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예의를 향해

 

 

  오 년여 전, 아우슈비츠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무렵엔 폴란드에서 살고 있었으니 그곳에 가는 게 어렵지는 않았죠. 중앙역에서 기차를 한 번만 타면 다섯 시간 이내에 아우슈비츠가 있는 도시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물리적으로 그토록 가까운 곳에 아우슈비츠가 있었음에도 폴란드를 떠나기 석 달 전에야 그곳을 찾아갔던 건 감정적인 거리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곳에 가는 걸 기다리면서도 두려워했습니다.

 

  귀국 후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이현경 옮김, 돌베개, 2007), 서경식의 『디아스포라의 눈』(한승동 옮김, 한겨레출판, 2012), 그리고 『디아스포라 기행』(김혜신 옮김, 돌베개, 2006)을 읽으며 살아남은 자의 예의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전쟁을, 학살을, 혹은 그와 비슷한 무게의 고통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이 화두는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지속될 테지요. 그리고 우리의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는 짊어질 생의 무게일 것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세대와 세대가 지나가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어떤 영원한 예의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한다면 너무 거창하겠죠. 실은 저도 잘 모르는 영역입니다. 그러니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저는 이렇게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대단하고 위대한 삶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인간다워지는 순간에 대해서 쓰고 싶어서였다고요.

 

  그 빛의 순간이 읽는 분들의 마음속에도 비쳐지길 소망합니다.

 

 

_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조해진 「빛의 호위」 작가노트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다가, 조해진 작가의 '작가노트'를 읽고 또 읽었다.

뒤에 줄줄이 기다리는 다른 글들을 읽지 못하고, 이 글만 읽고 또 읽으며,

영원한 예의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어떤 영원한 예의를, 생각했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그 영원한 예의를.

 

 

 

전쟁의 비극은 철로 된 무기나 무너진 건물이 아니라, 죽은 연인을 떠올리며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젊은 여성의 젖은 눈동자 같은 데서 발견되어야 한다. 전쟁이 없었다면 당신이나 나만큼만 울었을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 그 자체니까. (49)

 

나는 생존자고, 생존자는 희생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53)

 

_ 「빛의 호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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