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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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고타로의 연애 소설이란...>

   대놓고 연애 소설이랍니다. 무려 이사카고타로가 말이죠. 그는 거듭 자신은 연애물엔 관심도 소질도 없다고 밝혔었습니다. 그런 그가 대놓고 연애 소설을 썼다니요. 그래선지 솔직히 그의 연애 소설에 달달함이나 로맨틱함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전에도 이사카고타로는 연애를 테마로 몇 편의 단편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투명한 북극곰(I love you라는 단편집에 수록)’이나 사신의 로맨스(사신 치바에 수록)’나의 배(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에 수록)’ 등에서 말이죠. 하지만 이들 작품은 솔직히 연애가 소재인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인상이 강했거든요. 때문에 이 연작 소설 역시 그런 느낌이 강하리라 예상했습니다. ‘연애를 테마로 한 따뜻함을 선사하는 미스터리 소설일 거라고 말이죠. 이런 저의 예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습니다.

 

<긴 제목, 긴 여운>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제목을 단숨에 말하기가 숨이 찰 정도입니다. 어찌 들으면 외계어 같기도 한 이상한 제목.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꽤 익숙한 클래식의 제목이랍니다. 모차르트의 소야곡(세레나데)이거든요. 이 음악의 첫 소설만 들어도 누구나 ! 이거?!!!’할 정도로 익숙한 곡이에요. 그렇다면 이 작품집이 모차르트의 소야곡을 소재로 했느냐? 그건 아닙니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라는 독일어의 뜻이 어떤 작은 밤의 음악이라는데, 이 작품집에서는 만남혹은 인연의 의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었습니다. 밤중 느닷없이 들리는 작은 음악 소리처럼, 딱 그 순간에 느끼는 게 아니라, 나중에서야 그것이 계기였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만남이라는 것이지요. 이처럼 이 작품집은 6개의 단편 모두에서 만남인연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작지만 소중하게, 세레나데처럼 잔잔하게 그들의 이야기는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로인한 여운은 잔잔한 물결위의 파문처럼 널리널리 퍼져갑니다.

 

<특별하게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인연>

   이사카고타로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독특한 직업(사신, 도둑, 강도, 가정조사관, 킬러, 심지어 자동차나 고양이)을 가졌거나, 이런 인물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 있을까 싶게 독특한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런 인물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설문 조사 회사 직원, 프리타, 복싱 선수(그나마 이 직업이 제일 독특한 직업이겠네요.), 미용사, 화장품 회사 직원, 학교 교사, 고등학생 등등.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인물들이 주인공이지요. 때문에 그들에게 벌어지는 일들도 소소하고 평범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평범한 인물들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만남과 인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설문 조사를 해준 여자 가방에 달려 있던 버즈라이트이어(토이스토리 주인공) 인형(단편:아이네 클라이네), 지갑과 통장과 면허갱신이 이어주는 인연(단편:도쿠멘타), 어쩌다 보니 만나지는 않고 전화로만 관계를 이어가는 남녀(단편:라이트헤비), 권태기가 찾아온 젊은 연인(룩스라이크). 그들의 만남은 이렇듯 평범한 듯하지만, 또한 특별합니다. 위기에 처한 공주를 백마 탄 왕자가 구해주듯 극적이진 않지만, 돌이켜보니 그때 그 사람이 지금 이 사람이어서 참 다행이다.’ 하는 소중함. 그렇기에 특별해지는 인연들인 것이니까요.

이전 작품들 속 주인공들은 평범하게 특별한인물들이었다면, 이번 작품 속 주인공들은 특별하게 평범한인물들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그런데 실은 결국 모든 사람은 특별하면서 평범하고, 평범하면서 특별한 거 아닐까요?

 

<어떤 작은 소설 속 음악>

   음악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군요. 이 작품집의 시작인 아이네 클라이네의 집필 계기는 상당히 이채롭습니다. 작가는 평소 음악광이기도 해서, 그의 작품 속에는 수많은 음악가와 음악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음악광 작가가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한명이 일본의 사이토 가즈요시라는 가수라네요. 그런데 어느 날 사이토 가즈요시로부터 작사 의뢰가 들어오게 되고, 노래 가사를 쓰긴 힘들지만 그와의 공동 작업을 포기할 수 없었던 작가가 가사 대신 소설을 쓰게 되니, 이 작품이 바로 아이네 클라이네였던 것이죠. 그리고 사이토 가즈요시는 이 단편 아이네 클라이네를 노래 가사로 개작(?)을 하게 되니 그 노래가 바로 베리 베리 스트롱 아이네 클라이네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노래 가사를 들여다보면, 단편 아이네 클라이네속 인물들의 상황과 소재들이 담겨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소설과 노래 가사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실 겁니다.

   그런데 사이토 가즈요시와 이사카 고타로의 공동 작업은 또다시 이어집니다. 이번엔 사이토 가즈요시의 앨범 특전 부록으로 이사카 고타로의 단편 소설을 싣게 된 것이죠. 그 단편이 바로 라이트헤비였습니다. 이에 작가는 또 이왕이면 사이토 가즈요시의 노래들을 소재로 소설을 써보겠다고 결심, 작품 속에 무려 7(후에 단편 나흐트무지크에도 한곡 더 추가되어 결과적으로는 8곡이 됩니다.)의 가사를 정말이지 절묘하게 녹여냈습니다.

100엔을 주고 자신의 상황을 말하면 그에 맞는 노래를(작품 속 표현을 빌리자면 전부 사이토 머시기의 노래) 틀어주는 미스터리한 남성.(작품 속에선 그냥 사이토씨라고 불림) 그가 들려주는 음악들은 정말이지 인물들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것들이었습니다. 작가는 가사를 먼저 선택한 후 가사에 맞는 이야기를 썼던 걸까요? 이야기를 먼저 쓰고 그에 맞는 가사를 찾았던 걸까요?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사이토씨의 주크박스 상담소 같은 곳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꽤 괜찮지 않을까, 자주 찾아가지 않을까, 아니 내가 한번 해볼까...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 봅니다.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진짜 한번 음악 상담소 같은 거 열어볼까요? ... 저작권이 문제가 되려나요? ㅋㅋ;;

       

<단편 소설인 척하는 장편 소설 이사카 월드의 축소판>

   작가는 칠드런이라는 소설을 냈을 때, 띠지에 이렇게 적었었습니다. ‘단편 소설인 척하는 장편 소설이라고 말이죠. 작가는 단편보단 장편을 더 선호한다고 자주 밝혔습니다. 그런데 잡지나 신문 등의 연재 덕에 독자들은 단편에 대한 호응도가 더 좋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래서 낸 작가 나름의 계책이었을까요? 작가가 여기저기 연재했던 단편들을 모아 낸 단편집은 실상은 장편 소설의 색을 띱니다. 아마 오롯이 단편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피시스토리라는 작품 하나 같네요. 아무튼, 이 단편집 또한 그런 그의 작풍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2007년에 아이네 클라이네라이트헤비, 2011년에 도쿠멘타, 2013년에 룩스라이크, 2014년에 메이크업을 발표한 후, 이를 하나의 단행본으로 묶기 위해 나흐트 무지크를 쓴 이사카고타로. 5개의 단편들은 깨알 같은 연관성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들은 연작 단편 정도로 보이죠. 하지만 마지막 작품 나흐트무지크에 이르르면 이 6개의 단편은 결국 하나의 장편 소설이 되고 맙니다. 모든 인물들이 아주 절묘하게 얽히고설켜 있는데 그들의 연결 고리를 확인하는 재미가 또 쏠쏠합니다. 처음부터 연작 소설을 쓰려고 기획을 했던 게 아닌 것 같은데, 어쩜 그렇게 절묘하게 다들 연결이 되는지 참으로 신기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들의 관계를 심지어 관계도로 그려보기도 했습니다.(이 관계도는 글 아래 첨부해 두었습니다.) 보통은 작품들과 작품들과의 소소한 연관성들이 거대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데, 이를 일컬어 이사카 월드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 작품은 한 권의 책 속에서 인물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어 마치 이사카 월드의 축소판 같았습니다. 역시 이런 점은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작은 소설 속 수줍고 은밀한 설렘>

   리뷰 시작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결코 이사카 고타로의 연애 소설 속에서 달달함을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런 기대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습니다. 역시 그의 연애 소설에는 대놓고 남녀의 밀당, 격렬한(?) 애정 행각 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미치도록 가슴 설레고 심쿵하는 로맨스 소설을 기대하며 이 책을 펼치신 분들은 100% 실망하게 되실 겁니다. 하지만 소소한 설렘은 존재합니다.

   작품 속 6개의 단편 중 가장 연애 소설같지 않았던 메이크업’. 언뜻 보면 이 단편은 과거의 악연과 복수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때문에 홀로 연애가 테마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이 단편만 억지스럽게 끼어 넣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저는 이 단편이 가장 흐뭇하게 설렜습니다. 유이와 다른 인물들 사이의 대화를 잘 살펴보면 그녀의 남편의 정체(?)에 관한 힌트들이 등장합니다. 유이는 화장품 회사에 다닙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에만 해도 전혀 꾸밀 줄도 몰랐고, 통통하기까지 해서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왕따를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후에 살을 빼고 화장품 덕(작품 속에서 유이는 화장품을 그분이라고 표현합니다 ㅋㅋ;)에 예뻐지게 되죠. 그런 그녀에게 직장상사(라이트헤비의 등장인물 중 하나이기도 함)가 묻습니다. 유이의 남편은 그녀의 화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구요. 그에 유이는 자신의 남편은 자신이 화장을 했는지, 안했는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언뜻 보면 남편이 무심하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사실 바꿔 생각해보면 화장을 하건 하지 않건 그녀의 아내를 그녀 자체로 보고 사랑해준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게다가 그녀의 남편은 사실...... 작품의 결말에서의 어떤 부분과, 마지막 단편인 나흐트무지크에서...... (스포가 될 테니 여기서 밝히긴 곤란하겠지요.;;) 아무튼 그의 존재를 이해했을 때 저는 정말이지 설레고 흐뭇했습니다.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식의 소소한 설렘들이 담겨있습니다. 우연이 겹치며 인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 얼굴도 모르지만 왠지 느낌 좋은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그런 설렘, 그때 그 사람이 지금 내 옆의 이 사람임에 감사하게 되는 그런 설렘. 이렇듯 작가는 매우 수줍고 풋풋하게, 심지어 독자가 쉽사리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사랑 이야기를 전합니다. 저는 그런 풋풋함과 은밀함이 마냥 흐뭇하고 즐거웠습니다. 작가는 이 책의 출간 인터뷰에서 연애고기에 비유했다고 합니다. 요리에 고기가 들어가면 그 요리는 무조건 맛있어진다고, ‘연애는 바로 이런 고기와 같은 것이라고. ‘고기가 들어가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에, ‘고기를 넣어 더더욱 맛있어진 요리. 바로 그런 업그레이드 된 요리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작가의 스펙트럼이 베리베리 스트롱해졌고, 저의 작가에 대한 애정도는 스트롱거 댄 스트롱거해졌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인물관계도는 작품을 다 읽으신 후에 보셔야 스포를 피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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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의 함께, 혁명
안희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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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안희정 지사를 눈여겨 보기 시작한 건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주로 묵묵히 장례를 맡아 치르던 모습. 흔히 노무현의 사람들이라 불리던 사람들은 노무현 정권 시절 다들 한자리씩 했는데, 노무현의 최측근이라는 이 사람은 정권 동안 전혀 주목받지 못했지요. 때문에 다들 그를 저처럼 생소해 했을 겁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보인 것은 2010년 지방 선거 때. 젊다면 젊은(그런데 사실 동안이어서 그렇지, 나이 꽤 드셨지요;;) 신인 정치인의 등장. 그것도 보수 진영이 유리한 충청도 지역. 그의 과거 행적을 보자면 그는 지극히 진보. 그런 상황들임에도 결국 선거에서 승리하더군요. 그렇게 저는 충청남도민도 아니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안희정 지사의 행보를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안 지사가 쓴 여러 책도 그간 좀 읽어볼까도 싶었지만, 원체 소설만 읽는 저로서는 진지하기 그지없는 안지사님의 글도 역시 매우 진지하고 어렵지 않을까 싶어 쉬이 손이 가지 않았지요. 그런데 요근래에 (내년 대선을 위한 준비인지 모르겠지만) 자전 에세이가 한권 출간이 되었네요. 정치 제안서가 아닌 자전적 에세이라니, 훨씬 쉽게 인간 안희정에 대해서 알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소감을 딱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안희정은 뼛속까지 정치인'이라고 하고 싶네요. 까까머리 소년 시절부터 꿈꿔 왔던 혁명, 그 혁명을 위한 정치. 남들은 엄마한테 게임방 가게 돈 좀 달라고 할 그 나이에 혁명을 꿈꿔 왔던 열혈 소년.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식지 않는 그 혁명에의 열정. 혁명을 위해선 투쟁보단 이젠 화합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그 소신. 참 멋진 정치인입니다. 자전적 에세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긴 했지만 역시 이 책도 결국은 안희정 지사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성격이 강한 것은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도 곳곳에 정치인으로서의 안희정 뒤편에 존재하는 인간 안희정의 모습도 보입니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인간 안희정. 가족들의 희생이라고 해야할지... 그런 부분들을 보면서 안지사의 가족에게 괜히 저까지 미안하고 고마워지더군요. 음... 역시 정치인의 가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수 년 전 한 드라마에서 정치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데 그 중 하나가 '정떨어지게 치떨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공감했었지요. 현 우리나라 시국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정 떨어지게 치떨리는 '정치'에서 은근한 희망의 싹을 저는 안지사에게서 보았습니다. 지금의 그 소신과 열정 부디 절대 잊지 않기를 그래서 더 큰 일 하며 국민과 함께, 혁명을 이룰 날을 고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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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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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로 치자면 연애는 '고기'라고, 고기가 들어간 음식은 무조건 맛있지 않냐고 말했다는 이사카코타로가 쓴 연애 연작 소설...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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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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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몬스터라는 한.중.일 합작 영화가 있었습니다.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악마적 본성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세 나라의 대표 감독이 각자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옴니버스 영화였지요. 한국 대표는 박찬욱 감독이었고, 박감독은 스타 감독이었기에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많은 관객들이 눈앞에 벌어지는 적나라하고 끔찍하고 리얼한 장면들 때문에 충격에 빠졌고, 급기야 몇몇 관객은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상영관을 빠져나가기도 했습니다. 벌써 개봉한 지 12년이나 지난 영화인데도 몇몇 장면들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만큼 그 영화는 어마무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와 매우 많이 닮은, 그러면서 훨씬 더 쎈 소설이 여기 있습니다. 혼다 테쓰야라는 작가의 '짐승의 성'. 작가가 원래 하드고어적인 작품을 많이 쓴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정말 쎕니다.

 

신고라는 반듯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사랑하는 애인이자 동거녀인 세이코가 있습니다. 이제 막 동거를 시작한 둘은 아주 깨가 쏟아집니다. 어느날 갑자기 곰탱이 같은 중년 남성이 그들의 집에 눌러 앉기 전까지. 세이코의 친부라는 그 곰탱이, 행동이 아주 수상쩍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게 신고와 세이코의 행복한 나날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신고와 세이코와는 전혀 상관없는 듯 보이는 아주 잔인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마야라는 소녀가 자신의 신상 보호를 요청하고, 그녀가 살던 집에 찾아가 다시 유키에라는 여성도 발견됩니다. 그리고 이 집 아주 수상쩍습니다. 마야와 유키에, 특히 유키에라는 여성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 선코트마치다 403호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들. 차마 글로 옮기지도 못하겠는 어마어마한 일들. 그리고 그 일을 벌인 요시오라는 남자.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먼저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의 평을 익히 보았어서,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그랬는데도 허허 이것 참. 정말 어마어마 하네요. 굳이 이렇게까지 상세히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싶게 적나라한 묘사들이 이어집니다. 너무나 하드고어하고, 너무나 적나라한 묘사들. 그런데 우습게도 저는 그런 적나라한 묘사들에 눈살을 찌뿌리면서도, 그것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나중엔 소설이니까 뭐...하는 생각을 해버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문득 아, 이거 일본에서 실제로 있던 사건이 모티프라고 했는데!...하는 깨달음이 들어서 더더욱 멘붕에 빠져 버리고 말았지요.

 

소설 말미쯤에 이르르면,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엽기적인 살인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주인공이 역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의 폭력과 살인엔 이유가 없다고, 때문에 그들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라고. 그리고 그런 짐승의 것과 같은 그 악한 본성은 전염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서나 발현될 수도 있다고. 결코 수긍할 순 없지만, 또한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찝찝합니다. 개운치가 않습니다. 심지어 결말마저도 찝찝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감상을 '재미없다.'라는 말로 오해하시진 않았음 합니다. 솔직히 사건의 진상이 너무나 궁금해서 미친듯이 책을 읽어갔으니까요. 이런 책의 경우 읽다 자면 꿈자리가 사나워지기에 될 수 있으면 하루에 끝내려 했으나 그러지 못해 1박 2일이 걸리고 말았는데, 역시나 저의 꿀잠을 방해하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몰입감이 좋은 소설입니다.

 

다만 흔히 말하는 심약한 분이나 미성년자 분들께는 결코 추천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쎈 소설 좋아하시는 분, 그럼에도 추리소설로서의 쫄깃함이 살아있는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께는 강추드리겠습니다.

 

올 여름 무던히 더웠는데, 그 더위를 식혀준 건 집 근처 대형 마트 지하에서 파는 냉모밀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당분간, 아니 꽤 오랫동안 모밀국수는 못 먹겠구나 싶었습니다. 이 책이 추운 겨울에 나와준 것이 이토록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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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안경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이덴슬리벨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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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기 인생을 사랑할 수 없어서 한탄스럽다면 스스로 인생을 사랑할 수 있도록 사는 수밖에 없다. 달리 뭘 할 수 있겠나?>

 

 

이 이야기는 참 아이러니 하게도 '죽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주인공인 아케미의 펫, 아니 가족이었던 고양이 '페로'의 죽음. 아케미라는 인물은 어린 시절 따돌림이라는 아픈 기억(이름이 여자 같아서라는 이유로;;;;)과 할머니의 죽음 등 트라우마 혹은 상처를 내면 깊숙이 지니고 있는 25세의 직장인 청년입니다. 그런 그가 다시 사랑하는 '페로'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날 아케미는 즐겨 찾는 중고서점에서 <죽음을 빛나게 하는 삶>이란 책을 구입하게 되고, 그 책 속에 꽂혀있던 명함을 발견하고, 명함의 주인 아카네를 만나 그녀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이미 애인이 있었고, 아케미의 사랑은 자연스레 짝사랑이 되지요. 하지만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아케미를 짝사랑하는 여인도 있었으니 그녀는 다름아닌 직장 선배 야요이였습니다. 이들의 알쏭달쏭 삼각관계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삼각관계라하니, 이 소설은 짙은(?) 연애소설이지 싶으실 겁니다. 하지만 제게 읽힌 이 소설은 전혀 연애소설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람없는 호수 위의 잔잔한 물결 그 자체 같았던 소설. 특별히 큰 사건이나 갈등도 없이 그저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신기한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은 참 잘도 넘어간다는 거였습니다. 이또한 작가의 역량덕분이겠죠.

 

이 작품에서 그나마 가장 긴장감이 느껴진단질 하는 상황이란 것은 바로, 아카네의 애인인 유지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정도. 때문에 아케미는 아카네에게 더욱 끌렸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카네 역시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 가까이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아카네와 아케미가 다른 점은 바로 아카네가 늘 쓰고 다니는 '반짝반짝 안경'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 앞에 주어진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안경.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의기소침하게 성장한 아케미와는 많이 달랐던 아카네. 때문에 아케미는 아카네에게서 반짝반짝 안경을 쓰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아니, 아카네 그 자체가 아케미에겐 반짝반짝 안경이었을지 모르겠네요.

 

아카네와 가까워지기 위해선 유지가 죽길 기다려야 하는 아케미.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자신의 애인을 버릴 수 없는 아카네. 끊임없이, 하지만 조용히 그녀의 사랑을 아케미에게 어필하는 야요이. 그들의 잔잔하고 섬세하고 감성적인 삼각 사랑. 애틋하고, 애절하였지만, 그래도 마지막엔 따뜻했습니다. 이 추운 계절에 읽기에 참 괜찮은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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