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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
김영숙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요즘 1일 1책처럼 1일 1페이지 이런 구성의 책들이 많이 나온다. 처음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는
1일 1작품의 구성이 너무 얄팍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막상 책을 받고 보니
한 페이지에 수록된 작은 그림이지만 해상도가 생각보다 무척 좋기도 했고, 묵직한 책의 무게만큼이나
다루는 범위도 무척 다양하고 재미있다. 총 일주일간의 구성은 작품/미술사/ 화가/장르나 기법/
세계사/ 스캔들/ 신화와 종교 등으로 나뉘어서 알차게 꾸려졌다.
워낙 많은 미술책들이 출간되었고 어느 순간 읽다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비슷한 작품들과 화가들의
이야기만을 반복해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또 이 분야의 한계라고 생각되는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콘셉트로 접근하는 방식은 그림을 보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방식으로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첫 번째는 책 속에 수록된 작품들을 일단 눈으로 스캔하기.
그리고 관심 가는 작품이나 화가의 이야기를 읽는 방법. 혹은 순서대로 일정 분량씩 읽기.
무엇보다 수록된 365작품과 최소한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존 에버렛 밀레이는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한 노력으로 그림 속 모델을 실제로 욕조에
들어가게 해서 심한 독감에 걸리게 하고, 5개월간의 야외 사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혹평에 시달리는
그림을 완성했지만 현재 그 작품은 500역원대의 가치를 가진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아이러니.
과거의 많은 예술가들 중에는 많은 밀레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가장 원초적인 삶의 과정에서 예술은 자연스럽게 탄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에 따라 그 예술의 쓰임이 달라지고 평가가 변해가는 과정을 쫓는 것은 흥미진진하다.
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한 일본화의 장르인 우키요에는 우연한 계기로 유럽의 예술가들을 열광하게 했다.
그림 속의 그림을 통해 당시에 유행했던 미술사를 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일상에서 가장 친숙한 화가이기도 한 마티스는 말년의 건강 적신호에도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다양한
작품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소 생소한 용어이기도 한 데쿠파주는 흔히 종이 오리기 정도로
알고 있는 과정을 칭하는 용어다. 종이를 오린 뒤 색을 칠하거나 색을 칠한 종이를 오려서 다른 종이에
덧붙이는 방식을 말한다. 익숙한 작품의 제작 방식을 알아보는 일은 그림을 접하는 또 다른 재미이다.

미술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르가 바로 스캔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같은 듯 다른 그림을 비교하며
그림이 그려지게 된 배경을 추측하고 상상해 보는 일은 그림을 이해하고 그 시대적 상황들을 반영한다.
그림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 왜 이런 그림이 탄생했는지 따라가보는 과정을 통해 폭넓은 분야의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림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카메라의 등장은 미술사에도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단지 순간의 기록을 남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많은 예술가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는데 그림을 통해 가장
순간포착의 작품을 남겼던 화가인 드가의 시선또한 카메라의 보급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올해 가장 많은 화두가 되고, 되짚어보게 되는 역사의 순간은 바로 페스트와 관련이 있다. 팬데믹 시대를
맞아 돌아보는 과거의 역사는 예술작품에서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베네치아의 페스트 퇴치를 기념해
제작된 작품을 보니 우리도 빠른 시일 내에 코로나 퇴치의 선포를 하길 기대한다.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방식으로 초상화를 제작하는 아르침볼도의 두 작품.
실제로 이 책의 다양한 주제와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퍼즐 맞추기처럼 이어지는 대목들을 발견하는 것이
또 다른 이 책의 묘미이다. 재미있는 작품과 함께 소개된 작가의 자화상이나 초상화들이 등장하여
연계되는 지점이나,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마주하는 순간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림 이야기를
따라가며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
개인적으로 들라쿠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에피소드.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이 작품이 걸린 자리가 가림막으로 가려져있고 한 장의 안내문이 있었다.
바로 다른 지역 미술관으로 순회전시를 떠나 당분간 그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슬픈 소식.
워낙 많은 패러디 작품이 만들어졌고, 미술사에서 또 빠질 수 없는 이 작품은 내게 그런 슬픈 사연이 있다.
이 작품은 실제로 프랑스의 대 문호 빅토르 위고에게 영감을 주어 <레미제라블>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매일매일 보고, 읽는 그림 이야기.
간결하지만 그림과 이야기를 읽다 보니 풍성하고 재미있다. 예술은 실제로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있다. 이 책에 수록된 고전 명화들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면 결국엔 사람과 삶의이야
기임을 알 수 있다. 그림은 그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삶에서 예술이 얼마나 중요하겠냐는 생각들을 많이 하지만 생각보다 예술은 삶의 연장선이다.
작게는 한 화가 개인의, 그리고 시대나 역사적인 사건이 반영된 작품들을 접하다 보면 현대를 사는 우리
에게 생각보다 많은 깨달음을 주는 경우가 있음을 느낀다.
작품을 분석하고, 관련 지식을 아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림을 통해 작은 위안의 순간을 느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소함의 즐거움이 주는 행복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림 보는 일이 즐거운 이유, 그림 읽는 일이 즐거운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