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가게
너대니얼 호손 외 지음, 최주언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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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섬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하와이의 모라카이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케올라의 모험담(?)입니다. 케올라에게는 칼라마케라는 장인이 있었는데, 그는 마법사였습니다. 케올라는 우연히 장인 칼라마케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고, 조금의 욕심을 부리는데 그로 인해 목소리섬에 남겨져 험난한(?) 모험을 하게 됩니다.

 

백년이 훌쩍 넘은 이 고전을 읽다보니, 어느새 눈앞에 하와이 여러 해변들이 펼쳐지네요. . 하와이의 환상적인 해변을 생각하면 마냥 행복해지다가, 칼라마케가 돈을 줍는 장면에선 거기 꼭 가보고도 싶어지다가(ㅋㅋㅋ), 케올라가 위기를 겪는 장면에선 공포심도 느낍니다. 짧은 단편인데 여러 소소한 재미를 다양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책을 읽어나가며 이거 하와이에 떠도는 전설인가 싶어서 작가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을 했는데,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알고보니 <보물섬>과 <지킬 앤 하이드>를 쓴 작가였군요. 아 역시 그래서 <목소리 섬>에 모험도, 판타지도, 공포도 다 담겨있었던가 봅니다.

 

<마술 가게 - 허버트 조지 웰스>

책의 표제작인 <마술가게>입니다. 착하고 성실한 '제대로 된 아이'에게만 그 문을 열어주는 마술가게가 있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제대로 된 아이'인 '깁'에게 이끌려 가게로 들어간 깁의 아빠 '나'. 그 마술가게에서는 기묘한 점원이 기묘한 마술을 보여주며 기묘한 일들이 펼쳐집니다. 이에 '나'는 '진짜 마술' 같은 '마술'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착하고 성실한 '제대로 된 아이'인 '깁'은 마냥 신나기만 하지요.

 

우리는 누구나 어렸을 적에 한번쯤은 마술에 대한 동경을 품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엔 그 모든 것이 '트릭'임을 알기에 '동경'보단 '흥미'를 느끼는 선에 그치지만요. 순수하게 진짜 마술을 믿었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동심을 이젠 잃고 살아가는 게지요. 단편 <마술가게>는 이젠 절대로 돌아갈 수도, 되찾을 수도 없는 어린 시절과 그 시절 지녔던 순수한 동심에 대한 찬가였습니다. 때문에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말에 가선 왠지 마음이 정화되고 행복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동화같은 느낌이 강하기에 아직 글을 모르는 제 어린 조카에게도 읽어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어른이' 동화. 왜 이 작품이 표제작으로 선택되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p.59 인간의 그럴듯한 겉모습이 무엇을 감추고 다니는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선생님. 우리는 정돈된 외모, 회칠한 무덤에 불과한 것.....

 

<초록문 - 허버트 조지 웰스>

저명한 정치가 월리스는 5살에 처음 초록문을 발견합니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누르고 그 문을 연 순간, 초록문 안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지지요. 그곳에서 월리스는 너무나 행복하고 평온하고 태평한 시간을 보내지만, 금세 문밖으로 내쫓기고 맙니다. 그후로 그는 초록문 안의 세상을 그리워하지만, 점점 현실에 물들며 초록문의 존재를 잊어가지요. 그런데 그의 눈앞에 다시 초록문이 나타납니다. 등교길이었고 그는 학교에 지각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초록문을 그냥 지나쳐 학교에 가지요. 학교가 끝난 후 다시 그 자리에 가 보았지만 초록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 뒤로도 초록문은 이따금씩 그의 눈앞에 나타나지만, 그 순간 순간은 현실에 물들어 살아가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순간들이었고, 때문에 그는 초록문을 계속 그저 지나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계속 초록문 안의 세상을 그리워하지요. 그러면서도 정작 초록문이 눈앞에 나타나면 결국 초록문보다는 현실을 택합니다.

 

그렇게 점점 더 성공하여 유명해지는 월리스. 그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고 그리워하면서도 섣불리 열고 들어가지 못했던 '초록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거듭 '초록문'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또 월리스와 같은 상황에 나라면 어땠을까하는 의문도 자꾸 생깁니다. 나라면 과연 과감히 그 문을 열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말이죠. 그런데 결국 저도 월리스처럼 현실쪽을 택하지 않았을까 싶더라구요. 속세에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중생이니까요.

 

그리고 의문을 품게 만들며, 계속 곱씹어 보게 만드는 결말...... 월리스에게 과연 '초록문'은 무엇이었던 걸까요?  삽화는 제일 아기자기했는데, 읽고 난 여운은 꽤나 쓴 작품이었습니다.

 

<눈먼 자들의 나라 - 허버트 조지 웰스>

그런 말이 있지요. 팔이 하나인 사람만 사는 곳에선 팔이 두개인 사람이 ㅂㅅ인 거라는;;; 이 진리를 이야기로 옮겨놓은 작품이 바로 허버트 조지 웰스의 '눈먼 자들의 나라'입니다.

 

누녜스는 보고타 사람인데 여행 중 불의의 사고로 깊고 깊은 협곡에 떨어지고, 눈 먼 사람들만이 모여 살고 있는 나라에 도착합니다. 누녜스는 생각하죠. '눈먼 자들의 나라에선 외눈박이가 왕이다.'라고. 때문에 누녜스는 자신이 선지자가 되어, 이들을 깨우치고 이들을 지배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눈먼 자들만이 그들의 방식대로 이루어 낸 나라에서 그는 그저 '미개인'일 뿐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녜스는 그들이 갖고 있지 못한 '시각'이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막강한 힘인지요. 때문에 그는 포기하지 않고 거듭 쿠데타를 꿈꿉니다. 누녜스의 쿠데타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직 두편의 단편이 남아있긴 하지만, 읽은 네편의 단편 중에서 단연 최고로 재밌게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저역시 누녜스의 입장이었다면, 누녜스처럼 생각했으리란 점이 공감이 갔거든요. 하지만 반성이랄지... 깨닫는 점도 많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눈에 보이는 것들에 현혹돼 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을...... '다름'을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간주하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 로드 던세이니>

얀에게 몸을 맡긴 채, 얀 강가를 따라 흐르고 흐르는 배 '강에 노니는 새'호에 탄 '나'의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강물이 흐르고 흐르듯, 이야기 또한 잔잔하게 흐르고 또 흘러갑니다. '강에 노니는 새'호가 정박하는 곳곳의 낯선 도시들에 대한 묘사. 우리에게 매우 생소하고 이질적인 신들과 그들에 대한 기도. 그리고 생소하기만한 지명, 인명들. 때문에 조금 어렵게 읽힌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작품 말미에 이런 대사가 나오더군요. '해가 흘러갈수록 내 상상은 약해지고 있고 내가 꿈의 땅에 가는 일도 점점 없을 터이니, 서로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선장과 나는 한참을 서로 바라봤다.'(- p.192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중에서) 아아, 이 작품 속에 담긴 모든 것이 실은 서술자인 나(혹은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었던 건가요? 때문에 상상력을 잃을 대로 잃어 버린 제겐 그리도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걸까요? 왠지 씁쓸하고 슬퍼졌더랬습니다. 나도 어린 시절엔 빨강 머리 앤 못지 않게 공상하기를 즐기는 소녀였는데 말이죠...ㅠㅠ

 

 <페더탑 - 나다니엘 호손>

마더 릭비는 마녀입니다. 그녀는 허수아비 만드는 일을 자주 하는데, 하루는 그녀가 만든 허수아비가 그저 '허수아비'로 남기엔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래서 그 허수아비에게 담배를 빨게 하고 그렇게 '영혼'을 불어넣습니다. 더불어 아름다운 외모와, 예리한 지성까지도요. 그리고 '페더탑'이란 이름도 붙여줍니다. 그렇게 페더탑은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 도중 여러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을 보는 강아지와 꼬마아이는 그를 무서워하지요. 그 여정 끝에 도착한 구킨 판사의 집, 그곳에서 만난 구킨 판사의 어여쁜 딸 폴리. 하지만 그곳에서 페더탑이 목격한 것은 다름아닌......

 

인간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허례허식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아름다워지고 싶고, 돋보이고 싶고, 때문에 그런 것들은 동경하기도 하고. 때문에 정작 중요한 내면을 들여다 보지 못하는 실수들을 범하곤 하지요. 나다니엘 호손은 이런 인간들의 허세를 '페더탑'을 통해 꼬집습니다. 허수아비는 허수아비로서 존재할 때 아름답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아니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마술 가게>에 수록된 6편의 단편 중 가장 뜨끔하게 되고, 그래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었습니다.

 

p.234 이 세상에는 페더탑처럼 닳아빠지고 잊혀 버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로 만들어진 허풍쟁이, 겉멋만 든 것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그래도 잘만 살아가고 있고, 그것들은 도통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이 없지.

 

<피터팬이 될 순 없지만, 네버랜드를 꿈꿀 순 있잖아요.>

​ 저는 좀 피터팬 증후군입니다. 학부형이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나이에, 제가 생각해도 참 어리고 유치하게 철이 안들었다 싶을 때가 많지요. 딴엔 젊게 살고 있는 것 뿐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솔직히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상상력은 이미 저를 떠난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늘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처럼, 저는 언제나 이젠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그때 그시절을 그리워하고 동경합니다. 피터팬이고 싶지만, 결코 피터팬이 될 수 없는 우리는 그저 네버랜드를 꿈꿀 수밖에요.

 

순수함 결핍, 상상력 결핍 때문인지 저는 판타지 소설에 잘 손이 가지 않습니다. 하물며 고전 판타지 소설이라니요. 그랬던 저인데 이 소설 참 괜찮습니다. 네분의 걸출한 거장들이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것인지 생각하고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작품 속에 들어가는 상상력도 발휘가 되더군요. 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전부 아름다웠다고 말하진 못하겠습니다. 때론 무섭기도 하고, 때론 씁쓸하기도 하고, 때론 즐겁기도 했습니다. 꼭 끊임 없이 물건들이 나오는 마술사의 모자 같은 책입니다.

 

독서하기 좋은 (물론 놀기에도 좋지만) 가을입니다. 이 가을 감성과 어울리는 책을 찾으시거나, 아이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책을 찾으신다면 걸출한 거장 4인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이야기집 <마술가게>만한 게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원더랜드에 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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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스캔들 세트 - 전2권
유오디아 지음 / 시간여행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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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라 전자책이나 웹소설을 잘 읽질 못합니다. 때문에 유오디아라는 작가도 처음 들어봤지요, 몇 년 전 유행이었던 광해의 연인의 작가라더군요. 더불어 저는 로맨스 소설 또한 자주 읽는 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펼쳐든 이유는, 소설의 배경이 흥미를 돋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불안하고 암울했던 시기, 대한제국. 저는 학창 시절 역사시간에 이 시기에 대해 거의 배우질 못해서, 언제나 근대가 배경인 소설은 흥미롭습니다. 중세와 근대가 공존하던 바로 그 시기가 말이죠.

 

이 작품 속 주인공인 박미우는 대가집 규수이면서 외교관이었던 아버지 덕에 미국에도 잠깐 살았던 이력이 있습니다. 때문에 미우라는 인물 자체가 중세적인 사고방식과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요. 나름 서양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여성으로서 직업을 가지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이.어.떻.게...하는 말을 자주 할 정도로 중세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 미우가 지금의 우체국의 전신이었던 '우체총국'에서 최초의 여성 직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분을 숨기고 일하고 있던 황자 '이선'을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집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신분을 감추는 숨바꼭질 같은 사랑을 말이죠. 그리고 로맨스 소설의 구도가 다 그렇듯 이들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인물 또한 등장합니다. 우체총국의 사장 민우진이지요. 워낙 주인공인 미우와 완친완 이선의 중심으로 스토리가 흘러가기에 존재감이 조금은 미미하지만 작품 후반으로 가면 민우진은 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사람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미륜사라 혹은 헨리 예센 뮐렌스테트 라는 덴마크인. 조선의 전기 기술을 크게 발전시킨 실존 인물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통신 정책에 반기를 들다가 미움을 사고, 그럼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한 제국에 남아 대한 제국을 위해 힘썼던 서양인. 사실 극중 그의 비중은 아주 적지만, 매력만큼은 주인공인 이선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책 말미에 이 책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읽었을 땐, 진심으로 그에게 고맙고 또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부디 헨리를 더욱 연구해 그의 업적(?)이 더 많이 밝혀지길 바라봅니다.

 

다시 작품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제가 느끼기엔 이 작품은 로맨스 적인 요소가 조금 심심하다고 느꼈습니다. 솔직히 1권을 다 읽을 때까지만 해도 너무 밍숭밍숭한 스토리가 별로라고 느꼈었지요. 하지만 1권 말미부터 스토리가 급물살을 타더군요. 물론 주인공들의 로맨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대한 제국의 상황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이 작품을 로맨스가 아닌 '역사 소설'로 읽어내려갔습니다. 매우 흥미롭게 말이죠. 일본이 어떻게 대한 제국의 통신을 점령했는지, 러일 전쟁 당시 대한 제국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한일 의정서는 어떤 과정으로 체결 되었는지, 을사 늑약의 과정은 또 어떠했는지 등을 꽤 세밀하게 그려놓았습니다. 교과서에서 년도와 함께 달달 외우던 그 사건들이 '미우'라는 인물을 통해 전달되니 훨씬 쉽고, 또한 훨씬 아프게 전달되더군요. 게다가 실존 인물들(고종을 비롯하여 이토 히로부미, 이완용, 민상호 등등)이 등장을 해주시니 생동감 또한 넘칩니다. 저 솔직히 작품 말미쯤에선 좀 울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작품 마지막 장에선 빙긋 웃음이 났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달까요.

 

솔직히 로맨스로선 딱히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 아팠던 역사 속에서 그 역사와 닮은 사랑을 했던 두 사람에겐 무한 응원을 보내고파진 소설이었습니다. 분명 로맨스 소설로 생각하고 펼쳤던 책인데, 역사 소설로 읽고 말았네요. 역시 책은 '무엇'을 읽느냐보단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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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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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악의를 산다는 것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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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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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하게 특출나진 않지만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던 미식축구 선수 데커. 그는 경기장에서 상대 선수와 엄청난 충돌을 겪고 기절한 후 깨어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가 되어버립니다. 한번 보거나 들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이 남자. 그런 능력이 생긴다면 정말 세상 편하게 살 것 같지만, 데커에겐 그 능력이 그다지 축복이 되지 못합니다. 그 후 미식 축구 선수로서의 삶을 포기한 데커는 형사가 되고, 그의 능력으로 수많은 사건을 잘도 해결하지요. 그런데 어느날 그의 가족이 몰살 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데커는 형사를 관두고 노숙가가 될 정도로 폐인이 되지만, 가까스로 탐정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이 데커의 가족을 몰살했다고 자수한 한 남자. 그는 데커에게 모욕감을 느껴서 그의 가족을 몰살했다고 밝히지만 데커는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그인데, 도무지 그가 누구인지는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데커의 모교 고등학교에서는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집니다. 전혀 별개인 듯했던 두 개의 사건은 데커가 사건에 발을 들이고 그 진실을 파헤칠수록 접점이 생기며 풀려갑니다.

 

이 소설의 구성은 좀 독특합니다. 데커의 의식의 흐름대로 전개된달까요? 몇 해전에 의식의 흐름대로 전개되는 고전 추리 소설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솔직히 좀 혼란스럽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했었습니다. 때문에 소설 초반을 읽으면서 아... 또 그런 구성인건가.... 당황하며 책장이 쉬이 넘어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데커의 의식은 그때 그 고전과는 비슷하면서도 사뭇 달랐습니다. 분명 의식의 흐름이... 그것도 온전치 못한 의식의 흐름이 많긴 하나... 그 속에서 그는 또 논리적으로 사건에 접근해 갑니다. 때문에 1/3 지점정도부터는 어느새 데커의 의식과 함께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데커에게 매료되고 맙니다. 큰 키에 150킬로에 달하는 몸무게인, 결코 제 취향이 아닌 그에게 말이죠. 앞서도 말했지만 그는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 그의 뇌는 도서관이자, CCTV입니다. 사건 해결에 그 능력을 백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의 가족이 몰살 당한 그 참극의 장면 또한 영원히 그의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 재생되겠지요. 때문에 굉장히 뛰어난 인물임에도 어쩐지 자꾸만 안쓰러워집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는 주인공은 기억도 못하는 말 한마디에 악의를 품고 십수년간 기다렸다가 주인공을 납치하여, 또다시 십수년을 강금하지요. 악의란 것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아주 아주 사소한 말 한 마디, 아주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가 상대에겐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작품 속 누군가도 그랬습니다. 데커가 겪어야 했던 비극은 모두 그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말 한다미로부터 파생된 악의 때문이었으니까요.

 

작품을 읽어가며, 이거 혹시 시리즈로 이어지려나...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결말에서 데커와 재미슨과 보거트가 앞으로 팀을 이루게 될 것을 예고하더군요. 세 사람의 콤비 플레이가 앞으로 어떻게 본격적으로 진행될지 상당히 기대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임에도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소개된 데이비드 발다치. 데커 시리즈와 더불어 그의 다른 작품들도 상당히 궁금해집니다. 모기남을 기점으로 쭉쭉 번역 출간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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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my lovely girls!>
우리는, 특히 여자라면 더더욱 누구나 어린 시절 어여쁜 공주님들 이야기를 듣고, 멋진 왕자님과의 로맨스를 꿈꾸며 자랍니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라푼젤, 오로라, 인어 공주 등. 그런데 저는 머리가 조금 굵어지기 시작하면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녀들은 지나치게 수동적이지 않은가?하고 말이죠. 예쁜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만, 예쁜 것 말고는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무한 그녀들. 때문에 악당에게 휘둘리고 이용당하며 그녀들을 구해줄 왕자님만을 기다리는 그녀들. 제가 뭐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솔직히 이런 성격의 여성상은 이제 먹히지 않겠되었지요. 때문인지 디즈니에서 새롭게 재작한 공주 시리즈들을 보면, 그녀들의 성격이 다분히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바뀐 게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여기, 동화속 나약하고 순진하고 수동적이었던 소녀들을 완벽하게 재해석하고 변형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리사 마이어라는 젊은 작가가 쓴 루나크로니클 시리즈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녀는 신데렐라, 빨간모자아가씨, 라푼젤, 백설공주... 이 네 소녀를 아주 머나먼 미래에 재탄생시킵니다. 전혀 공주답지(혹은 아가씨답지)않게, 그러면서 교묘하게 원작은 살리면서. 재투성이 아가씨인 신데렐라는 기름때를 끼고 사는 사이보그 정비공 신더가 됩니다. 빨간 모자 아가씨는 터프하기 그지없는 전사의 기질이 다분한 농장 소녀 스칼렛이 됩니다. 라푼젤은 성이 아닌 인공위성에 갇힌 천재 해커 크레스가 됩니다. 백설공주는 미치도록 아름답지만 미치광이인 루나의 공주 윈터가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엮이고 또 엮이며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되어 '루나 혁명'을 일으킵니다. 결코 왕자님의 강림을 목 빼며 기다리지 않고, 혁명의 선봉에 서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시리즈 전체 분량이 2500페이지를 넘는데도 지루한 구석이 전혀 없을 정도로 말이죠.

 

 <살려서, 절묘하게!>

이 작품이 대단한 것은, 네 소녀의 성격은 전혀 딴판이 되었음에도 원작 동화에서의 중요 포인트들은 또 다 잘 살렸다는 점입니다. 신더는 재투성이 대신 기름때를 묻히고 삽니다. 그리고 그녀는 한쪽 다리가 인체가 아닌 로봇으로 이루어진 사이보그입니다. 그녀는 황궁 무도회에서 이 사이보그 다리를 잃게 되고, 그 다리는 황제인 카이토가 보관을 하지요. 윈터의 의붓 어미는 이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악당 레바나여왕입니다. 레바나는 의붓 딸이 윈터의 미모를 시기해 얼굴에 상처를 내고, 심지어 그녀를 죽이려들지요. 하지만 윈터가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레바나는 직접 윈터를 제거하기 위해 사과 대신, 윈터가 평소 즐기던 사과맛 사탕을 들고 그녀앞에 나타납니다. 물론 스칼렛이나 크레스에도 이런 점들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습니다. 원작 동화랑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이면서 아주 절묘하게 원작의 포인트를 살리는 이야기들. 그 절묘한 포인트를 찾으며 읽는 것도 시리즈를 읽어나가는 크나큰 재미중 하나였습니다.

 

<로맨스는 화끈하게!>

그녀들은 이제 왕자님의 키스만을 기다리는 공주들이 아닙니다. 위험천만한 늑대인간과 사랑에 빠지고, 사기꾼에게 마음을 주며, 공주 신분으로 근위병을 사랑하여 적극 구애를 하며, 신더 같은 경우는 심지어 사랑하는 황제의 결혼을 방해하기 위해 황제를 납치하기에 이르릅니다. 솔직히 신더를 읽을 때만해도 로맨스적인 요소가 너무나 미미해서, 이 소설은 로맨스보단 판타지 소설이구나 싶었는데, 스칼렛의 이야기부터 그녀들의 로맨스는 점점 더 열정적이며 심지어 치명적이기까지 합니다. 비교적 수동적인 캐릭터인 크레스의 로맨스는 그 캐릭터를 닮아 지난해질 수 있었지만, 그녀의 상대를 이 시리즈에서 가장 발랄하달 수 있는 카스웰이란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한층 더 활동적(?)이 되었달까요? 윈터의 경우에도 앞에서도 밝혔지만 윈터가 광녀(...;;;)인지라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그 광녀스러움안에 내재된 묘한 카리스마가 제이신과의 사랑을 한층 뜨겁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녀들의 로맨스는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인 윈터, 그것도 윈터2에서 꽃을 피웁니다. 저는 특히 크레스와 카스웰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이 너무 애틋하고 로맨틱하면서 또 살짝 에로틱하기까지해서 재미있었습니다.(ㅋㅋㅋ;;)

 

<촘촘하고, 촘촘하게!>
신더로 시작해, 스칼렛, 크레스, 윈터까지. 이 작품들은 모두 크게 루나크로니클 시리즈를 이루고 있으니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네 소녀 각각의 이야기는 분명 제각각인데, 이 네가지 이야기는 크게 하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큰 축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요소들은 이미 시리즈 첫 이야기인 신더에서부터 야금야금, 조금씩 조금씩, 시나브로 이야기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습니다. 사소한 작은 소품 하나가 후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언급됐던 어떤 인물이 후에 매우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지요. 평소에 이런 치밀한 구성을 좋아하는 저는 이런 점들 또한 이 시리즈를 읽어나가는 아주 큰 재미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뭐, 솔직히 스포일러라고도 할 수 없이 그녀들의 혁명은, 당연히 성공적이었습니다. (다들 예상하셨잖아요? 그러니 이 정도는 스포일러 아니죠?) 하지만 혁명 후의 그녀들의 이야기가 우리가 쉬이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하진 않았습니다. 혁명이 성공하기까지... 매우... 잔인할 정도로 험난한 과정들이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작품의 결말에서 저는 마치 드라마의 스핀오프처럼 이 시리즈에서 파생된 새로운 이야기들이 계속 펼쳐질 것만 같았달까요? 듣자하니 윈터까지 마무리한 작가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외전처럼 레바나의 이야기를 비롯 곁가지 이야기들 썼다던데 몹시 궁금해집니다. 특히 제가 이 시리즈를 통틀어 카스웰과 함께 가장 사랑했던 인물인 '이코'가 막판에 누군가와 약간 썸 비슷한 것을 타는 것을 보았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너무나 보고싶습니다. 원작과는 전혀 다른 사랑스러움을 뽐내던 우리의 사랑스러운 그 소녀들은 그 뒤에 죽을때까지 왕자님들과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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