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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미술관 - 자기다움을 완성한 근현대 여성 예술가들
정하윤 지음 / 북트리거 / 2021년 2월
평점 :

눈에 띄는 책표지가 출간 초기부터 눈에 들어왔다. 요즘 여성미술가들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재조명되는 것이 참 반갑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부터 여성 예술가들을 다룬 영화도 꽤 여러 편을 봤다.
이번 책에서는 15명의 여성화가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많은 관련 책들을 봤다.
따로 한번 정리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화가들의 목록을 보다가 지난여름 우연히
다른 전시를 보러 갔다가 알게 된 정강자 화가를 알게 되었는데 책에서 소개가 되고 있어서 반가웠다.
책 속에서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화가들의 이야기, 스스로를 예술에 녹여 낸 화가들의 이야기,
엄마로서의 존재감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들의 이야기, 스스로를 확장한 작업들을 이어간 이야기 등
네 가지 주제로 나뉜다.
15명의 화가들 중 이성자, 정찬영, 정강자 등 우리 화가 세명이 포함되어 있다. 정찬영 화가는 전시에서
몇 번 해설했던 화가라 유난히 내게는 친근하고 익숙한 화가다.
책을 읽으며 따라가다 보니 여러 권의 책들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화가별로 따로 정리를 해보고 싶어졌다.
근간에 예술 에세이 꽤 여려 편을 읽었는데 그림도 판 한 장에 개인적인 소회를 담은 책들이 많아서
실망스러웠는데 이 책은 공부하며 읽게 만드는 가이드라인을 저절로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재미있는 건 어떤 분이 책표지가 너무 화려해서 아쉽다고 하셨던데 나는 이 책의
표지만으로도 그냥 소장하고 싶었던 책이다. 역시나 취향은 모두가 다른 걸로!
특히 저자분의 <커튼콜 한국 현대 미술>도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 수시로 보곤 하는데 이 책도 읽으면서
참 좋았다.
많은 여성 예술가들의 경우 작품성보다 여성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어려움을 갖는 경우가 많다.
책에 소개된 예술가들의 경우에도 남편의 그늘에 가려지거나, 저평가 된 예술가들의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는데 오랜 관습에 따른 한계를 극복해 가는 일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싶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작업세계를 구축해 간 예술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회화작가이자 패션디자이너와 모델로도 활동을 했던 소니아 들로네.
순수회화와 패션디자인을 연결해서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을 접목하기도 했던 그녀는 남성 중심의 세계
에서 단연 돋보인다. 함께 성장하는 부부 예술가로서의 모범사례를 보여주는 그녀의 행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는 나의 예술을 살아냈다 "라고 했던 소니아 들로네의 행보가 이 시대를 살았던 여자로,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것 같다. 가끔 자신의 한계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곤 했던
상황들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소니아 들로네의 색채 조각으로 표현된 <무도회장 Bal Bullier>은 추상화는 들여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음악이 더해져 경쾌하게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간혹 자신의 작업 영역을 확대해 가는 작가들을 볼 때 인간 수명의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그들의
행보가 어떻게 이어질까 궁금해지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다.
당대의 거장으로 꼽히는 많은 예술가 들과 어깨를 나란히 같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던 마리 로랑생.
그녀는 남성 화가의 모델이 아닌 동료로, 자신의 작업세계를 변화해 갔다.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미라보 다리의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만 기억이 되던 화가는 세월이 흐르며 그녀의 작업세계 또한
재조명되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모성애의 상징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징그러운 거미가 아닌, 어딘지 마음이 찡해지는 그녀의 작품 속 엄마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예술이 주는 힘이 바로 그런 것.
책에서도 소개된 루이스 부르주아의 <망각의 시> 천에 바느질로 작업한 책을 몇 년 전 전시에서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책자를 액자에 펼쳐놓은 그녀의 삶의 흔적이 담긴 재료로 만든 작품.
오랜만에 반갑게 다시 전시의 기록을 꺼내봤다.
우리 화가 정찬영, 실력으로도 인정받았던 그녀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한계와 애환을 담은
그녀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울림을 준다. 절필 선언을 한 이후에도 식물학자인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
다시 붓을 들어야 했던 그녀의 작업에서 전혀 다른 미감을 드러냈던 그녀의 식물 세밀화는 어딘지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귀한 아들의 돌을 축하하기 위해 그렸던 공작이 그녀의 화업의 마지막 작품
이었던 화가 정찬영의 이야기.
방황하고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많은 여성화가들은 치열하게 자신들의 작업을 이어가며 존재의 흔적을
남겼다. 책에서는 15명의 예술가가 소개되지만 좀 더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작가가 후속편을 계속 써 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조용하고 찡하게, 때로는 벅차게 읽었던 한 권의 책. 마지막 장을 덮고 개인적으로는 책에 소개된 화가들
의 이야기를 조금 더 읽고 있다. 조각조각 맞춰가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참 즐겁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