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미스터리 스토리콜렉터 39
리 차일드 외 지음, 메리 히긴스 클라크 엮음, 박미영 외 옮김 / 북로드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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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 제 1의 도시. 수많은 이민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향하는 도시. 누구나 그곳에서의 삶을 한번쯤은 꿈꿔 보는 곳.  각종 매체를 통해 서울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서울 보다 더욱 익숙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감이 없이 오직 '매체'를 통해서만 존재할 것 같기도 한 화려한 도시. 바로 뉴욕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뉴욕에서 살고 있거나, 뉴욕이 고향인 작가들이 쓴 "뉴욕 소개서"입니다. 17명의 작가뉴욕의 명소 17곳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뉴욕이란 도시의 이미지와 제법 잘 어울리는 17곳의 흑백 사진과 함께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 책은 여행 안내문이냐구요? 아니 아닙니다. 아니면 뉴욕에 관한 에세이냐구요? 그것 또한 아닙니다.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 이 책의 장르는 무려 "미스터리"랍니다. 뉴욕이란 도시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 총격 사건, 유괴, 추격전 등등을 그려내고 있지요. 전부 살아가면서 결코 겪고 싶지 않은 무시무시한 사건들입니다. 다양한 국적, 민족, 종교의 사람들이 군집해서 살아가는 도시이니 이런 엄청난 사건들이 매일 같이, 수도 없이 벌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렇다면 뉴욕이란 도시가 두렵고 무서워져야 하는데, 우습게도 이 책을 읽노라면 자꾸만 당장이라도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싶어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욕과 사랑에 빠져버리고 마는 겁니다. 17인의 미스터리 작가들의 어마무시한 필력 때문이기도 하겠고, 더 중요한 것은 작가들이 그들의 도시 뉴욕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아  쓴 이야기들이기에 그런 것일 겁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이 책은 뉴욕 명소 17곳에 대한 소개서입니다. 그럼과 동시에 17명의 미국 추리소설가들에 대한 소개서이기도 합니다. 장르소설을, 특히 미국의 장르소설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많이 읽고, 들어봤음직한 화려한 라인업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집은 미국추리소설가협회의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낸 책이거든요. 화려한 작가들의 단편들을 모아서 볼 수 있다니, 이런 팬서비스 같은 책은 언제든 대환영이지요.

 

저는 자주 밝혔지만, 단편 소설을 선호하는 편은 아닙니다. 플롯과 서사가 단순해서 왠지 뭔가 좀 모자란 듯 끝나버리는 단편은 제 구미에 맞질 않거든요. 하지만 종종 가볍고 담백한 단편들이 읽고파질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의 17편의 단편에 대한 총평을 한마디도 표현하자면 "담백하다.", "산뜻하다."였습니다.  장편은 가끔 불필요한 묘사가 많아지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데, 이 17편의 단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합니다.

 

리 차일드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 플랫 아이언 빌딩>에서는 반가운 인물인 잭리처가 등장합니다. R선 23번 역에 내린 잭리처가 마주진 폴리스 라인들, 그리고 미스터리한 여인. 뉴욕과 어울리지 않게 텅 비어버린 거리라니 왠지 모를 몽환적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말에서 보여지던 잭리처의 따스함. 하지만 씁쓸해지는 결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줄리 하이지의 <이상한 나라의 그녀 - 센트럴 파크> 뉴욕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단연 센트럴 파크가 아닐까요? 그곳에 위치한 앨리스 동상 앞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그녀'. 그리고 그녀에게 접근하는 '그'. 그들의 대화, 그들의 행동, 그들의 행보를 듣고 보고 쫓다 보면 짧은 단편에서는 쉽사리 느끼기 힘든 긴장감 증폭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주하는 반전의 결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들 중 하나였습니다.

 

낸시 피커드의 <진실을 말할 것 - 어퍼 웨스트 사이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프리실라가 작성한 버킷 리스트. 그녀가 죽음 직전에 하고자 했던 일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참 쉽고 당연한 일일 것 같지만, '진실'이란 녀석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입니다. 결말을 보고 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습니다. (아마 많은 독자분들도 그러하리라...;;;)

 

토머스.H.쿡의 <지옥으로 돌아온 소녀 - 헬스 키친> 허물어져가는 브롱크스 아파트에서 시신이 되어 발견된 '매덕스'라는 소녀. 그녀는 24년전 '나'의 가족과 함께 1년을 살다가 '힘든 아이'라고 판단되어 쫓기듯 고향으로 돌아갔었습니다. 그런데 시신이 되어 뉴욕으로 돌아왔던 거지요. 그리고 이를 개기로 24년 전 벌어졌던 그녀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사건의 진상이 점점 밝혀집니다. 저는 결말이 굉장히 안타깝고 씁쓸했습니다.

 

S.J로전의 <친용윤 여사의 아들 중매 - 차이나타운> 미국안에 위차한 작은 중국, 차이나타운. 전혀 미국 같지 않은 그곳에서 중국인들은 그들 나름의 전통을 이어가며 복작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단편은 차이나 타운의 유명한 사립탐정 리디아 친의 어머니인 '친용운'여사의 남다른 모정으로 인해 벌어지는 발랄한 사건 해결 과정입니다. 딸을 도와 (혹은 딸의 사건을 가로채) 사건도 해결하고,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며느리감을 아들에게 중매도 하는 일석이조의 사건해결기가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유쾌했습니다. 개인적으론 17편의 단편 중 가장 좋았습니다.

 

메리 히긴스 클라크 <5달러짜리 드레스 - 유니언 스퀘어> 예비 검사 제니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수십년 전에 일어났던 살인 사건 기사 스크랩들을 접하게 됩니다. 얼토당토 않은 수사 과정과 용의자 검거를 보고 제니는 분개를 하며 그녀 나름의 추리를 펼쳐 보는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요. 17편의 단편 중 가장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었던 작품입니다.

 

퍼셔 워커의 <디지와 길레스피 - 할렘> 빈곤과 범죄으 상징으로 여겨지던 할렘가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쥐들이 우글거리는 낡은 아파트에서 쥐를 쫓기 위해 기르기 시작한 두마리의 고양이 '디지'와 '길레스피' 하지만 쥐와 고양이들 덕에 이웃간의 싸움이 벌어지지요. 그저 'pet'으로만 부르기엔 그 존재감이 너무나 커져버린 반려 동물들. 그들은 한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가족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지요. 그러한 과정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매우 상세히 묘사된 쥐들의 행각덕에 소름이 끼치는 것은 덤입니다.

 

제프리 디버의 <블리커 가의 베이커 - 그리니치 빌리지> 뉴욕의 과거를 보여주는 단편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40년대이지요. 조용한 빵집에 손님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속고 속이는 첩보전. 그리고 첩보기관들간의 아귀 다툼. 어찌 보면 상당히 미국적이면서도, 또한 그렇지 않은, 역시나 제프리 디버식 반전은 살아 있습니다.

 

브랜던 뒤부아 <종전 다음날 - 타임 스퀘어> 시간상 블리커 가의 베이커에 바로 뒤이은 이야기라 볼 수 있겠네요.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타임 스퀘어 광장에서는 대일 전승 기념일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전쟁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그 전쟁이란 잔인한 것에 빌붙어 이익을 얻게 되는 기생충 같은 부류도 있게 마련이지요. 전쟁이 승리로 끝났으나, 그 기생충들은 살아남아 있습니다. 그 기생충들까지 싸그리 해치워야 진정 전쟁은 종결을 맞는 것이겠지요.

 

벤 H. 윈터스 <함정이다! - 첼시> 연극에 관련된 사람들이 등장하여 그들이 극을 준비하는 상황을 다시 극형식으로 보여주는 '극중극'의 형식입니다. 형사가 여러 용의자들을 신문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살인 사건의 진범을 추리해가는 재미와 더불어 혼란스럽게 얽혀 있는 극과 극속극을  구별해 가며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지금 보니 제목 속에 답이 있었네요^^;;;

 

존 L. 브린의 <브로드웨이 처형인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90여년 전 브로드웨이에서 벌어졌던 미제 연쇄 살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90여년이 흐른 현재 할아버지와 증손녀에 의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집니다. 추리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암호 해독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단편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세대가 이어지고 바뀌어도 결코 바뀌지 않고 이어지는 전통. 저는 그 결말이 어쩐지 유쾌했습니다. (범죄 행위에 대해서 자꾸 이런 마음이 들면 안되는데 말입니다;;;)

 

앤절라 지먼의 <월 스트리트의 기적 - 월 스트리트>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 스트리트. 동전엔 앞면과 뒷면이 있고, 백이 있으면 뒤엔 흑이 있듯이 화려하기만 할 월스트리트의 곳곳엔 노숙자들이 즐비하답니다. 거렁뱅이, 경찰, 사기꾼, 가난한 소년이 만나 그들의 얽힌 인연의 타래가 풀어지며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치 연말에 맞춰 개봉하는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조금은 뻔하고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따뜻한 이야기는 언제든 좋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월 스트리트가의 상징인 황소 조각상은 사진만으로도 그 아우라가 대단하네요. 실물로 보게 된다면 상당한 위압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꼭 실물로 보고 싶네요.

 

마거릿 메이런의 <빨간 머리 의붓딸 - 어퍼 이스트 사이드> 재혼으로 맺어진 부부와 두 딸의 이야기입니다. 사춘기 시절 맞닥뜨린 결코 달갑지 않은 부모의 재혼. 그리고 발찍한 소녀의 발찍한 복수극. 17편의 단편 중 가장 짧고 굵은 말하자면 정말이지 발찍한 소설이었습니다.

 

T. 제퍼슨 파커의 <내가 마이키를 죽인 이유 - 리틀 이탈리아> 이제 차이나타운에 잠식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마피아 전통을 어떻게든 이어나가려는 인물의 눈물겨운 느와르입니다. 마피아 따위에게 전통이라니....라고 쓰면서 그들이 이 글을 보진 않겠지... 혼자 흠칫하게 되네요;;;

 

저스틴 스콧의 <더할 나위 없는 - 허드슨 강> 에드거 앨런 포 가에 진짜 '애드거 앨런 포'가 땅속에서 튀어나왔습니다. 1844년과 1981년의 시간과 공간을 마구 넘나드는 일종의 판타지 스릴러네요. 은행 강도 스타크와 소설가 '포'는 도박장을 털기로 계획을 짜는데...... 왠지 유약하여 보호 본능을 자극하지만 또한 그래서 꽤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포'가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포의 수많은 작품들이 혹시 정말 이런 과정으로 탄생한 건 아닐까... 혹시 '에드거 앨런 포 스트리트'에 가면 나도 '포'와 만나 모험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망상도 하게 됩니다.

 

N. J. 에이어스의 <가짜 코를 단 남자 - 알파벳 시티> 이 단편도 1940년대 2차 세계 대전 당시가 배경입니다. 같은 동네에서 죽마고우로 자라 같이 군대에 가고, 같이 참전했다 돌아온 친구들. 그들의 사이를 파괴하고, 그들의 삶을 파괴한 것은 역시 잔인한 '전쟁' 때문이겠지요. 요근래에 전쟁으로 인해 상처 받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하는데 읽을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주디스 켈먼의 <서턴 플레이스 실종 사건 - 서턴 플레이스> 뉴욕 추리소설가 모임에서 1970년대 벌어졌던 '비치 그레인저' 실종 사건이 화두에 오릅니다. 비치의 지인이었던 콜린 오데이를 통해 전하는 '비치'의 성장담과 실종까지의 이야기. '비치'는 유괴 당한 걸까요? 아니면 살해 당한 걸까요? 아니면 스스로 사라진 걸까요? 이런 수많은 물음표 끝에 만나게 되는 충격적인 마지막 문장.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콜린이 정말 듣고 본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단지 그녀의 소설속 이야기일까요?

 

처음 뷔페란 곳에 갔을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종류를 다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음식들. 어떤 게 맛있을지 모르니 일단 모든 음식을 조금씩 모두 담아 와 맛을 보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그 속엔 내게 익숙한 음식도, 생소한 음식도, 내 입맛에 꼭 맞는 음식도, 싫어하는 음식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런 학습의 결과로 두번째 접시부터는 이제 제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들을 주로 담게 됩니다. '뉴욕 미스터리'라는 단편집은 그런 화려한 뷔페와도 같은 책이었습니다. 때문에 구미에 잘 맞는 작품도 있었지만, 딱히 내 취향엔 별로다..하는 작품도 솔직히 몇편 있었습니다. 꽤 맛있게, 재밌게 읽었던 단편들. 그리고 그 단편을 쓴 작가들. 이제 두번째 접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다른 작품(특히 장편)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더욱 간절하게 뉴욕에 대한 로망을 꿈 꿔 봅니다. 살아생전 꼭 한번쯤 가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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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케어
하마나카 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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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아흔둘의 연세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다행히 고령이심에도 수족이 건강한 편이셨고 치매 증상도 없으셨었습니다만 급작스럽게 쓰러지셔서 3주 동안 병원에서 물 한모금 못 드시다가 돌아가셨지요. 할머니 병원 수발은 당연히 엄마 몫이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요양보호사이십니다. 종합병원 노인병동에서 일하고 계시는데 할머니도 거기 입원을 하셨었지요. 엄마는 3주 동안 병원에서 엄마 원래 일에, 할머니 수발까지 동시에 해내셨습니다. 아무리 평소에 하시던 일이고, 또 적성에도 맞으신다지만 3주의 긴 시간 동안 거의 주무시지도 못하고 밤낮으로 일하는데는 지치지 않을 도리가 없지요. 그런 지친 엄마를 보고 병문안 온 손님들은 할머니는 이제 살 만큼 사셨으니 돌아가실 때도 됐다고 쉽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엔 다들 '호상'이라고 말들 했지요. 저는 그런 말들이 정말 잔인하게만 들렸습니다.

 

이따금 뉴스에서 치매를 앓는 노부모를 모시다 지쳐 노부모와 함께 동반 자살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노인 수발의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경제적 빈곤이 겹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평균 수명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오래 사시라는 말이 이제 덕담이 아닌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장수하는 것은 분명 복인데... 문제는 무병장수가 아니라 유병장수가 대부분이라는 것이지요. 뉴스에서도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연일 떠들어댑니다. 노인 복지 정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잘도 말들 하지요. 윗분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다들 고령화 문제가 분명 심각한 것임을 예전부터 알았고, 지금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도 못합니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런 고령화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과 그 속에 담긴 불편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려 43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입니다. 이야기는 <그>가 사형 판결을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의 사형 판결을 지켜보며 이에 반응하는 여러 인물들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역순행적으로 전개 됩니다.

 

특히 '하네다 요코'라는 인물의 관점이 인상적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인지증(치매)를 앓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이혼녀였고 그녀에겐 아직 어린 아들도 있었지요. 인지증에 걸린 어머니는 정신이 자주 오락가락하며 요코에게 몹쓸 말, 몹쓸 짓을 일삼기도 합니다. 때문에 그녀는 점점 지쳐가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심지어 '구원'을 받은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녀뿐 아니라 어머니 또한 '구원'받은 거라고요. 인지증에 걸린 어머니도, 그리고 어머니를 수발하는 자신도 그동안 너무나 지치고 피패해져 갔기에 어머니의 죽음은 곧 '구원'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그녀의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녀 자신이 이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눈물을 쏟습니다.   하지만 요코는 자연사인 줄 알았던 어머니가 <그>에 의하여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또 <그>가 사형을 선고 받을 때에도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그>로 부터 '구원' 받은 것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그녀를 우리는 과연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요? 만약 내가 요코같은 상황이었더라면... 나도 요코처럼 생각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을 자각하고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반면 이 소설에서 탐정 역할 비슷한 것을 맡고 있는 '오토모 히데키'라는 인물도 있습니다. 그 또한 아버지가 연로하시고 하반신을 제대로 쓸 수 없어 개호(일본에서 일상생활에서 환자 혼자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가 필요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재력가로 초호화 개호시설에 입주하게 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고, 학창 시절엔 엘리트였고, 자라서는 사법고시에 패스 검사가 되었지요. 즉, 요코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는 인물이지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 그런 삶의 과정을 거쳐서인지 '오토모'는 모든 인간은 착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성선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추악한 범죄자도 결국엔 '죄책감'이란 것을 갖게 마련이고, 그 죄책감의 실체가 곧 '인간이 선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에게 '살인으로 구원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지요. <그>는 그가 한 행위들에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거든요. 때문에 작품 말미로 갈수록 그는 <그> 때문에 점점 혼란스러워 합니다. 무엇이 옳은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하는 '오토모'를 통해 아마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오토모'와 같은 혼란을 겪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사회 의식'만을 잔뜩 담아 놓아 미스터리한 요소는 거의 없는 게 아니냐구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솔직히 작품 초반을 읽을 때 저는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을 보고 '어라! 이건 너무 단순하고 뻔하잖아.'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아, 이 작품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보다는 역시 사회의식을 담는 데 치중한 소설이구나.'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그건 제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여러 인물들이 겪는 관련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하나로 모아지고, '오토모'가 그 사건에 점점 접근해 가는 과정이 꽤나 긴강감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와 <그>가 만든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을 때는 보기 좋게 크게 한방 먹고 말았지요. 사회 의식 뿐 아니라 '미스터리'의 요소에도 굉장히 충실한 작품이었던 거지요. 때문에 요근래에 읽었던 그 어느 미스터리 소설보다 가장 빠르게 읽히면서 또한 가장 깊게 읽혔던 소설입니다. (소재는 전혀 다르지만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를 읽을때와 비슷한 감각으로 읽어나갔습니다.) 왜 그 많은 심사위원들이 극찬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 의식'과 '미스터리'의 두마리 토끼을 전부 잡아버린 아주 아주 훌륭한 '사회파 미스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옛 조상님들은 가장 큰 소원 중 하나가 '장수'였었습니다. 때문에 장수를 축하하고 축복하기 위해 환갑잔치, 고희연 같은 것을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평균연령 80세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옛 조상님들이 본다면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이상 '장수'가 '축복'이 아닌 세상이 도래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앞서서 말했던 것처럼 딱히 이에 대처하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그렇더래도, 체념해선 안되겠지요.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해봐야할 것입니다. '장수'가 '축복'인 세상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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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시리즈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권일영 옮김 / 검은숲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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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란포의 어마무시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처음 읽어 보는 그의 작품입니다. 요코미조 세이지와 쌍벽을 이룬다기에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을 기대했었지요. 그런데 왠 걸! <애벌레>는 전혀 추리 소설이 아니었군요. 물론 간략한 소개를 보고 추리 보단 기괴나 공포에 가깝다는 건 알았지만 또한 이런 분위기의 기괴, 공포이리라고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주인공은 도키코와 그의 불구자 남편 스나가 전 중위. 스나가 중위는 참전했다가 팔도 잃고, 다리고 잃고, 청각도 잃고, 말도 잃어버리고 그저 목숨만 부지해 돌아옵니다. 기적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이런 상황을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지. 애초에 전쟁에 나가지 않았다면 죽을 뻔한 고비도 겪지 않았을 테고, 불구의 몸이 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스나가 중위에게 남은 딱 한가지 감각기관은 '눈'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도키코는 이런 살덩어리에 불구한 불구자 남편을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게 됩니다.

 

작가는 도키코와 스나가가 나누는 성행위를 통해 인간의 정욕이나 쾌락을, 그리고 불구가 된 스나가 중위와 그를 대하는 도키코를 통해 고통이나 참극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하네요. 결코 '반전'의 의식을 담을 생각은 없었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이 작품에서 '반전 코드'를 읽을 수밖에 없지 싶습니다. 불가가 되어버린 스나가가 느낄 공포도, 도키코와 스나가가 나누는 기괴한 행위도, 그리고 그를 통한 쾌락이나 참극도,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전쟁'을 통해 기인한 것들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작품을 읽어나가며 얼마 전에 읽은 오르부아르라는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그 작품에서도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두 젊은이가 등장하거든요. 인간은 '인간'으로 살아야지, 인간이 '벌레'로 살아가야 하는 비극은 없어야하지 않을까요.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불릴 만큼 결코 전쟁 없는 세상은 있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이상'까지야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p.31 거기 누워 있는 것은 틀림없이 하나의 생명이었다. 폐도 있고 위도 있다. 그런데 사물을 볼 수 없다.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말을 전해 할 수 없다. 뭔가를 쥘 손도 없고 딛고 일어설 다리도 없다. 그에게 이 세상은 영원한 정지이며 부단한 침묵이고 끊없는 어둠이다. 일찍이 누가 이런 무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런 세계에 사는 사람의 마음은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그는 틀림없이 '사람 살려'라고 외치고 싶을 것이다. 아무리 어렴풋하더라도 좋으니 사물의 모습을 보고 싶으리라. 아무리 희미해도 좋으니 어떤 소리든 듣고 싶으리라. 무엇인가에 의지해 뭐든 꼭 움켜쥐고 싶으리라. 하지만 그에게는 그 어떤 것도 완벽하게 불가능했다. 지옥이다. 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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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수사국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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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추리소설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때문에 읽는 소설들의 대부분도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이지요. 나는 언제부터 추리 매니아가 되었나 곰곰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건 '명탐정 코난'이란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방영되고 부터였지 싶습니다. 코난에 이어 방영된 '소년 탐정 김전일'도 한몫 했을 테구요. 그렇게 추리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자주 등장하며 그래서 꼭 읽어봐야지 싶어 사들이는 책들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셜록홈즈', '애거서크리스티', '엘러리퀸'등이 바로 그런 작품들일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셜록홈즈 세트를 사들여 읽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셜록홈즈 시리즈가 기대했던 것만큼 미친듯이 재밌지가 않았습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책장이 참으로 더디게 넘어가더라구요. 이런 저의 반응은 세계 3대 추리소설의 톱이라 불리우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홈즈 팬분들이나 애거서팬분들께 죄송한 생각이 들지만,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니 이해해주시길^^;) 그래서 깨달았지요. 아, 나는 장르소설에서마저도 고전을 읽을 그릇이 못되나 보다...하구요.

 

그런데 2년전 쯤 동네 도서관 서고를 산림욕하는 마음으로 둘러 보다가 또다른 세계 3대 미스터리 중 한 작품인 'Y의 비극'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고전 알러지(?)가 있지만, 책의 고풍스러운 디자인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지요.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었는데... 어느새 책에 완전히 몰입하여 끊임없이 책장을 넘겨대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고전이 이토록 가독성이 좋다니요, 고전이 이토록 세련되었다니요. 그후로 저는 점점 엘러리퀸 예찬론자가 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최근 <퀸 수사국>이란 국내 초역인 단편집이 출간을 하게 되었지요. 저는 고전에 대한 편견(진부하다, 단순하다)처럼 단편에 대한 편견(단순하다, 싱겁다) 또한 가지고 있었기에, 혹시나 엘러리퀸이 고전에 대한 편견을 깨 주었던 것처럼 단편에 대한 편견도 깨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책장을 열었습니다.

 

 

총 18편의 단편이 모여있는 이 책의 목차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김전일이나 여타 추리소설속에서 보아오던 전형적인 소재들이지요. 때문에 여러 단편들에서 기시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몇몇 작품들의 엔딩이나 반전은 제 추리가(...라기 보단 이미 어디선가 봐서 익숙했기에 가능했던 예측이) 자주 적중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의 수많은 작품들이 엘러리퀸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깨닫게 되는 대목이지요. 그렇다면 익숙한 소재에 익숙한 트릭들이니 김이 새 버리지 않았냐구요? 저같은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담없이 심심풀이로 읽는 추리 퀴즈 같아서 재밌었달까요? 게다가 익숙하거나 단순한 트릭이나 반전들을 차치해 버리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명탐정 '엘러리'였습니다. 저는 '엘러리'란 인물이 참으로 좋습니다. 너무나 잘났음에도 결코 뻐기지 않음이 좋고, 일하기 싫을 땐 침대에 몇날 며칠을 엎어져 지내는 평범함이 좋고,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는 그 유쾌함이 좋습니다. 그리고 '엘러리'가 특히 좋을 때는 역시 아버지인 '퀸 경감'과 아웅다웅하면서도 사건을 해결하는 환상적인 케미가 좋습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이 소소한 '엘러리'의 일상속에 잘 녹아 있기에 이 작품이 특히나 좋았습니다.

 

한 알 한알 먹다보면 어느새 금세 한 박스를 전부 해치워 버리고 마는 고급 수제 초콜릿이 있지요. 엘러리퀸의 <퀸 수사국>은 바로 그런 초콜릿 박스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점점 중독되어 한 편만 더 읽을까, 또 한 편 더 읽고 자야지, 딱 한 편만 더 읽고 일해야지...하다가 어느새 18편의 작품을 시나브로 전부 해치워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달콤한 초콜릿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왠지 굉장히 유쾌해집니다. 독서라는 것은 바로 이 맛에 하는 거지요.

 

혹시 고전은 심지어 장르소설마저도 읽기가 힘들어. 고전 추리소설은 밍숭맹숭해. 고전 추리소설 주인공들은 너무나 전형적이라 개성이 없어....하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으신지요? 그렇다면 부디 엘러리 퀸의 작품들을 읽어 보시길 추천하는 바입니다. 읽고 나면 분명 저처럼 한 세기 가까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작가 "엘러리 퀸(들)"을 그리고 너무나 매력적인 탐정 "엘러리 퀸(부자)"를 찬양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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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조사관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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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국가인권위원회를 모티프로 한 가상 기구인 '인권증진위원회'라는 곳에 근무하는 네 공무원들의 이야기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국가 기구. 뉴스에서 심심찮게 들어는 봤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 기관에서 하는 구체적인 일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니 아는 바가 거의 없네요. 그저 피상적으로 국가기관 때문에 인권을 침해 당한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곳...이란 정도 밖에는요.

 

그래서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인 네 명의 조사관들도 뭔가 굉장히 거창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겠거니 했었습니다. 그런데... 왠 걸;; 그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하자 또한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토피를 달고 사는 베테랑 조사관 한윤서, 정의감이 지나쳐 독단적인 배홍태, 다혈질의 이달숙, 오만방자 부지훈이 그들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하는 일이란 것 또한 형사처럼 범인 잡고, 검사처럼 추궁하고, 판사처럼 판결하고, 변호사처럼 변호하는 그런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떤 형사사건 수사 과정에서 국가기관이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한 경위가 있는가, 없는가...를 조사하여 그저 '보고'만 하는 것이지요. 마치 호랑이나 사자 표범 재규어 같은 강자들이 지배하는 정글에 존재하는 한마리의 승냥이처럼 말이지요. 때문에 그들의 조사결과가 사건 해결 과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영향을 끼쳐서는 안됩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위치에서 딜레마를 겪고 맙니다. 그들이 조사를 진행하보면 자연스레 사건의 경위나, 숨겨진 진실 같은 것에 접근하는 경우가 생기고 말지요. 그럼 정의를 위해 어느 선까지 나서야하는 가의 문제로 말입니다.

 

총 5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연작 소설인 이 작품에서의 탐정 역할은 물론 '조사관'들이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그들이 하는 일은 사건 수사도, 사건 해결도 아닙니다. 때문에 그 조사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고, 긴장감이 넘치지만 그 결말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렇기에 열린 결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특히나 미스터리 소설에서) 이 작품이 별로 맘에 들지 않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런 점이 좋았습니다. 애초에 문학이란 것이, 소설이란 것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없을 테니까요. 단지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데 힌트 비슷한 것을 주는 것이 본분일 테니까요. 다만 이런 열린 결말 덕에.... 저 같은 경우는 4번째 작품인 '푸른 십자가를 따라간 남자'의 결말을 보고 의문점이 생겨 그 의문점을 해결하고자 급기야 출판사에 문의를 하는 오지랖을 떨기도 했습니다;; (친절하고 상세하게 답변 주신 편집자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 속에는 국내 여러 논란이 되었던 사건들이 등장을 합니다. 민간인 사찰이라든가 이태원 살인 사건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말이죠. 국내 장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공감대 형성이 쉽다는 것일 겁니다. 때문에 흥미롭게 욕도 좀 해가며(사회파 미스터리는 이 맛으로 읽는거 아닌가요;;), 또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도 해보면서 아주 재밌고 빠르게 읽은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국내 장르소설 작가의 작품들은 낯설기만 합니다. 이는 저의 무지탓이지요. 그래서 요근래에 들어서야 비로소 여러 작가들 작품을 한편씩 찾아 읽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만족감과 함께 자부심 비슷한 것이 샘솟는군요. 송시우 작가도 <달리는 조사관>으로 처음 접한 작가였습니다. 작가의 전작인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이 참으로 궁금해지네요. 곧 읽어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송시우 작가를 비롯한 국내 장르 문학 작가님들 부디 화이팅입니다!

 

p.320 권력을 가진 국가기구를 호랑이나 사자에 비유한다면 국가인권기구는 승냥이라고. 호랑이나 사자에 맞서 싸워 이길 수는 없지만 호랑이나 사자가 힘을 남용하여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는지 안 하는지, 그 작고 날랜 몸으로 재빠르게 다니며 살펴보는 짐승. 호랑이나 사자를 끊임없이 신경 쓰이게 하는 존재. 죽일 수는 없지만 물어뜯을 수 는 있는 작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감시자. 호랑이나 사자, 곰, 표범과 재규어 같은 강자들이 지배하는 정글에 승냥이 한마리는 있어야지. 그들이 힘을 정해진 규칙대로 쓰도록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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