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매지 > 퍼플라인 1 中
퍼플라인 1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지음, 김청환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5년 8월
품절


바로 그때 그 그림이 제 눈을 찌르는 게 아니겠어요? 전에는 그 그림이 왜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일까, 그 이유를 나중에도 자주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하여튼 제가 거기에 간 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전에 갔을 때에는 그 그림이 저의 흥미를 끌지 못했겠지요. 하기야 '눈은 정신이 질문으로 깨울 때까지는 자고 있는 법이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책들도 이와 같습니다. 어떤 책을 읽고 별 관심 없이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어느 날 다시 꺼내어 보고는 그제야 그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과 같지요.-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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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단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환상박물관 - 이미지와 도상으로 읽는 문화사
김장호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책 표지에 작게나마 써있는 것처럼 "이미지와 도상으로 읽는 문화사"이다. 환상박물관이라는 큰 제목 아래, 상상관, 예술관, 지역관, 역사관, 종교관, 문화관으로 나눠진 각각의 소제목들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제목만 봤을 때는 흥미 위주의 책이 아닐까 싶어서 그냥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빌렸는데, 읽다보니 처음에 내 생각은 반은 옳았고, 반은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림과 사진을 곁들여서 쉽게 어떤 사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고, 세부적인 주제도 현실과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아바타, 엽기와 같은 근대적인 문화는 물론이거니와, 로마 군단, 마야문자, 샤머니즘 등 오랜 세월이 지난 문화까지도 설명이 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한 권의 책 속에서 여러가지 주제를 다루다보니, 그 지식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다는 것이 아쉬웠다. 심심풀이로 읽고 싶을 때, 더불어 뭔가 잡다한 상식을 남기고 싶다면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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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딸기 >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과학적' 반론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표지에 '퓰리처상에 빛나는'이라는 수식어가 자랑스럽게 붙어 있다. 자랑할만 하다. 무슨무슨 상을 수상했다 하는 책들을 쉽게 볼 수 있지만, '퓰리처'라는 말이 붙은 책중에서 별볼일 없는 책은 없었다. 나의 짧은 경험으로 봤을 때, '퓰리처'가 붙은 이 책은 필히 훌륭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책을 펼쳤고, 책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아마도 내게는 이 책이 '올해의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재미와 밀도를 동시에 갖춘 책이고, 영화 식으로 말하면-- 오락성도 작품성도 모두 별 다섯개 짜리다.

생리학박사인 저자는 '과학자'다. 우스운 정의 같지만 이 책은, 과학자인 저자가 세계사를 과학적 관점에서 다시 쓴 책이라고 정리하면 되겠다. 저자는 한 뉴기니인의 질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째서 뉴기니인들은 훌륭한 발명품을 만들지 못했을까? 어째서 뉴기니인들이 유럽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유럽인들이 뉴기니를 정복하게 됐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갖고 있을 역사적 불평등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에서 저자는 출발한다.

저자는 고고학, 고생물학, 진화생물학, 지질학, 기후학 등을 아우르는 학제간 연구의 성과물을 종합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구세계(유라시아)에 비해 인간의 정주가 늦어졌던 신세계(남북아메리카/오세아니아 등등)에서는 인간의 도래와 함께 대형 포유동물이 멸종했고, 따라서 동물의 가축화와 식물의 작물화가 늦어지거나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인구규모의 차이와 함께 사회/정치조직의 발달 수준에서도 차이를 불러왔다는 것이 저자가 찾아낸 답이다.

 

이렇게 축약해놓으면 '당연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대답에 이르는 과정은 길고도 재미있다. 무엇보다 자료가 구체적이고, 성실한 연구가 뒷받침 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사례들만 놓고 읽어도 '가려진 역사'를 파헤치는 재미가 넘쳐난다.

저자는 중근동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출발한 '농경사회'가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유라시아의 인간을 전염병에 강한 인간으로 만들었는지, 그들이 적응에 성공한 병균들은 어째서 '신세계' 사람들을 학살했는지, 복잡한 정치사회조직을 갖게 된 인류는 어떻게 발명을 자극해 '미개한' 사회들을 전멸시킬 무서운 무기들을 만들어냈는지를 설명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비롯해 뉴기니, 남북아메리카, 중국 등지의 과거 생태계 특성과 역사적 발전 과정 등에 대한 풍부한 설명은 물론이고, 저자의 이야기 솜씨 또한 놀랍다.

 

저자는 "인종차별적 편견에 맞서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지역적 불평등은 어느 '인종'이 열등해서가 아니라, 까마득히 오랜 옛날의 자연적 지리적 자원의 불평등에 기인한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인종차별에 맞선다'는 것이 21세기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의문은, 외국에 대해 얘기할 때 근거도 없이 인종 혹은 민족 운운하는 한국인들의 황당한 습성은 어디에서 나왔나 하는 것이었다. 식민지를 '경영'해보기는커녕 남의 나라 식민지가 됐던 나라에서, '민족'이라는 외피를 쓰고 버젓이 살아 숨쉬는 인종차별주의는 대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인종차별의 직접적인 가해자인 만큼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던 서방과 달리, 그리고 다민족(다인종)국가로서 현실적 고민들을 안고 있는 나라들과 달리, 유라시아 끄트머리에 달린 우리나라는 뭐니뭐니 해도 단일민족 국가다. 인종차별에 연루될 여지가 별로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동남아 사람들은 게으르니깐" "유태인은 머리가 좋아" 이런 식의 발언들에 구토감을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그 희한한 아이큐 테스트를 지금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인종 국가로서 인종 간 지능차이를 수치화해 차별정책을 세울 속셈이 아니라면, 혹은 아이큐를 기준으로 우열교육을 실시할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 뭣 때문에 중고생들을 상대로 아이큐테스트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물며, 어릴 적 많이 들었던(주로 교사들한테) "유태인들은 머리가 좋다"라는 류의 이야기, 더불어 "유태인 다음으로 세계에서 머리가 좋은 것은 한국인들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서라면 여러 가지 반론을 댈 수 있겠지만, 다종다양한 인종적 편견에 맞서 그야말로 '과학적'으로 인과관계를 확실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 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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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딸기 > 마법같은 소설
존재하지 않는 기사 - 칼비노 선집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5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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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 재미있었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놓고 이뤄지는 말장난. 어쩌면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위협.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한다고 사람들이 순진하게 믿고 있는 것에 대한 농담? 말장난 같지만 장난이 아닌 ‘존재의 모든 것’. 흰 갑옷은 멋지다. 수녀는 신심이 깊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바다밑을 걸어다닌다. 기사들은 싸우고 사랑하고 허풍을 떤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혹은, 내가 누구인지 반드시 말해야만 한다고 말한 자는 누구인가. 칼비노가 어째서 끝내주는 작가인지를 알겠다. 멋지다. 구질구질 설명을 붙일 것도 없이,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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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그럼에도 코엘료는..
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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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유는 뭔가? 오랫동안 나는 무언가의 노예로 살아왔다."-(22쪽)

이렇게 시작하는 코엘료의 <오 자히르>는 이란에서 압수되면서 판매금지되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란이 코엘료의 <오 자히르>의 유통을 금지하는 뚜렷한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카톨릭 작가라는 사실 이외에도 이 책의 서두에 나오는 '자유'라는 저 맹목적인 단어와 이 책의 전편을 흐르는 '자유'스러움을 그들의 이슬람 시각기준으로 볼 때 위험한 암호가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떤 장애물에도 구애받지 않고 제 멋대로 말하는 것만큼이나 코엘료도 비교적 자유스러운 줄거리를 내놓는 작가다. 그의 자유분방함은 <11분>을 읽으면서 결론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지니게 만들었고,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내게 있어 코엘료의 소설은 남는게 없는, 건질만한 알갱이의 질량이라곤 사금파리를 담아내는 얇은 접시의 그림이 연상되었다면 '코엘료의 자유'를 너무 박대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코엘료에 관한 시각과는 다르게 이슬람에서는 바로 내가 지적한 그 '자유스러움'이 못마땅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유는 인간의 근본적 제1본능이며, 이념과 종교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는 혁명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상당한 도발성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아무튼, 코엘료의 '자유'에 대한 열정적 반응은 주인공 '나'가 네번째 아내를 만나 사는 동안에도 계속된다. 그는 유명하고 돈이 많은 작가다. 젊은 날에 사회주의 이상을 위해 싸우다가 감옥에까지 갔다 온 그의 자유에 대한 방향은 비틀즈를 듣고 난 이후 마르크스보다 록 음악이 더 신나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쪽으로 회전을 한다. 그는 안정과 편안함과 대다수라는 이름의 오른쪽으로 턴을 한 것이다. 군중 속에서 자유를 누리고 살게 된 '나'

어느 날 종군기자 출신의 아내는 돌연 행방불명된다. 4개국어를 하는 서른 살의 아내는 그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그의 시야로부터 사라지고 만다. 그녀는 몽골계 카자흐스탄 남자와 동시에 사라졌다. 어디로? 왜? 언제?

'나'는 아내가 사라진 이유를 경찰서에서 돌아와 곰곰히 생각해본다. 그녀는 내가 그녀의 친구와 부정의 관계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떠난 것일까. 아니면 그녀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긴 것일까. 그녀는 납치된 것일까. 이 쯤되면 이 책은 추리의 기본적인 물음표를 지니게 되는 구성을 갖추고 있다. 어디론가, 누구와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는 아내를 찾아 나서는 2년 9개월만의 여정. 추리적 구성을 기본기로 설정한 로드무비식의 아내 찾기는 미국판 인디애나 존스를 연상시키지만 코엘료의 글에서는 인디애나 존스의 만화적 요소 대신에 신화적 요소가 있다. 매스컴에는 이것을 두고 '오디세우스'적 기법을 차용했다고 말하고 있다. 풍랑길에서 쉽게 돌아오지 않는 무정한 남편 오디세우스를 20년동안 베틀 앞에서 천을 짜며 기다리는 정절녀 페넬로페의 풍경에 이입하는 이러한 이중적 구도 설정은 상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신화의 힘이 아무리 매혹적이라해도 온갖 정적자들의 음모에 굴하지 않고 정절을 지키며 남편을 기다린 페넬로페와는 다르게 그의 아내는 누구의 아기인지 알 수 없는 아이를 가지며 베틀을 짜고 있었다. 이 마지막 대목에서는 베로니카가 죽기로 결심했다가 일주일 이라는 유예된 시간을 만나면서 살아야겠다는 터닝 포인트를 할 때의 반전처럼 황당한 대목이다. 베로니카는 제법 거창하게 죽는 계획을 세웠다. 별 대단치도 않은 이유였지만 그녀에게는 자살을 결심할 만큼 심각한 우울증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듯(?!!) 베로니카는 죽지 못했다. 이 책에서도 그의 아내 에스테르는 페넬로페처럼 남편이 자신을 찾아와 줄 것을 기다렸지만 조신하게 기다리지는 않았다. 하룻밤의 열정으로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임신을 한다는 마지막 대목은 그러므로 코엘료의 마지막 반전은 다시 내게 새삼스러운 실망감을 주었을 뿐이다.

‘나’를 기다리는 아내는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지역에서 양탄자를 짜고 있었다. ‘나’는 파리에서 그 먼 알마티까지 찾아가 아내를 상봉하게 되는데,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찾아 올 것을 알면서 그를 기다렸다고 말하며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나, 아이를 가졌어."-(443쪽)

2년 9개월동안 찾아 다닌 아내는 외간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을 기다렸다는. 이 책의 주 무대인 중앙 아시아에서의 그들의 신화는 결말에서 코엘료 특유의 달필로 그려진 예상밖의 결말로 독자에게 황당함을 던져준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신화를 차용한 코엘료 자신의 이야기다.

그가 아무리
"언제 생의 한 시기가 끝에 이르렀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한 주기를 마감하고, 문을 닫고, 한 장(章)을 끝마치는 것. 그걸 뭐라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완결된 삶의 순간들을 과거 속에 놓아두는 것이다. 뒷걸음질할 수 없다는 걸, 어떤 것도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나는 서서히 이해하고 있었다."-(227쪽)

고 말을 해도 나는 그의 아내가 왜 그 먼 카자흐스탄까지 가야 했는지, 가서 왜 돌아오지 않고 그 곳에서 남편을 기다렸는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이해 할 수 없다. 아니 코엘료라는 다단한 자아분열을 가진 작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의 <11분>에서 마리아가 브라질을 떠나 돈 벌이를 위해 파리로 '순례'의 길을 떠난것이 차라리 더 쉽게 이해되는 쪽이다.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 있어야 하오. 그러면 매일매일이 달라지니까"-(275쪽) 길을 떠나는 것은 코엘료 글의 주 모티브다. 그는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또는 떠날 수 밖에 없는 요건을 서두로 시작하지만 그가 그린 길의 끝에 다다르면 나는 상당히 복잡한 심경이 되고 만다. 차라리 그의 길을 함께 걷는 동안 길에서 만나고 체험하며 사유하는 풍경이 더 낯익고 가깝게 다가오며 이해의 과정에서 난이도가 쉬워진다. 그러나 그의 길의 종점에 서면, 그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결론 앞에서 털썩 주저앉고야 만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과 '자유'라는 중독성은 무엇일까. 사랑이란 그대에게, 나에게 향하는 여행이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려본다면 진정한 자유의 사랑을 찾아서 떠난 그곳에서 그 부부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온 후 무엇이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인지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때의 반복되는 지루한 삶을 잠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고 이 책의 소감을 매듭짖는다면 나의 코엘료 읽기는 야박하기 그지없다.

“나는 ‘말[言]’이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가장 가까운 섬으로 항해를 떠나기로 한다. 가는 도중에 파도와 바람과 폭풍우를 만나지만, 나는 계속 노를 저어 나아간다. 지쳐서 힘이 다 빠져버린 뒤에야 내가 항로를 벗어났음을, 배를 대려 했던 섬이 수평선에서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중략....파도가 왜 그를 그가 다다르고자 꿈꾸었던 저 섬이 아닌 이 섬으로 데려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98쪽)

코엘료의 사유를 요구하는 달필과 수도자 같은 철학적인 문장과 여성취향적인 문체에 때로는 감탄을 하면서 여전히 이 작가의 이야기는 나를 어렵게 만든다. 그가 지정해 준 섬이 아닌 전혀 다른 섬에 다다른 내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난 아직 인정 못하겠다.

왜?
그의 글은 피카소 그림만큼이나 여간해서 친숙해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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