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요 네스뵈란 이름, 참 무던히도 들어 왔습니다. 한없이 얄팍하여 쉽게도 팔랑대는 귀 덕에 그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전부 모아두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리 홀레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게으름도 한 몫 했고, 한번 시작하면 내리 해리 홀레만 읽어야 할 것 같아서 많이 한가하고 여유로울 때 느긋하게 읽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구요. 해리 홀레를 빨리 만나고 싶다는 마음과, 첫 만남이 있기 전의 설렘을 좀 더 즐기고 싶다는 참 쓰잘데기 없지만, 제 딴엔 매우 치열한 내적 갈등을 겪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립니다. 해리 홀레가 주인공이 아닌 스탠드 얼론이 나온다는 소식을요. 심지어 이런 제 속마음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 것 처럼 띠지엔 '이 책으로 요네스뵈를 시작하라.'는 문구까지 떡! 하니 박혀있더군요. 그래서 그러기로 했습니다. 해리 홀레와의 첫만남 전의 설렘은 여전히 아껴 두되, 요네스 뵈와는 안면 좀 터 보기로요. 드디어! 저에게도 요 네스뵈란 딱딱한 호칭이 아닌, 요쌤!이라고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권한(...왠지 책 한권 읽지 않은 사람이 요쌤...이라고 부르면 안될 것 같아 한번도 요쌤이란 호칭으로 불러보지 못했습니다...ㅠㅠ)이 생긴 겁니다. 그렇게 저는 후디가 몹시 잘 어울리는 두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 p.302 모든 아들은 언젠가 자기 아버지처럼 될 거라고 믿죠. 안그래요? 그래서 아버지의 약한 모습을 봤을 때 그렇게 실망하는 거에요. 자신의 결함, 미래의 패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가끔은 그 충격이 너무도 커서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버리죠. 』

 

아버지가 우상이었던 한 소년이 있습니다. 소년은 아버지처럼 훌륭한 경찰이 되길 꿈꾸었고, 촉망 받는 레슬링 선수였으며, 학업 성적 또한 우수했습니다. 그런데 우상이었던 아버지가 사실은 부패 경찰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그의 아버지는 자살로써 죗값을 치르게 됩니다. 그 충격으로 사랑하는 어머니는 마저 잃게 된 소년은 모든 것을 놓아버립니다. 자신을 달래주는, 아니 잊게 해주는 마약이란 것에 육체와 영혼마저 맡겨버린 체 말이죠. 마약을 구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던 그는 마약을 제공 받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서 12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출감 직전의 한 죄수로부터 사실은 자신의 아버지가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 누명을 썼단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소년은 마약을 끊고 달라지기로 합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가 미처 마치지 못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 p.551 그러니까 소년은 뭘 복수하고 싶은 걸까? 뭘 이루고 싶은 걸까? 구원받고 싶어 하지 않는 세상을 구원하는 것? 사실은 우리가 필요로 하지만 결코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세상의 모든 악을 말살시키는 것? 하지만 범죄 없는 세상, 바보들의 멍청한 반란도 없고 새로운 움직임과 변화를 야기하는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없는 세상에서는 아무도 살 수 없다. 더 나은 혹은 더 나쁜 세상에 대한 기대 없이는. 이런 지독한 불안감, 산소 결핍으로 죽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어처럼. 』

 

저는 캐릭터가 매력적인 소설을 좋아합니다. 개성 강하고, 유쾌하고, 그래서 응원해주고 싶은 인물들. 그런데 그런 인물들에게 느끼던 감정과 이 소설 속 '소니'라는 인물에게 느끼는 감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에 이 남자에게 짝사랑에 빠져버렸거든요. 마약쟁이에, 무시무시한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남자에게 말이죠. 저는 그가 너무나 가여웠습니다. 어린 시절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타락을 본 것도. 때문에 부모 모두 잃고 고아가 되어 버린 것도. 그렇게 타락하여 20대 전부를 감옥에서 보낸 것도. 그런데 그가 겪은 이 잔인한 모든 것이 결국 너무도 억울한 일이었다는 것도. 그래서 칼을 든 붓다가 되어 죄인들의 죗값을 물으러 다니는 것도. 그런 그의 행위가 그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도.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까지 전부 말입니다. 십여년 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드라마 속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불쌍해서 좋은가요? 좋아서 불쌍한가요?' 제가 소니에게 느낀 감정이 이것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혹은 제목 덕택에 어쩌면 그를 저도 '아들'처럼 생각하며, 위기에 빠진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되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그가 저지르는 일들에 (조금은 통쾌했지만) 한없이 안타까웠고, 또 한편으론 모순되게도 그가 (경찰에게든 쌍둥이에게든) 잡히면 어쩌나 내내 애가 탔습니다. 그가 무사하기를, 그가 행복해지기를, 그가 구원 받을 수 있기를 얼마나 애타게 빌었는지요... 때문에 저에겐 이 소설이 '감성 느와르'가 되어버렸지요. 그리고 이런 제 안의 애달픈 감성의 흐름이 전 너무도 좋았습니다.

 

몇 해 전 참 재밌게 보았던 영드가 한 편 있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의 성장담을 담고 있는 드라마였는데, 드라마 속 고등학생들은 마약을 마치 술처럼 복용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마약이란 단어가 텔레비전 9시 뉴스에서나 볼 법한 소재인지라 문화 충격이 꽤 컸었죠. 그런데 제가 영국 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마약 문화(...라고 해도 될른지... 망설여지는군요;;)가 유럽에서는 흔한 일인가 봅니다. 이 작품 속에서는 노르웨이의 오슬로라는 도시의 어두운 면면이 아주 세밀하면서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딜가나 쉽게 볼 수 있다는 마약상들, 인신매매범들. 그리고 이를 결코 바로잡을 리 없는 부패한 경찰들, 정치인들.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서 어떻게들 살아가는 걸까...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꼭 한번쯤 가보고 싶어집니다. 오슬로라는 곳에 묘한 애정마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요쌤, 그의 어마무시한 필력을요. 그의 오슬로에 대한 애정이 그 필력에 고스란히 담겨 독자인 저에게까지 전해졌다는 뜻이니까요.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보통 감옥에서 시작되는 복수 소설은 주인공들의 과거사가 작품 초반을 장식하는지라 자칫 지루해져버리곤 하는데, 이 작품은 첫장부터 끝장까지 단 한페이지도 지루한 구석이 없었습니다. 절정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 이미 초반부터 시작되는지라 이런 장면이 벌써 나와버리면 이 두께의 책을 대체 무슨 이야기로 다 채워나간다는 걸까...하는 의문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그렇게 뿌려지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복선들. 그 복선들로 이루어낸 반전들. 그렇게 독자들은 소니의 동선을 따라 조마조마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지요. 주윤발이나 장국영이 등장하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홍콩 느와르를 기억하시는지요? 경찰, 조직, 첩자, 우정, 사랑, 배신 등등. 저는 이 소설을 읽어나가며 그시절 참 재밌게 보았던 그 홍콩 영화들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옛날 홍콩 느와르 보다 훨씬 더 감각적이고 세련되었지요. 긴장감 넘치고, 때론 감성적이며, 심지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멋진 느와르입니다. '아들'도 이미 판권이 팔려 영화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영상화가 될 지 기대됩니다. (제가 책을 내내 '소니'역을 하면 딱 어울리겠다 싶은 배우가 있었는데, 그가 캐스팅되면 좋겠네요^^;;)

 

후디를 뒤집어 쓰고 빨간 스포츠백을 메고 다니던 소니. 많은 사진에서 후디를 쓰고 있는 요쌤. 이렇게 후디가 잘 어울리는 두 남자에게 저는 그만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 또 다른 한 남자를 생각합니다. 해리 홀레. 그도 후디를 즐겨 입는 남자일까요? 만남 전의 설렘을 충분히 즐기고, 곧 그도 만나봐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