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유튜브에서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자주 찾아듣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도 마이클 잭슨은 워낙 슈퍼스타였기 때문에 유명한 노래들은 대충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각 잡고 집중하고 들어보니까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제일 많이 찾아 들은 노래는 '빌리 진'이랑 '데인저러스'인데 자꾸 머릿속에 '데인저러스!!' 가사 맴돌아서 미치겠다. 진짜 제대로 후크송. 


저녁 산책할 때는 윌라 오디오북을 듣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 책 뭐 없나 살펴보다가 <마리 앙투아네트 :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있는 거 보고 바로 듣기 시작했다. 역시 츠바이크. 문장들이 기가 막히다. 산책하면서 오디오북으로 듣는데도 내가 막 긴장돼서 미칠 것 같았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돈 펑펑 쓰면서 프랑스 국민들에게 미움 받는 장면에서 '제발 사치 멈춰!'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들이 단두대로 갈 운명이라는 걸 다 아는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이 책을 들으면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때문에 프랑스 왕실이 망했다'는 편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중국 역사를 보면 항상 나라가 망한 게 여자 때문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경우가 많았다.(ex. 달기, 양귀비...) 오죽하면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아름다운 미인)'이라는 단어까지 생겼을까.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그런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실눈을 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치는 당연히 했겠지만 마리 앙투아네트 한 명 때문에 왕실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을까?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친 목걸이 사건을 보면 원흉은 루이 15세다. 그가 자신의 첩인 뒤바리 부인에게 주려고 엄청나게 화려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주문해놓고 갑자기 죽었다. 보석상은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줄 사람을 찾다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고객을 찾은 거다.(하지만 실은 잔느라는 여인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사칭해 목걸이를 구입하고 처분해버림.) 이것만 봐도 루이 15세의 사치가 장난이 아니었을 거라는 감이 오는데 왜 항상 사치의 아이콘은 마리 앙투아네트여야만 했을까. 나라가 망하면 망하기 직전에 나라를 쥐락펴락 했던 여인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아마 루이 15세 때 혁명이 일어났다면 루이15세의 정부인 뒤바리 부인이 온갖 욕을 다 먹었을 게 뻔하다. 이런 게 정말 답답한 부분.

어쨌든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은 정말 재미있었다. 이 책 다 끝내자마자 바로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유의 장미>를 펼쳤다. 언젠가 다시 볼 일이 있을줄 알고 전자책으로 구비해놨었다, 후훗!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는 내 기억 속에서 내가 엄마한테 사달라고 조른 첫 번째 책이다. 서점에서 두꺼운 세 권짜리 만화책을 사들고 나온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프랑스 혁명이 뭔지도 모르면서 이 만화책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그 당시에는 1권이 제일 재미있었고 2권은 쏘쏘, 마지막 3권은 거의 펼쳐보지도 않았다. 삼부회의, 혁명 이런 단어들이 뭔지 이해하지도 못할 때였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옷이랑 머리 너무 예쁘고 오스칼 멋있어서 만화책 보던 시절ㅋㅋㅋㅋ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부터 느꼈지만, 사실 이 책은 마지막 프랑스 혁명 파트가 찐으로 재밌다. 초반에 마리 앙투아네트와 뒤바리 부인의 기싸움, 잔느의 목걸이 사기 사건은 '오호 재밌다' 이 정도라면 프랑스 혁명 파트는 '찢었다, 미쳤다' 이러면서 보게 된다. 특히 오스칼이 왕실 근위대를 뛰쳐나와서 프랑스 위병대에서 근무하면서부터는 진짜 너무 재미있다. 자매 중 제일 예쁜 막내딸로 태어나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군복을 입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제일 가까이에서 모시는 왕실 근위대장으로 근무하다가 계급, 신분 이런 걸 모두 뛰어넘고 자신의 그림자와 같았던 앙드레를 남편으로 선택하더니 프랑스 혁명에 투신해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이런 여성 캐릭터! 정말 전무후무하다.


요즘 <베르사유의 장미>를 뮤지컬로도 만들어서 공연하고 있나보다. 뮤지컬은 전혀 안 보는 사람이라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오스칼 캐릭터가 무매력이라는 평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뮤지컬에서 오스칼이 매번 화만 내고 소리만 지르고 있다고ㅠㅠ만화책 보면 오스칼 진짜 개멋있는데 말이죠. 말 안 듣는 프랑스 위병대 군인들까지 휘어잡은 카리스마...나의 오스칼...ㅠㅠ.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다 듣고 나서는 요즘<나의 눈부신 친구>를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다. 이것도 진짜 엄청 재미있다. 오디오북을 들을 때 기본적으로 문장이 길지 않고, 묘사보다는 스토리 중심의 책을 고르는 게 필승 전략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 책이 딱 그렇다. 문장이 간단하고 '나'와 친구 '릴라'를 중심으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다만 등장인물이 많아서 헷갈린다는 게 흠.)


그런데 똑같은 분량을 소화한다고 쳤을 때 오디오북으로 듣는 것보다 전자책으로 읽는 게 훨씬 더 시간이 적게 걸린다. 이 책도 오디오북으로 듣다가 갑자기 전자책이 궁금해져서 밀리에 있는 전자책을 펼쳤는데 말도 안 되게 빠른 시간에 더 많은 내용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녁 산책 시간은 어차피 책을 읽을 수 없는 시간이기때문에 그 시간에 오디오북을 듣는 건 나름 뜻깊은 일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네 권짜리 책은 도저히 제대로 읽을 엄두가 나지 않기에 오디오북은 정말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요즘에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초기작부터 순서대로 읽고 있다. 읽으면서 느꼈다. 이 사람 혹시 잘 배운 변태 아닐까...? 책들이 어딘가 다 이상하다ㅋㅋㅋㅋ<검은 개>는 멀쩡한 편인데 <이노센트>는 읽다가 깜놀했다. 갑자기 토막...이요? 단편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차마 언급하고 싶지도 않은 소재들로 가득 차 있다.


이언 매큐언, <속죄>의 원작자로만 알고 있었던 이 작가의 초기작이 이렇게 위험한 소재를 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얼마 전에 읽었던 <견딜 수 없는 사랑>이 너무 재밌어서 초기작부터 읽으려고 했던 건 뿐이었는데,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악마의 재능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까. 글은 너무나 내 취향이라서 계속 읽을 예정이기는 한데...와...후아...정말 지독하다. 이언 매큐언 초기작은 조심하세요. 하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읽을 예정이기는 하다. <속죄> 이후부터는 소재가 좀 무난해진다는 평이 있으니 앞으로는 지뢰밭이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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