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0
서유미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즈음이었을 겁니다. 외할아버지 제사를 맞아 매년 그러했듯이 엄마 아빠와 함께 외가에 방문을 했었지요. 그런데 그날 새삼스레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들에게 엄마는 '**야~"라고 불린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요. 엄마 이름을 당연히 알고는 있었는데도 다들 '** 엄마'라고 부르는 호칭에 익숙해져버려 다른 사람이 엄마를 엄마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단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거지요. 결국 여자는 결혼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서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틈을 잃어가게 되는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틈'이라는 소설 속 세 여자도 그렇습니다. 처음 그녀들의 이야기가 시작될 때에는 주어가 모두 미호 엄마, 민규 엄마, 윤서 엄마였습니다. 미호 엄마는 남편의 외도일지도 모르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가정을(...그러니까 두 딸들의 평화를 깰 수 없어서) 지키기 위해 이를 묵인합니다. 좁은 아파트 단지내에서만 도는 생활, 어디 가서 울 수도 없고(좁은 동네는 소문도 빠르게 나니까요....), 집에 박혀 있기는 더욱 싫었던 그날, 남들 앞에서 모든 것을 벗고 드러낸다는게 싫어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대중 목욕탕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민규 엄마, 윤서 엄마의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사느라 '틈'이란 것을 가질 수 없는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되지요. 그렇게 세 여자는 대중 목욕탕에서 옷을 훌훌 벗듯 모든 허울을 벗어 던지고, 남의 이야기(...동네 아줌마들 모이면 자기 얘기 보단 남의 이야길 더 많이 하지요...속된 말로 뒷담화)를 하는 대신 자기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며 오롯이 자기 자신일 수 있는  '틈(거리감이 아닌 여유)'을 만들어 가지요. 그렇게 세 여자는 미호 엄마, 민규 엄마, 윤서 엄마가 아닌 윤주, 정희, 승진으로 돌아갑니다.

 

 책을 읽으며 엄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방금 전 그냥 걸었다며... 전화해서 엄마 목소리도 들어보았네요. 괜히 울컥할 뻔 했습니다. 나름 도시 처녀였던 엄마는 시골 깡촌에 시집 와 치매를 앓는 시할머니, 시부모님, 수많은 시동생들, 남편, 자녀들을 수발하며 살아왔습니다. 농사일은 농사일대로 다 해나가셨구요. 이런 엄마에게는 과연 오롯이 엄마 자신일 수 있는 '틈'이라는 게 있었을까...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엄마랑 무릎 맞대고 옥수수 뜯으며 엄마의 틈없이 치열했던 시집살이 이야기도 들어드리며 내가 엄마의 틈이 되어주면 좋으련만,  못나고 이기적인 자식은  이나이에도 전파를 통해 그저 투정 비슷한 걸 부리기나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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