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인 파리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임 옮김 / 살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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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파리. 이 도시를 사람들은 흔히 예술과 낭만의 도시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사는 로망이 가득한 장소라고 할까요. 때문에 파리는 신혼 여행지로도 유명하지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이제 막 결혼을 하고 이 낭만이 넘치는 도시로 여행을 왔으니 그들 앞엔 오롯이 행복만이 펼쳐질듯 합니다. 매순간 온세상이 아름다울 겁니다.

 

 그런데 이 신혼여행지에 '일'을 가지고 온 새신랑이 있습니다. 신혼여행기간 중임에도 그는 비지니스적인 미팅을 나가 새신부를 홀로 둡니다. (아마 이 부분에서 많은 여성 독자들은 불같이 화를 내지 않았을까;;;) 오로지 두 사람만을 위한 시간이어야하는 신혼여행. 그렇게 세상 그누구보다도 행복해야할 새신부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생각하죠. 역시 고작 3개월의 연애로 결정한 이 결혼은 성급했던 거라고. 신혼여행은 앞으로의 결혼 생활을 미리 그리는 조감도 같은건데 이런 결혼 생활이라면 해나갈 자신이 없다고.

 

『 p.101 어쨌든 이런 게 결혼 생활이다. 양보와 타협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

 

 여기 또 한 쌍의 신혼부부도 있습니다. 1912년의 가난한 화가 남편과 점원이었던 아내. 그들은 매 끼니를 걱정해야할 정도로 가난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도 행복에 겹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방해꾼이 나타나 새신부를 뒤흔듭니다. 남편의 그림 속 여성들을 보며 느낀 점이 없느냐고. 지극히 자유로운 영혼인 남편은 얼마간의 신혼 기간이 지나면 그의 예술을 위해 결혼 전으로 돌아갈거라고. 예술가의 아내로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하며 이해해줘야한다고. 그렇게 새신부는 흔들립니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깊은 사랑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190년이라는 시간을 오가며 펼쳐지는 두 여자의 신혼 일기는... 매우 다른 듯 닮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제가 미혼이라 잘은 모르지만, 흔히 부부는 신혼초에 평생 할 싸움의 반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생판 남이었던 두 남녀가 함께 살기 시작하며 이젠 연인이 아닌 가족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당연히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할테니까요. 이 소설 속 두 쌍의 부부도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겪게 된 것이지요. 때문에 파리는 이런 신혼 부부가 쉽게 화해할 수 있는 완벽한 장소가 아닐까 싶네요. 

 

『 p.253 결혼생활이 완전해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거야. 하지만 결국에는 제대로 하게 될 거야. 』

 

 저는 사실 로맨스 소설을 왠만해선 읽지 않습니다. 감성이 메말라 버렸는지 대부분의 로맨스 소설을 읽을 때면 닭살이 돋아 어찌할 바를 모르거든요. 그런데 조조모예스의 소설들은 묘하게 잘 읽힙니다. 몰입도 쉽구요. 게다가 이 소설은 독특하게 짝수 페이지 전부에 파리의 정경을 담고 있습니다. 때문에 파리에 가보지 못한 저는, 리브와 소피의 동선을 따라 파리 이곳 저곳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위에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있다면 응원과 축복의 뜻으로 이 책을 선물해준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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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스토리콜렉터 34
도로시 길먼 지음, 송섬별 옮김 / 북로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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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인생은 60부터라고 하죠. 그 나이즈음이면 직업전선에선 은퇴했을테고, 자식들은 대부분 독립을 했을테니 본격적인 자기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는 시기여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달려오던 인생에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여유가 찾아오면 사람들은 당황하게 되고,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목표나 꿈이 사라져버린 삶. 때문에 새로운 꿈이나 목표 등을 위해 살아가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 바로 '인생은 60부터다.'라는 말이 아닐른지요.

 

 이 책 속 주인공인 폴리팩스 부인도 바로 그런 평범한 할머니(...솔직히 요즈음엔 60대를 노인으로 보진 않지만; 이 소설은 배경이 1960년대니까요;;)입니다. 남편은 몇년 전 세상을 떠났고, 자녀들은 모두 결혼하여 독립했고, 그녀는 원예 모임이나 봉사활동 등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체는 매우 건가하나 경미한 우울즈을 진단 받은 폴릭팩스 부인. 의사는 젊은 시절이나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라고 권유하지요. 폴리팩스 부인의 어린 시절 꿈은 스파이였습니다. 그 시절은 세계 대전이다, 냉전이다 해서 온갖 스파이들이 설치고 활약하는 시대였으니 어린 눈엔 스파이라는 존재가 근사해보였겠지요. 그런 아련한 꿈을 다시 떠올린 폴리팩스 부인은 급기야 CIA에 추천장을 들고 찾아갑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정말 스파이가 되어 멕시코시티로 관광객으로 잠입하게 됩니다. 많이 위험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안전하다고도 볼 수 없는 임무. 당연히 그 임무란 것이 수월하게 진행될 리 없습니다, 변수가 생기고 폴리팩스 부인은 급기야 납치 당하게 이르르지요. 그렇게 총을 쏘기는 커녕 실물로도 거의 본 적 조차 없는 부인은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됩니다.

 

 스파이...라 하면 다들 007 시리즈나 미션임파서블 같은 액션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까요?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이 책은 표지부터가 그런 액션 스파이물하곤 전혀 분위기가 다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알록달록 꽃장식 모자를 쓴 백발의 조금 귀여운 노인. 그녀는 지극히 평범하고 안정적인 인생을 살아왔기에, 스파이 같은 모험과 스릴이 넘치는 직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점이 그녀를 위대한 스파이로 만들어 놓습니다. 오지랖이 넓고, 주변 인물과 쉽게 마음을 트며 친해지는 그녀의 능력 덕에 감시자들 조차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거든요. 덕분에 적의 중요한 정보도 빼내고, 때론 그녀의 지극히 미국적인 사상(...딱히 정치적으로까지 해석되진 않지만)에 그녀의 감시자 조차 교화되어 버렸으니까요. 이런 말도 안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실소가 터집니다. 이 할매, 정말 귀엽거든요. 다만, 이 소설이 처음 출간된 시점이 60년대였기에 지금 세계 정세와는 많이 동떨어진 내용들이나 지극히 미국 중심적인 사상이랄지 내용이랄지...그런 것들은 조금 신경이 쓰였달까요^^;;

 

 인생 다 살아버렸다고 생각했던 폴리팩스 부인이 찾은 제 2의 인생.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그녀의 인생 2막은 정말이지 흥미진진했고 부러웠습니다. 시리즈가 전부 14권이나 된다고 알고 있는데... 그녀의 제 2의 인생 이야기를 앞으로 계속 읽고 싶네요. 벌써 그녀의 다음 임무가 무엇일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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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0
서유미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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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즈음이었을 겁니다. 외할아버지 제사를 맞아 매년 그러했듯이 엄마 아빠와 함께 외가에 방문을 했었지요. 그런데 그날 새삼스레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들에게 엄마는 '**야~"라고 불린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요. 엄마 이름을 당연히 알고는 있었는데도 다들 '** 엄마'라고 부르는 호칭에 익숙해져버려 다른 사람이 엄마를 엄마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단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거지요. 결국 여자는 결혼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서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틈을 잃어가게 되는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틈'이라는 소설 속 세 여자도 그렇습니다. 처음 그녀들의 이야기가 시작될 때에는 주어가 모두 미호 엄마, 민규 엄마, 윤서 엄마였습니다. 미호 엄마는 남편의 외도일지도 모르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가정을(...그러니까 두 딸들의 평화를 깰 수 없어서) 지키기 위해 이를 묵인합니다. 좁은 아파트 단지내에서만 도는 생활, 어디 가서 울 수도 없고(좁은 동네는 소문도 빠르게 나니까요....), 집에 박혀 있기는 더욱 싫었던 그날, 남들 앞에서 모든 것을 벗고 드러낸다는게 싫어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대중 목욕탕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민규 엄마, 윤서 엄마의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사느라 '틈'이란 것을 가질 수 없는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되지요. 그렇게 세 여자는 대중 목욕탕에서 옷을 훌훌 벗듯 모든 허울을 벗어 던지고, 남의 이야기(...동네 아줌마들 모이면 자기 얘기 보단 남의 이야길 더 많이 하지요...속된 말로 뒷담화)를 하는 대신 자기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며 오롯이 자기 자신일 수 있는  '틈(거리감이 아닌 여유)'을 만들어 가지요. 그렇게 세 여자는 미호 엄마, 민규 엄마, 윤서 엄마가 아닌 윤주, 정희, 승진으로 돌아갑니다.

 

 책을 읽으며 엄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방금 전 그냥 걸었다며... 전화해서 엄마 목소리도 들어보았네요. 괜히 울컥할 뻔 했습니다. 나름 도시 처녀였던 엄마는 시골 깡촌에 시집 와 치매를 앓는 시할머니, 시부모님, 수많은 시동생들, 남편, 자녀들을 수발하며 살아왔습니다. 농사일은 농사일대로 다 해나가셨구요. 이런 엄마에게는 과연 오롯이 엄마 자신일 수 있는 '틈'이라는 게 있었을까...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엄마랑 무릎 맞대고 옥수수 뜯으며 엄마의 틈없이 치열했던 시집살이 이야기도 들어드리며 내가 엄마의 틈이 되어주면 좋으련만,  못나고 이기적인 자식은  이나이에도 전파를 통해 그저 투정 비슷한 걸 부리기나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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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심판 모중석 스릴러 클럽 38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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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졸린 눈 비벼 가며, 그런데 너무나 무서워 이불 속에 숨어서 열심히 보았던 드라마가 있었지요. 전설의 고향. 당시엔 촬영 기술도 열악했었고, CG는 전무했던 터라 굉장히 조잡한 특수 분장과 장면들인데도 눈물이 찔금 날 정도로 무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날 수 없을,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어쩐지 믿어버리게 되는 이야기들. 바로 전설입니다. 이런 전설은 세계 각국의 각 지역마다 수도 없이 떠돌고 있지요. 이 이야기는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역 오르드벡에 떠도는 성난 군대의 두령 엘르켕의 전설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르드벡 지역엔 본느발 길에 얽힌 무서운 전설이 있습니다. 본느발 길에 성난 군대가 나타나,  엘르켕 두령을 필두로 한 그들은 죄를 짓고도 벌받지 않고 살아가는 죄인들을 끌고 간답니다. 이런 환영을 누군가가 목격하고 나면 그 환영 속 주인공들은 반드시 3주안에 죽게 된다는 전설. 리나라는 인물은 성난 군대를 목격하게 되고, 성난 군대가 끌고 가던 죄인들 중 하나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지요. 우리의 주인공인 아담스베르그 서장은, 비둘기 두마리(...이들이 누구인지는 책속에서 직접~ ^^;;)를 데리고 오르드벡으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떠납니다. 과연 성난 군대의 전설은 실재하는 걸까요?

 

  이 소설이 흥미로운 점은 물론 가장 큰 사건은 오르드벡의 성난 군대 사건이지만, 이 외에도 비둘기 학대 사건, 재벌가의 총수 방화 살인 사건 등이 동시에 일어나며 동시에 조사하고 동시에 해결된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들 사건은 작고 크게 서로 연결이 되어있구요. 때문에 자칫 진부하고 평면적일 수 있는 플롯이 훨씬 다채로워지고 사건 전개 또한 흥미진진했습니다. 개인적으론 비둘기 학대 사건(어찌 보면 제일 중요도나 비중이 적음에도 불구하고)이 해결되는 과정이 매우 뿌듯하며 미소가 났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시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두 아시리라...^^;)

 

 저는 추리 소설을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뜬금없는 고백을 좀 해보자면 저는 사실 고전 추리 소설을 읽고서는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네, 고전 추리 소설 하면 다들 떠올리는 바로 그 작품들이요...^^; 의뢰인이 찾아오고, 탐정은 사건 해결을 위해 먼 지방으로 출장을 가고, 어떤 집안(혹은 마을)에 머물며, 그곳에서 떠도는 수상한 전설을 들으며, 그런 전설과 비슷하게 피해자는 계속 발생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몇몇의 용의자가 나타나며, 제일 의심가는 용의자 하나가 두드러지지만, 결국 범인은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고, 그런 트릭은 오로지 탐정만이 막판에 잰 체 하며 털어놓든다는 플롯. 이 틀에 박힌 플롯이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독자들에게 힌트 따위 전혀 주지도 않았으면서 막판에 혼자 잰 체 하는 탐정이 별로이기도 했구요. 물론 100여년이나 전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몹시도 훌륭한 작품들이겠지만, 지금은 21세기잖아요. 저는 21세기형 추리 소설이 좋거든요^^;

 

 그런데, 이 죽은 자의 심판은 바로 그런 고전 추리 소설의 전형적인 틀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 작품도 고전 추리 소설들처럼 별로였냐고요? 아니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아니, 모순적이게도 오히려 그런 고전의 틀을 갖추었기에 더욱 재미있었다고 할까요. 큰 틀은 고전에서 가져 왔는데, 그 틈틈엔 21세기형 잔재미들을 곳곳에 잘도 심어 놨다고 할까요?

 

일단 인물들이 그렇습니다. 아담스베르그와 그의 부하들은 다들 조금씩 모자라는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장인 아담스베르그는 매우 허당인데다, 그의 부하 직원들은 수면과다증이 있질 않나, 노상 먹을 걸 쟁여두고 먹질 않나, 근무중에도 와인을 즐기기까지 합니다. 현대인들 누구나 편집증 한가지씩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지요. 이들 또한 경찰이지만 평범한 현대인들이고, 때문에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잰 체 하지 않는 인물들인 것이지요. 저는 특히 아담스베르그의 터무니 없는 단어 습득 능력 덕분에 수시로 키득거리기까지 했었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충분한 단서들을 제공합니다. 인물들의 대사 속에서, 행동 속에서, 그리고 소품들 속에서, 충분한 복선들이 깔려 있지요. 때문에 독자들도 아담스베르그와 동등까지는 아니더래도, 어느 정도 추리라는 걸 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아마 예리한 독자님들은 범인과 증거를 충분히 찾아내실 겁니다. 저요? ..... 저는 사실...... 예리한 독자가 아닌지라 작품 막판에서 그저 '아하! 그렇구나!'만 연발했네요. ㅋㅋㅋㅋ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이 작품이 시리즈라는 점이죠. 그런데 시리즈의 첫 작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때문에 (주석은 달아놓으셨지만) 인물들간의 외면적, 그리고 심적 관계가 어떠한지를 잘 파악하기 힘들 때가 있다는 겁니다. 시리즈 처음 부터 읽었더라면 훨씬 더 이해와 공감이 쉬웠을테고 그럼 훨씬 더 재밌게 작품을 읽어나갈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특히 저는 아담스베르그와 그의 아들인 제르크(... 소설 속에서 제일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인물입니다.)의 이야기가 궁금하더군요. 앞으로 시리즈를 계속 번역 출간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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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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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란 이름, 참 무던히도 들어 왔습니다. 한없이 얄팍하여 쉽게도 팔랑대는 귀 덕에 그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전부 모아두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리 홀레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게으름도 한 몫 했고, 한번 시작하면 내리 해리 홀레만 읽어야 할 것 같아서 많이 한가하고 여유로울 때 느긋하게 읽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구요. 해리 홀레를 빨리 만나고 싶다는 마음과, 첫 만남이 있기 전의 설렘을 좀 더 즐기고 싶다는 참 쓰잘데기 없지만, 제 딴엔 매우 치열한 내적 갈등을 겪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립니다. 해리 홀레가 주인공이 아닌 스탠드 얼론이 나온다는 소식을요. 심지어 이런 제 속마음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 것 처럼 띠지엔 '이 책으로 요네스뵈를 시작하라.'는 문구까지 떡! 하니 박혀있더군요. 그래서 그러기로 했습니다. 해리 홀레와의 첫만남 전의 설렘은 여전히 아껴 두되, 요네스 뵈와는 안면 좀 터 보기로요. 드디어! 저에게도 요 네스뵈란 딱딱한 호칭이 아닌, 요쌤!이라고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권한(...왠지 책 한권 읽지 않은 사람이 요쌤...이라고 부르면 안될 것 같아 한번도 요쌤이란 호칭으로 불러보지 못했습니다...ㅠㅠ)이 생긴 겁니다. 그렇게 저는 후디가 몹시 잘 어울리는 두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 p.302 모든 아들은 언젠가 자기 아버지처럼 될 거라고 믿죠. 안그래요? 그래서 아버지의 약한 모습을 봤을 때 그렇게 실망하는 거에요. 자신의 결함, 미래의 패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가끔은 그 충격이 너무도 커서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버리죠. 』

 

아버지가 우상이었던 한 소년이 있습니다. 소년은 아버지처럼 훌륭한 경찰이 되길 꿈꾸었고, 촉망 받는 레슬링 선수였으며, 학업 성적 또한 우수했습니다. 그런데 우상이었던 아버지가 사실은 부패 경찰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그의 아버지는 자살로써 죗값을 치르게 됩니다. 그 충격으로 사랑하는 어머니는 마저 잃게 된 소년은 모든 것을 놓아버립니다. 자신을 달래주는, 아니 잊게 해주는 마약이란 것에 육체와 영혼마저 맡겨버린 체 말이죠. 마약을 구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던 그는 마약을 제공 받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서 12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출감 직전의 한 죄수로부터 사실은 자신의 아버지가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 누명을 썼단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소년은 마약을 끊고 달라지기로 합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가 미처 마치지 못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 p.551 그러니까 소년은 뭘 복수하고 싶은 걸까? 뭘 이루고 싶은 걸까? 구원받고 싶어 하지 않는 세상을 구원하는 것? 사실은 우리가 필요로 하지만 결코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세상의 모든 악을 말살시키는 것? 하지만 범죄 없는 세상, 바보들의 멍청한 반란도 없고 새로운 움직임과 변화를 야기하는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없는 세상에서는 아무도 살 수 없다. 더 나은 혹은 더 나쁜 세상에 대한 기대 없이는. 이런 지독한 불안감, 산소 결핍으로 죽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어처럼. 』

 

저는 캐릭터가 매력적인 소설을 좋아합니다. 개성 강하고, 유쾌하고, 그래서 응원해주고 싶은 인물들. 그런데 그런 인물들에게 느끼던 감정과 이 소설 속 '소니'라는 인물에게 느끼는 감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에 이 남자에게 짝사랑에 빠져버렸거든요. 마약쟁이에, 무시무시한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남자에게 말이죠. 저는 그가 너무나 가여웠습니다. 어린 시절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타락을 본 것도. 때문에 부모 모두 잃고 고아가 되어 버린 것도. 그렇게 타락하여 20대 전부를 감옥에서 보낸 것도. 그런데 그가 겪은 이 잔인한 모든 것이 결국 너무도 억울한 일이었다는 것도. 그래서 칼을 든 붓다가 되어 죄인들의 죗값을 물으러 다니는 것도. 그런 그의 행위가 그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도.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까지 전부 말입니다. 십여년 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드라마 속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불쌍해서 좋은가요? 좋아서 불쌍한가요?' 제가 소니에게 느낀 감정이 이것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혹은 제목 덕택에 어쩌면 그를 저도 '아들'처럼 생각하며, 위기에 빠진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되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그가 저지르는 일들에 (조금은 통쾌했지만) 한없이 안타까웠고, 또 한편으론 모순되게도 그가 (경찰에게든 쌍둥이에게든) 잡히면 어쩌나 내내 애가 탔습니다. 그가 무사하기를, 그가 행복해지기를, 그가 구원 받을 수 있기를 얼마나 애타게 빌었는지요... 때문에 저에겐 이 소설이 '감성 느와르'가 되어버렸지요. 그리고 이런 제 안의 애달픈 감성의 흐름이 전 너무도 좋았습니다.

 

몇 해 전 참 재밌게 보았던 영드가 한 편 있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의 성장담을 담고 있는 드라마였는데, 드라마 속 고등학생들은 마약을 마치 술처럼 복용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마약이란 단어가 텔레비전 9시 뉴스에서나 볼 법한 소재인지라 문화 충격이 꽤 컸었죠. 그런데 제가 영국 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마약 문화(...라고 해도 될른지... 망설여지는군요;;)가 유럽에서는 흔한 일인가 봅니다. 이 작품 속에서는 노르웨이의 오슬로라는 도시의 어두운 면면이 아주 세밀하면서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딜가나 쉽게 볼 수 있다는 마약상들, 인신매매범들. 그리고 이를 결코 바로잡을 리 없는 부패한 경찰들, 정치인들.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서 어떻게들 살아가는 걸까...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꼭 한번쯤 가보고 싶어집니다. 오슬로라는 곳에 묘한 애정마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요쌤, 그의 어마무시한 필력을요. 그의 오슬로에 대한 애정이 그 필력에 고스란히 담겨 독자인 저에게까지 전해졌다는 뜻이니까요.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보통 감옥에서 시작되는 복수 소설은 주인공들의 과거사가 작품 초반을 장식하는지라 자칫 지루해져버리곤 하는데, 이 작품은 첫장부터 끝장까지 단 한페이지도 지루한 구석이 없었습니다. 절정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 이미 초반부터 시작되는지라 이런 장면이 벌써 나와버리면 이 두께의 책을 대체 무슨 이야기로 다 채워나간다는 걸까...하는 의문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그렇게 뿌려지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복선들. 그 복선들로 이루어낸 반전들. 그렇게 독자들은 소니의 동선을 따라 조마조마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지요. 주윤발이나 장국영이 등장하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홍콩 느와르를 기억하시는지요? 경찰, 조직, 첩자, 우정, 사랑, 배신 등등. 저는 이 소설을 읽어나가며 그시절 참 재밌게 보았던 그 홍콩 영화들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옛날 홍콩 느와르 보다 훨씬 더 감각적이고 세련되었지요. 긴장감 넘치고, 때론 감성적이며, 심지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멋진 느와르입니다. '아들'도 이미 판권이 팔려 영화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영상화가 될 지 기대됩니다. (제가 책을 내내 '소니'역을 하면 딱 어울리겠다 싶은 배우가 있었는데, 그가 캐스팅되면 좋겠네요^^;;)

 

후디를 뒤집어 쓰고 빨간 스포츠백을 메고 다니던 소니. 많은 사진에서 후디를 쓰고 있는 요쌤. 이렇게 후디가 잘 어울리는 두 남자에게 저는 그만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 또 다른 한 남자를 생각합니다. 해리 홀레. 그도 후디를 즐겨 입는 남자일까요? 만남 전의 설렘을 충분히 즐기고, 곧 그도 만나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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