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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어는 사회의 의식을 지배한다.
한 언어가 그 사회 구성원의 의식세계를 어떻게 지배하는지 알아보려면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 금세 깨닫게 된다. 본의아니게 영어로 작문을 해야하는 처지에 빠지면서 나는 영어와 한글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영어는 직설적인 언어였다. 모든 에세이는 우리 식으로 따지면 두괄식인 형태였고 형용사와 부사를 남발할 경우 글이 모호해 졌다. 반면 한글은 본의를 숨기고 조심스러워하는 우리의 둘러치기식을 잘 표현한 장황한 언어일 수도 있다. 그런 장황함을 이렇게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문자가 한글이었다.
이 제는 내 피부같이 자연스레 내 삶 속에 달라붙은 한글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것은 영어로 생활할 수 밖에 없었던 얼마간의 기간, 말과 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모습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정명의 소설 [뿌리 깊은 나무] 덕분이었다.
집현전에서 발생하는 학사들의 죽음을 채윤이라는 중인이 추적하기 시작한다. 채윤의 시선을 밞아 나가던 독자들은 곧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이라 일컫는 세종 조의 구중궁궐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음모에 발을 담그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비슷하게 '고군통서'란 금서를 둘러싼 이야기라 생각했으나 어느새 소설은 독자적인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그 설득력은 세종의 개혁 정치를 둘러싼 갈등 관계에서 비롯한다. 사대선린 정치와 조선의 자주성을 둘러싼 갈등에서도 발생한다. 그러나 가장 큰 갈등은 경학을 숭상하는 보수파와 실용을 숭상하는 이용후생학파의 대립점에서 발생하기 시작한다.
역사와 허구가 뒤범벅이 되어 어느 것이 역사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작가의 재주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때문에 이 소설은 그 어느 픽션보다 개연성을 지녀 독자를 사로 잡는다. 채윤과 소이의 애정선은 작가가 좀 비약을 한 듯 싶고 사실 모든 희생자들이 증거들을 질질 흘리고 다녀 미스테리 구조로는 취약함을 보이기도 한다. 결국 주인공을 제외한 주요인물들은 모두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다고 봐야기에 범인을 향한 소설의 견인력은 약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글을 대상으로 한 작가의 치밀한 취재, 그 취재를 통해 나온 엄청난 정보와 역사의 재해석은 독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재밌게 읽은 소설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이 책을 돌려 읽으며 스스로를 세종과 집현전 학사로 여기며 위안을 받았다는 풍문이 있기도 했다. 그들이 과연 이용후생을 목표로 한 실용주의자였는지 이상과 이데아에 충실한 보수파인지 나는 모호하게 느끼고 있지만 그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었다면 그것은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이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