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새겨진 소녀 스토리콜렉터 44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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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밝혀온 바지만, 저는 캐릭터가 매력적인 소설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캐릭터가 살아있으면 스토리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후한 점수를 주곤 하지요. 그런데 캐릭터의 매력에 스토리까지 뛰어난 시리즈를 아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안드레아스 그루버'라는 독일 작가가 쓴 '슈나이더&자비네' 시리즈가 바로 그것입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을 며칠 전에 굉장히 재미있게 읽고 쫀쫀한 긴장감이 살아 있는 스토리와 슈나이더의 정말 독특하기 짝이 없는 개성에 매료되었었는데, 후속작인 <지옥이 새겨진 소녀>에서는 캐릭터의 매력과 스토리의 치밀함이 더욱 발전하였더군요.

 

이야기는 오스트리아와 독일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됩니다. 오스트리아의 멜라니 검사, 독일의 자비네(이번 작품은 슈나이더 보단 자비네의 활약이 더 두드러진다고 느꼈습니다.)가 조사하는 각각의 사건이 전혀 무관하게 전개되지요. 멜라니는 클라라라는 소녀의 유괴 사건을 조사하고, 자비네는 연방수사국 아카데미에 입학해 슈나이더의 수업을 들으며 그가 낸 과제를 해결하는 와중에 여러 사건을 접하게 됩니다. 이렇듯 정말 전혀 상관없을 듯한 사건들이 소설 중후반부를 지나면 자연스레 하나가 됩니다. 저는 이런 플롯을 참 좋아하는데, 멜라니와 자비네가 협조 수사를 할 땐 왠지 희열감마저 느껴지더군요.

 

'아동'이 피해자인 이야기들은 언제나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저 소설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우리의 현실속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아니까요. 때문에 이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들을 대체적으로 참 무겁고, 분노를 불러 일으키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선 슈나이더의 괴팍하고 정말 말도 안되는 성격과, 이를 은근 디스하며 그누구보다도 슈나이더를 잘 다루는 자니베의 환상적인 콤비플레이가 자주 웃음을 유발하여 작품을 지하 세계로 가라앉지 않게 끌어올려줍니다.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도 어쩐지 귓가에 슈나이더가 자비네를 놀리기 위해 '다람쥐'라고 부르는 소리와, 자비네가 슈나이더를 놀리기 위해 그의 네덜란드 억양을 따라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웃음이 나는군요.

 

그리고 또 하나 이 작가가 마음에 드는 점이 있습니다. 아마 작가가 개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리라 추측된다는 점이지요.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생명체는 '개'님이고, '개'님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은 없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거든요.(ㅋㅋㅋㅋ;)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에서도 '개'는 꽤 중요한 배역을 차지하며 중요한 순가에 매우 중요한 일을 해내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렇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런 매력적인 '개'님이 두 마리씩이나 등장해서 이런 점도 정말 좋았달까요;;;

 

게다가 작품 말미에 특별 부록의 넣은 슈나이더와의 가상 인터뷰는 또 어찌나 웃기던지요. 말이 슈나이더와의 인터뷰지 질문은 전부 작가인 안드레아스 그루버나 자비네와 관련된 질문딘데가 대부분 3문장 이상으로 이루어진 질문들이었으니 (물론 가상이지만) 그 인터뷰를 당한 슈나이더를 생각하니 또 웃음이 나고 맙니다. (분명 스릴러 소설인데 자꾸 웃음이 나지 말입니다;;; ㅋㅋㅋ;;)

 

스토리도, 캐릭터도, 심지어 개가 등장한다는 점까지 뭐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소설. 올해 읽은 스릴러 소설들 중에선 단연코 가장 재밌었다고 말할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자비네와 슈나이더의 케미는 점점 더 깊어만 가니 작품 말미에 예고된 그들의 세번째 이야기가 벌써 너무나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상 슈나이더가 결코 반길 리 없는 핵심은 별로 없고 쓸데없이 길기만 한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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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지넷 윈터슨 지음, 허진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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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작가, 남녀노소 누구나 읽는 작가, 작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이런 수식어들을 모조리 달고 다니는 작가가 있다면 과연 누구일까요? 저는 오로지 한 사람만이 떠오릅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가 서거한 지 400년이 흐르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위대한 작가들이 모여 위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으니, 이는 '셰익스피어 다시 쓰기'입니다. 호가스 출판사에서 기획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로 한 작가들은 앤 타일러, 요네스뵈, 길리언 플린 등 라인업이 굉장히 화려합니다. 셰익스피어를, 그리고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굉장히 설레고 흥분되는 프로젝트지요. (저도 개인적으로 특히 요 네스뵈가 다시 쓰는 맥베스가 굉장히 기대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현재 세계적으로, 대중적으로, 평단에서도 두루 인정 받는 작가라도, 다른 누구도 아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시 쓴다는 것은, 작가 인생에 있어서 크나큰 영광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한 부담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잘 써봐야 본전이랄까요? 하물며 이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의 첫 스타트를 끊는 것은 더더욱 큰 부담이었겠지요. 이 어마어마한 일을 해낸 작가는 바로 '지넷 윈터슨'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택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우리나라에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겨울 이야기'이구요. 하지만 다행히(?) 책의 도입에 '겨울 이야기'의 줄거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즉,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는 원작으로, 지넷 윈터슨이 쓴 '시간의 틈'은 개작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지요. 패러디나 오마주가 아닌 '개작'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면, 원작을 아주 잘 살리겠단 뜻이지요. 저는 솔직히 이 프로젝트 자체가, 작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조금의 모티프만 따 올 뿐 원작과는 전혀 다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개작'이란 단어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그런데 정말 '개작'이라는 표현을 쓸 법 하더라고요. 소설의 무대가 400년이 지난 현대라는 점, 시칠리아라는 가상의 나라는 주인공 '레오'가 경영하는 회사 이름이라는 점 등 몇가지 요소들이 현대의 시기에 맞게 수정되었을 뿐, 원작의 캐릭터나 스토리 등은 잘 살아 있었습니다.

 

시칠리아 해지 펀드의 경영자이자 난폭하고 속물인 '리오', 세계적인 컴퓨터 게임 개발자이지만 자유로운 영혼 '지노', 유명한 미녀 샹송 가수인 '미미'. 작품의 전반부는 이 세사람의 러브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러브 스토리 앞에 '아름다운'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는 차마 없을 것 같네요. 그들의 러브 스토리를 압축할 수 있는 단어들을 나열해 보자면, 질투, 동성애, 불륜 등등이 되거든요. 흡사 사랑과 전쟁이나 아침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막장 요소들이지요. 그리고 이런 스토리의 중심엔 '리오'가 있습니다. 지노의 죽마고우이자 미미의 남편인 리오는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질투에 눈이 멀어 갈 때 까지 가고 맙니다. 미미가 낳은 여자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닌 지노의 아이라고 판단 급기야 아이를 버리는 일까지 행하거든요. 결국 미미가 낳은 여자 아이는 베이비 박스에 버려져 한 흑인 남자의 손에 길러집니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17년이 흐르지요. 이제 숙녀로 성장한 '퍼디타', 그리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 남자 '젤'. 17년 전과는 다르게 조금은 순수하게(?), 그렇지만 애틋하게 펼쳐지는 후반부의 이야기. 그렇게 과거와 현재는 닮은듯 다르게 얽히고 설켜갑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줄거리는 딱 여기까지만;;;)

 

작품을 읽어 가며, '리오'라는 캐릭터를 보며, '질투'라는 감정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은 결국 질투도 사랑의 한 방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리오'가 행한 행동들이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무마되기 힘든 면도 있지만, 결국 리오의 그 지극한 '사랑'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이니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리오의 질투의 대상이 과연 '지노'인 것인지, '미미'인 것인지 헷갈린다는 점입니다. 지노의 경우는 분명 게이였지만, 리오는 그게 조금 애매하거든요. 분명 미미를 지극히 사랑하는데, 지노도 못지 않게 사랑하는 것 같더란 말입니다. 결국 이야기를 파국으로 몰고 간 리오의 '질투'는 지노와 미미가 리오를 버릴까봐 불안하여 생긴, 일종의 애정 결핍 비슷한 것은 아니었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 엇나간 방식의 사랑의 대가로 불행해집니다. 리오라는 인물은, 작품을 읽어 가는 내내 제 내적 갈등을 심하게 일으키게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절대 이해가 안됐다가, 한없이 안쓰러워지기를 반복하는 인물이었거든요. 그리고 '질투'가 엇나간 방식의 사랑이라면, '용서'는 지극히 위대한 방식의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때문에 '질투'로 벌어진 파국을 '용서'로 바꿀 수 있는 인물이라면, 충분히 사랑하고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거겠지요. 이 작품 속에서의 그 사람(?)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과거의 파국 속 주인공들은 17년이라는 '시간의 틈'에서 충분히 고통 받으며 속죄했을 테니, 용서 받을 자격도 있지 않을까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참 막장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몹시 섬세한 문장들이 그런 요소를 고품격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문학이니 문장이니 쥐뿔도 모르지만요;;;) 그리고 심지어 잘 읽히기까지 합니다. 무거우면서 경쾌하지요. 때문에 순문학이나 고전을 읽을 때면 몹시 힘겨워 하는 저도 매우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하늘에서 셰익스피어도 굉장히 흐뭇해하며 아빠 미소를 짓지 않을까요? '호가스 셰익스피어' 프로젝트의 다른 작품들도 몹시 기대됩니다. 다음 작품들이 나올 동안 셰익스피어 작품들 복습부터 해두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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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스토리콜렉터 37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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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북로드 스토리콜렉터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받은 미션 도서가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지옥이 새겨진 소녀>인데, 이 작품이 시리즈거든요. 약간 순서 집착증이 있는 관계로 시리즈의 첫 작품부터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일단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부터 집어 들었습니다. 독서 권태기가 심각해 두꺼운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시점이었는데, 400페이지가 넘는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과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지옥이 새겨진 소녀>를 연이어 읽겠다고 맘 먹은 건 큰 도전이었지요. 게다가 넬레 여사의 타우누스 시리즈를 읽었던 경험을 떠올려 보건데, 독일 소설 특유의 지명과 인명등의 난해함이 가독성을 방해했었기에 더더욱 이건 도전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저의 기우였습니다. 엄청난 가독성, 매력 철철 넘치는 캐릭터, 흥미진진한 사건 전개. 이 모든 걸 충족시켜주는 매우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이런식으로 비교해선 안되겠지만) 전 넬레 여사의 타우누스 시리즈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살인범에게 엄마를 잃은 형사 쟈비네, 안하무인 괴팍하지만 매력 철철 넘치는 프로파일러 슈나이더, 이 작품의 어찌보면 실질적인 주인공인 헬렌. 그리고 더벅 머리 페터​ '더벅 머리 페터'는 실제로 존재하는 아주 오래된 동화라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충격적이더군요. 현대에 차고 넘치는 잔인한 스릴러 소설들 보다도 어찌보면 더욱 잔혹함을 담고 있습니다. 동화 <더벅 머리 페터 >의 줄거리대로 이어지는 살인 사건들. 동화의 잔혹함을 '아동 학대'라는 소재와 결부시켜 현대식 스릴러로 아주 멋지게 승화시킨,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바로 이어서 <지옥이 새겨진 소녀>를 읽을 것이기에,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의 리뷰는 간략하게 마치겠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슈나이더도 ​아마 원하는 바일 테니까요. 이제 제대로 된 케미를 보여줄 쟈비네와 슈나이더를 생각하니 마구 마구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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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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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고, 스마트 폰이 발달하면서 이제 필름 카메라는 거의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소풍이나 수학 여행을 갈 때엔 살살 다루뤄야 한다는 신신당부를 거듭 들으며 귀하디 귀한 카메라를 목에 소중히 걸고, 필름값 아깝다며 한장 한장 아껴 찍으며 그렇게 즐기기도 했었는데 말이지요. 집에 카메라가 없는 친구들은 일회용 카메라라는 신기한 물건을 사서 찍기도 했구요.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사진관에 현상을 맡기며, 인원수대로 뽑아달라고 부탁해 사진을 함게 찍은 친구들과 나눠 갖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당시 졸업 선물 가장 인기 품목은 앨범이기도 했지요. 글을 쓰다보니 그 시절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군요. 역시, 사진의 다른 말은 '추억'이지 싶습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에서 여러 책과 관련된 추억과 미스터리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냈던 미카미 엔이 이번엔 그 무대를 사진관으로 옮겼습니다. 주인공 마유가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 정리를 위해 섬 에노시마에 있는 니시우라 사진관을 오랜만에 방문하여 겪게 되는 여러 소소한 미스터리를 담고 있습니다. 마유 또한 사진과 관련된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어, 그 추억과 관련된 에피소드 또한 미스터리하게 펼쳐집니다. 여기에 비블리아 고서당의 여주인공처럼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남성과 몹시 더디고 더딘 로맨스도 전개되고요. 정확히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의 사진관 버전이었습니다.

 

같은 작가가 장소만 달리하여 비슷한 구성으로 전개하기도 했고, 비블리아 시리즈가 워낙 대박 작품이라 니시우라 사진관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와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 또한 그 스토리면에선 비블리아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에서는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책이 소재로 등장할 땐 좀 난감했었는데, 니시우라 사진관의 소재는 '사진'인지라 독자(특히 국내)들의 공감은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에서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달 남짓 독서 권태기에 허우적 거리느라 책에 손조차 대지 않다가 오랜만에 집어든 책. 가독성, 잔잔함, 미스터리까지 제 독서 권태기를 한방에 날려 준 아주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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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에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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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늙은이' 등을 뜻하는 은어로 쓰였었는데, 이젠 엄연히 국어 사전에도 등재가 되어 있네요. 처음 '꼰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그 어감이 너무나 불손해서 그 말을 사용하는 아이들 역시 너무나 불량스러워 보였고 거부감이 들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꼰대'들을 '꼰대'라고 하는 것 만큼 적절한 표현 또한 없지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흔히 '꼰대'라고 지칭하는 대상들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소통이 전혀 안되는 독선적인 어른'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뭐 이젠 '꼰대'라는 단어가 은어의 기능을 상실해 버려 요즘 아이들은 거의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긴 하지만 말입니다. 글 서두에 뭐 좋은 단어라고 '꼰대'라는 말을 연발하느냐구요? 이 책은 바로 이 세상의 '꼰대'들이 읽어야 할 청소년 소설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중학생 서넛이 PC방에서 최근에 일어난 살인 사건 기사를 보고, 나름의 추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주로 범인의 입장에서 흉기나 살해 방법 등에 대해서 말이죠. 그런데 이들의 대화를 앞뒤 상황 다 차단하고 그 대화 내용만 듣고 있자면, 너무나 무시무시합니다. 당장이라도 이 아이들은 큰일을 벌일 것만 같습니다. 왜 우리는 흔히 '요즘 아이들 정말 무섭다.'라는 말을 자주 하지 않습니까? 이런 말을 하는 '꼰대'들 역시 수십년 전엔 '요즘 아이들'이었을 거면서 말입니다. 아무튼 PC방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어른은 결국 크나큰 오해를 하고, 사건이 벌어지며 결국 경찰서까지 가게 됩니다. 하지만 경찰서에도 물론 '꼰대'들만 한가득. 그래도 어찌됐든 그 아이들이 진짜 흉악범은 아니었기에 우여곡절 오해는 풀려 경찰서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또다시 이야기 도입에서 벌였던 고드름 흉기에 관한 논쟁을 벌입니다. 그리고 이를 듣고 있던 부모들은 또한 역시나 자신들의 자녀가 혹여 무슨 일이라도 벌일까봐 아이들을 다그치지죠. 아아, 아이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는 '꼰대'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이는 다름아닌 소설집의 첫 작품인 <고드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큰 따옴표나 문단 가름을 전부 생략해 버리고 진행되는 소설에 처음엔 당황했었는데... 청소년들의 화법과, 그리고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불통의 어른들을 묘사하기에 얼마나 적절한 구성인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어쩐지 저도 '꼰대'가 된 듯한 기분에 조금 부끄러워지더군요. 때문에 저는 이 소설집이 청소년 소설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꼭 읽어봐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전부 <고드름>처럼 아이들과 어른들의 불통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진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들과 어른들, 아이들과 부모들, 아이들과 사회와의 조화와 화합을 그리는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그녀>라는 단편에선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는 와중에 벌어지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를 지켜보는 청소년의, 그러니까 아주 아이도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딱 그 시점에서 바라보는 가족, 친척,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주인공과 아빠와 마을 어르신들의 물과 기름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겪어야하는 생의 과정을 상징하는 인물 구도가 참 흥미로웠습니다.

 

<미진이>이라는 단편도 그렇습니다. <그녀>와 더불어 연작 소설로 볼 수 있는 작품인데, '미진이'라는 인물은 다름아닌 바로 앞 단편에서의 '그녀'였거든요. <그녀>에서 어렴풋이 소개된 사연 많은 소녀 미진이의 사연이 안타깝게, 하지만 마무리는 훈훈하게 전개됩니다. 아이들은 어른을, 어른들은 아이들을 결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지만 결국엔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인정하고 이해하는 모습에 꽤 흐뭇해집니다.

 

<만두>, <파란 아이>라는 단편은 특히나 가족, 친구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뤄 가장 청소년 소설답다고 느꼈습니다. <이어폰>같은 경우는 주인공이 그저 안타까워 한없이 보듬어 주고 싶어지는 이야기였구요.

 

<아는 사람>의 경우는 상당히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결코 없어야겠지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사건을 겪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혹은 그런 일을 겪고 좌절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겐 용기를 주는 작품입니다. 결코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지만, 꼭 들려주어야만 하는 불편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소설속 주인공들과 같은 청소년들과 주로 생활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소설집을 읽는 동안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아이들이 끊임없이 제게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나를 좀 봐달라.'고, '우리 말을 좀 들어달라.'고, '우리도 때론 아프고 괴롭다.'고 외치는 아우성 같았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꼰대질'을 했었던가 반성하며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래놓고선 '이건 전부 너희를 위해서야.'라며 독선적인 말들 또한 퍼부었겠지요. 그동안 아이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지, 좀 더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지, 그래서 '꼰대'가 아닌 진정한 '어른'으로서 아이들 앞에 서야지, 다짐해 봅니다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마 아니겠지요;;;

 

반짝 반짝 아름답게 빛나지만, 자세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는 샹들리에. 마치 우리 아이들 같습니다. 그들이 위태롭지 않고 언제까지나 반짝 반짝 빛나게 해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전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거든요. 때문에 이 글은 <샹들리에>의 리뷰이자, 제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조금 쑥스러운 러브 레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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