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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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슈렉이라는 녹색 괴물과 피오나 공주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우리가 이전까지 접했던 아름다운 동화속의 잘생긴 왕자님이 아닌 못생긴 녹색 괴물, 아름답지만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공주님이 아닌 못생겼지만 당차고 적극적인 공주가 주인공으로 등장했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이전까지의 동화들의 전형적인 패턴에 대해 비틀고 꼬집는 데서 오던 신선한 충격. 풍자와 패러디의 가장 올바른 예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우리 국내 작가가 세계 명작 동화들을 새롭게 변주하여 10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기대가 컸습니다. 슈렉과는 또다른 약간의 한국적인 무엇을 곁들인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하고 말이죠.

 

우리가 어린 시절 접했던 동화들의 내용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 왕자와 공주가 등장하고, 공주를 못 살게 구는 못된 마녀가 등장하지만, 결국 동화 말미엔... '마녀는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졌답니다.'. '그렇게 공주님과 왕자님은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끝을 맺지요. 철저하게 권선징악, 철저하게 주인공 중심적인 해피엔딩.

 

이 작품속 10편의 단편들은 이런 해피엔딩, 권선징악 따위 전부 집어치우고, 독하고 때론 사악하고 적나라하게 동화들을 변주해 갑니다. 공주나 왕자가 아닌 그들의 주변 인물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해피엔딩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기도 하며, 아예 배경을 달리 하기도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리고 그런 과정 안에 다분히 정치적인 색이나, 사회 풍자적인 요소를 담뿍 담아놓았습니다. 때문에 전혀 동화같은 느낌이 없습니다. 작품들에 담긴 메타포를 읽어 내기에 다분히 어렵기도 하고, 또한 아이다운 순수함은 없기에 솔직히 어린 아이들이 읽을만한 책은 아님에 분명합니다.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라고 할까요? 그리고 그런 결코 순수하다거나 착하다고 할 수 없는 잔혹성(?)을 읽어내는데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다만 개인적 아쉬움은 남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림 형제니, 안데르센 동화니...등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솔직히 여기 차용된 수많은 동화들 중에서 제가 제대로 읽었다고 기억하는 동화는 성냥팔이소녀...뿐이었습니다. 이런 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큰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원작과의 차이점을 찾아가며 그 차이점 속에 담아놓은 새로운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읽어내는 것인데... 저의 좁디 좁은 배경지식으로 인하여... 그 재미가 반감해버리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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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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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엄마 아빠가 살고 계신 제 고향은 제가 초등학교(사실은 국민학교 시절이죠.) 저학년까지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펌프로 끌어 올린 지하수를 마시고, 빨래는 저수지 빨래터에서 해야 하는 그야말로 심각한 깡촌이었습니다. 집 앞뒤는 전부 산이나 논밭이고 담 아래에는 토끼풀이 무성해 가끔 뱀이 출몰하기도 했습니다. 강원도도 아닌데 눈이 오기 시작하면 마구 퍼부어 어른 허리까지 쌓이게 오는 적도 많았습니다. 학교까지는 걸어서 30분쯤. 그래도 동네에 또래 친구들이 많아 손잡고 그 긴 길을 오고 가는 것이 마냥 심심하지만은 않았었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분들이나, 나이가 좀 어린 분들은 아마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해 현실감이 없게 들리실 겁니다. 하긴 지금의 저조차도 그때... 대체 어떻게 살았을까...싶으니까요.

 

엄마가 집을 나가버리고 아버지 홀로 힘들게 키우다 시골 외가에 맡겨진 11세 소녀 둘녕, 그리고 그녀의 이종 사촌 수안. 둘녕이와 수안이는 지금은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그 시절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둘녕과 수안이 다니던 시골 분교. 그녀들이 등하굣길에 오가던 논두렁 길. 호기심과 두려움이 반반 섞여 자꾸만 들여다 보게되는 토담집. 그녀들이 읽던 수많은 추억속의 문고들. 때론 정겹고, 때론 조금 아픈 그것들을 읽어 나가며 저는 그녀들과 함께 그곳을 걷고 읽고 보다가... 결국엔 그시절의 저로 돌아갑니다.

 

둘녕이 외가에 내려오며 시작되는 이 소설엔 정말 수많은 에피소들이 담겨 있습니다. 때론 즐겁지만, 때론 아픈 에피소드들. 그런 에피소드들을 통해 그녀들은 점점 성장해 가지요. 그리고 그녀들은 아주 아픈 성장통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런 성장통을 겪고 38세의 어른이 된 현재의 둘녕이 등장합니다. 현재의 둘녕의 이야기와 함께 그녀가 회상하는 소녀시절의 둘녕의 이야기와 더불어 둘녕의 편지들, 그녀가 어린 시절 수안과 함께 읽었던 동화들까지 뒤죽박죽 섞여 있습니다. 이런 구성은 굉장히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소녀 둘녕과 어른 둘녕의 이야기를 번갈아 듣다 보니 그 경계가 조금씩 모호해집니다. 도대체 어른이 된다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만 20세가 지나고 나면, 성년의 날을 넘기고 나면 우리는 정말 어른이 되는 걸까요? 그런데 그렇다기에 어른 둘녕은 여전히 아픈 성장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비단 둘녕 뿐은 아니겠지요. 우리는 아마 죽을 때까지 미완성의 성장을 계속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된 둘녕은 옷 수선집을 운영하며 틈나는 대로 잠옷을 만듭니다. 오로지 자기 손만을 빌어서. 그리고 그 잠옷이 완성이 되었을 때, 그리고 책 제목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저는 결국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이 잠옷을 만드는 것으로 둘녕은 다시 한번 성장통을 이겨 냅니다. 그 과정을 지켜 보며 같이 아팠고 또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렇기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많이 울었지만 또한 웃을 수도 있었습니다.

 

시즌을 거듭하며 우리를 과거로 되돌려 놓는 인기 드라마가 있습니다. 얼마전에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어 다시 한번 화제가 되고 있지요. 그 드라마 뿐 아닙니다. 이런 복고 열풍은 드라마나 음악이나 예능 등에서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과거 그 시절들에 열광하는 걸까요? 그건 아마도 그것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그 시절의 나 자신이 떠오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 시절 행복했던 내가, 그 시절 아팠던 내가. 하지만 그 시절로 되돌아가 같이 기뻐해 줄 수도 없고, 위로해 줄 수도 없기에 우리는 드라마나 책이나 음악을 통해 지금의 나와 그 시절의 내가 소통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요? 잠옷을 입으렴을 통해 울고 웃으며 소녀 시절의 저와 소통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p.438 한때 내 것이었다가 나를 떠난 것도 있고, 내가 버리고 외면한 것도,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도 있다. 다만 한때 몹시 아름다웠던 것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것들은 지금 어디로 달아나서 금빛 먼지처럼 카를거리며 웃고 있을까. 무엇이 그 아름다운 시절을 데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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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좋은썬 2015-11-14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저도 재밌게 읽은 책이에요. 사서함110호의 우편물? 그것도 참 좋더라구요..

그녀,읽다. 2015-11-14 22:54   좋아요 0 | URL
네 옛날 생각 나고 참 좋더라구요. 먹먹하고 애틋하고 정겹고^^ 아직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못 읽어봤는데 그 작품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그레이맨 그레이맨 시리즈
마크 그리니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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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8 그레이맨의 존재 이유는 단순했다. 세상에 처단해야 할 악인이 남아있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 직업인 킬러에게 정의감이란 것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인 그레이맨을 보자면 분명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넘치도록 말이죠. 그런 정의로운 오지랖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자신의 임무가 끝났으면 조용히 탈출하면 편했을 걸 지나친 정의감과 오지랖으로 자신을 버렸던 조국의 군인들을 돕느라 일이 꼬일 대로 꼬여버린 젠트리. 급기야 전세계 킬팀들의 표적이 되고 맙니다. 고작 킬러 하나를 수십명의 킬러들이 온갖 무기를 동원하여 그를 추격합니다. 하지만 워낙 전설적인 존재였던 우리의 주인공은 끝까지 살아남지요. 끊임없이 다치고 다치고 또 다치는데도 절대로 죽지 않는 불사신! 마치 빗발치는 총알들 속을 뚫고 나오던 람보 같습니다.

 

킬러치고 지나치게 정의롭고 오지랖 넓고 정이 철철 넘치는 코트에게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수없이 밝혔지만 저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면 그 책은 일단 80%는 먹고 들어가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정들어 버린 인물이 첫페이지부터 심지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고난이 계속 되기에 이렇게 극한까지 젠트리를 계속해서 몰아넣는 작가가 혹시 변태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덕분에 독자는 책을 펼쳐 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지만요. 그리고 이야기 속에 좀 반갑다고 해야할지... 당황스럽다고 해야할지... 모를 인물이 등장합니다. 수많은 킬팀중에 한국에서 온 국정원 킬러 김성모. 다른 킬팀들은 떼로 다니는데 홀로 유유히 움직이던 인물. 그렇기에 젠트리와 가장 많이 닮았고, 그렇기에 또한 유일하게 젠트리의 맞수다운 맞수였던 인물이지요. 김성모가 등장하는 부분에선... 묘하게 젠트리를 응원해야할지 성모를 응원해야할지 내적갈등을 겪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것도 애국심으로 봐야할까요? ㅋㅋㅋㅋ;;)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액션이란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습니다. 책은 거의 접한 바가 없고, 그나마 액션 영화들을 봐 온 경험은 좀 있는데... 영화 속에서 액션씬들이 펼쳐지면 저는 자연스레 멍~ 해지더라구요. 그런 액션씬들에서 희열이나 통쾌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요. 그러다가 아아, 이런 것이 액션의 묘미구나...하고 깨달았던 게 본시리즈를 보았을 때였습니다. 본의 화려한 액션은 너무도 역동적이고 박진감 넘쳤기에 본에게 완전 반해버렸었지요. 그럼에도 총알이 빗발치는 장면들에선 여전히 멍~해집니다. 그러다 원티드라는 영화를 보고서 총격 액션에도 눈을 뜨게 되었지요. 그레이맨은 읽고서 본시리즈와 원티드의 액기스만을 뽑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제가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영상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런 액션물은 화려한 영상으로 감상하면 더 꿀잼이겠지요. 이미 영화화가 결정되었고 주연캐스팅까지 되었다고 하니 기대해 봅니다. 물론 코트가 코트니가 되어 성별이 바뀌어버렸다는 것은 좀 멘붕이지만요.

 

그리고 불사의 전설적인 킬러 코트 젠트리의 마드리드에서의 임무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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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짓하다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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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미드 크리미널마인드를 봤을 때가 떠오릅니다. 저는 솔직히 여타 인기절정인 수사 미드들에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크리미널 마인드 같은 경우는 프로파일러라는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직업 덕에 서너 시즌을 꽤 재밌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후 시사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면서 유명해지신 그분(...아시죠? 다들? ㅋㅋ)덕에 아, 우리 나라에도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있긴 있구나...하고 신기해하며 외국 드라마에서만 존재하는 직업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이제 제법 익숙해지고 친숙한(?) 직업이 되었음에도 생각해보면 국내 소설에선 쉽게 찾아 볼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케이블 드라마 속 주인공에서는 가끔 볼 수 있었지만요.

 

이 소설은 프로파일러가 주인공인 시리즈의 서막을 여는 작품입니다. 프로파일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해박한 지식, 강렬한 카리스마, 섬세한 감성. 저는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 속 프로파일러인 김성호란 인물은 이런 제 선입견을 완전히 깨는 인물이었습니다. 평범하달 수 있는, 그닥 뛰어나달 수 없는 체력, 왠지 불안해 보이기만 하는 멘탈. 이래서야 과연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 자체가 실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프로파일러는 범인을 잡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인물이 아닌, 수사의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니까요. 여타 드라마들로 인해 잘못된 인식이 박혀 있었던 거지요. 때문에 김성호라는 인물은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인 프로파일러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인물형은 독자에게, 그러니까 저에게 긍적적으로도 또한 부정적으로도 다가오게 됩니다.

 

몇 해 전, 한 인터넷 사이트의 회원들 사이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었지요. 또다른 모 사이트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자주 오르곤 합니다. 이 작품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터집니다. 주간파라 불리우는 사이트에서 한 여성을 살해하기로 모의하고 실제로 그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건 10대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를 프로파일링하기 위해 투입된 사람이 김성호. 하지만 이를 개기로 김성호는 시쳇말로 신상이 탈탈 털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김성호는 진도의 삼보섬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실종사건의 수사 협조 명목으로 차출당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는 그 섬에서 제목처럼 섬찟한 일들을 당하고, 또한 떠올리게 됩니다. (덧붙이자면 상당히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센스 있는 제목에 무한 박수를 보냅니다.)

 

사실 소설을 중반까지 읽어 나가는 동안 조금 답답했습니다. 주간파 살인사건 외엔 여타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고, 또한 사건들이 해결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아아, 싶기 시작합니다. 이것 저것 그것들(...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스포가 될 것 같아서요;;)이 다 얽히고 섥혀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순간 섬찟한 반전에 한방 먹고맙니다. 특히 씻김굿 장면은 여러면에서 압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가가 얼마나 자료 조사를 철저히 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구체적으로 언급해가며 하고픈 말이 많지만... 스포가 될까봐서 말을 고르기가 참 힘이 드네요;;;

 

시리즈물의 서막인지라... 끝을 보고도 결코 끝을 본 것 같지 않은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이번 편은 시리즈의 큰 맥이 되는 주인공을 소개하고자 했다는 것이 많이 느껴지거든요. 때문에 다음 편을 빨리 보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창하게 주인공을 소개 받고도... 제가 그를 애정해야할지 미워해야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거든요. 저는 그를 한없이 애정하고 싶은데... 그러자면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봐야지 싶습니다.

 

단순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사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결의 방향성에 대해서까지 담고 있는 소설을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한다지요. 인터넷 악성댓글, 인터넷 중독, 히키코모리, 학교 폭력.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큰 주제는 바로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소설을 꽤 근사하게 빠진 한국형 사회파 추리소설이라 감히 칭하고 싶네요. 다른 나라 미스터리를 읽을만큼 읽고 국내로 눈을 돌렸는데 무얼 읽어야할지 모르겠다 싶으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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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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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좀 읽는다는 사람치고 소설가 스티븐킹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특히 장르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치고는 더욱 그렇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킹의 소설을 단 한편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제겐 '스티븐킹 = 호러킹'이란 공식이 머릿속 깊이 박혀 있었거든요. 원체 호러물 좀비물을 싫어해서 그 명성은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그이 소설을 읽어봐야지...하는 생각은 해본 적 조차 없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원체 명성이 자자하니 도대체 얼마나?...하는 마음도 있었고, 독하디 독하다던데 그것 역시 도대체 얼마나?...하는 마음 또한 있었구요. 그렇게 여름도 다 가고 심지어 가을마저 다 가버려 숨을 내뿜으면 입김이 펄펄 나는 이 계절에 킹의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날씨도 섬뜩, 이야기도 섬뜩. 그 섬뜩하고 독했던 4편의 이야기들의 간단평을 각각 따로 적어봅니다.

 

<1922>

  참 어이가 없습니다. 고작 땅 때문에 아내를 죽이는 남편, 그것도 아들과 합작으로 말이지요. 그런 어이없는 살인 행각 후에 두 부자는 점점 피폐해져 갑니다. 사람이 사람을 살해했는데... 그것도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살해했는데 당연하겠지요. 때문에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리며 환영을 보고 결국 아버지도 아들도 그리고 그들이 소중한 아내와 엄마를 죽이면서까지 지키려했던 그 땅 마저도 파국을 맞이하고 맙니다. 그러한 과정을, 아주 세심하고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점점 파국으로 치닿는, 좀 격하게 말하자면 점점 미쳐가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아주 탁월했습니다. 거기에 쥐들이 등하하는 장면 묘사란 정말이지...으윽;;

  그런데 에필로그까지 읽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주인공이 부인을 살해하면서 지키려 했던 그 땅이 '고작 땅 따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요. 아, 물론 그의 살인이 합당했단 이야기는 아닙니다. 소설 초반에 왜 아내는 남편에게 땅을 팔자고 했었는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그것은 그들이 살고 있던 땅에 '공장'이라는 문명이 들어서기 위해서였습니다. 조상대대로 농사 지으며 살아온 소중한 땅인데, 그 땅에서 가축 도살이 이뤄지며 그들 땅을 가로지르는 내에는 가축의 피가 흘러간다면... 그 어떤 농부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요? 이런 사실을 깨달은 후 제목을 다시 보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왜 이 소설의 배경 및 제목이 1922였는지를요. 그리고 또 왜 주인공이 이 이야기를 서술하는 시점이 사건이 일어난 8년 후인 1930년이었는지를요. 이 시기에 미국의 빠른 경제 성장과 산업화, 그리고 찾아 온 대공황. 그 즈음에 위치해 있던 시절이었거든요. 저는 사실 세계사에 매우 취약한지라 이런 단편적인 지식밖에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살인자의 죄책감과 파국과 함께 이런 과정 또한담아보려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킹이 말하려던 진짜 끔찍하고 섬찟하고 공포스러운 존재는 무엇이었을지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빅드라이버>

  '1922'가 살인자의 심리 묘사가 탁월한 이야기였다면, 이 작품은 피해자의 심리 묘사가 탁월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집 속 네 편의 작품들 중 저를 가장 분노케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여성 독자라면 아마 누구나 그랬을 겁니다.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에게 철저하게 능욕당한 후 살해당할 뻔 한 여성의 이야기거든요. 성폭행은 여성이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란 공식이 역차별이니 뭐니 해도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와, 사회적 시선 덕에 대부분의 피해자가 여성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씁쓸한 점은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당한 일이 세상에 알려질까, 그래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까 두려워합니다. 강간범은 당당히 허리 펴고 다니며, 심지어 다음 피해자를 물색중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때문에 주인공은 쉽사리 신고를 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베스트셀러 작가거든요. 이 일이 알려지면 결코 원치 않은 유명세를 치러야할테니까요. 이런 주인공의 처절한 심리들이 정말이지 독하도록 세밀하게 묘사가 됩니다. 때문에 같은 여자로서 저는 주인공에 한없이 몰입하고 말지요. 때문에 그녀의 복수가 살인이라는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간절하게 그녀의 복수가 성공하길 빌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반전이랄지...는... 정말로 쓰디 쓰더군요. 어쩌면 네 작품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은 이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대사에서처럼... 상처 받은 그녀들이 부디 잘 이겨내기를, 그리고 더이상 그녀들이 더 늘지 않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공정한 거래>

  자신의 수명을 늘리는 대신 영혼을 팔아버린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봤음직한 소재입니다. 저는 이런 경우 절대로 구차하게 수명 따위 늘리지 않겠다...라고 생각했었지만, 만약 이 작품 속 주인공처럼 길어봐야 석달 밖에 살지 못하는 시한부 인생이라면... 그렇게 쉽게 거절할 수는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거래에서 수명과 교환하는 것은 영혼이 아닌 돈이며, 주인공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의 인생입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주인공의 인생에 훼방을 놓았으며, 그 훼방 덕분에 승승장구하며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태껏 주인공 덕에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인생의 남은 반은 뒤바꾸어 주인공도 좀 잘 먹고 잘 살아 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남의 인생 팔아서 내가 승승장구 하는 삶....이 어찌 행복할 수 있겠느냐구요?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이 작품을 읽어가다 보면...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때문에 이런 내적 갈등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이 무서워지더군요. 마지막 장면에서 한없이 행복해 보이던 주인공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

  솔직히 제목을 보자마자, 이건 반어법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당연히 주인공 부부의 끔직한 결혼 생활이 등장하겠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주인공 부부는 실제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지극히 평온하고 행복한 27년의 결혼 생활. 하지만 그렇기에 우연히 밝혀지고 일어나는 사건은 더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27년을 함께 동고동락 하며 그 누구보다 믿고 사랑하던 배우자의 끔찍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면...? 근 30년을 매일 같이 살 부대끼며 살던 배우자가 알고 봤더니 온 세상을 들썩이게 한 희대의 살인마라면...? 정말 생각하기조차 싫습니다. 당연히 신고를 해야한다구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사회가 범죄자의 가족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곧 결혼을 앞 둔 딸이 있고, 이제 막 사업이 풀리기 시작하는 아들도 있습니다. 연쇄 살인범은 주인공의 남편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자녀들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주인공은 망설입니다. 고민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남편은 그런 그녀의 갈등을 알고 그녀의 입을 막습니다. 어제의 남편과 오늘의 남편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데... 하지만 결코 같을 수도 없겠지요. 이런 주인공의 내면 심리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녀의 결정에 응원을 하는 바입니다.

 

네 편의 작품을 읽고 제 머릿속에 박혀 있던 스티븐킹=호러킹..이란 공식은 좀 잘못되었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의식 속의 호러라는 것은 귀신이 튀어나오는 이야기인데, 스티븐킹의 이야기들은 심리 스릴러에 한없이 가깝더라구요. 세밀한 심리 묘사로 불러 일으키는 공포는 제취향에도 잘 맞으니까요. 그리고 닫는 글에서 보이던 소설 킹의 자부심 넘치면서도 겸손한 글들에 반했기에, 앞으로도 킹의 소설을 더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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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연 2015-11-0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랜만에 읽은 서평인데, 또 고맙게도 참 공감가는 글을 써주셨네요. 저는 스티븐 킹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공포심을 자극하는 장면이 가끔 너무 리얼해서 어떤 공포소설은 이십여년 전 한 번 읽고 깊숙히 넣어 두었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작 단편도 스티븐 킹 작품이에요. 아마도 알고 계셨겠지만.. 짧은 소설인데 기회되면 한 번 읽어 보세요^^ 호러만 쓴 건 아니랍니다.

그녀,읽다. 2015-11-01 22:00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드립니다^^ 이제 두루두루 킹의 소설을 읽어봐야겠어요. 일단 그가 쓴 첫 루리소설이라는 미스터메르세데스부터 독파해보려합니다^^

migi80 2015-11-02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사실 저도 스티븐 킹의 책은 한번도 못읽었거든요.
너무 잔인하고 무서울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