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샷 -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사피 바칼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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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N SHOTS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끼는 설계의 힘

 

 

생전 처음 듣는 단어 '룬샷'

이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1. 주창자를 나사 빠진 사람으로 취급하며, 2.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를 의미하는, 이 책의 저자가 이름 붙인 단어이다.

쉽게 말해 현실성이 없어 보이거나,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시대를 앞서간 시선' 혹은 '새로운 발견' 같은 것들이 이 룬샷에 해당된다.

지금은 없지만 미래에는 생겨날지도 모를 기술이나 약품들, 이미 있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것들의 새로운 용도 변화 같은, 산업과 의학의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올 '지금으로서는 허무맹랑한' 목소리들, 그들의 움직임들, 그들의 질문과 답을 찾는 모든 과정이 룬샷인 것이다.

 

그것은 쉽게 발견되지도, 쉽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러 번 넘어지고, '거짓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끈기와 집념으로 결국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낼 때 그들이 룬샷이었음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고, 어떻게 성장해왔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전쟁과 질병과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밀러의 피라냐는 전형적인 룬샷이다. 가장 중요한 획기적 돌파구가 마련되었을 때 중앙 권력이 거기에 각종 수단과 돈을 쏟아부으며 레드 카펫을 깔고 팡파르를 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획기적 아이디어는 놀랄 만큼 위태로운 처지에 있다. 회의주의와 불확실성이라는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부서지고 방치되기 십상이다. 그 주창자들은 종종 '미친 자' 취급을 받기도 하고, 밀러처럼 마냥 무시되기도 한다. ______ P.22

 

 

역사 속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룬샷의 전형들이 있다.

이 책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지구가 둥글다거나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주장한 혁신적인 사고와 발견을 한 과학자들이나 새로운 의약품을 만들어낸 의학자, 새로운 기술 개발로 세상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수많았던 인물들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도 존재만으로 룬샷일 수는 없었다.

그들을 이끌어주고 보조해 주고 믿어주는 사람들, 그러니까 기업으로 보자면 현명한 CEO가 있었기에 그들이 진정한 룬샷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허무맹랑한 믿음, 엉뚱해 보이는 질문, 실패를 거듭하는 연구, 그 모든 것들을 지지하고 믿어주는 누군가의 힘이 그들에게 믿음을 증명해 보이고, 정답을 찾게 하고, 성공한 연구의 주인공이 되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룬샷에는 반드시 좋은 지지자, 현명한 설계자, 그리고 그들을 현장과 이어줄 중간자가 필요하다.

룬샷의 인물들은 대부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그것만을 위해 달리는 경주마 같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독창적이지만 너무 황당한 의견들을 현실에 제대로 반영해 주고 현실 속에서 그들의 연구의 단점을 파악해서 그다음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역할, 현명한 중간자가 룬샷을 완성 시킨다.

 

그리고 그 룬샷(이를테면 연구자들, 창시자들)과 프랜차이즈(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일단은 창시자들과 대비되는 역할을 맡은 현장이 사람들) 간의 균형을 제대로 유지하는 일이 기업과 나라의 존폐를 결정짓는 시크릿 키가 된다.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룬샷과 프랜차이즈는 너무 다른 길을 걷기 때문이다. 그런 여정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열정적이고 지극히 헌신적인 사람들이 필요하다. 서로 아주 다른 역량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 즉 예술가와 병사가 필요하다. ______ P.250

 

 

저자는 룬샷과 프랜차이즈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술가와 병사로 분리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일단은 인물로 그들을 분리하지만 책 뒤편으로 갈수록 집단과 현상으로도 그들을 표현하기도 한다.

기업 내 예술가의 무리와 병사의 무리로 룬샷과 프랜차이즈를 이해하고 나면 더 나아가 집단과 집단, 현상과 현상으로 이해하기에도 어려움이 없어진다.

그렇게 되기까지 여러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며 그들의 실패와 성공의 시간들을 알려준다.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설명이 이 책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면 나는 절대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패와 성공을 거듭한 누군가의 삶, 그리고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인물과 기업, 제품과 약품들을 통해서 투영해 준 룬샷의 모습은 경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

게다가 챕터마다 핵심을 정리 요약해 주는 페이지가 등장하고, 중간중간 간단한 그림도 함께 실려 있어 조금 더 캐주얼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똑같은' 사람이 어느 맥락에서는 프로젝트를 무산시키는 보수주의자가 되고, 다른 맥락에서는 깃발을 휘두르며 달려가는 혁신가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비즈니스에서는 미스터리일 수 있는 행동 변화가 물리학에서는 상전이라는 괴상한 행동 패턴의 핵심을 이룬다. ______ P.29

 

 

설계자들이 어떻게 구조를 바꾸고, 조직을 변화시켜 룬샷과 프랜차이즈의 균형을 정확하게 잡아내는가에 대한 이해가 완성되면, 그다음은 룬샷이 폭발하는 조직을 설계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빛나는 룬샷을 가지고 있던 기업이 어느 순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게 된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놓쳐버린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왜' 그들은 여전히 빛날 수 없었는가.

무엇이 '혁신적이고 빛났던' 그들을 아이디어를 잃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는가.

혹은 그들의 엉뚱하지만 놀라운 아이디어는 '왜' 묵살당해야만 했는가.

무엇이 룬샷을 사라지게 했는가.

 

그에 대한 답은 직접 책을 읽고 찾아보기를 권한다.

모든 비밀을 다 알려줄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는 현재 경영과는 거리가 먼,

룬샷보다는 프랜차이즈가 훨씬 더 가까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이 움직이는 어떤 패턴과 시크릿 한 힘을 엿본 것만으로도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다.

영원히 룬샷과 먼 삶을 살지도 모르겠지만, 룬샷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때와는 조금 다른 걸음을 옮길 수 있지 않을까.

 

 

 

 

호기심을 갖고 실패에 귀 기울여라

P. 122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내 마음을 많이 두드린 말은 바로 위의 문장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라 엉뚱하고 황당하게 들리는 많은 질문과 아이디어들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이야 아이들도 자라면서 '현실적'인 사고방식에 물들어서 반짝이는 질문을 하는 일이 사라져버렸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당시에 내가 보여준 시큰둥한 반응이 부끄러워졌다.

세상을 바꾼 룬샷의 주인공들도 당시에는 형편없다는 혹평을 들으며, 허무맹랑하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면, 그들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면 그들은 과연 룬샷으로 우리에게 기억될 수 있었을까.

나의 호기심과 실패뿐 아니라 누군가의 호기심과 실패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때 룬샷은 탄생한다.

내가 룬샷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면, 적어도 룬샷을 짓밟고 외면하고 조롱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할 텐데.

아쉽게도 나는 매번 그런 사람이었던 것만 같다.

뒤늦게 반성한다.

아이들의 호기심에 더 많은 불을 지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누군가의 엉뚱한 이야기에 빛나는 눈빛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해.

실패에 냉정하고 호기심을 귀찮게 여겼던 스스로에게.

 

불가능을 믿을 때,

아무도 하지 않은 질문을 할 때,

우리에게 룬샷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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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고… - 보조작가 김국시의 생활 에세이
김국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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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전세 이야기인가 했다.

그러니까 팍팍한 생활 속에서 깨달은 어떤 이야기인가 싶었다.

삶은 고되고, 내 맘대로 되는 것 하나 없고, 전세 기간은 끝나가고, 또 내일은 어떻게 버티나에 관한,

그러다가 그 속에서도 싹이 나고 식물이 자라고 꽃이 피는 그런 이야기겠거니 하고 읽기 시작한 책은 전혀 다른 매력을 폴폴 풍기고 있었다.

 

저자는 방송작가다.

다큐멘터리부터 드라마, 뉴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보조작가로 일해왔다.

그녀가 지나온 사회 초년생의 삶, 보조작가로서의 일상들이 이 작고 귀여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때로는 시니컬하고, 적당한 블랙 유머와 엉뚱함으로 잔뜩 버무린 그녀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그렇다고 가볍지만도 않다.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도 어쩐지 단맛보단 쌉싸름한 맛이 더 강하게 남는다.

생크림을 잔뜩 얹은 다디단 카페모카가 딱 어울린 것 같은 그녀의 일상에는 왜인지 에스프레소의 깊고 쓴맛이 난다.

 

엉뚱한 소녀 같은 그녀의 일상은 로코가 딱인데, 슬프게도 인생은 그녀에게 로코를 허락하지 않은 모양이다.

인생의 쓴맛들을 모조리 삼키며 무던하게 버텨낸 그녀의 지난 일기가 그래서 더 와닿는다.

우리 모두 로코를 꿈꾸지만, 대부분 하드코어 장르에 가까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기에.

가끔은 속을 알 수 없는 일본 영화 같기도 하고.

(이제 영화가 시작되나 보다 했더니 엔딩 시크릿이 올라가던 '4월 이야기'같은.)

 

 

 

 

 

 

애초에 레벨업 같은 건 없었던 거다. 나는 깰 수 없는 지루한 게임기를 손에 쥐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용을 썼다. 내가 물리쳐야 할 어마어마한 왕 같은 건 없고, 입을 나불대며 나를 물어뜯으려 하는 적들만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그냥저냥 살아남고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허름한 배경 안에서 평생 뿅뿅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 옆으로 갔다 그렇게 왔다 갔다만 하다가 실수로 죽지나 말고 살아야 하는 거였다.

P.55~56

 

 

 

이 얇고 작은 책이 수시로 허를 찌르고 뼈를 때려서 웃으면서도 아팠다.

복잡하고 어렵고 난해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생이 이렇게 쉽게도 문장으로 보여질 수도 있구나 싶어서 헛웃음도 났다.

어떤 장르이건 '작가'라는 사람들은 특유의 어떤 섬세함과 날카로움이 있는 건가 보다.

고양이처럼 나른하게 기지개를 펴고, 햇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을 것만 같은 느른한 모습의 저자를 상상했는데, 돌연 순식간에 훅 다가와 어퍼컷을 날릴 때마다 대책 없이 얻어맞았다.

 

허를 찔리며 두들겨 맞으면서도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

아마도 작가의 말들에 너무 동감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공감을 넘어서 완전히 동감하게 되는 쓰디쓴 일상의 조각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고,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전혀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어째서 우리들의 일상은 데칼코마니 같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처럼 '동감'을 외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을 것 같아서, 또 입맛이 씁쓸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은 내가 너무 많은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같다. 왠지 사람들을 속이고 신내림을 받은 척 칼춤이라도 추는 기분이다. 대충 그럴듯하게 흉내만 내도 진짜라고 믿어주니 얼렁뚱땅 넘어가는데 이다음에도, 또 이다음에도 이렇게 넘어갈 수 있을까. 내가 가짜 으른인 걸 사람들이 알아채고 딱지라도 떼면 어쩌지.

P.162

 

 

 

내가 어른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그냥 어른의 이름을 달고 무작정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다들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꼬꼬마가 의아하게 세상을 내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것이다.

 

이상하고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버텨야 하니 하루하루를 어른스럽게 살아보려고 애쓰는 우리들의 진짜 속마음을 덜컥 들켜버렸을 때, 민망하지만 슬금슬금 터져 나오는 웃음.

어른인 척 잔뜩 힘을 줬던 어깨가 스르르 내려앉는 순간.

그런 웃음과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 이 책 속에 담겨있다.

꼬마가 커다란 어른의 옷을 훔쳐있고 있는 모습을 들켜버린 순간의 민망함과 동질감.

야 너두? 야 나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꼬마가 감당했던 어른의 무게가 선명하게 보여서 또 울컥해지는 마음에 콧날이 시큰해지는 순간들.

저자의 일상을 통해, 그 모든 순간의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나에게 행복은 '개'같은 존재였다. 뭐 딱히 별거 없이 밥만 줘도 그렇게 좋다고 헥헥거렸다.

…중략…

학창 시절의 나는 단순해서 행복한 게 아니었다. 삼시 세끼 밥을 먹고 배가 불러서 행복한 것도 아니었고 부모님이 성적표로 혼내지 않아서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불행할 이유가 없어서 행복했다.

P.21~24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했던 시간들.

너무 당연하게 누렸던 행복들.

어렸던 그 시간들을 뒤돌아보니, 그랬다. 이유 없이 그저 행복했다.

행복한 이유가 아니라 사실은 불행할 이유가 없어서였던 건가 보다.

 

더 이상 우리는 그 시절도 돌아갈 수 없다.

 

 

너무 손쉽게 불행과 마주치는 시간을 살얼음 걷듯 걸으며 애써 눈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린다.

저자의 온순했던 개 같은 행복이 불안과 스트레스에 날뛰다 더 이상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린 것처럼,

어른이 된다는 일은 서글픈 일인 것 같다.

 

오늘도 우리는 어른의 옷을 입고, 어른의 얼굴을 하고, 어른의 일상을 살아간다.

먹고사는 일을 외면할 수 없어서, 종종 행복의 얼굴을 외면하며 살아간다.

 

그래도 이 책의 작가는 '전세도 1년 밖에 안 남았는데' 끈끈이 없이 미끄러지는 시간을 스스로 던져버리고 나왔다니 다행이다.

여전히 끈끈이 없이 미끄러져 내리는 시간을 의미 없이 버티고 있는 나에게 저자의 '지금'은 그래서 더 부럽고 응원하고 싶은 시간이다.

 

 

 

 

 

 

얇고 작은 책이라 어디라도 들고 갈 수 있고, 어디서도 꺼내 읽기 좋은 책이다.

와드득와드득 뼈도 씹어가며, 헛웃음도 내뱉어 가며, 한참 끅끅대며 웃다 보면 나의 오늘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면 또 어떤가, 하드코어 내 인생에도 블랙 유머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

하늘을 쳐다보며 '하하하하하하하' 시원하게 웃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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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말 것 - 나를 잃지 않고 관계를 단단하게 지켜나가기 위해
김달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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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다는 분명한 증거는

함께하는 시간 동안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

P.49

 

 

 

당신은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가?

 

사랑에 올바른 방법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느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잘못된 연애에 허우적대느라 스스로를 전부 소진해버리고 있을 누군가에게는 '제대로 사랑하는 법'이 간절할지도 모른다.

왜 매번 내 연애는 이렇게 진흙탕 같을까?

어째서 나는 사랑을 할 때마다 이렇게 울고만 있는 걸까?

뭐가 문제지?

 

질척이고, 우중충한 연애를 그만 끝내고 싶은 사람.

사랑 앞에 매번 을의 자리만을 부여받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너무 좋은 '연애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 왜 이런 책을 못 만난 걸까.

 

내 망한 연애사를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난 사랑을 가장 멍청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온 우주가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도는.

내 살 깎아먹는 멍청한 연애만 주야장천 했었다.

사랑은 그렇게 하는 건 줄로만 알았다.

사랑하니까 진흙탕을 구르고 매일 울어도 참아야 하는 건 줄 알았다.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좀 더 현명한 연애를 할 수 있었을까.

어쩔 수 없이 그런 연애를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나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기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된 연애는 자존감을 깎아 먹는 무서운 벌레다.

자꾸만 나에게서 잘못을 찾고, 나에게서 부족함을 찾고, 그러다 어느 순간 진짜 나는 사라지고 만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게 되는 순간, 사랑은 가장 더럽고 추한 시궁창에 처박혀버리고 만다.

그것을 이렇게 책으로 배웠다면 참 좋았겠지만, 나는 직접 겪으며 깨달았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연애에 대해 물으면 한숨부터 난다.

나는 왜 그토록 순진하다 못해 멍청했을까.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연애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관계를 현명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사랑은 느낌,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숨김없이 따라 걸어야 한다고 믿었는데, 책을 읽을수록 잘못 옮긴 걸음들이 아파왔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좀 더 빨리 깨닫지 못해서 끝끝내 벽으로 돌진해버린 자동차에서 뛰어내리지 못한 채 같이 망가져버린 첫 연애.

지나고 나면 이토록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그때는 왜 그렇게도 보이지 않았던 걸까.

 

그렇다.

사랑에 빠진 우리는 이미 두 눈이 멀어 너무 선명한 진실마저 보지 못하고는 한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순간, 이 책을 펴 들고 냉정해져보자.

남들은 다 보이는데 오직 나만 못 보고 있는 그것, 그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감정이 섞이지 않는 남의 눈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나를 뜯어말리는 가까운 지인의 말보다, 낯선 타인의 'NO'가 훨씬 더 마음에 와닿기도 하는 법이니까.

 

 

 

 

 

 

사랑에 상처받고, 관계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고, 위로해 주는 일을 하는 작가의 글은 생각보다 더 괜찮게 다가왔다.

상담하는 글들은 개인차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보편적이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은 누구라도 겪었고, 겪고 있고, 겪기 쉬운 일들처럼 여겨졌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대부분 공감하는 이야기들이지 싶다.

특별히 '을의 연애'가 전문이거나, 매번 '나쁜 남자', '나쁜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뼈아프게 와닿지 않을까.

 

상처받으면서도 사랑이라는 환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해주는 저자의 글은 감사할 지경이다.

우리는 덜 상처받고, 덜 아픈 사랑을 할 권리가 있는 존재들이니까.

스스로를 찌르면서 피 흘리는 사랑을 하고 있다면, 이제 그만!

나를 누더기로 만드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니까.

 

 

 

 

 

 

욕망이 없으면 행동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안주하며 살게 될 뿐이다.

P.220

 

 

 

책의 대부분이 사랑과 관련된 고민을 다루고 있지만, 마지막 챕터에서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역시나 연애에서도 뼈 때리는 충고를 하더니, 인생에도 뼈 때리는 직언 직설이라 읽으면서 뜨끔하고는 했다.

 

가장 놀라운 점은 확고하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화법의 책을 읽으면 괜히 엇나가고 싶은 감정이 들고는 하는데 (나는야 청개구리 ;;)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상대방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충고의 말을 건네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는데, 그걸 심지어 글로 쓰다니.

상담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고, 그 문제에 대해 도움을 주는 조언을 건네고, 그것을 상대방이 껄끄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하는 능력.

새삼 빛나 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의 충고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어려워진다.

그보다 내가 더 잘났거나, 더 잘 알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싫은 소리로 먼저 해석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건 나의 옹졸함도 문제겠지만, 상대의 말투나 말을 전달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내용에 상관없이 상대의 태도가 이미 마음을 상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진짜 들어야 할 말을 못 듣게 되는 것이다.

가르치려 하거나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우기면서 상대에게 조언을 하면 누구라도 엇나가는 마음이 먼저 들 수밖에 없다.

 

마음 상하지 않게, 상처받지 않게, 그렇지만 반드시 필요한 조언을 건네는 저자의 글은 그래서 더 기껍게 읽힌다.

지금 사랑에 힘든 사람,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흔들리는 하루하루가 불안한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해 본다.

 

 

 

 

"가난할 수는 있다 쳐도,

서른다섯 살까지 인생이 불행하다면 그건 네 탓이다."

P.236

 

 

 

 

딱 간절한 그만큼만 당신의 인생이 달라진다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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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고 나를 알았다
이근대 지음, 소리여행 그림 / 마음서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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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렇게도 한데 오래 세워두었던가.

나에게 미안해 눈물이 났다.

P.64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빨리 달리기 위한 채찍질이 아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호흡곤란을 느낄 때까지 미친 듯이 질주하기만 하던 우리에게 '걸어도 된다'고, 1등을 위해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더 필요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우리에게 잠시 멈춰 숨을 고르라고, 천천히 걸으며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라보자고 손잡아 주는 누군가가 간절하다.

 

성공을 위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잘 달리는 법을 일러주던 책들이 어느 순간 바뀌기 시작했다.

황새를 따라가려고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다리를 벌리지 않아도 된다고, 뱁새는 뱁새인 채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집단속의 나가 아닌 그냥 나로 살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래보다 지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금을 나답게 사는 일.

빛나는 겉모습이 아닌, 상처받은 내면을 어루만지는 일.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하늘에 계신 신도 완벽하지 않고

자연도 섭리를 깨뜨리고

혼돈과 혼란으로 흔들릴 때가 있다.

P.208

 

 

 

우리는 모두 사랑에 깨지고, 삶에 엎어진다.

누구의 사랑도, 누구의 삶도, 결코 온전히 평온하기만 하고 완벽하게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다.

내 뜻대로 가장되지 않는 게 어쩌면 사랑과 삶인 것만 같다.

그래서 쉽게 상처받고, 오랫동안 슬픔을 앓는다.

 

사랑 앞에, 삶 앞에 우리는 현명해질 수 있을까.

이별 앞에, 고통 앞에 우리는 여전히 굳건해질 수 있을까.

 

한없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실수투성이인 우리들의 오늘.

 

그 오늘에 따뜻한 온기를 건네주는 책을 만났다.

'너를 만나고 나를 알았다'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았더니, 다정한 위로의 책이었다.

토닥이는 손길에 애정이 듬뿍 담겨 있어서 지친 하루의 끝에 읽으면 식었던 마음에 온기가 돌 것만 같다.

아픈 배를 슥슥 문질러 주는 엄마의 손의 온기처럼.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는 예전에 읽었던 '나라원 시선'이 떠올랐다.

그때 그 감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이 책의 분위기를 대강 떠올릴 수 있을 것도 같다.

어렵게 쓰이지 않은 시집.

요즘 감성보다는 조금 오래된 옛날 감성 같은 느낌.

아날로그 감성이라고 해야 할까.

거기에 더해 풀꽃 시인 '나태주'님이 떠오르기도 했다.

 

동글동글하고 다정한, 따뜻하고 말랑한 느낌의 글들이 적당한 온기를 가지고 읽혔다.

 

세련되고 위트 있는 느낌의 요즘 글들 속에서 만나는 다정하고 뭉근한 온돌방 같은 글은 반대로 새로웠다.

목을 꺾고 봐야 하는 미끈한 고층 건물들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지만, 외할머니 댁의 온기가 주는 안정감은 우리를 더 쉽게 무장해제 시키고는 하는 법이니까.

 

 

 

 

 

 

크게 4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는 글은 뒤로 갈수록 더 내게는 가까이 와닿았다.

Part 2 같은 경우에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면 좋을만한 글들이 담겨있다.

제목과 가장 가까운 글들이라고 해야 할까.

몽글몽글한 사랑이 퐁퐁 솟아나는 글들이 담겨있어, 한참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다 내 마음 같지 않을까 싶다.

 

Part 3,4에서는 좀 더 삶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잠언집을 읽는 것 같았다.

힘든 청춘들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지친 직장인들에게 건네는 소주 한 잔의 알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거지 같아도 내 삶이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견뎌야 하는 게 삶이라는 것을 다 아는데도 자꾸만 주저앉아버리고 싶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충고가 아니라 위로다.

알싸한 소주 한 잔과 실없는 농담과 푸념들,

따끈한 밥 한 끼의 온기.

우리는 그런 사소한 것들에서 살아갈 용기를 얻고는 한다.

 

꿀꺽꿀꺽 삼켜도 목이 데이지 않을 적당한 온도를 담은 글들이 지치고 외로울 때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도록 다정히 담겨있다.

조금의 뾰족함도 만나고 싶지 않은 날, 입바른 소리마저 듣고 싶지 않은 날,

온전히 나를 다정하게 다독여줄 손길이 필요한 날

꺼내 읽으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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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니스 - 잠재력을 깨우는 단 하나의 열쇠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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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니스 stillness.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도 흔들리지 않는 것. 흥분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 반드시 들어야 할 소리만 듣는 것. 안팎으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동양에서 말하는 도와 고대 그리스 철학과 신학에서 말하는 로고스를 활용하는 것. 불교, 스토아 철학, 에피쿠로스 철학, 기독교, 힌두교를 모두 통틀어 보더라도 최고선이자 탁월한 성과, 행복한 삶의 비결로써 내면의 평화인 스틸니스. _ P.17~18

 

 

 

 

 

각 학파는 저마다의 길을 걸었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중대한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들이 얻은 결론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거든 반드시 자기 안의 고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머리말_ 스틸리스라는 열쇠 / P.20~21

 

 

 

 

'고요'

사람들이 행복만큼이나 갖고 싶은 것이 고요가 아닐까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시련과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내면의 고요.

세상이 시끄러워질수록 더 그 '고요'라는 것에 대한 갈증은 깊어지기만 한다.

 

몸이 강건하더라도 정신은 나약하기 일쑤고, 마음이 단단하더라도 체력이 고갈되어 무엇도 할 수 없어지기도 한다.

몸과 마음과 정신이 모두 건강하고, 단단하기를 우리는 모두 원하고 있다.

하지만 산다는 일이 매번 시끄럽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의 연속이 아닌가 싶게 우리 속의 고요를 발견하기 어렵기만 하다.

끝없이 마음을 가다듬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 애쓰고,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

쉬운 듯 어렵고, 금방이라도 가닿을 것 같으면서도 멀고 먼 그 고요에게로 가닿는 길로 이 책은 우리를 안내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계가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요즘, 익숙하던 일상을 버리고 외딴 섬처럼 다들 자신의 영역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지금의 시간에 더욱더 필요한 것이 바로 그 고요가 아닐까 싶다.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혀주고,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좀먹지 않도록, 우리가 지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하고, 행동하고, 얘기하고, 걱정하고, 회상하고, 희망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 이 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쓴다. 한시도 지루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수십만 원을 훌쩍 넘는 기계를 사서 호주머니 안에 넣어 다닌다. 그리고 그렇게 애쓴 끝에 행복이 있으리라는 순진한 믿음을 품고 이런저런 활동과 감투에 끝없이 서명하며 돈과 성공을 좇는다. 

첫 번째 영역 _ 정신 / P.50

 

지금 이 순간이 문자 그대로 1, 2초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지금'이란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를 염려하지 않고 우리가 존재하기로 선택한 순간을 뜻한다.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일 또는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한 희망이나 걱정을 우리가 원하는 만큼 멀리 밀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은 몇 분이 될 수도 있고 오전 몇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몇 년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이 그만큼 버틸 수만 있다면 말이다.

첫 번째 영역 _ 정신 / P.51

 

 

 

우리 안에 숨겨진 '스틸니스'라는 열쇠를 움켜쥐기 위해 저자는 정신과 영혼과 몸의 삼위일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말하지 않더라도 마음과 몸과 정신이 건강해야 우리의 삶 또한 건강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건강하기가 참 어렵다.

건강했던 사람도 어느 날 마음을 앓거나 정신의 건강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수시로 우울과 분노가 찾아들고, 걱정과 불안에 잠 못 들기도 하면서, 마음이 무너지고 정신이 무너지고 몸이 무너져내린다.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정신적, 육체적, 심리적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누구도 그런 고통 속에 내던져지기를 원하지 않지만, 아주 작은 틈 사이로도 질병은 찾아든다.

 

마음이 병들지 않는 방법, 정신이 병들지 않는 방법, 몸이 병들지 않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책들이 있다.

미디어에서도 여러 방면으로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건강한 삶을 위해 열심히도 노력하고 있지만, 너무 쉽게 우리는 슬픔과 절망에 물들고는 한다.

결국 어쩌면, 우리는 그 고요를 찾아내지 못해서 자꾸만 그렇게 고꾸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 속에는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그 고요를 찾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와 결국 그 고요에 가닿지 못해 끝없이 흔들리다 무너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때로는 마음의 고요를 찾았지만 몸의 고요를 찾지 못한 사람도 있고, 몸의 고요를 찾았지만 정신의 고요를 찾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익숙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라. 그렇게 해야 관점이 넓어지고 이해가 깊어진다. 현인들은 이미 다 보았기 때문에 고요할 수 있는 것이고 이미 충분히 많은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일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실수를 하고 그 실수로부터 배움을 얻는다.

첫 번째 영역 _ 정신 / P.96~97

 

 

많은 것들을 이미 이루어내고, 또한 후대에 많은 깨달음을 남긴 사람들도 넘어지고 다치면서 그 실패와 실수로부터 배움을 얻었다는 사실은 묘한 위안이 된다.

대단해 보이고 완벽해 보이던 사람들도 스틸니스라는 열쇠를 움켜쥐기까지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겪었다는데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한없이 흔들리는 것을 부끄러워만 할 필요가 있을까.

 

나 또한 여전히 진정한 고요를 찾지 못해서 매번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마음이 상해서 울고, 마음이 아파서 고통스럽다.

자꾸만 정신이 불투명해지고,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는 한다.

수많은 후회와 자책과 슬픔과 허무 속을 떠돌며 자꾸만 지쳐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 영혼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소위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보라. 어린아이의 영혼인가? 청소년의 영혼인가? 혹은 폭군의 영혼? 포식자? 아니면 그 먹잇감의 영혼인가?"

두 번째 영역 _ 영혼 / P.130

 

 

책을 읽다가 순간순간 번쩍하고 정신이 드는 구절들이 있었다.

나는 그 먹잇감의 영혼인가?

짧은 순간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가 평온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시간들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인생이자, 나의 살이고 피'라고 일러주는 저자 말에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도 하지만, 여전히 나는 제대로 된 지금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느라, 후회와 걱정을 놓지 못하고, 오늘을 놓치고 있다.

아마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지 못하리라.

다들 왼손에는 과거의 후회와 자책들을, 오른손에는 내일의 걱정과 불안을 움켜쥐고 전전긍긍하느라 오늘을 움켜잡을 손이 없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이 책은 움켜진 그 손을 서서히 펴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제 그만 우리를 얽매고 있는 많은 것들에서 벗어나라고, 상처에서도 슬픔에서도 고통에서도 우리를 자유롭게 하라고 말한다.

그것은 오직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외면하고 도망친다고 해서 우리는 우리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인생에서 당신이 도피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당신 자신이다. 

세 번째 영역 _ 몸 / P.297

 

 

그렇다.

어쩌면 감당하지 못할 것들 앞에 내쳐질 때마다 나는 도피를 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마음속에 폭풍우가 일고, 한없이 비가 내려도,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조금도 괜찮지 않음에도 '괜찮다'라는 말 뒤로 숨어버렸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고, 마음속에서는 수없는 소용돌이가 일어 잠시도 평온할 수가 없었다.

내게 필요했던 건 그 어떤 것도 아닌, 진짜 '고요'였음을 깨닫는다.

스틸니스, 나도 그 열쇠가 간절하다.

 

 

 

 

 

 

당신을 삶의 아름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일을 허락하지 마라. 세상을 신성한 곳으로 여기고 모든 경험을 성스럽게 해보라. 무엇이든 이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경탄하라. 무의미한 싸움에 서로를 괴롭히고 있다고 할지라도, 무의미한 일로 우리 자신을 죽이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이 모든 일을 멈추고 주변에 수없이 존재하는 아름다움에 몸을 담글 수 있다.

두 번째 영역 _ 영혼 / P.172

 

 

 

철학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책은 그래서 우리의 정신을 깨어나게 해줄 많은 글귀가 담겨있다.

많은 철학자들의 사유와 삶의 모습들을 소개하고, 그들을 통해 또 다른 깨달음에 가닿은 저자의 말들 또한 깊은 울림을 준다.

영혼을 다독여주는 글들에서는 이전에 읽었던 오프라 윈프리의 '위즈덤'이 떠오르기도 했다.

위즈덤은 좀 더 종교적 색채가 강했던 글이기는 했지만, '영성'이라고 불리는 완벽한 평화와 몰아의 순간, 혹은 우주와 내가 하나 되는 경이의 순간을 떠올려보면 이 책 속의 '스틸니스' 혹은 '고요'의 순간과 같은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싶었다.

완벽하게 같은 의미의 단어는 아닐지 모르나, 그들이 추구하고 가닿고 싶어 하는 그 순간은 비슷한 모습이지 않을까.

 

몸의 고요를 다루는 챕터에서는 좀 더 직접적인 조언을 건네준다.

규칙적인 생활의 필요성과 좋은 루틴을 가져야 하는 이유 같은 것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미니멀라이프와는 백만 년쯤 멀리 떨어져 사는 나이지만, 그 챕터를 읽다가 당장 안 쓰는 물건들을 버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생각지 못했던 일상의 사소한 부분들을 몸의 고요를 위해 실천해야 한다는 조언은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게으름과 무기력과 열심히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나에게는 아주 좋은 지침이 되어주었다.

 

몸뿐 아니라 영혼의 고요를 위해서 권하는 '산책'도 꼭 실천해보고 싶다.

애초에 나무와 꽃을 좋아해서 산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꼬박꼬박 규칙적인 산책을 하지는 않았었다.

얼마 전 다른 책에서도 산책이 얼마나 우리 삶에 중요하고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 책 속에서도 아주 강력하게 산책을 권유하고 있다보니 규칙적인 산책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다.

자연과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치유의 힘.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나인지라 그것만큼은 꼭 지켜보고 싶어진다.

 

 

 

 

 

우리는 모두 죽어가고 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믿든 믿지 않든 간에 죽음은 우리 모두를 따라다닌다.

어쩌면 내일 우리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앞으로 2주 뒤에 묵직한 나무가 쓰러지며 덮쳐 우리를 저세상으로 데려갈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시한부의 삶을 사는 셈이다. 우리 심장은 알 수 없는 기간 동안 한결같이 뛰다다 어느 날 갑자기 고요해진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반드시 기억하라.

마지막으로 해야 하는 일 _ P.310~311

 

 

 

누구보다도 더 또렷하게 죽음을 인지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 책을 덮고 나니 나는 죽음을 인지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슬픔에 눈이 멀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여러 번 겪으면서 더할 수 없이 죽음의 존재를 가까이 느끼고 있었다.

도망갈 수도 없었고, 피할 수도 없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해탈한 사람처럼 내일 내가 죽어도 놀랍지 않을 것만 같았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너무 큰 슬픔에 잠겨 '죽음'보다는 '이별'에 더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올곧게 죽음을 바라볼 필요가 생겼다.

슬픔이나 고통 말고, 생의 마지막을 똑바로 바라보는 눈.

그런 눈을 가지게 된다면, 내게도 조금씩 고요가 찾아들 것만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멈춰버릴지 모를 생의 시계를 제대로 인지한다면, 오늘을 분명 더 선명히 제대로 살아낼 수 있게 될 테니까.

 

 

 

이 책은 꼭 다시 재독을 해야겠다.

한없이 헝클어진 마음과 정신을 풀어내야 할 때, 좀 더 빠르고 수월하게 그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좀 더 자주 내 마음에 고요가 찾아오도록,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책에게 길을 물어야겠다.

사춘기를 건너오고 있는 아들에게도 함께 읽기를 권해봐야겠다.

마음속 보험이 하나 생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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