 이른 나이, 스님의 글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또한 자신도 '선배 스님'들의 가르침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헷갈려 고개를 갸웃하며 나름대로 해답을 찾아보기도 하는 모습이 책과의 거리를 더욱 좁혀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경을 읽으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반드시 아셔야 할 것이 있어요.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은 반창고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복원능력이지요. 자신의 깨달음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반창고라도 상처를 덮어서 가릴 뿐입니다.  
   
 
 
스님이 나눠주시는 흰죽 그릇 받아드는 순간순간, 스님의 이 말씀 잊지 않으려 반복해서 되새겼다. 스님이 아무리 내 상처 아물게 할 반창고를 붙여주더라도, 내 몸 스스로가 상처 낫게 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반창고는 헛일이 되고 만다. 스님의 귀한 반창고가 내 몸에 붙어 한낱 스티커나 테이프로 전락하지 않도록, 이 따듯한 흰죽을 소중히 내 안에 흘려넣어 내 영혼을 살찌우게 하고 싶었다. 
 
 
어릴 적 추억하게 하는 재미와 교훈이 함께 하는 이야기도 읽고, 젊은 스님이 조용히 전해주는 처방전 받아들고, 가슴 훈훈해진 시간.  
추운 날, 그러니까, 마음이 추운 날, 마음이 시린 날, 스님의 따듯한 죽 한 그릇 받아들고, 마음 쉴 수 있는 여유만 있다면, 삶이 조금 더 여유로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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