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케어
하마나카 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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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아흔둘의 연세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다행히 고령이심에도 수족이 건강한 편이셨고 치매 증상도 없으셨었습니다만 급작스럽게 쓰러지셔서 3주 동안 병원에서 물 한모금 못 드시다가 돌아가셨지요. 할머니 병원 수발은 당연히 엄마 몫이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요양보호사이십니다. 종합병원 노인병동에서 일하고 계시는데 할머니도 거기 입원을 하셨었지요. 엄마는 3주 동안 병원에서 엄마 원래 일에, 할머니 수발까지 동시에 해내셨습니다. 아무리 평소에 하시던 일이고, 또 적성에도 맞으신다지만 3주의 긴 시간 동안 거의 주무시지도 못하고 밤낮으로 일하는데는 지치지 않을 도리가 없지요. 그런 지친 엄마를 보고 병문안 온 손님들은 할머니는 이제 살 만큼 사셨으니 돌아가실 때도 됐다고 쉽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엔 다들 '호상'이라고 말들 했지요. 저는 그런 말들이 정말 잔인하게만 들렸습니다.

 

이따금 뉴스에서 치매를 앓는 노부모를 모시다 지쳐 노부모와 함께 동반 자살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노인 수발의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경제적 빈곤이 겹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평균 수명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오래 사시라는 말이 이제 덕담이 아닌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장수하는 것은 분명 복인데... 문제는 무병장수가 아니라 유병장수가 대부분이라는 것이지요. 뉴스에서도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연일 떠들어댑니다. 노인 복지 정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잘도 말들 하지요. 윗분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다들 고령화 문제가 분명 심각한 것임을 예전부터 알았고, 지금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도 못합니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런 고령화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과 그 속에 담긴 불편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려 43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입니다. 이야기는 <그>가 사형 판결을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의 사형 판결을 지켜보며 이에 반응하는 여러 인물들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역순행적으로 전개 됩니다.

 

특히 '하네다 요코'라는 인물의 관점이 인상적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인지증(치매)를 앓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이혼녀였고 그녀에겐 아직 어린 아들도 있었지요. 인지증에 걸린 어머니는 정신이 자주 오락가락하며 요코에게 몹쓸 말, 몹쓸 짓을 일삼기도 합니다. 때문에 그녀는 점점 지쳐가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심지어 '구원'을 받은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녀뿐 아니라 어머니 또한 '구원'받은 거라고요. 인지증에 걸린 어머니도, 그리고 어머니를 수발하는 자신도 그동안 너무나 지치고 피패해져 갔기에 어머니의 죽음은 곧 '구원'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그녀의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녀 자신이 이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눈물을 쏟습니다.   하지만 요코는 자연사인 줄 알았던 어머니가 <그>에 의하여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또 <그>가 사형을 선고 받을 때에도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그>로 부터 '구원' 받은 것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그녀를 우리는 과연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요? 만약 내가 요코같은 상황이었더라면... 나도 요코처럼 생각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을 자각하고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반면 이 소설에서 탐정 역할 비슷한 것을 맡고 있는 '오토모 히데키'라는 인물도 있습니다. 그 또한 아버지가 연로하시고 하반신을 제대로 쓸 수 없어 개호(일본에서 일상생활에서 환자 혼자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가 필요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재력가로 초호화 개호시설에 입주하게 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고, 학창 시절엔 엘리트였고, 자라서는 사법고시에 패스 검사가 되었지요. 즉, 요코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는 인물이지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 그런 삶의 과정을 거쳐서인지 '오토모'는 모든 인간은 착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성선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추악한 범죄자도 결국엔 '죄책감'이란 것을 갖게 마련이고, 그 죄책감의 실체가 곧 '인간이 선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에게 '살인으로 구원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지요. <그>는 그가 한 행위들에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거든요. 때문에 작품 말미로 갈수록 그는 <그> 때문에 점점 혼란스러워 합니다. 무엇이 옳은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하는 '오토모'를 통해 아마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오토모'와 같은 혼란을 겪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사회 의식'만을 잔뜩 담아 놓아 미스터리한 요소는 거의 없는 게 아니냐구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솔직히 작품 초반을 읽을 때 저는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을 보고 '어라! 이건 너무 단순하고 뻔하잖아.'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아, 이 작품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보다는 역시 사회의식을 담는 데 치중한 소설이구나.'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그건 제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여러 인물들이 겪는 관련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하나로 모아지고, '오토모'가 그 사건에 점점 접근해 가는 과정이 꽤나 긴강감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와 <그>가 만든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을 때는 보기 좋게 크게 한방 먹고 말았지요. 사회 의식 뿐 아니라 '미스터리'의 요소에도 굉장히 충실한 작품이었던 거지요. 때문에 요근래에 읽었던 그 어느 미스터리 소설보다 가장 빠르게 읽히면서 또한 가장 깊게 읽혔던 소설입니다. (소재는 전혀 다르지만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를 읽을때와 비슷한 감각으로 읽어나갔습니다.) 왜 그 많은 심사위원들이 극찬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 의식'과 '미스터리'의 두마리 토끼을 전부 잡아버린 아주 아주 훌륭한 '사회파 미스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옛 조상님들은 가장 큰 소원 중 하나가 '장수'였었습니다. 때문에 장수를 축하하고 축복하기 위해 환갑잔치, 고희연 같은 것을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평균연령 80세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옛 조상님들이 본다면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이상 '장수'가 '축복'이 아닌 세상이 도래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앞서서 말했던 것처럼 딱히 이에 대처하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그렇더래도, 체념해선 안되겠지요.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해봐야할 것입니다. '장수'가 '축복'인 세상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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