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투하쳅스키가 체포된 게 틀림없으며, 대원수의 경력은 끝장이 났고 그의 목숨 역시 끝났음을 깨달았다. 심문은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하며, 대원수 주위의 모든 이가 곧 지상에서 사라지게 되리라는 것도, 자신이 결백하다 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의 대답이 진짜인지도 상관없었다. 결정된 일은 결정 된 것이다. ...............71쪽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는 부르조아를 찬양한다고 출근하듯이 심문을 받으며 그날도 약속된 심문 장소에 갔다가 자신의 고통이 한 호흡 멈춰졌음을 알게된다. 자신을 반역자라고 몰던자가 돌연 반역자로 몰려 그자리에 있지 못하게 된것이다. 그후로도 그는 언젠가는 자신에게 닥칠것이라는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얼음 판을 딛는 심정으로 살아간다. 


 그는 죽은 사람이었다. 그는 니타에게 들은 대로 다 말해주었고, 자신을 안심시켜주려 하면서도 그녀 또한 자신을 죽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가까운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침착해야 했지만, 넋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꼬투리가 잡힐 만한 것은 죄다 불태웠다 - 하지만 일단 인민의 적이자 알려진 자객의 동료라는 딱지가 붙게 되면 주변의 모든 것이 다 꼬투리 잡힐 소지가 생긴다. 아예 아파트 전체를 불태우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는 니타, 어머니, 갈리야, 그의 아파트에 드나든 적이 있는 이들이 다 걱정되었다. .....72


공포를 가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그들은 공포가 먹힌다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어떻게 먹히는지도 알았지만 공포가 어떤 느낌인지는 몰랐다. 흔히들 하는 말로, "늑대는 양의 공포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가 상트레닌스부르크의 빅 하우스에서 내려올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동안, 오이스트라흐는 모스크바에서 체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바이올리니스트는 그에게 매일 밤 그들이 자신의 아파트 건물로 누군가를 데리러 왔다고 설명해주었다. 절대로 한꺼번에 잡아가는 법은 없었다. 희생자는 딱 한 명이었고, 이튿날 밤 또 한 명을 데려갔다- 남은 자들, 한시적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공포심을 가증시키는 시스템이었다.결국 그의 아파트와 건너편 아파트에 있는 이들만 제외하고 모든 입주민이 끌려갔다.  .......94


자신의 예술세계를 자유스럽게 지킬수 있는 사람에게 독재체제라고 해서 예술을 버리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실제 겪어보지 않은 경험이란 것은 아무리 책으로 간적접 경험을 많이 한다 해도 같지 않다. 예술가인 내가 국가의 적이 되고 나면 주변 사람들 즉 가족이나 친구들도 그렇게 한 통속으로 몰려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 작품을 연주하거나, 연주한 적이 있거나 제안하는 지휘자, 현악 사중주단 멤버등 한 사람한사람에게 까지 그 악영향이 미친다면 누가 그것을 견딜수 있겠는가? 


우리가 잃었던 지금도 안타까워하는 일들이 생각난다. 특히나 자신으로 인해 주변사람 들에게 피해가 간다 생각하고 부엉이 바위에서 운명을 달리했던 그분이 생각난다. 그리고 또 한사람이 생각나지만 워낙 개인적인 관계인지라...이렇듯 크던 작던 나하나로 인해 주변사람들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올바른 선택이라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깨닫게 될듯하다. 살면서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얼마나 많은 갈등을 하는가. 


도와주겠다는 손길들이 여기저기서 다가오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적처럼 손목과 목에 걸고 다니던 마늘을 발진티푸스 때문이 아니라 권력층, 적들, 위선자들, 뜻은 좋은 친구들 때문에 항상 달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진실을 말하는 예술가들의 용기와 도덕적 고결함은 존경하지만 그리고 부럽기도 하지만 그 부러워하는 이유가 죽어서 살아있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어서라는 이유라면? 더없이 고통스럽지 않을수 없다.


자신을 한밤중에라도 붙잡으러 올까봐 밤마다 가족들과 헤어짐의 인사를 하고 승강기 옆에 다소곳이 죽음을 기다리던 그 공포는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것이 혼자만의 문제라면 나만 죽으면 끝나는 문제라면 그나마도 다행이지만 문제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같으 고리로 연결되어 위험에 처할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이다.반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알고 있던 예술을 음악을 배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음악을 만들어낸 예술가들을...


 그가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 우리 존재의 음악- 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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