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미스터리 스토리콜렉터 39
리 차일드 외 지음, 메리 히긴스 클라크 엮음, 박미영 외 옮김 / 북로드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세계 제 1의 도시. 수많은 이민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향하는 도시. 누구나 그곳에서의 삶을 한번쯤은 꿈꿔 보는 곳.  각종 매체를 통해 서울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서울 보다 더욱 익숙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감이 없이 오직 '매체'를 통해서만 존재할 것 같기도 한 화려한 도시. 바로 뉴욕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뉴욕에서 살고 있거나, 뉴욕이 고향인 작가들이 쓴 "뉴욕 소개서"입니다. 17명의 작가뉴욕의 명소 17곳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뉴욕이란 도시의 이미지와 제법 잘 어울리는 17곳의 흑백 사진과 함께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 책은 여행 안내문이냐구요? 아니 아닙니다. 아니면 뉴욕에 관한 에세이냐구요? 그것 또한 아닙니다.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 이 책의 장르는 무려 "미스터리"랍니다. 뉴욕이란 도시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 총격 사건, 유괴, 추격전 등등을 그려내고 있지요. 전부 살아가면서 결코 겪고 싶지 않은 무시무시한 사건들입니다. 다양한 국적, 민족, 종교의 사람들이 군집해서 살아가는 도시이니 이런 엄청난 사건들이 매일 같이, 수도 없이 벌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렇다면 뉴욕이란 도시가 두렵고 무서워져야 하는데, 우습게도 이 책을 읽노라면 자꾸만 당장이라도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싶어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욕과 사랑에 빠져버리고 마는 겁니다. 17인의 미스터리 작가들의 어마무시한 필력 때문이기도 하겠고, 더 중요한 것은 작가들이 그들의 도시 뉴욕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아  쓴 이야기들이기에 그런 것일 겁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이 책은 뉴욕 명소 17곳에 대한 소개서입니다. 그럼과 동시에 17명의 미국 추리소설가들에 대한 소개서이기도 합니다. 장르소설을, 특히 미국의 장르소설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많이 읽고, 들어봤음직한 화려한 라인업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집은 미국추리소설가협회의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낸 책이거든요. 화려한 작가들의 단편들을 모아서 볼 수 있다니, 이런 팬서비스 같은 책은 언제든 대환영이지요.

 

저는 자주 밝혔지만, 단편 소설을 선호하는 편은 아닙니다. 플롯과 서사가 단순해서 왠지 뭔가 좀 모자란 듯 끝나버리는 단편은 제 구미에 맞질 않거든요. 하지만 종종 가볍고 담백한 단편들이 읽고파질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의 17편의 단편에 대한 총평을 한마디도 표현하자면 "담백하다.", "산뜻하다."였습니다.  장편은 가끔 불필요한 묘사가 많아지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데, 이 17편의 단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합니다.

 

리 차일드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 플랫 아이언 빌딩>에서는 반가운 인물인 잭리처가 등장합니다. R선 23번 역에 내린 잭리처가 마주진 폴리스 라인들, 그리고 미스터리한 여인. 뉴욕과 어울리지 않게 텅 비어버린 거리라니 왠지 모를 몽환적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말에서 보여지던 잭리처의 따스함. 하지만 씁쓸해지는 결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줄리 하이지의 <이상한 나라의 그녀 - 센트럴 파크> 뉴욕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단연 센트럴 파크가 아닐까요? 그곳에 위치한 앨리스 동상 앞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그녀'. 그리고 그녀에게 접근하는 '그'. 그들의 대화, 그들의 행동, 그들의 행보를 듣고 보고 쫓다 보면 짧은 단편에서는 쉽사리 느끼기 힘든 긴장감 증폭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주하는 반전의 결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들 중 하나였습니다.

 

낸시 피커드의 <진실을 말할 것 - 어퍼 웨스트 사이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프리실라가 작성한 버킷 리스트. 그녀가 죽음 직전에 하고자 했던 일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참 쉽고 당연한 일일 것 같지만, '진실'이란 녀석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입니다. 결말을 보고 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습니다. (아마 많은 독자분들도 그러하리라...;;;)

 

토머스.H.쿡의 <지옥으로 돌아온 소녀 - 헬스 키친> 허물어져가는 브롱크스 아파트에서 시신이 되어 발견된 '매덕스'라는 소녀. 그녀는 24년전 '나'의 가족과 함께 1년을 살다가 '힘든 아이'라고 판단되어 쫓기듯 고향으로 돌아갔었습니다. 그런데 시신이 되어 뉴욕으로 돌아왔던 거지요. 그리고 이를 개기로 24년 전 벌어졌던 그녀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사건의 진상이 점점 밝혀집니다. 저는 결말이 굉장히 안타깝고 씁쓸했습니다.

 

S.J로전의 <친용윤 여사의 아들 중매 - 차이나타운> 미국안에 위차한 작은 중국, 차이나타운. 전혀 미국 같지 않은 그곳에서 중국인들은 그들 나름의 전통을 이어가며 복작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단편은 차이나 타운의 유명한 사립탐정 리디아 친의 어머니인 '친용운'여사의 남다른 모정으로 인해 벌어지는 발랄한 사건 해결 과정입니다. 딸을 도와 (혹은 딸의 사건을 가로채) 사건도 해결하고,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며느리감을 아들에게 중매도 하는 일석이조의 사건해결기가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유쾌했습니다. 개인적으론 17편의 단편 중 가장 좋았습니다.

 

메리 히긴스 클라크 <5달러짜리 드레스 - 유니언 스퀘어> 예비 검사 제니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수십년 전에 일어났던 살인 사건 기사 스크랩들을 접하게 됩니다. 얼토당토 않은 수사 과정과 용의자 검거를 보고 제니는 분개를 하며 그녀 나름의 추리를 펼쳐 보는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요. 17편의 단편 중 가장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었던 작품입니다.

 

퍼셔 워커의 <디지와 길레스피 - 할렘> 빈곤과 범죄으 상징으로 여겨지던 할렘가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쥐들이 우글거리는 낡은 아파트에서 쥐를 쫓기 위해 기르기 시작한 두마리의 고양이 '디지'와 '길레스피' 하지만 쥐와 고양이들 덕에 이웃간의 싸움이 벌어지지요. 그저 'pet'으로만 부르기엔 그 존재감이 너무나 커져버린 반려 동물들. 그들은 한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가족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지요. 그러한 과정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매우 상세히 묘사된 쥐들의 행각덕에 소름이 끼치는 것은 덤입니다.

 

제프리 디버의 <블리커 가의 베이커 - 그리니치 빌리지> 뉴욕의 과거를 보여주는 단편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40년대이지요. 조용한 빵집에 손님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속고 속이는 첩보전. 그리고 첩보기관들간의 아귀 다툼. 어찌 보면 상당히 미국적이면서도, 또한 그렇지 않은, 역시나 제프리 디버식 반전은 살아 있습니다.

 

브랜던 뒤부아 <종전 다음날 - 타임 스퀘어> 시간상 블리커 가의 베이커에 바로 뒤이은 이야기라 볼 수 있겠네요.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타임 스퀘어 광장에서는 대일 전승 기념일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전쟁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그 전쟁이란 잔인한 것에 빌붙어 이익을 얻게 되는 기생충 같은 부류도 있게 마련이지요. 전쟁이 승리로 끝났으나, 그 기생충들은 살아남아 있습니다. 그 기생충들까지 싸그리 해치워야 진정 전쟁은 종결을 맞는 것이겠지요.

 

벤 H. 윈터스 <함정이다! - 첼시> 연극에 관련된 사람들이 등장하여 그들이 극을 준비하는 상황을 다시 극형식으로 보여주는 '극중극'의 형식입니다. 형사가 여러 용의자들을 신문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살인 사건의 진범을 추리해가는 재미와 더불어 혼란스럽게 얽혀 있는 극과 극속극을  구별해 가며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지금 보니 제목 속에 답이 있었네요^^;;;

 

존 L. 브린의 <브로드웨이 처형인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90여년 전 브로드웨이에서 벌어졌던 미제 연쇄 살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90여년이 흐른 현재 할아버지와 증손녀에 의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집니다. 추리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암호 해독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단편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세대가 이어지고 바뀌어도 결코 바뀌지 않고 이어지는 전통. 저는 그 결말이 어쩐지 유쾌했습니다. (범죄 행위에 대해서 자꾸 이런 마음이 들면 안되는데 말입니다;;;)

 

앤절라 지먼의 <월 스트리트의 기적 - 월 스트리트>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 스트리트. 동전엔 앞면과 뒷면이 있고, 백이 있으면 뒤엔 흑이 있듯이 화려하기만 할 월스트리트의 곳곳엔 노숙자들이 즐비하답니다. 거렁뱅이, 경찰, 사기꾼, 가난한 소년이 만나 그들의 얽힌 인연의 타래가 풀어지며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치 연말에 맞춰 개봉하는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조금은 뻔하고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따뜻한 이야기는 언제든 좋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월 스트리트가의 상징인 황소 조각상은 사진만으로도 그 아우라가 대단하네요. 실물로 보게 된다면 상당한 위압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꼭 실물로 보고 싶네요.

 

마거릿 메이런의 <빨간 머리 의붓딸 - 어퍼 이스트 사이드> 재혼으로 맺어진 부부와 두 딸의 이야기입니다. 사춘기 시절 맞닥뜨린 결코 달갑지 않은 부모의 재혼. 그리고 발찍한 소녀의 발찍한 복수극. 17편의 단편 중 가장 짧고 굵은 말하자면 정말이지 발찍한 소설이었습니다.

 

T. 제퍼슨 파커의 <내가 마이키를 죽인 이유 - 리틀 이탈리아> 이제 차이나타운에 잠식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마피아 전통을 어떻게든 이어나가려는 인물의 눈물겨운 느와르입니다. 마피아 따위에게 전통이라니....라고 쓰면서 그들이 이 글을 보진 않겠지... 혼자 흠칫하게 되네요;;;

 

저스틴 스콧의 <더할 나위 없는 - 허드슨 강> 에드거 앨런 포 가에 진짜 '애드거 앨런 포'가 땅속에서 튀어나왔습니다. 1844년과 1981년의 시간과 공간을 마구 넘나드는 일종의 판타지 스릴러네요. 은행 강도 스타크와 소설가 '포'는 도박장을 털기로 계획을 짜는데...... 왠지 유약하여 보호 본능을 자극하지만 또한 그래서 꽤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포'가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포의 수많은 작품들이 혹시 정말 이런 과정으로 탄생한 건 아닐까... 혹시 '에드거 앨런 포 스트리트'에 가면 나도 '포'와 만나 모험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망상도 하게 됩니다.

 

N. J. 에이어스의 <가짜 코를 단 남자 - 알파벳 시티> 이 단편도 1940년대 2차 세계 대전 당시가 배경입니다. 같은 동네에서 죽마고우로 자라 같이 군대에 가고, 같이 참전했다 돌아온 친구들. 그들의 사이를 파괴하고, 그들의 삶을 파괴한 것은 역시 잔인한 '전쟁' 때문이겠지요. 요근래에 전쟁으로 인해 상처 받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하는데 읽을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주디스 켈먼의 <서턴 플레이스 실종 사건 - 서턴 플레이스> 뉴욕 추리소설가 모임에서 1970년대 벌어졌던 '비치 그레인저' 실종 사건이 화두에 오릅니다. 비치의 지인이었던 콜린 오데이를 통해 전하는 '비치'의 성장담과 실종까지의 이야기. '비치'는 유괴 당한 걸까요? 아니면 살해 당한 걸까요? 아니면 스스로 사라진 걸까요? 이런 수많은 물음표 끝에 만나게 되는 충격적인 마지막 문장.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콜린이 정말 듣고 본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단지 그녀의 소설속 이야기일까요?

 

처음 뷔페란 곳에 갔을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종류를 다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음식들. 어떤 게 맛있을지 모르니 일단 모든 음식을 조금씩 모두 담아 와 맛을 보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그 속엔 내게 익숙한 음식도, 생소한 음식도, 내 입맛에 꼭 맞는 음식도, 싫어하는 음식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런 학습의 결과로 두번째 접시부터는 이제 제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들을 주로 담게 됩니다. '뉴욕 미스터리'라는 단편집은 그런 화려한 뷔페와도 같은 책이었습니다. 때문에 구미에 잘 맞는 작품도 있었지만, 딱히 내 취향엔 별로다..하는 작품도 솔직히 몇편 있었습니다. 꽤 맛있게, 재밌게 읽었던 단편들. 그리고 그 단편을 쓴 작가들. 이제 두번째 접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다른 작품(특히 장편)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더욱 간절하게 뉴욕에 대한 로망을 꿈 꿔 봅니다. 살아생전 꼭 한번쯤 가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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