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죽었어.” 어머니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말했다. “여기에 있었는데 갑자기 죽어버렸어.”
“아, 정말 안됐네요, 엄마.” 슬픈 표정을 지으며 아르준이 말했다. “제가 모르는 사람 같은데… 누구예요?”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 _ 70
슬픔은 아무것도 면제해주지 않은 것 같았다. 슬픔은 진부한 감정일 뿐이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아내를 잃은 남편, 남편을 잃은 아내, 자식을 잃은 부모, 부모를 잃은 자식 들이 있었다. _ 218
라시미를 잃은 슬픔은 그녀가 아직 그에게 들려주지 못한 모든 이야기가 망각된 것에 대한 슬픔이었다. 아르준에게 라시미의 이야기를 해주는 고통은 그녀가 두 번 다시 실재로서 설명될 수 없다는 고통일 터였다. _ 221
이곳에서 찾을 수 없는 건 미국에 가서도 찾을 수 없어. 네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남겨두고 어디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_ 223
이제 그의 생각은 9월에 태어날 아기에게 맞춰졌다. 그는 그 아기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다. 그 아이만큼은 제대로 키울 생각이었다. 아기는 아직 산기타의 뱃속에 들어 있지만 결국 세상의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아기가 자궁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면서 라케시는 자신의 힘을 느낄 것이다. 그의 욕망, 그의 남성다움, 삶에 대한 그의 집착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아기가 자라서 세상사에 눈뜨고 성년이 될 즈음이면 아후자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 것이다.
지금 아기에게 얘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기에게 그의 꿈과 두려움 그리고 야망에 대해 말해줄 수 있다면. 아내의 부드러운 배에 머리를 얹고 속삭여줄 수 있다면…… _ 227
왜 자꾸 동생을 낳는 거예요?
이미 열세 명이나 있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도시 뉴델리,
그 무질서한 풍경 속에서 아후자 가족의 시끌벅적한 일상이 빚어내는
요절복통 블랙코미디!
책 뒤표지를 보고 엄청 웃길 거 같아서 집어든,
카란 마하잔의 『가족계획』.
처음에는 큰아들 아르준의 상황이 웃겨서 낄낄대다가
(그렇잖아요, 동생이 열두 명(+엄마 뱃속에 하나 더!)이나 있어 '찢어진 콘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다니!(아 맞다, 친구들은 동생이 여섯 명밖에(!) 없는 걸로 아는데도...;;) 그런데 또 부모님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왜 자꾸 아이를 낳느냐고 도대체 내 이름은 아느냐고 묻는 웃픈 모습.^_ㅠ)
책을 읽어나갈수록 아버지인 아르후의 독백에 점점 몰입되더라고요.
해마다 기억력이 쇠퇴하면 라시미를 좀더 쉽게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비밀을 털어놓는 일도 쉬워질 거라고. 하지만 그는 라시미를 조금도 잊지 못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_ 225
라시미는 이 소설에서 아주 잠깐 등장했지만,
아르후의 기억속에 살며 이 소설 내내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해요.
(아, 그러고 보니 아주 잠깐의 등장마저도 아르후의 기억속에서였네요. 아르후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인물...)
웃길 거 같아서 읽다가, 순간순간 코끝이 찡하게 매워졌더라지요.
아참, 그리고 이 문장, 정말 사랑해요!
네가 내 동생을 물풍선으로 때렸다며? 그럼 나는 너를 물풍선 일만 개로 때려주지! 네가 내 여동생을 깜짝 놀래주려고 폭죽이 일만 발이나 든 폭죽통을 샀다며? 그럼 나는 (…) 폭죽이 일조 발이나 든 통을 사서 네가 죽는 날까지 터뜨려주지! _ 75
이것이 바로 형제간의 으ㅡ리!!!
복닥복닥 사남매가 엉켜 살던 우리집에서도 볼 수 있던 풍경이거든요.
하도 어린시절 기억이라, 누구와 누구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일도 있었지요.
밖에 나갔던 누가 당하고(!) 왔다고 집에 있던 누가 슬리퍼를 들고 뛰쳐나가 "이놈 자식 가만 안 둔다!!!" 고함치며 철길을 따라 달렸던...ㅋㅋ (그래서 그 슬리퍼가 제대로 임자를 찾아 혼내줬는지 그거까지는 기억이 안 나는 거 보니, 저는 뒤따라 달리다 지쳤던가 뭐 그랬겠지요.)
으음...?
갑자기,
눈에 습기가 차네요...;
밑줄긋기 이만 마쳐야겠어요;;
사랑합니다, 우리 가족들...♥
(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