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공식품 : 음식이 아닌 음식에 중독되다>를 읽으면서 먹는 걸 살 때 원재료명을 꼭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먹은 서울우유 플레인 요거트는 원재료가 우유랑 유산균으로 굉장히 단순했다. 그런데 냉장고에 굴러다니고 있던 또 다른 요거트 원재료에는 젤라틴, 유화제 같은 성분이 적혀있었다. 원재료가 단순하지 않아서 그런가 왠지 맛도 별로인 것 같고. 엄마도 나도 그 요거트에는 손이 안 가서 서울우유 요거트만 먹었다.
저녁에는 올리브영에 들렀다. 세일한다길래 뭐 살 거 있나 해서 들른건데 살 게 없었다. 립스틱도 파운데이션도 흥미를 잃은지 오래. 다만 바디로션 같은 거 세일하면 하나 사려고 했는데 검색해보니까 쿠팡에서 사는 게 훨씬 쌌다. 마실 거라도 사볼까 해서 냉장고쪽으로 향했다. 맥주랑 얼그레이 하이볼이 세일 중이길래 두 개를 들고서 원재료명을 확인했다. 얼그레이 하이볼에는 주정, 백설탕, 오크칩, 구연산, 향료 등이 들어있었다. 오크칩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더니 하이볼 향 낸다고 집어넣는 원재료인 듯 싶었다. 되게 건강한 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못먹을 화학약품은 없는 것 같아서 일단 하이볼은 겟. 맥주의 원재료명을 봤는데 얘는 훨씬 복잡했다. 일단 내가 잘 모르는 화학약품의 이름이 보였다.
네이버 검색해보니 얼그레이 하이볼은 엄청 맛없다는 불호평이 많고 맥주는 맛있다는 평이 많았는데 나는 하이볼을 구매했다. <초가공식품>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원재료명 따지면서 음식을 구매하는 일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으나 일단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만큼은 '음식이 아닌 음식'을 구매하기가 매우 꺼려졌다. 하이볼이랑 같이 먹을 과자도 사지 않고 집에 와서 한라봉이랑 호두를 으적으적 씹어 먹는 중이다. 평소 같았으면 봉지과자를 까놓고 하이볼을 즐겼을텐데 말이다. 한라봉과 호두는 음식이고, 온갖 화학 약품을 버무려놓은 과자는 '음식이 아닌 음식'이라는 생각 때문에 도저히 과자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요지는 이렇다. 인간은 스스로 먹는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조절 기제를 타고 태어난다. 그래서 신체는 자신에게 맞는 적정한 몸무게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초가공식품의 등장 이후로 비만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초가공식품이 칼로리가 높다거나 지방 함량이 높다거나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초가공식품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즉 실험실에서 탄생한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초가공식품은 인간의 섭식 조절 능력 자체를 고장낸다. 그리하여 초가공식품에 중독된 인류는 '음식 아닌 음식'을 끝없이 갈망하게 된다는 것.
이런 식의 주장에 또다른 반론이 있을 수도 있으나, 내가 직관적으로 느끼기에는 이 책의 주장에 일견 타당성이 있다. 인류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실험실에서 탄생한 분자들을 먹는 게 몸에 뭐 그리 좋을 게 있을까. 가습기 살균제 사건 때도 느꼈고, 더 멀게는 방사선의 위험성을 모르고 방사능 음료를 판매한 사건에서도 느끼지만, 나는 일단 너무나 새로운 것에는 경계심을 갖는 편이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도 제로 열풍에 늘 의심을 품고 있었다. 콜라가 몸에 나쁘면 콜라를 끊어야지, 그걸 대체해서 제로 콜라를 먹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나는 어쩌다가 탄산음료가 먹고 싶으면 차라리 오리지널을 마신다. 설탕은 그래도 자연에서 뽑아내기라도 하지, 단맛을 내지만 칼로리는 없는 저 성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선뜻 손이 안 간다. 평소에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이 책의 주장에 더욱더 감화가 되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제로 음료는 불신하면서 과자 중독자로 살았던 나, 정말 모순덩어리였다...ㅠㅠ)
요즘 나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도 그렇고 아주 친하게 지내는 지인도 그렇고 다들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먹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각자 주장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지만, 어쨌든 공통점은 딱 하나. 질 좋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들 왜 이렇게 먹는 걸 신경쓰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조금만 신경을 놓으면 안 좋은 음식들을 먹기가 너무 쉬운 환경에 놓였기 때문인 듯 하다. 나만 봐도 그렇다. 요리하기가 싫으니까 온갖 화학 약품이 들어있는 밀키트를 사먹고, 밥 대신 과자를 먹는 일도 다반사였으니까.
먹는 걸로도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말이 있다. 건강하게 살려면 약에 기댈 생각하지 말고 먹는 것부터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어차피 평생 살 수는 없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데 식생활이 망가지면 반드시 건강을 해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과자는 끊을 수 없겠지만 밀키트는 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 하기 싫으면 야채 삶고 고기 구워서 소금 뿌려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올한해 목표는 가짜 음식 말고 진짜 음식으로 내 몸을 만드는 것. 초가공식품을 싹 끊을 수는 없지만(과자 없이 살 수는 없다ㅠㅠ) 서서히 멀어지고 싶다. 음식 아닌 음식들, 그동안 즐거웠고 앞으로는 적게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