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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성 ㅣ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쓰리 몬스터라는 한.중.일 합작 영화가 있었습니다.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악마적 본성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세 나라의 대표
감독이 각자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옴니버스 영화였지요. 한국 대표는 박찬욱 감독이었고, 박감독은 스타 감독이었기에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많은 관객들이 눈앞에 벌어지는 적나라하고 끔찍하고 리얼한 장면들 때문에 충격에 빠졌고, 급기야 몇몇
관객은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상영관을 빠져나가기도 했습니다. 벌써 개봉한 지 12년이나 지난 영화인데도 몇몇 장면들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만큼 그 영화는 어마무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와 매우 많이 닮은, 그러면서 훨씬 더 쎈 소설이 여기 있습니다. 혼다 테쓰야라는 작가의
'짐승의 성'. 작가가 원래 하드고어적인 작품을 많이 쓴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정말 쎕니다.
신고라는 반듯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사랑하는 애인이자 동거녀인 세이코가 있습니다. 이제 막 동거를 시작한 둘은 아주 깨가
쏟아집니다. 어느날 갑자기 곰탱이 같은 중년 남성이 그들의 집에 눌러 앉기 전까지. 세이코의 친부라는 그 곰탱이, 행동이 아주 수상쩍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게 신고와 세이코의 행복한 나날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신고와 세이코와는 전혀 상관없는 듯 보이는 아주 잔인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마야라는 소녀가 자신의 신상 보호를 요청하고, 그녀가
살던 집에 찾아가 다시 유키에라는 여성도 발견됩니다. 그리고 이 집 아주 수상쩍습니다. 마야와 유키에, 특히 유키에라는 여성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 선코트마치다 403호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들. 차마 글로 옮기지도 못하겠는 어마어마한 일들. 그리고 그 일을 벌인 요시오라는 남자.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먼저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의 평을 익히 보았어서,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그랬는데도 허허 이것 참. 정말 어마어마 하네요.
굳이 이렇게까지 상세히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싶게 적나라한 묘사들이 이어집니다. 너무나 하드고어하고, 너무나 적나라한 묘사들. 그런데 우습게도
저는 그런 적나라한 묘사들에 눈살을 찌뿌리면서도, 그것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나중엔 소설이니까 뭐...하는 생각을 해버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문득 아, 이거 일본에서 실제로 있던 사건이 모티프라고 했는데!...하는 깨달음이 들어서 더더욱 멘붕에 빠져 버리고 말았지요.
소설 말미쯤에 이르르면,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엽기적인 살인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주인공이 역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의 폭력과
살인엔 이유가 없다고, 때문에 그들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라고. 그리고 그런 짐승의 것과 같은 그 악한 본성은 전염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서나
발현될 수도 있다고. 결코 수긍할 순 없지만, 또한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찝찝합니다. 개운치가 않습니다. 심지어 결말마저도 찝찝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감상을 '재미없다.'라는 말로 오해하시진 않았음 합니다. 솔직히 사건의 진상이 너무나 궁금해서 미친듯이 책을
읽어갔으니까요. 이런 책의 경우 읽다 자면 꿈자리가 사나워지기에 될 수 있으면 하루에 끝내려 했으나 그러지 못해 1박 2일이 걸리고 말았는데,
역시나 저의 꿀잠을 방해하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몰입감이 좋은 소설입니다.
다만 흔히 말하는 심약한 분이나 미성년자 분들께는 결코 추천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쎈 소설 좋아하시는 분, 그럼에도 추리소설로서의
쫄깃함이 살아있는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께는 강추드리겠습니다.
올 여름 무던히 더웠는데, 그 더위를 식혀준 건 집 근처 대형 마트 지하에서 파는 냉모밀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당분간, 아니 꽤
오랫동안 모밀국수는 못 먹겠구나 싶었습니다. 이 책이 추운 겨울에 나와준 것이 이토록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