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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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라는 거장이 써 내려간 마타하리의 이야기라니요! 흥미로운 인물과 흥미로운 인물의 만남은 언제나 독자들을 설레게 합니다. 평소 스파이나 첩보, 이런 소재들에 흥미를 많이 느끼는지라 마타하리라는 인물 또한 늘 궁금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때문에 파울로 코엘료라는 대작가가 그녀의 삶을 다룬 소설을 썼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이지 기대하고 또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가 생각했던, 그리고 기대했던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야기는 마타하리가 처형되면서 시작됩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 양국에서 이중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것이 그녀의 죄목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그녀가 처형되기 직전으로 돌아가 그녀의 편지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녀의 인맥은 굉장했기에(폭과 깊이가 모두) 사면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만, 다른 한편으론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녀를 거쳤던 수많은 남자들을 비롯,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마저 그녀가 스파이 혐의를 받자 그녀를 손가락질 했으니까요. 때문에 그녀는 그녀의 딸에게 편지를 쓰듯, 유언을 남기듯 그녀의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담담하게...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지극히 담담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마타하리라는 인물의 굉장히 스펙타클하고 파란만장하고 극적인 인생 이야기를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는 완벽하게 마타하리에 몰입하여, 하지만 지극히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인생이 파란만장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코엘료는 마타하리의 굴곡 많은 인생사에 소설적 장치나 재미를 거의 첨부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뜻입니다. 내일 죽게될 사람이 유언을 쓰듯 말이죠. 유언을 쓰며 소설처럼 기승전결 따져가며, 흥미로운 사건에 살을 붙여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바로 이런 점이 제가 처음 책을 펼치며 했던 기대와는 상당히 상충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선지 소설임에도 소설같지 않은 사실성은 더욱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담담하고 담백하지만 섬세한 코엘료의 문장들이 참 좋았습니다.

 

마타하리...그녀는 정말 스파이였을까요? 마타하리라는 인물이 궁금해서 펼쳐든 책인데, 궁금증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궁금증이 더욱 커져버리고 말았네요. 마타하리라는 인물에 대해서 더욱 상세하게 알고 싶다면 찾아보라고 알려준 작가의 추천작들을 좀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레타가르보가 주연한 고전 영화도 찾아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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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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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를 아주 오랫동안 달구었던 100세 할배 열풍, 저는 흔히 베스트셀러...라고 불리우는 책들을 일부러 찾아서 읽는 편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화제성이 조금 꺼지고 난 후에 이제 한번 읽어볼까...하는 느낌으로 읽는달까요; 무튼 그래서 아직 100세 할배나 셈까녀등 요나스 요나손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저에겐 바로 이 책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이 요나손의 첫 책이 되었지요.

 

워낙 100세 할배에 대한 호평들이 자자해서, 그리고 그 평들은 대부분 '정말이지 웃기고, 재미있다.'여서 이 작품도 그런 느낌이려니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기대는 한참이나 잘못된 것이더군요. 이 소설은 유쾌함과는 거리가 좀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50대의 킬러 안데르스가 있습니다. 그는 이제 더이상 감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남을 죽이는 일은 그만두었지요.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배운 게 도둑질인지라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는 일을 의뢰받아 처리하여 생계를 꾸려갑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인생에 두 젊은이가 끼어듭니다. 싸구려 호텔의 리셉셔니스트 페르 페르손과, 얼마전 목사 자리에서 짤린 요한나 셸렌데르가 그들이었지요. 두 젊은이는 이제 킬러 안데스르를 이용(?)하여 상당히 질 나쁜 사업을 해나갑니다. 그들의 관리하고, 킬러 안데르스가 폭력을 행사하는 사업을 말이죠.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사기행각, 그리고 더욱 더 스케일이 커지며 질 또한 더욱 나빠지는 두번째 사업,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사업까지.

 

저는 범죄소설을 꽤나 즐깁니다만, 이 소설 속 삼인조가 벌이는 사기행각이나 범죄행위들은 결코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이 소설은 결코 유쾌한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상당히 냉소적이고 차가웠다고 할까요. 솔직히 굉장히 유쾌발랄하면서 따뜻한 소설을 기대했던 저로서는 조금 실망이라고 느끼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막지막 3번째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 삼인조(...혹은 4인조)를 볼 땐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들의 회개(?)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회개 방식이 보통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방식과 상황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의 (그들에 대한 존경심의 유무와는 별개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현실에 치여서 살아가는 인생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의 절대적인 희생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이 소설 속 3인조의 선행은 굉장히 현실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주되 그것보다 조금 더 받겠다." 때문에 내내 냉소만 지으며 읽다가 막판엔 은근 유쾌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덧1) 스웨덴이라는 나라, 꼭 가보고 싶네요.

덧2) 2부 이야기의 상황들은 요즘 연일 화제가 되는 국정농단 사태가 떠오르기도해서 소름돋았습니다. 물론 우리의 3인조는 기본적으로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기에 그들과 전혀 다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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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령 유랑단
임현정 지음 / 리오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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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 여자와 꽃도령들의 조합.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과 규장각 가신들의 나날을 통해 굉장히 익숙해져버린, 어쩌면 로맨스에선 식상해져 버린 소재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유쾌발랄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좋은 법이죠. 때문에 제목에 대놓고 꽃도령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꽃도령이 무려 6명이나 등장하는 이 소설은 제 눈을 끌기에 충분했지요. 남장 여자인 우리의 주인공과 더불어 6명씩이나 되는 꽃도령들이 어떤 개성과 매력을 뿜어댈지 설렜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알콩달콩할 사랑 놀음도 기대됐구요.

그런데 어라?! 싶습니다. 로맨스 소설 같긴 한데, 그간 봐온 로맨스 소설 분위기는 결코 아닌, 어찌 보면 미스터리에 더 가깝기도 하고, 문장들을 보면 심지어 순문학인가 싶기까지 한 이상야릇한 소설이었습니다.

물론 남장 여자가 등장하는 로맨스 소설들에서 흔히 보아오던 설정들이 많이 등장하긴 합니다. 은별은 모태 매력덩이라 온갖 남자들을 자신도 모르게 홀리고 다니고(꽃도령들을 비롯하여 순면이 공유 애월이 등등), 때문에 은별은 왼갖 남자들 사이에서 의도치 않은 어장관리(?!)를 해대고 다니지요. 그런데 이들이 가진 사연들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분명 과거에도 인연이 닿아있는 듯한 이들. 그리고 등장하는 꽃도령 유랑단이 공연하는 이야기 속 이야기. 이런 모든 요소들, 그러니까 그들의 사연과, 그들의 과거와, 그들의 인연과, 그들의 공연들이 모두 복잡하게 얽혀버립니다. 그래서 작품 뒷부분으로 갈수록, 자꾸만 다시 앞으로 돌아가 찾아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됐더랬습니다. 그렇게 맞이하게 되는 반전에선 헉...! 했지요.

그래도 어디까지나 이 소설은 로맨스이긴 로맨스입니다. 때문에 분명 은별의 마음이 향하는 인물이 있고, 그 마음은 애틋합니다. 작품 중후반부로 갈수록 상당히 위험해지는 그들인데 그들은 과연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은별이 갖고 있는 크나큰 비밀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제가 리뷰 제목에 홍길동전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또한 무엇일까요? 이런 것들을 찾아보시면서 읽으시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은 이미 출간도 전에 드라마화가 결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눈호강 제대로 하는 드라마가 될 것 같네요. 작가가 원래 시인으로 등단해서인지 이 소설의 문장들이 상당히 독특하고 예쁜데, 드라마에서는 이를 어떻게 연출해낼지도 기대됩니다. 캐스팅도 그렇고 연출도 그렇고 아마 모 아니면 도인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싶네요. 부디 모가 되길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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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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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하루 전에 탈옥을 하다.>

오디 파머라는 죄수가 있습니다. 그는 10년 전 7백만 달러가 실린 현금 수송차를 털었다는 명분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7백만 달러의 행방은 여전히 모호합니다. 그런 그가 탈옥을 합니다. 수영을 전혀 못하는데, 호수를 헤엄쳐서. 그것도 출소를 단 하루 앞두고 말이죠. 세상에, 출소 하루를 앞두고 탈옥을 하다니! 게다가 수영도 못하면서 목숨 걸고 호수를 건너서 탈옥을 하다니!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때문에 궁금하죠. 도대체 그 남자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런 말도 안되게 멍청한 짓을 했을까? 혹시 사라진 7백만 달러때문일까? 이런 설정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하지만 하나의 이야기>

오디의 탈옥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오디 외에도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됩니다. 오디의 감방 룸메이트(?) 모스, 오디의 탈옥건을 수하하는 특수수사관 데지레, 오디를 처음 감옥에 잡아 넣은 보안관 발데즈. 이야기의 주는 오디를 비롯한 이 세 인물의 시점에서 전개되지만, 또한 오디가 도망을 다니는 동안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인물과, 오디의 과거 회상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세 주요인물의 주변인물들까지 등장을하는지라 정말 많은 숫자의 인물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거의 대하 소설 수준이지요. 때문에 소설 초반에서는 인물 파악하는데 약간 애를 먹기도 했지만, 저는 워낙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개성이 드러나는 소설을 좋아하는지라 이런 점들 역시 이 소설의 큰 매력이라고 느꼈습니다. 게다가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는, 결국 이 소설의 주요 사건(오디의 현금 수송차 강도 사건)의 전말과 오디의 탈옥의 목적이 밝혀지는 결말 하나에로 모이게 되는데, 이런 구성은 역시 매력적입니다. 이런 절묘한 플롯은 정확히 제 취향이니까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다.>

열심히 도망치는 우리의 오디, 하지만 그의 도망 행각은 상당히 허술해 보이는 점도 많습니다. 투명인간처럼 사라져 버리려면 절대 만나지 말아야 할 인물들을 만나고 다니죠. 때문에 그의 행적이 여러 사람에게 노출이 됩니다. 특히 이 소설에서 '악당'역을 맡은 그 어떤 인물에게.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또 졸이게 됩니다. 오디가 죽지 않길, 제발 무사하길, 부디 행복해지길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요. 우리의 주인공 오디는 젊은 시절 천재였던데다가 상당히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였어서, 게다가 사랑꾼이어서 어쩐지 보호해주고 싶어지는 인물입니다. 연인의 마음으로, 또는 엄마의 마음으로 말이죠. 이런 점은 요네스뵈의 소설인 '아들'과도 상당히 닮았습니다. 저는 '아들'을 읽으면서도 굉장히 맘졸이고 애타하면서 소니의 안위를 바랐거든요. 그래서 오디는 무사했느냐구요? 그건 직접 소설 속에서 확인하심이... ^^;

 

<사랑에 걸려, 사랑에 매달리는 남자, 오디 파머>

오디는 사랑꾼이었습니다. 그가 탈옥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의 절절한 사랑때문이었고, 약속 때문이었거든요. (어떤 사랑이고, 어떤 약속인지, 그리고 왜 출소 하루를 앞둔 시점이었는지가 중요하니 이 정도는 스포가 되지 않겠지요...?) 게다가 그의 사랑은 거의 맹목적이었고, 하지만 순수했습니다. 때문에 이 소설은 상당히 감성적인 면을 띕니다. 오디라는 인물의 성격도 그렇고, 그가 사랑꾼이라는 점도 말이죠. 스릴러치고는 상당히 섬세하고 감성적이죠. 책 속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우리는 감기에 걸리듯 사랑에 걸리고, 폭풍우 속 난파선에 매달리듯 사랑에 매달린다." 오디 파머는 정확히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인간의 감정중 가장 복잡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사랑 아닐까요? 때문에 누구나 공감하고, 누구나 감동하고,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감성 스릴러였습니다.

 

 

인생은 짧다.

사랑은 무한하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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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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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쟁이 천명관이 돌아왔다!>

천명관이란 이름 앞엔 항상 '이야기꾼'이란 수식어가 붙습니다. <고래>라는 작품을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그가 우리나라 최고의 이야기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마치 소설이 아닌 어디에선가 주워들었음직한 이야기와 또 이어지는 이야기와 그래서 또다시 이어지는이야기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또또 이어지는 구조에 읽고 또 읽고 또또 읽다가 밤을 새게 만드는 진정한 이야기의 힘.(어설프게 천명관식 문장을 딴엔 따라해보았습니다;;) 거기에 현대 소설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문체(옛날 무성영화 시절의 변사같은 문체)는 중독성을 더하지요. 이런런 희대의 구라쟁이 천명관이 드디어 장편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의 삼촌 브루스리>로부터 무려 4년 반이 넘게 흘렀네요. 물론 그 사이에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라는 단편집과 <퇴근>이란 단편을 발표하긴 했지만 천명관의 구라가 제대로 펼쳐지려면 역시 장편이어야 합니다. 장편이지만 장편인줄 모르게 읽고 또 읽고 또또 읽다보면 금세 책장이 줄어버릴 것이 자명하니까요.

 

<이 허세 넘치는 제목은 뭐람?>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풉. 웃음이 나고 맙니다. 대놓고 허세 가득한 이런 제목이라니. 그러니까 천명관의 구라에 허세를 덤으로 얹었다는 거잖아요. 이거 도대체 얼마나 대놓고 허풍을 떨려고 이러실까...이미 제목에서부터 웃음이 비어져 나옵니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건달들이라니, 혹시 17:1로 싸워 이긴 이야기라도 나오는 거 아니야? 싶었지요. 이야기 첫장부터 허세가 넘칩니다. 팔뚝에 온갖 문신을 해댄 20대 건달들. 편의점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쫄따구들은 캔커피를, 형님은 형님답게 플라스틱에 든 아이스 커피를. 하지만 이들은 비정규직 건달들. 바야흐로 청년실업의 위기는 건달들에게도 찾아왔던 것이죠. 허허 이것 참 안타깝다고 해야할지;;; 이처럼 이 이야기는 허세 넘치고 허풍 심한 건달들의,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지질한 이야기입니다.

 

<범죄 소설에 군상극?!>

이 소설은 장편치고는 분량이 그리 많진 않은 편입니다. 300페이지가 채 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등장하는 인물 수만큼은 거의 <고래>와 맞먹는 것 같습니다. <고래>는 3세대에 걸친 이야기였지만, 이 소설은 단 며칠 동안 일어난 일인데도 말이죠. 이야기의 주축은 물론 인천의 연안파 두목 '양사장'이지만, 다른 인물들도 양사장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요 인물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군상극'입니다. 저는 군상극을 몹시 사랑합니다. 사건을 다각도에서 볼 수 있기에 입체적인 즐거움도 있고, 무엇보다 인물들의 개성이 잘 사니까요. 이 작품엔 다양한 연령의, 다양한 성격의, 심지어 다양한 지역의 건달들이 떼로 출연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각자 온갖 한심하고, 어이없고, 위험하고,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웃긴 일들을 잔뜩 벌여 놓지요. 저는 소설 초반에 너무 다양한 인물들이 너무나 다양한 일들을 너무나 다양하게 벌여 놓아서 메모까지 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설레기 시작했죠. 도대체 이 많은 사건사고들이 어떻게 합을 이루게 될른지요. 천명관 작가는 인터뷰에서 자주 '한국형 범죄 소설'을 쓰고 싶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은 이미 이 작품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죠. 이 작품만으로도 벌써 이렇게 재밌는데, 그가 작정하고 쓴 범죄 소설은 도대체 얼마나 재밌을까요. 작가님 머릿속에도 아직은 존재하지 않을 듯한 그 작품에 전 이미 벌써 설레기 짝이 없네요.

 

<이것이 천명관의 법칙이다!>

드디어 이야기는 절정에 이르고, 이야기의 합을 이룰 때가 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건달들도 인천으로 모여듭니다. 때문에 실로 긴장감 넘치지 않을 수 없지요......라고 작가는 수도 없이 반복을 하는데, 거기에 저는 웃음이 터져버리고 맙니다. 일단 책의 첫장에서도 '긴장감' 운운했던 문장이 있었기에 이건 혹시 시에서 자주 쓰이는 '수미상관' 구조인가 싶어서였지요. <고래>라는 소설에 50여개가 넘는 '법칙'이 존재한다면, 이 작품에서는 수도 없이 감도는 '긴장감'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분위기가 진지해질라치면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것들. 이를테면 벤츠, 말(....아 정말 저는 이 소설에서 말이 제일 웃겼습니다. 지금 리뷰를 쓰고 있는 중에도 '말'이란 글자에 또 웃음이 납니다.), 호랑이, 고양이 등등의 소재가 말도 안되게 이야기에 끼어들어 또 다시 웃음이 터집니다. 게다가 인물들의 행동 묘사는 또 어떻습니까. 마치 70년대 한국 영화에서 봤을 법한 과장된 행동들과 대사들. 그리고 그것들은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 생생하게 눈앞에 그리고 귓가에 보이고 들리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바로 '천명관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의 세상이란?!>

저는 마초적인 걸 딱 질색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천명관의 소설은 다분히 마초적이라고 평가되곤 하죠. 게다가 이 소설은 아주 인물들 직업(?)이나 제목부터 대놓고 마초적입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저는 천명관의 작품들이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여자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싫은 남자들의 본성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도 어쩐지 그들이 싫지않고, 심지어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왜일까 곰곰 생각해봤더니, 이 남자들 마치 아버지 같고, 삼촌들 같고, 남편 같고, 남동생들 같고, 아들 같아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밑으로 줄줄이 남동생이 있는 큰딸의 심정이랄까요.(실제로 저는 남동생들 둔 맏딸입니다.) 흔히 아들을 둔 엄마가 도무지 철 들 줄 모르는 남편과 아들을 동시에 일컬으며 '애 둘 키우는 것 같다.'하는 그런 심정이랄까요. 누나가 남동생을, 아내가 남편을 한심하게 여기는 한편으론 분명 깊은 애정이 숨어있을 테니까요. 건달이라는 직업으로 과장되게 그려졌지만 이 작품 속 남자들은 모두 우리 주변의 아버지이고, 삼촌이고, 남편이고, 남동생이고,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다름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그 대상이 여자건, 동물이건, 심지어 남자이건 말이죠. 요즘 무슨 사건만 터졌다하면 '남혐'이니 '여혐'이니 하면서 남녀간의 극단적 갈등으로 번지곤 합니다. 분명 그들의 아버지는 남자일 것이고, 어머니는 여자일 것인데 말이죠. 안그래도 참 살기 팍팍한 세상인데, 우리 남자니 여자니 따지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이 작품 말미에서의 연오랑과 세오녀(ㅋㅋㅋ)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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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is 2016-10-20 0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이 책 읽어보고싶네요

그녀,읽다. 2016-10-20 21:29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워낙 좋아하는 작가님의 오랜만의 장편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