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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그대에게 1~3 세트 - 전3권
펑크로드 지음 / 필프리미엄에디션(FEEL)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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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읽고 나서 리뷰 쓰기가 참 어려운 글들이 있다.

때로는 난해해서 이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재미있어서 이기도 하다.

이 책은 무슨 말을 해도 스포가 될 것만 같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지조차 조심스럽다.

그러니까 스토리 설명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무엇이든 비밀로 남겨두어야 다음에 이 책을 읽을 독자의 즐거움을 빼앗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인생이 예측 불허의 당혹스러움이라면,

이 책은 인생을 닮았다.

무엇도 예측할 수 없게, 로설의 공식을 무참히 지르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로맨스'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이 책을 읽으면 대번에 '이럴 수는 없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너무도 잔인하고 잔혹한 삶의 바닥에서 매번 더 잔인하고 잔혹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작가라니.

이럴 수도 있구나.

이렇게 나락으로, 끝의 끝으로만 밀어붙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주인공을 던져놓을 수도 있구나.

네가 어떻게 살아나나 보자고 매번 그녀의 선택을 지켜보며 절망으로만 그녀를 끌어다 놓을 수도 있구나.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놀라웠다.

내가 생각했던 로맨스의 경계가 와장창 깨어졌다.

(어쩌면 이미 '피폐물'이라고 불리는 책들에서는 놀랍지 않은 설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인생의 비극은 한계가 없다」

책 뒷면의 이 문장이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문장이지 않을까.

이 한 권의 책에서만이 아닌, 우리의 실제의 삶에서 또한 누군가는 그 한계 없는 비극에 몸부림치며 살기 위해 끝없이 애쓰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은 더 많은 여운을 남긴다.

 

 

 

 

"마들로나 드 데본 제이. 당신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어.

하나, 간단하게 죽는다. 둘, 복잡하게 산다. 어쩔래?"

 

 

그녀에게는 세 가지 이름이 있다.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귀족의 이름, 마들로나 드 데본 제이

죽음 직전에 그녀가 부여잡은 생의 이름, 할리

또다시 삶의 끝에서 간신히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주어진 이름, 레이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한 번의 삶 끝에서 그녀에게는 '선택'이 주어진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지금 죽을 것인지, 모든 기억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진 삶이라도 살아볼지.

그녀는 본능적으로 생을 움켜쥔다.

그녀에게 주어질 삶이 얼마나 잔인하고 피폐할지 모른 채, 그렇게 생을 선택한다.

다시 주어진 삶은, 너무도 잔인하고 잔혹하기만 했다.

몸이 부서져라 훈련을 받고, 내가 살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기도 하면서 오직 나라를 위한 무기로 존재해야 했다.

한 사람의 인격체가 아닌 도구, 오로지 나라를 위한 쓸모로만 존재하는 그런 부속품이 되었다.

그 삶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다.

인간성의 상실과 도덕성의 상실. 그리고 끝없는 체념.

살고 싶었던 그녀는, 과연 '살고'있는 것일까.

 

내가 온전한 내 것이었다면 죽음도 불사하고 그를 따라나설 텐데.

나 자신이 온전한 내 것이었다면 나는 그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을 텐데.

「나의 아름다운 그대에게」 1권, 1부 _ P.176

 

 

'나'이지만 완전한 나일 수 없는 상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는 삶.

그런 삶을 요구하는 국가.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배제한 채 살아가는 삶 속에도 '사랑'은 스며든다.

국가를 위한 작전 속에서 '사랑'을 마주친 그녀는 끝없이 번민한다.

거짓의 옷을 뒤집어쓰고서만 마주 볼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그녀가 느껴야 하는 절망과 슬픔.

그렇게 그녀의 삶은 또다시 더할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그것이 그녀 삶의 마지막 추락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생의 비극은 한계가 없어'서 그녀가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잡은 동아줄은 매번 끊어져 절망의 우물로 그녀를 떨어트린다.

아아, 삶은 끝없는 비극이여라.

내딛는 발걸음마다 온통 진창이여라.

 

 

 

 

사람이 잔인한 정도가 대체 어디까진데요? 나는 정말 모르겠는데 루이씨는 알아요? 그 경계가 어디인지? 그럼 내가 그동안 당해 온건 그 정도 안에서 이루어진 건가요? 알면 좀 가르쳐 줘요. 나는 대체 어디까지 떨어져야 그 경계에 닿는 건가요?"

「나의 아름다운 그대에게」 2권, 2부 _ P.206

 

 

마치 흑백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으로 1권과 2권을 읽어내렸다.

담담함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읽을 수 없을 만큼 그녀의 삶은 늘 절망의 끝으로 치달았으니, 거기에 색을 입힐 수가 없었다. 동정도 가당찮았다.

한없이 가라앉아 침잠해가는 그녀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읽어내며, 나 또한 함께 끝없이 가라앉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1,2권을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찔리고 베여도 끝끝내 걷고 또 걷는 그녀의 걸음을 허투루 읽을 수는 없었기에 나 또한 또박또박 느리지만 흔들림 없이 그녀는 따라 걸었다.

외면하고 싶은 절망도 꿋꿋이 참고 마주 보았다.

그게 그녀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으므로.

이것이 허구라는 것을, 책 속의 이야기라는 것을 또렷하게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간혹 마음속에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흐리게나마 어느 시대쯤일지,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을지 짐작이 가기도 했으니까.

그녀의 삶에 드리운 처참함이 겉돌거나 과하게 부풀려진 느낌이 없어서, 어디엔가 마치 이런 삶이 실제로 존재했을 것만 같은 울적함이 들었다. (이런 설정에서 현실감을 느낀다는 게 어찌 보면 부자연스러울지도 모르지만)

그런 시대가 있었으니까.

전쟁과 투쟁이 일상이었던 시절을 우리들 또한 건너왔으니까 말이다.

가끔은 영화나 소설보다 현실이 더 끔찍하고 잔인하기도 하다는 걸 우리들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의 삶을 보는 내내 그렇게 마음이 일렁거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우리는 조금 더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있어서 선과 악의 경계를 좀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조차 모호한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에게 지금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살기 위해 온갖 나쁜 일이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던 시대 속에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죽이는 역할을 맡았다.

그 속에서 매번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녀는, 매번 삶에게 배신 당했다.

그녀를 더 나쁜 쪽으로, 나쁜 쪽으로, 한없이 내몰았다.

 

 

 

 

 

2부 끝에 등장하는 편지를 읽다가 울컥했다.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나를 다독이는 손길 같아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커다란 위로의 손길이 나를 쓰다듬고 있는 기분이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토닥임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삶은 늘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로 가득 차 있으니까.

그리고 거기에서 온전히 벗어나기가 힘들어 늘 어제를 짊어지고 걷느라 힘이 드니까 말이다.

물론 그녀에게도 이 편지가 지친 삶의 여정을 위안할 수 있는 깊은 위로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온몸을 좀먹는 후회로 얼룩진 시간을 버텨야 했던 그녀가 다시 앞을 향해 걸을 수 있도록 하는.

그렇게 그녀는 뚜벅뚜벅 걸어 3부를 향해 갔다.

이 책이 로맨스일 수 있는 이유는 3부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순간순간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그녀를 끝없이 생으로 끌어당겼던 사람.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삶 속에 물처럼 공기처럼 존재했던 사람.

배신하고 배신당해도 끝끝내 놓아지지 않았던 사랑.

그 사랑을 다시 마주하기 위해 3부가 존재했다.

감사하게도.

정말, 감사하게도.

(나, 3부 없었으면 진짜 울뻔했다. 하아. 너무 좋다. 3부.ㅠㅠ)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갈기갈기 찢긴 심장으로, 수많은 상처들을 끌어안은 채 그들은 다시 사랑을 한다.

 

 

 

 

 

 

 

혹시나 이 책을 처음 펼쳐 들고 읽기가 힘든 사람이 있다면, 꾹 참고 2권까지 읽으라고 당부하고 싶다.

괜찮다, 우리에겐 3권이 있다.

한없는 절망과 고통을 구르고 굴러 기어코 사랑에 가닿는 그들이 있다.

그러니까 이 진창 속에도 희망을 꿈꾸며 같이 고단한 길을 건너보자.

잔인한 시간을 건너야만 완성되는 사랑이 있다.

바로 우리 눈앞에.

3부 이야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아마도 1부와 2부가 존재했기 때문에 그 마지막 이야기가 그토록 달콤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 거다.

독자에게 필요한 건, 인내.

깜짝 놀랄 충격적 사건들이 우리 앞에 펼쳐져도 그저 그다음 장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인내가 필요할 뿐이다.

진짜 '사랑'을 만나려면.

 

 

 

 

 

이 글을 '성장'이라고 봐야 하는지, 삶에 대한 처절한 '사투'라고 봐야 하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성장이라고 부르기도 사투라 부르기도 힘들 만큼 험난한 여정이었으니까.

그녀의 선택이 때로는 잘못되고 맹목적이어도 나는 탓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처절한 생을 향한 걸음들을 그저 응원할 수밖에.

단지 그녀가 주인공이기 때문은 아니다.

내가 언제 주인공이라고 무조건 신뢰하고 이해하고 용서했었나.

우리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

다들 한 치 앞을 몰라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에 속아 진창을 구르기도 하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우리 모두 한때는 무모했고, 어쩌면 여전히 무모하고 어리석다.

삶이 나에게 건네준 여러 번의 선택지 중, 나 또한 매번 옳은 길만을, 꽃길만을 선택하진 못했다.

매번 그 길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지만, 사실 대부분이 발이 푹푹 빠지는 늪지였다.

나도 그녀처럼 생의 순간순간마다 매번 넘어지고 엎어졌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은,

여전히 삶 위를 터벅터벅 걷고 있는 것은,

그녀처럼 기어코 생을 향해 손 뻗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더 그녀가 지나온 길들이 아팠다.

그녀도 나도, 생은 누구에게나 잔인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오늘 내가 먹을 점심 메뉴를 선택할 수 있어서

내 일상의 사소하고도 많은 선택들을 내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내 삶이 내 것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평온한 나의 일상이 소중해진다.

삶이 내게 더 관대하기를 늘 기대하지만, 더 잔인한 삶 속에 나를 내던지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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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을 홍 세트 - 전3권
김정화 지음 / 청어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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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계집이 욕망한 것은 생(生)이다.

2권/166p

 

 

 

「조선의 맨 밑바닥, 기생 중에서도 천하디천한 창기(娼妓)」

「조선의 맨 꼭대기, 사대부 중의 사대부라는 귀한 공자(公子)」

 

 

조선이라는 엄격한 신분제도의 나라에서,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가장 낮은 곳의 여인과 너무 높은 곳의 도령이 하필이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저 적당히 사랑하기에는 지나치게 도도했던 두 사람은 끝없이 부딪히는 수많은 벽과 경계를 참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경계와 규범을 깨트리고 싶었다.

사랑하였으므로.

 

 

하필이면 조선 땅에 여자로, 가난한 양인으로, 결국에는 창기로 삶을 살아내야 했던 여인 홍은 다른 세상을 꿈꿨다.

하얗게 폭설로 뒤덮인 겨울의 어느 날 마주친 한 사내로 인해, 그녀는 신분이 없는 세상을 꿈꿨고, 스스럼없이 욕망을 드러낼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그 사내 앞에 오직 홍으로, 그 무엇도 아닌 여인 '홍'으로 마주 서고 싶었기에.

 

사내는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이룰 자유를 갖지 못했다.

높은 신분에 많은 재산을 지녔지만, 꿈은 좌절되고, 숨 막히게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는 어머니를 견딜 수 없었다.

중전의 남동생이라는 자리는 꿈을 잃게 했고, 독단적인 어머니의 사랑은 그를 삐뚤어지게 했다.

그렇게 전주로 쫓겨내려온 사내 앞에 운명처럼 나타난 여인, 홍.

하지만 그녀는 아무 사내에게나 몸을 파는 창기가 될 동기였다.

참을 수 없게 가지고 싶었지만, 하찮은 계집은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한양에서 수많은 기방을 들락거리며 난봉꾼으로 살았던 사내는 처음으로 낯선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욕망일까, 연모일까.

 

 

 

 

 제가 팔려 온 곳이 하필 기방이라는 것 따위 상관없었다. 월야관이 창기나 다름없는 은근짜들의 기방이라는 것 역시 아무렇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 것은 홍, 자신이 제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잔혹한 사실이었다.

1권. 195페이지

 

 

 

가장 낮은 신분을 가진 여인, 홍은, 누구보다 뜨겁게 생을 소망했다.

무엇도 뜻대로 할 수 없고, 누구에게든 짓밟히는 천한 생이 아닌, 귀하고 귀한 생을 원했다.

높아지는 것이 아닌, 다 같이 평등해지는 생을 간절히 원했다.

조선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뜬구름 같은 꿈을 잡으려 했다.

 

귀천이 없는 세상.

그것은 감히 조선에서는 꿈꿀 수조차 없는, 내뱉는 것조차 죄가 되고 마는 위험한 욕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높은 신분을 가진 사내에게 말한다.

내가 천한 신분인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당신이 천해 질 수는 없는 거냐고.

당신과 내가 다를 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나는 내가 귀하다고. 당신이 귀한 것처럼.

 

사내는 그녀를 만나 변화하기 시작한다.

조선의 사대부로써 살아온 삶으로는 도저히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들,

감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것 같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그녀로 인해 꾸게 된다.

그녀와 함께 하는 세상에는 반드시 자신도 그녀도 지금의 굴레를 벗어던져야만 했으므로.

 

부서지고 깨지고 구르면서, 그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

그 앞에 무엇이 그들을 넘어지게 하고 고통스럽게 할지 알지도 못한 채 오직 사랑만을 믿고 나아간다.

홍에게 새로운 세상을 주기 위해.

 

 

 

 

 

이 책은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1권과 2권은 『독을 품은 꽃』이라는 명제로 묶여있고, 3권은 『콩쥐팥쥐 잔혹사』라는 독특한 소제목을 달고 있다.

갑자기 콩쥐 팥쥐 잔혹사가 왜 튀어나오나, 나처럼 궁금한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미루어 짐작하게 될 것이다.

어쩐지 3권에는 콩쥐 팥쥐의 이야기가 비틀려 나오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콩쥐팥쥐전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의아해지기도 한다.

1권과 2권까지는 거의 대부분이 사건보다 인물의 심리묘사가 주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을 담고 있는 두 권의 책은, 두 인물의 내밀한 심리묘사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끊임없는 생각과 가치관의 충돌, 서로를 향한, 혹은 생을 향한 갈망과 욕망, 그리고 숨겨지지 않는 사랑.

그런 생각과 고민들로 가득 채워진 1, 2권은 읽고 있노라면, 3권이 혹시 생뚱맞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슬며시 든다.

하지만 놀랍게도 3권에서 비로소 사건과 사건이 만나고, 음모와 진실이 밝혀지는 동안 너무도 자연스럽게 콩쥐와 팥쥐의 이야기도 함께 진행된다.

외따로 떨어지지 않고, 이질적으로 겉돌지 않으면서, 우리가 알던 콩쥐 팥쥐 이야기는 기묘하게 비틀린다.

왜 3권만 소제목이 다른 건지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주는 글의 내용이 한편, 신기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분명히 다른 이야기였었는데, 어느 순간 같은 이야기더라는 말씀.

1,2권과는 다른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3권이었다.

 

 

 

 

 

굉장히 공들여 잘 쓰인 글이라는 것이 문장마다 느껴지는 글이었다.

시대물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 문체나, 풍경의 묘사 같은 것들이 읽으면서 참 좋구나 싶었다.

눈앞에 그 겨울이 그려지는 것만 같아서, 자꾸만 한옥에 앉아 겨울 눈이 보고 싶어졌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는 아마도 여주인공인 홍이 아니었을까.

현대에서도 가장 극렬하게 페미니즘을 외칠 것 같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것 같은 그녀는 사실 조선시대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생각과 사상이 조선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이라 마치 현대의 인물을 조선 시대의 가장 낮은 계급에 구겨 넣어 놓은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경험조차 해보지 않은 자유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신분의 차이가 엄격했던 시대라 남들은 높아지기를 원할 때, 그녀는 같아지기를, 모두 함께 평등해지기를 원했다.

자유와 평등,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생각이지만 과연 담장 너머도 꿈꾸기 힘들었던 조선시대의 여인에게도 그런 당연함이 주어졌을까.

 

물론 그 시대에도 분명 그런 꿈을 꾸었던 여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처럼 선명하고 정확하게 시대의 틀에 조금도 얽매이지 않고 생각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마치 잔다르크 같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을 위해서 칼을 뽑아들고, 오직 자신의 생을 위해서 기어코 그것을 쟁취해 내고야 마는 스스로를 위한 잔다르크.

 

 

시대의 흐름을 드라마도 영화도 반영한다.

남자에게 더 이상 기생하지 않고, 스스로의 걸음으로 삶을 쟁취해내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신데렐라는 왕자님 덕분에 행복해졌지만, 뮬란은 스스로 칼을 들고 싸워 행복을 이뤄냈다.

2019년판 알라딘의 자스민은 스스로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다짐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른다.

가장 꽉 막힌, 여자들에게 가장 가혹했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쓴 로맨스 소설에서도 이제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여주인공이 당연해지는 시대에 도착했다.

조선 시대를 생각하면 불가능해 보이지만, 뭐 어떤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여자들의 삶의 행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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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과 나 : 너에게로 가기까지
정유석 지음 / 스칼렛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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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은 얼마나 많은 모습으로 형태를 바꾸어 우리들 앞에 나타나는가.

조용하고 단정한, 그래서 안정되고 편안한 사랑의 얼굴로

때로는 위험하고 위태로운, 그래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찾아오는 사랑.

물 흐르듯 당연한 사랑도, 어느 날 갑자기 번개에 맞은 것처럼 깨닫게 되는 사랑도, 견디고 인내하는 참기만 하는 사랑도, 모든 걸 걸고 활활 타오르다 재만 남은 사랑도 모두 그저 '사랑'인 것이다.

어떻게 사랑이 그렇게 조용할 수 있으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렇게 힘든 게 사랑일 리 없다고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얼굴이 하나가 아니라서 우리는 이토록 사랑에 매혹당하는 게 아닐까.

사랑의 얼굴이 오직 하나라면 우리가 이토록 헤매고 고민하고 흔들리는 일 또한 없을 테니.

사랑이 여러 얼굴을 가지고,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늘 당혹스러우면서도 기어이 매혹당하고 마는 것이다.

 

 

오늘 내가 본 사랑은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책을 덮고도 한참 동안 책에 붙잡혀 있었다.

맹목과 집착으로 서로를 놓을 수 없는 두 사람.

처음부터 너였던 이 감정을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 몰라 사랑 앞에 더 헤매었던 그들.

어떻게 변질되어도 결국 그 본질이 누구보다 올곧고 순수했던 그들에게 '사랑'말고 어떤 이름이 필요할까.

세상의 잣대로 그들을 재단하고 싶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가지기 위해 세상이 그어놓은 선들을 굳건히 넘고 또 넘는 그들의 모습이 나는 싫지 않았으니까.

어느 순간 나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을 깊이 공감하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후작과 나'는 놀랍게도 현대물이다.

(나만 시대물이라고 착각했는지도;;;)

현대의 영국 귀족 가문의 남자, 니콜라스와 고용인의 입양된 딸 진,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일곱 살과 열 살에 서로를 만나게 된 둘은 그렇게 내내 온 생을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을 알고나 있었을까.

그것이 사랑인지 집착인지 맹목인지도 알지 못한 채 이름 붙인 적 없는 감정에 묶여 서로가 서로만을 바라보며 자라난다.

몸이 커가는 만큼 자라나는 감정을 숨기고 누르기 바빴던 닉에게 온몸으로 돌진하는 진.

사랑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욕망이라는 거짓을 들이대며 닉을 소유하고자 했던 진에게 어쩔 도리 없이 넘어가버린 닉은 열여덟의 진에게 무너져 내리고 만다.

사랑을 말하지 못하므로 섹스를 말하는 둘.

너무 어린 그들의 섹스는 당혹스러우면서도 안타깝다.

서로에게 가닿고 싶은 간절함, 서로가 서로의 것임을 확인하고 싶은 욕심을 다르게 표현할 길이 없었던 둘은 섹스에 그 모든 것을 감춘다.

그러니까 섹스가 그들에겐 입 밖으로 뱉어내지 못한 사랑의 고백이며 동시에 사랑의 완성이었던 것이다.

감정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둘은 신분의 차이와 배경의 한계 앞에서 더 이상 솔직해질 수가 없었다.

무엇으로라도 서로를 소유하고 싶어 했던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몸의 욕망 뒤에 조심스레 감춰진 채 위태롭게 이어졌다. 

 

 

 

그 애가 보는 것은 오직 닉 웨즐리뿐. 그건 주변에 있는 그 어느 누구보다 약자가 된다는 뜻이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생각만으로 헤쳐 나가기에는 수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최대한 감추고 최대한 물러서겠지. 내가 무언가를 포기하기 전에 그나마 제가 가진 것마저 포기해 가면서까지.

p.233

 

 

 

서로가 자신 때문에 무언가를 잃게 되지 않기를 바랐던 두 사람은 결국 '사랑'을 외면하기로 한다.

내 사랑 때문에 상대가 다치게 될까 봐, 내 사랑 때문에 상대가 모든 것을 잃게 될까 봐, 혹시라도 내 사랑이 맹목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목을 조르게 될까 봐 한걸음 물러선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버리는 형태로 헤어짐을 맞이하지만 결국 서로를 위한 물러섬이었다.

그 한 걸음이 그들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거웠는지는 누구라고 모를까.

 


 
그건 명백한 유혹이었다. 어릴 적에는 전속력으로 달려와 온몸으로 부딪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그를 안달 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 결국 그가 버텨 내지 못하리라는 것까지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P.310

멈춰있던 그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순간, 진짜 사랑의 얼굴을 똑바로 직시하게 된 순간, 서로를 걱정하느라 자꾸만 주춤거리는 그 걸음들이 예쁘기만 했다.

그런 바보 같음이, 멍청이 같은 결정들이 결국에는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과 배려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어떤 실수도 이기심도 바닥을 치는 도덕심마저 그저 예뻐할 수밖에.

때로는 너무 깊어서 스스로도 그 바닥에 깔린 알맹이를 찾아내지 못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모든 시작의 걸음의 첫발을 내디뎌준 진의 용기와 올곧음을 사랑한다.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진의 사랑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의 사랑은 외면하려고 노력한 멍청이지만) 매번 진의 손을 꼭 잡아준 닉의 잘못된 배려도 사랑한다.

서로를 너무 아껴서 다른 형태로 서로를 사랑해야 했던 둘.

미숙했지만 깊고 곧았던 둘의 사랑이 세상이 그어놓은 선을 부지런히 넘어줘서 참 감사하다.

 

 

 

 

아마도 누군가는 첫 장을 펴들고 읽기 시작했다가 깜짝 놀라서 멈출지도 모르겠다.

십 대의 섹스에 대해 나름 관대한 ( 옳다는 게 아니라 현실의 반영이라는 관점에서 책에 등장하는 십 대의 섹스에 대해 관조하는 편에 가까운 ) 나조차도 여주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해 책 읽기를 멈췄으니까 말이다.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인의 작은 체구나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열아홉의 주인공의 모습이 훨씬 더 어리고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쓰인 도입부 때문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내가 이 주인공들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더럭 겁이 났다.

그래서 책장을 덮어두었다가 며칠은 지나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도 앞부분에서는 자꾸만 머뭇거려진 게 사실이다.

 

 

의외로 로설 독자분들 중 십 대의 섹스에 심한 거부감을 지니신 분들이 많다.

그리고 남주의 절대적 정절을 원하는 분들 또한 많은 걸로 알고 있는지라..... 이 책의 진짜 묘미를 느끼기도 전에 그런 부분에서 진입장벽을 느끼고 멈춰버리는 분들이 있으실 것만 같다는 우려가 들었다.

나도 가끔 책을 읽다가 어떤 부분에 발이 걸려 넘어진 후 너무 쉽게 뒤돌아버리는 경우가 있으니까.

19금 도서인데다 씬이 여럿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만큼 외설스럽거나 퇴폐적이지 않다는 것.

(내가 너무 외설스럽거나 퇴폐적이라 그렇게 못 느끼는 것은 아닐까 잠깐.....움찔)

입만 되바라진 여주와 여주를 아끼느라 여주한정 금욕적인, 몸만 되바라진 남주가 등장하는 씬에 비해 사실은 굉장히 건전하다는 게 함정.

섹스는 그들에게 그저 사랑을 표현하는 한 형태일 뿐이다.

섹스가 쾌락의 도구로 사용되는 책도 참 많다. (특히나 요즘 나오는 로설 이북에서는 엄청나다는 소문이..;;)

쾌락과 사랑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혼돈하는 것 같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그 간극의 차이를 예민하게 캐치해내고야 만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냥 느끼는 것이다.

몸의 오르가슴을 넘어 심장의 오르가슴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나누는 섹스가 단순히 쾌락을 위한 행위가 아닌 완벽한 사랑의 고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완충된 사랑의 기쁨을 맛본 사람은 절대 섹스를 쾌락의 도구로 이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심장이 없는 섹스가 주는 허무를 견뎌낼 수가 없으니까.

 

 

이 책 속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바로 그런 장면이었다.

다시 재회한 둘의 섹스 장면.

누구보다 기민하게 감정적 오르가슴에 반응하는 남주는 헤어질 때도 다시 만났을 때도, 섹스는 그저 섹스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해보지만 결국에는 사랑이 빠진 섹스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거다.

왜 나를 안아주지 않느냐고, 예전처럼 내 목을 꽉 끌어안고 온몸으로 자신을 안아 주기를 원하는 남주의 말에서 울컥하고 눈물이 날 뻔했다.

그에게 필요한 건 섹스가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것을 너무 여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그동안 사랑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하고 외면하고 질책하던 남주에게서 터져 나온 사랑의 진심이 안쓰러워서 가슴이 저릿했다.

그렇게 무엇으로 포장하려고 애써봐도 도저히 감춰지지 않았던 사랑의 맨얼굴이 발가벗고 살을 맞댄 순간 더 이상 숨길 수 없이 터져 나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섹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체온을 온전히 느끼는 일이라고 믿는 나에게는 그래서 더 찡한 순간이었던가 보다.

영영 잃어버릴 뻔했던 체온을 되찾는 순간이었으니까.

 

쾌락을 전면부에 내세운 19금 로설에 지쳐서 무엇을 봐도 감흥이 없던 요즘이었는데 오랜만에 책을 읽다가 '섹스' 그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사랑과 섹스의 불가분의 관계를 정직하고 섬세하게 관통한 글이라 다 읽은 후의 남겨진 느낌이 더 좋았다.

사랑의 이름으로 섹스를 변질시키지 않아서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19금 로설중 많은 책들이 섹스 장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어떤 행위든 용납하는 반면, 섹스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어떤 순간에도 여주를 함부로 대하거나 성적인 강요나 성적인 도구로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남주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시작이 엄청나서(?) 오해할 뻔했던 책은, 사실은 너무 곧고 단정한 사랑 이야기로 기억되어 질 것만 같다.

오로지 서로에게 서로뿐인,

그래서 도저히 벗어날 수도 달아날 수도 없었던 사랑에 묶여 서로를 덜 다치게 하려고 몸부림치느라 스스로 상처받고 힘들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

안타까우면서도 찡한 아름다운 사랑의 한 형태를 엿보았던 시간이었다.


 

 

 

첫 번째에서 놓쳤던 사랑의 숨겨진 언어들을

두 번째 읽으면서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던지라, 두 번 읽기를 추천해본다.

( 그들의 사랑의 역사를 다 알고 다시 들여다보며 숨겨진 사랑의 표현들을 엿보는 묘미가 있다.ㅎ)

 

 

 

처음부터 19금을 들이대지만 단단한 알맹이를 품고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께 추천!

오랫동안 서로에게 휩싸여 오직 하나뿐인 사랑에 열광하시는 분들께 추천!

신분 차이를 느끼기 힘든 현대에서 진짜 후작과의 신분 차이를 느껴보고 싶으신 분들, 추천!

오로지 여주를 위한, 여주에 의한, 여주뿐인 남주의 사랑을 보고 싶다면 추천!

비틀리고 넘어지고 도덕적인 기준에 부합하더라도 그저 맹목적인 사랑이 좋다면 추천!

섹스와 사랑의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으시다면 추천!

그리고 꼭, 끝까지 읽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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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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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러니까 가해자의 가족의 삶.

그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범죄를 바라볼 때 늘 피해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지극히도 당연하게 피해자를 동정하고, 피해자의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며 분노하고 슬퍼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가해자는 악, 피해자는 선을 대변하게 마련이라 우리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善'의 카테고리에 우리를 집어넣어 버린다.

자신을 악의 카테고리에 넣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과연 우리는 매번 피해자 일 수 있을까.

어쩌다 보니 삶이 나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상황은 정말 없을까.

스스로가 가해자가 되지 않더라도 가족 중 누군가가 바로 그 끔찍한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일은?

그렇다.

나는 늘 피해자의 편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가해자의 카테고리 안에 이미 묶여있는 사람이라면?

범죄를 저질렀고, 그 범죄가 살인이라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면.... 우리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걸까.

죽음을 죽음으로 갚아야 하는 것인지.

지독한 죄책감을 짊어지고 매일매일 누군가의 목숨을 기억하며 견디고 참회하고 반성하며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인지.

심지어 그것이 내가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저지른 범죄라면.

우리는 어떻게 견뎌야 하며,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나오키에게는 한 달에 한 번, 벚꽃 도장이 찍힌 편지가 온다.

교도소에 있는 형으로부터.

형은 나오키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일했고, 그래서 몸이 망가졌고, 더 이상 돈을 벌기 힘들어졌다.

그렇지만 동생의 장래를 위해 뭐든 해야만 했다.

그것이 누군가의 돈을 훔치는 일이라 해도.

최악의 상황과 내일을 꿈꿀 수 없는 가난, 아픈 몸, 그 모든 것이 형을 범죄로 내몰았다.

무책임한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 순간, 그에게는 더 이상의 선택이 없었다.

최악이 최악을 불러오고, 다시 마주친 최악이 더 극악한 최악을 불러와 그의 인생을 끝없는 나락으로 내동댕이 쳤다.

그렇게 형은 어쩌다 보니,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결국에 살인자가 되었다.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고야 말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동생을 위해 훔쳐야 했던 남의 인생(돈) 또한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나오키는 어느 날 갑자기 살인자의 동생이 되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형은 자신을 위해 범죄를 저질렀고, 살인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나오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강도 살인을 저지른 형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로부터 질타와 외면을 받아야 했다.

새로운 희망을 만나면 여지없이 꺾여야 했고, 사랑도 범죄자의 동생이라는 이름으로는 가질 수 없었다.

꿈도, 사랑도, 희망도, 모든 것을 매번 포기해야 했던 나오키.

그는 그 굴레에서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었다.

자신은 범죄자가 아니니까. 자신의 잘못이 아니니까.

하지만, 진짜 그럴까.

가해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일은 숙명처럼 그 죄를 함께 나눠지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가해자 혼자만의 속죄로는 도저히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슬픔을 애도할 수는 없을 테니까.

불합리함 속에서 고통을 겪고, 차별받는 가족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죄의 깊이를 제대로 인지하도록 사회는 더욱더 가혹해야 하는 걸까.

바로 그 질문들에 대한 책이다.

가해자, 가해자의 가족, 그리고 우리들의 시선.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책이 그러하듯, 이 책 또한 가독성이 무척 좋은 책이다.

문장이 어렵지 않고, 꼬여있지도 않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어렵다.

한참을 생각하고 더듬어도 정답을 알 수가 없다.

책은 정답을 일러주지 않는다.

그저 묻고 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너라면 어떨 것 같니?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무엇을 용납하고 무엇을 거부해야 하는가.

너무 어려운 문제를 너무 쉽게 내주고는 책은 끝이 났다.

읽는 우리들도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말이다.

 

 

 

처음으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절대 악과 절대 선이라는 건 만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판타지라는 걸 우리들은 이미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다니는 내내 도덕을 오지선다형으로 배운 우리들은 자꾸만 도덕적인 정답에 동그라미를 친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1번도 2번도 3번도 4번도 틀리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1번도 2번도 3번도 4번도 5번도 모두 틀린 답 같다.

참 어려운 문제인데 누군가가 이미 정해준 정답을 달달 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문득 내가 가지고 있던 '도덕적 잣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죄를 옹호하고 싶진 않다.

어떤 이유에서건 살인은 용납되지 않을 범죄다.

그로 인해 가족을 잃은 피해자 가족은 또 얼마나 마음이 무너지고 통곡하는 삶을 살게 되겠나를 생각해보면 용서라는 게 불가능해진다.

이해도 묵인도 어렵다.

피해자의 가족을 생각하면

가해자 가족의 차별당하는 삶에 대해 어떤 동정도 보내고 싶지 않다.

차디찬 냉대를, 차가운 냉소를 보내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 옳은가에 대해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 볼 만하다.

'편지'는 바로 그 시간을 우리에게 내어주고 있는 책이다.

각자의 답이 모두 다를 테고, 그 누구의 답도 틀리지 않다고 믿는다.

때론 1번이 정답이기도 했다가 어떤 날엔 2번이 정답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도덕적 가치관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임에 확실하지만 ( 바로 그 도덕성이 우리를 죄짓지 않도록, 타인의 삶을 망가트리지 않도록 멈춰주는 브레이크일 테니까) 가끔은 관대할 필요도, 다른 답에 대해 귀 기울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귀 기울여 본다.

게이고~ 내게 정답을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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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혼
정유석 지음 / 스칼렛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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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안경만큼이나 댕그란 눈은

똑바로 뜨고 있어도 잔뜩 휘어져 웃음 지어도 시선을 붙잡아 맨다.

열여덟이나 먹어 놓고도 수염 한 올 나지 않아서는

짐 하나 제대로 들 기운은 없어도 입으로나마 열심히 나를 때도 그랬다.

어쩌면 그때부터 였는지 모른다.

작달막한 키에 왜소한 체구의 석동이란 놈에게 자꾸 시선이 간 건.

 

있지만 없는 듯 그리 살아갔으나 그래도 부족했는지

왕은 아우인 제게 중인 신분의 여인과 낙혼 하라 명했다.

 

하지만 이미 석동에게 온 마음을 다 빼앗겨 버린 뒤였다.

그 어여쁜 이를 놓치기는 싫으나 혼인을 아니할 수 없는 노릇이니,

이제 어찌해야 한담?

 

<책 뒤표지 소개 글 전문>

 

 

 

 

 

 

 

왕의 이복동생인 금평 대군 이 흔은 그저 살아가고 있었다.

무엇도 해서는 아니 되었고, 어떤 것도 관심을 가져서는 안되었으며, 스스로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왕의 위협이 되지 않기 위해, 그저 왕이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무기력하게 삶을 살아 내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이번 생에 자신에게 주어진 몫은 딱 그만큼이라는 것을 일찍 깨달은 흔은 매번 포기하는 삶을 살아갔다.

 

그런 흔의 앞에 눈이 가고, 관심이 가고, 자꾸만 곁에 두고 싶은 이가 생겼다.

청으로 함께 떠난 사신단의 일원인 조그마한 녀석 하나가 자꾸만 눈에 밟히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일을 어쩌면 좋나.

눈이 가고 마음이 가는 그 녀석은 방석동! 그러니까 남자란 말씀.

이러다 남색이라도 하게 될 상황에 빠진 흔에게 풍랑을 만나 흔들리는 배는 구원의 밧줄이 되어준다.

 

석동이 여자라는 사실을 눈치챈 흔은 자신의 감정의 정체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니까 그 모든 감정의 흔들림은 화가 아니라 사랑이었던 게지.

그 고약한 사랑이 신분을 뛰어넘어 그들에게도 찾아 들고야 말았던 것이다.

무엇도 의지대로 가질 수 없었던 대군에게.

그리고 여자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굴레를 씌우는 조선을 떠나 훨훨 날고 싶었던 석동에게.

 

조선으로 돌아온 그들 앞에는 중인과 대군이라는 엄청난 신분의 차이보다 더한 벽이 놓여있었으니,

두 사람 모두 얼굴도 모르는 혼약자가 정해져 당장 혼인을 해야만 하는 상황 앞에 던져진 것이다.

심지어 대군에게는 낙혼을 하라는 전하의 교지가 내려져 있었다.

양반도 아닌 중인과의 낙혼.

오호, 통재라!

 

그러나 흔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일찌감치 포기했던 이 생에서 처음으로 탐을 냈던 여인 또한 갖지 못했으니 누구와 산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혼례를 올린 그 앞에 마주 앉은 여인은 당돌하기 짝이 없고, 애타는 마음은 석동에 대한 걱정으로 까맣게 타 들어갔다.

동뢰를 제대로 치르면 석동을 만날 수 있다는데... 그들의 첫 밤은 과연 무사할는지.

운명인 듯 어렵게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어쩌다 또 찬서리를 맞아 그렇게 얼어붙은 나날을 보내야만 했는지.

정치적 음모 앞에 힘없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대군이라는 자리가 한없이 서글픈 흔은 과연 사랑을 지켜낼 수 있었을지.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책 장만 열어두고 나는 이만 총총!

진짜 이야기는 책으로 만나요!!^^

 

 

 

 

 

이미 많은 스포를 풀어 놓은 것 같지만, 사실 여기까지가 글의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는 것.

그들의 시작과 그들의 행복은 너무 찰나인지라.... 진짜 만찬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사랑은 단짠단짠!!!

 

 

 

 

 

 

'낙혼'이라,

실제로 왕의 핏줄이 중인 신분의 여인과 정식 혼례를 올린 경우가 있을까?

아주 멀고 멀어 흐릿해진 핏줄이라고 해도 신분을 중시했던 시대에 과연 가능한 일이었는지 글을 읽는 내내 문득문득 궁금해지곤 했다.

허구의 인물과 사건들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경직된 사고로 생각하게 된다. 살아본 적도 없는 조선시대를 잘 아는 양 굴면서.

가장 꽉 막힌 시대라고 느껴지는 그 시대에 너무 엄청난 신분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을지, 아니면 그 시대에도 숨통을 틔워주고 싶은 판타지라고 봐야 할지, 혼자서 이쪽 저쪽으로 메트로놈처럼 오락가락하는 마음이었다.

어차피 로맨스는 판타지.

어차피 사랑이라는 건 판타지보다 더한 비현실이 아니었던가 싶어지니 그냥 웃음이 나버리고 말았다.

사랑에 현실을 들이대다니, 가장 몹쓸 짓을 했나 보다. 내가.

 

나는 그것이 불가능이든 비현실이든, 사랑을 지키는 쪽이 좋다.

현실의 사랑은 대체로 비극이라, 책 속에 사랑은 이왕이면 영원하기를 바라게 된다.

내가 지키지 못한 것을 그들은 지켜내기를,

내가 참아내지 못한 것을 그들은 끝내 참아내기를,

내가 잡지 못한 것을 그들은 영원히 놓치지 않기를,

그들의 사랑이 무참해지는 순간에도, 벌건 피를 뚝뚝 흘리는 고통 속에서도, 기어코 사랑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흔과 서리의 사랑은 유난하게도 많은 고난 속에 던져진다.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도록 의심을 던져주고,

가슴을 찢는 고통과 끝을 알 수 없는 슬픔 속에 둘을 방치해 둔다.

그럼에도 사랑할 수 있느냐고, 손을 놓으면 편해질 거라고, 다른 이를 만나보면 어떻겠냐고, 둘을 시기하는 마음들이 내내 귓가에 속살거린다.

그런 무참한 시간 속에서도 끝끝내 서로를 포기할 수 없었던 둘은, 신분도, 제도도, 시대도 뛰어넘는다.

조선시대를 억눌렀던 억압마저도 넘어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이 참 어여쁘기도 하다.

사랑은 무엇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 속에는 참 안타까운 인물들이 많다.

결혼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당하는 양반과 왕실.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아이마저 잃고 기어코 악인이 되어버렸던 중전.

아무리 동생이 자신을 낮추고 욕심을 버려도 대군의 존재 자체를 두려워하는 왕.

살아있음으로 왕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서 있는 존재로 읽히는 금평 대군, 흔.

그리고 그들로부터 파생된 정치와 시대의 테투리안에서 내내 흔들리며 길을 잃은 사람들.

 

책을 읽다 보면 대체로 선과 악으로 나뉜 어느 한편에 서서 이야기를 관망하게 된다.

그리고 보통은 주인공들 편에서 모든 이야기를 가늠하기 마련이고.

한데, 이 책은 묘하게 모든 인물들을 관조하게 된다.

악인까지 자꾸만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니까 3D를 넘어서 5D 같은 느낌이랄까?!

앞과 옆을 넘어서 그 뒤까지 자꾸만 넘겨다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속도가 자꾸만 느려졌다.

인물들이 모두 살아 움직이고 있어서 이 사람 저 사람 쳐다보느라 바빴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그게 어수선하거나 번잡스러운 느낌은 절대 아니었다.

그저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인물들의 얼굴을 한 번 더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들었으니까.

 

긴박한 스토리에 비해 나는 몹시도 느린 독서를 했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배부름을 느꼈으니 작가가 꽤나 공들여 쓴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다음 책이 곧 출간된다 하니... 두 번 생각지도 않고 무조건 구매각!

심지어 여기저기서 좋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죽취라니.... 더더욱이 궁금해진다.

 

 

 

 

 

로맨스 시대물의 정석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단비 같은 책이 되어 줄 것 같다.

 

판타지 로맨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홀로 '정석 시대물 로맨스가 보고 싶다'고 주야장천 외쳐 댔더니, 하늘에서 뚝.... 아니 스칼렛에서 뚝하고 떨어진 이 책이 너무 기꺼워서 몹시 칭찬해주고 싶은 이 마음.

(아, 물론 이 책도 단점이 있긴 하다. 시대물만 주야장천 읽은 나 같은 독자는 그다음 장면을 너무 잘 예측하게 된다는 것.;;; 그럼에도 문장 하나하나가 참 정성 들여 썼구나 싶어서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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