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실용서이다. 그 실용의 범위가 기획의 단계에서 대사의 제련까지 이르고 있다.

이제 막 한두 권의 대본을 완성해서 프로듀서나 연출에게 읽혀 본 작가가 있다고 치자. 그 작가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야기를 그들로부터 들었을 테지만 한마디로 줄인다면 '재미가 없다.'라는 말일 것이다. 문제는 프로듀서나 연출가들 대부분이 대본이 재미가 있고 없음을 분간하는 능력은 있지만, 개선안을 내어 줄 재능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벽에 부딪힌 작가들은 결국 그 대본을 벽장에 영원히 가두어 둔다.  

그런 경험을 지닌 작가들에게 이 책은 무척이나 유용할 것이다. 도대체 나의 대본이 왜 재미가 없는지, 내 씬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내 대사는 어째서 창의적이지 못한지 그 작가들은 영원히 답을 알지 못한다. 이 책을 꼼꼼히 읽으면 눈치가 빠른 작가들은 자신의 문제점을 눈치 챌 수 있다.  그 후 벽장에서 먼지가 앉은 대본을 영원히 폐기할 것인지 다시 새로운 수정을 할 것인지는 그 작가의 재능에 달려있다.

일본의 작가 가시와다 미찌오는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알 수 있는 미묘한 노하우를 무척이나 쉽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 노하우들을 90년대를 휩쓴 명작들을 예로 들어 설명해준다.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는 더욱 공부의 효과가 클 것이다. 다만, 90년대에 나온 책이라 대부분의 서점에서 품절이 되어 있다. 출판사가 망하지 않았다면 다시 내 줄 것을 요청할 가치가 있다. (2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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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TV드라마의 대본이나 영화의 극본을 쓰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도무지 아는 바가 없어서 서점에 나가 책을 한 권 고른다면 사이드 필드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는 바로 그런 용도에 적합한 책이다. 기초 중의 기초에 해당하는 정보를 주고 있다.

'기초 중의 기초'란 표현의 뉘앙스는 너무 기초이기에 읽지 않고 지나가도 괜찮다는 말일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이 분야의 수업을 들었다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할 수도 있는 내용이다. 반대로 '기초 중의 기초'라도 공부가 필요한 사람들에겐 이책이 유용할 것이다.

사이드 필드는 관객의 흥미를 돋울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서 시나리오 작법에 대한 대강을 이야기한다. 극본의 집필에 있어서 금과옥조격인 문장들이 발견된다. '10분 안에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라'. '드라마는 갈등이다'라는 표현이 바로 그러하다. 그러나 그런 선언적인 명제에서 더이상 친절하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은 후학들은 곧 더 많은 글짓기의 방법에 대한 갈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 작법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도 '번역'에 대한 기본은 많이 부족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99년도에 나온 증보판을 구입했는데 사실 이 책을 완독하는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여러 곳에서 직역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매끄럽지 못한 문장들이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원서를 구입해서 비교하며 보았다. 번역자가 쉽고 단순하게 쓰인 영어를 복잡하고 어렵게 번역하는 재주를 지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Needs'라는 단어를 '욕구'라고 옮기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터인데 '필요성'이란 단어를 골라 전달이 모호해지는 부분도 발견했다. 역자가 시간이 많으시다면 다시 한번 손을 봐주셨으면 한다. 혹 최근판에서 번역에 개선되었다면 알려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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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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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는 개인의 인성이 완성되는 시기입니다. 부모의 궤도에서 이탈하는 시점이기에 외계의 새로운 자극들에 맞서기 시작합니다. 보호막이 사라지고 혼자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하는 십 대의 불안한 정서를 온다 리쿠는 소설의 재료로 잘 버무리는 재능이 있습니다.

주인공 리세는 '해리 포터'처럼 그 '학교'로 전학을 갑니다. '해리 포터'의 마법 학교처럼 이상한 캐릭터들과 이해하지 못할 사건 속에서 리세는 적응하고 싶어합니다. 자신을 향한 이해하지 못할 호감과 적개심이 리세에게는 알지 못할 공포가 되어 다가옵니다. 그 공포를 견디는 리세의 주변에서 학생들을 죽어가고 실종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사건이 리세를 향해 있기에 수수께끼를 풀고자 하는 행보는 더욱 긴장을 불어 일으킵니다. 그러나 리세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수수께끼는 소설의 마지막에 가까워져야 만 알 수 있습니다.

순정 만화를 보는 듯 시각적으로 독특한 세계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 불안하게 아름다운 곳을 채우는 여러 인물들의 움직임, 그리고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사건의 속도감에 한 눈을 팔 틈이 없어지는 재밌는 이야기입니다. 비바람 끝에 갑자기 나타난 무지개처럼 소설의 결말이 황급하기에 당황스럽습니다. 그러나 무지개처럼 영롱한 재미가 있습니다.

불안한 십 대들은 자신을 둘러 싼 세계을 여러가지 환상으로 바꾸고 과장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고 합리화합니다. 그 환상을 탈출구로 삼기도 합니다. 온다 리쿠는 어른이 되어도 그러한 상상을 할 수 있는 특권을 지녔나 봅니다. 그 특권으로 여러 사람들이 즐겁게 놀러 갈 수 있는 온다 리쿠표 테마 파크를 만들었습니다. 순정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테마 파크에 푹 빠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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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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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이누가미 사헤가 죽으면서 남긴 유언장은 이누가미 일족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예상과는 달리 세 명의 외손자에게 유산이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누가미 사헤는 그가 존경하던 은인 다이니의 손녀 다마요가 배필로 택한 외손자에게 자신의 재산을 주는 특별한(?)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그가 이렇게 복잡한 유언장을 만든 이유는 소설 후반부에 알 수 있습니다. 

이누가미 사헤가 이복으로 낳은 세 명의 딸과 그 아들들은 각자의 이익을 도모하려 긴밀한 움직임을 시작합니다. 패전 직후 귀환하는 첫째 손자 스께끼요가 그로테스크한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데 이때부터 이야기는 급물살을 탑니다. 과연 첫째가 진짜 스께끼요인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는 일족들로 점점 이야기는 흥미로워집니다.

2차 대전에 일본이 패한 직후를 시대로 씌였고 소설이 나온 시기도 비슷한 때인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의 이끼가 얹혀져 있는 만큼 최근 추리소설과는 작법에 차이가 보입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과 관찰자의 시점을 오가는 작중 화자의 목소리가 오랜만이라 혼란스럽습니다. 사촌 간에 결혼할 수 있다는 일본의 제도가 한국 독자들에게 어색한 기분을 주기도 합니다. 예상 외로 당연한 범인이 나와 작가와의 '범인 찾기 게임'에서는 저는 오히려 무릎을 끓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사건과 그 연결고리 때문에 연속극의 다음 회를 몸달아 기다리는 것처럼, 독자들을 계속 유인해 다음 장을 넘기게 합니다. 아마 잡지에 연재한 이야기라서 이런 구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년 탐정 김전일이 항상 할아버지라고 주장하는 탐정이 이 소설에 소개된 긴다이치 코스케라고 합니다. 탐정으로서는 머리를  긁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을 보이진 않습니다. 그러나 잘 기억하고 주어진 정보를 종합하여 분석하는 탐정으로서의 전형성이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소설에 없는 괴기함이나 섬뜩함이 소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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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 경제학 - 30대를 위한 생존 경제학 강의
유병률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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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경제학]이란 제목을 보고 이 책을 읽었다면 당황할 수 있습니다. 서른 살 먹은 사람들을 위한 특화된 내용을 다루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서른 살을 훌쩍 뛰어넘은 제가 읽기에도 이 책은 흥미로웠고 유용했습니다. 그래서 삼십 대가 아니라고 이 책을 고르지 않는 것은 경솔할 수 있는 판단입니다.

대학에 다닐 때아주 재미없는 경제학 원론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대문인지 경제에 대한 저의 지식은 고교시절 사회시간에 배운 정도에서 머무른 지 한참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언론의 경제란에 꽤 중요하게 나오는 단어들, 예를 들어 출자총액제한이니 지주회사니 순환출자 같은 용어가나오면 왠지 숨이 턱 막이고 거리감이 생기곤 했습니다. 5월 초의 연휴를 맞아 작심하고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덕분에 우리사회를 보는 시야가 밝아진 느낌이 듭니다.

[서른 살 경제학]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른 살'이나 '경제학', 그 어느쪽에도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기본적인 어휘들과 경향을 알려줍니다. 저자가 신문기자인 만큼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알기 쉽게 전달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런 '쉬운'방식을 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자는 앞으로의 한국 경제를 '저생산성', '양극화', 그리고 '고령화'라고 요약합니다. 한국 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를 10km 정도의 고도로 비행하면서 일목요연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조망을 통해 한국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노후를 걱정해줍니다. 한국 사회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증후들을 분석하고이후의 생존 방안을 정리해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투자'가 앞으로는 실리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제시하며 앞으로의노후 자금 마련과 투자 방안에 대해 저자 나름의 해법을 정리합니다.

너무 쉽고 명확하게 단언을 내려 살짝 의심이 가기도 하지만, 이 책을 계기로 가정 경제나 한국 경제에 대해 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합니다. 경제 기사 읽기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1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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