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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p.10
어쩌면 생일이란 게 좀 위험한 건지도 모르지요. 크리스마스처럼 말입니다. 미국 어디를 가나 나무에는 장식이 걸려 있고, 문에는 화환이 걸려
있고, 증기 파이프에는 목을 맨 시체들이 걸려 있고.
나는 일년 중 두번쯤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 온다. 연말연시에 한번, 그리고
생일에 한번. 매년 찾아오는 숫자 바꿈일 뿐인 그 날들이 다가오면 새삼 왜 사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등의 원초적인 질문들이 나를
압박하곤 한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답찾기를 유예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수식어로 그 압박과 우울을 몰아내곤 한다. 아니 정확히는 은폐하곤
한다.
여기 자신의 생일날 시속 130킬로미터로 달리는 급행 열차에 몸을 던지려하는 백인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낸 흑인 목사가 있다. '흑'은 '백'을 구해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한다. 좁은 방 한칸에 마련된 테이블에 마주 앉아 '흑'과 '백'은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 받으며
'삶의 의미', '신의 존재' 같은 철학적인
질문들에 대해 토론한다. '흑'은 어떻게든 '백'이 살아갈 의지를 갖게 하려 애를 쓴다. 하지만 '백'은 쉽게 설득 당하지 않는다.
'백'의 직업은 교수이다. 즉, 온갖 지식을 습득한 지성인이다. 그는 짧지 않은 인생 동안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터득한 지식의 끝에 결국 이세상 그 무엇도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여, 그런 삶을 '끝'내려 선셋리미티드에 몸을 던진 것이다. '백'의 이야길 들어보자.
p.53
백 :
행복이라고요?
흑 : 그래,
행복한 게 뭐가 문제요?
백 :
인간의 조건과
정반대니까요.
p.108
백 : 더
어두운 그림이 늘
정확한 그림이지요. 세계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유혈과 탐욕과 어리석음의 대하소설을 읽는 겁니다. 그 의미는 아주 분명하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든 달라질 거라고 상상합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해요.
p.132
백 : 나는
내 정신 상태가 어떤 염세적 세계관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게 세계 자체라고 생각해요. 진화의 결과, 지능을 가진 생명은 어쩔 수
없이 궁극적으로 다른 무엇보다도 이것 한 가지를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무용성입니다.
'흑'의 직업은 교도소 목사이다. 그 또한 과거에 끔찍한 사건을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되고, 또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갱생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흑'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p.55
흑
: 중요한 건, 교수선생, 인생에 괴로움이 없다면 자신이 진짜로 행복하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거 아니겠소? 뭐에 비교할
건데?
p.114
흑
: 하고 싶은 말은 변하지 않지. 하고 싶은 말은 늘 똑같아. 전에도 했던 이야기이고 앞으로도 늘 다시 말할 방법을 찾게 될 얘기지. 빛이 선생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만 선생이 어둠밖에 보지 못할 뿐이다. 그 어둠은 바로 선생이다. 선생이 그 어둠을 만드는
것이다.
p.128
흑
: 어디 이렇게 한번 얘기해봅시다. 나는 세상이 선생이 허락하는 만큼만 나아질 수 있다고 믿어. 선생이 사는 세상이 어둡다 해도, 그게 복음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 놀라운 건 아니야.
p.
129
흑
: 그럼, 믿지, 교수 선생. 믿고말고. 나는 구하기만 하면 그게 나타난다고 생각해.
당신은 누구의 논리가 더 옳다고 생각하는가?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모두 책을 읽어가며 누구의 답이 정답인지를 계속 고민하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결국 누구 한 사람에게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끊임없는 설전에 어떤 때는 '흑의 말에, 어떤 때는 '백'의 말에 깊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백미는 바로 이 점이니까.
좁은 방안에서 오로지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이토록 긴장감 넘칠 수 있다니! 그렇다고 시종일관 깊고 무거운 이야기만 주고 받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무거운 대화들 속에는 잊을만하면 익살과 해학이 끼어든다. 마치 비극 속의 희극, 희극 속의 비극의 연속인 우리 삶처럼
말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흑'과 '백'의 은유적인 인물
구도이다. 작품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지진 않으나 그들의 대화를 미루어 봤을 때 '흑'과 '백'의 인생사는 어쩌면 '흑'이 '백' 보다 훨씬 굴곡 많고 어둠 투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매카시는 '백'에게 '어둠'을,
'흑'에게 '빛'을 부여하였다. 이 거장 작가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고, 어쩌면 이 속에서 독자인 우리는 답을 찾게되는지도 모른다. '흑'과 '백'은, '빛'과 '어둠'은, '희망'과 '절망'은, 그리고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라는 것을.
나는 사실 '소설'이 아닌 다른 장르의 책들을 (그러니까
인문학 서적이나, 철학 서적 같은) 잘 못 읽는 편이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당했다!'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분명 '소설(이 작품은 희곡에 가깝지만)'을 읽으려 펼친 책인데, 이건 철학 서적이 아닌가! 그런데 책을 펼친 순간부터 마지막 장까지 나를 잡고
놔주질 않다니, 이런 또 한번 당하고 말았다. 아아, 이래서 이 작가가 살아있는 전설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