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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편지 ㅣ 에디션F 11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21년 8월
평점 :

궁리출판의 에디션 F 시리즈 < 해 질 녘 보랏빛_ 히구치 이치요>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이다.
조용히 세상을 움직여온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다루는 이 시리즈를 읽으며 페미니즘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을 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1792년 '여성의 권리 옹호'를 출간해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으며 이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에게도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영국 작가이자, 철학자이자 여성 권리 옹호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그녀의 생은 채 40년이 안된다. 무려 250여 년 전의 여행기라는 포맷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행기는 25통의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무엇보다 각 편지의 타이틀만으로도 사색의 장을 연다.

신중함과 우유부단함 사이에 대한 고민은 매 순간 삶과 함께하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우리에게 후회와 아쉬움의 두 가지 중 하나의 감정을 남기게 되는 것의 순환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식 밖의 도전을 해야 할 필요성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의 이 단락만으로도 그녀에게 반해버렸다.
무심하게, 혹은 솔직하고 과감하게 여행의 과정에서 그녀의 감상을 담고 있는 와중에 분명 글은 그 사람
의 내면을 속속들이 드러낸다. 페미니스트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온전한 성인으로 홀로서기 위한 여러
번민들이 단지 글쓴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페미니즘으로 한정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은 사람의 시야를 넓히는 만큼 생각의 폭도 넓히는 효과가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타인의
삶의 공간이나 방식을 통해 경험하고 성장하게 한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이 외에도 훨씬 많지만. 분명
여행은 어떤 의미에서는 수행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특히 딸을 키우는 엄마라면 더욱 여자로서의 딸의 삶이 자신보다는 좀 더 진화
하길 바란다. 원칙에 희생되거나 한계를 빚어내는 상황들에 대한 우려를 작가도 이 책에서 담고 있다.
섬세한 감정을 아껴주고, 자신의 생각을 펼치게 독려하는 과정에서 딸의 행보가 세상의 부적격자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여성이라면 누구나 여전히 느끼고 있을
딜레마라는 점에서 씁쓸해진다. 세상은 정말 변하기 어렵고, 늘 쳇바퀴 같은 돌림노래처럼 반복 중이다.
"나는 평범한 길을 가려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라는 그녀의 말은 능동적인 삶을 살겠다는 그녀의
의지를 잘 드러낸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지만 앞날의 자신의 삶은 선택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행도 했
던 그녀는 세상의 불공정에 대한 의문을 품고 교육사업을 펼치고 적극적인 집필을 이어갔을 만큼 강한
여성이었지만,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한없이 여린 여성이기도 했다.
강한 의지는 사람을 변하게 하고 행동하게 한다는 것을 그녀의 글을 읽으며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더욱 놀라웠던 건 이 책을 쓴 메리 울스턴 그래프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후의 걸작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셀리의 엄마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메리 셀리를 낳고 산욕열로
출산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메리 셀리는 엄마의 글을 읽으며 교감을 느꼈으리라 믿는다.
편지 형식의 여행기를 통해 지극히 사적인 글안에서 교도소 개혁을 비롯한 자유와 평등, 숭고함과 아름 다
움에 관한 미학적 의미와 여성해방과 교육까지 사회의 여러 모순들을 묵직하게 담아낸 그녀의 방식이
너무나도 와닿았던 이유는 그녀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문장의 온도와 적절한 은유가 아니었을까.
무려 250년 전 그녀의 글을 읽으며 인류를 향한 애정을 담아 인간 불행의 총량을 줄이고자 했던 그녀의
열정이 여전히 회고되는 이유일 것이다. 역시 펜은 칼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