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마음
이두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이 있는가 하면 그저 참을 수 없어서 치는 몸부림이 있다.

P.19 「타오르는 마음」 _ 비말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간성이나 도덕성 같은 것을 넘어선 진짜 생존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끝까지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을까.

우리의 몸부림들은 정말 답을 구하기 위한 과정인 것일까.

단지 바꾸거나 부숴버릴 수 없는 어떤 한계 앞에서 그저 생짜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은 당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책장을 펴자마자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와락 겁을 먹을 만큼 그 질문들은 아프고 날카로웠다.

서로의 민낯을 보는 일은 매번 그렇게 불편하고 힘이 든다.

그럼에도 그 속에 담긴 나의 민낯을 꼿꼿이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남의 얼굴을 한, 나의 감춰두었던 부끄러움의 민낯을.

 

나도 그저 그런 용기 없고 시시한 '사람'이라서.

소리 내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국 침묵하는 사람이라서.

 

 

 

 

남은 이들은 느리고 뜨거운 기후 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사라져버리는 모호하고 둔중한 일상에 맞춰 자신의 삶을 적응시켜왔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아는 척, 눙치고 짐작하며 속삭이는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거짓과 진실들. 주민이 300명 안팎인 작은 마을에서 속내를 잘못 드러내거나, 상대의 비밀을 섣불리 들췄다가는 그곳에서의 삶이 불가능해지는 수가 있었다.

P.16 「타오르는 마음」 _ 비말

 

 

모든 사건의 배경이 되는 작은 마을 '비말'

그곳은 황폐하고 넓은 평원과 뜨거운 태양, 건조한 바람을 품고 있는 곳이다.

부지런함만으로 생존을 일굴 수 없는 땅에서 근근이 삶을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겐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무엇보다도 간절했다.

 

그런 그들 앞에, 어느 날 발견된 불에 탄 시체들.

기괴하게 죽음을 맞이한 시체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불특정 다수의 죽음이 무서운 이유는, 우리가 살인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죽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서로에 대한 의심을 키웠고, 두려움과 무력감에 대해 알아나갔다. 그 배움은 그들을 미치게 했다. 마을은 그 사건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언론은 상처받은 마을이 얼굴을 감싸려 들자 그 손을 잡아 뜯었고, 타지 사람들은 그 맨 얼굴을 보겠다며 몰려들었다.

P.22~23 「타오르는 마음」 _ 비말

 

 

처음은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알고자 하는 욕구가 누군가를 갈기갈기 찢어발길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궁금증을 참아내지 못한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상대방의 상처를 헤집는 일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지금 헤집는 것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관음의 갈증을 채우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너무 쉽고 빠르게 그들은 잔인해져갔다.

 

살인 사건에는 가해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피해자의 슬픔 따위는 손쉽게 외면해 버리고, 모두들 관음증 환자들처럼 열광한다.

그리고 그 열광이 살인마를 찾는 축제로까지 이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돈의 기근에 시달렸고 누구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살인마 하나가 나타나 사람 몇을 죽이는 것으로 마을에 돈을 가져다줬다.

P.26 「타오르는 마음」 _ 비말

 

 

그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희망 같은 생존이었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도덕성을 갉아먹고, 죄책감 같은 것은 내다 버린 채, 생존을 선택했다.

생존이라는 이름은 근사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스스로를 덜 나쁜 사람처럼 여겨지게, 어쩔 수 없었다는 허울 좋은 핑계로 '생존'이라는 단어가 소비되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살인마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겨날 만큼 생존이 간절했었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 누구라고 허세를 부릴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멈춰진 듯, 소멸의 길로 들어선 낡아가는 마을에서 그들은 피해자를 버리고 살인마를 선택했다.

자신의 어딘가가 조금씩 바스러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나는, 팔 게 없는 사람들은 늘 자기가 원치도 않는 걸 팔아야 해, 뭔지도 모르는 걸 팔아야 해,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그런 사람들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으니까. 자식의 죽음을 파는 어머니가 있었고, 살인마의 범죄를 파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것으로 먹고 자라 온 우리들이 있었다.

P.135 「타오르는 마음」 _ D-day 올드맨

 

 

서글프다.

아무것도 팔게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살기 위해 무엇이라도 팔아야 하는 삶이라니.

그 속에서 조금씩 어긋나고 일그러진 사람들이 생겨났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상처를 팔고 있는 사람들이 멀쩡하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이 글의 주인공인 화자 또한 마음속 어딘가가 뭉텅 잘려나간 사람이다.

9년 전 살인사건이 있던 밤, 그 사건을 유일하게 목격한 어린아이가 마음속 얼룩 하나 없이, 뾰족한 모서리 하나 없이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마음속 얼룩은 자꾸만 퍼져서 온 마음을 까맣게 물들이고, 뾰족한 모서리는 자꾸만 스스로를 찌르는 무기가 되어 그녀를 괴롭혀왔다.

그녀가 내뱉은 말들은 미친 사람의 허언으로 메아리칠 뿐이었다.

 

외면도, 무모한 부딪힘도 그녀를 구원하지 못했다.

 

 

 

"너는 우리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범인을 잡고 싶어 하지 않아. 그저 이 상황이 견딜 수 없고, 무섭고,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게 맞든 틀리든 그저 달려나가겠다는 거야. 그렇게 늘 진실로부터 멀어지고 싶어 해."

P.222 「타오르는 마음」 _ 너희들이 범인을 잡길 바라

 

이제 그녀는 진실을 알고 싶다.

정답을 찾아야만 한다.

9년 만에 다시 시작된 살인의 범인을 그녀는 꼭 잡고 싶다.

세상에 알리고 싶다.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쩌면 그 모든 고통으로부터 그렇게라도 구원받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인 주인공과 살인마의 시점이 여러 차례 반복되어 쓰여있다.

심지어 범인을 초반에 알려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범인이 누구인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거나,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그 두 마리 토끼를 이 책은 다 잡았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를 따라갈 때 느끼는 당혹감과 사건 자체의 반전만으로도 충분히 책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내게 더 오래 남은 것은, 살인범이 누구인가가 아니었다.

살인범이 A든 B든 C든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진실은 밝혀졌고, 궁금증은 풀렸지만, 그 마을에 머무는 동안 나는 그것보다 더 쓸쓸한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인보다 더 무섭고, 더 잔인하고, 서글픈 우리들의 민낯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만 같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옌렌커의 딩씨 마을의 꿈을 떠올렸다.

건조하고 부서진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매혈을 하던 딩씨 마을의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보여서였다.

책장을 덮고도 허허롭고 메마른 풍경이 잊히지 않았는데, 이 책 또한 내게 쓸쓸한 풍경을 남겼다.

사람들의 내면이 부서져가는 모습은 누가 그려도 이렇게 슬픈 일인 건가 보다.

무겁고 쓸쓸한 돌 하나가 또 마음에 남겨졌다.

 

곧 검은 구멍 같은 아침이 올 것이다. 도로변에 뒹구는 빈병 같은 아침이 올 것이다. 해안가에 떠내려온 죽은 고래 같은 아침이 올 것이다. 그 아침이 너무 길고 지루해서, 죽음에 이르지 못할 타격만을 내게 줄 것이다. 언제까지 그 짓을 계속해야 한단 말인가. 그 비참함을 언제까지 견뎌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 아침을 한 번쯤은 더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P.409 「타오르는 마음」 _ 위도, 길고 큰 하품

 

툭툭 던져둔 문장들이 시시 때대로 나를 찔러댔다.

건조하고 시니컬한, 한없이 무겁고 서글픈 문장들이 나를 감탄하게도, 우울하게도 만들었다.

덕분에 많은 생각들을 하고 또 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부끄럽기도 했다.

관심이 세상을 바꾸고,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기도 하지만, 그 관심이 때로는 누군가를 할퀴고 상처 입힌다.

어디까지가 관심이고 어디서부터 폭력이 되는 건지, 그 모호한 경계를 우리는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까.

 

생존을 위하여 나는 나의 무엇을 팔고 있을까.

무엇을 내어주고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

 

슬픈 건 우리들 대부분이 삶을 지탱하기 위해 무언가를 팔아치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영혼이 가난해져가고 있다.

살면 살수록 마음이 허기진 이유가 어쩌면 나도 모르게 팔아치워버린 '무엇'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 엉엉 울고 싶어진다.

 

그렇게 자꾸만 고갈되어 가는 '어떤 것'으로 인해, 점점 더 침묵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것들.

깨트리지 못해서 도망 쳐버린 순간들.

그런 것들이 우리 속에 켜켜이 쌓여 우리의 눈꺼풀을 무겁게 만든다.

눈 감으면 안 되는 것들을 보며 눈 감게 만들고, 침묵하면 안 되는 일들에 침묵하게 만든다.

 

우리가 조금씩 그렇게 상실해버린 어떤 것들에 대해,

끝끝내 외면하거나 침묵하는 것들에 대해,

이 책은 말하고 있다.

 

 

_ 삶의 부조리 앞에 나는 어째서 그리도 온순했던가.

 

침묵이 부끄러운 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원
존 마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유전자로 완벽히 연결된 '단 한 사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일까?

 

 

사랑은 화학작용일까?

혹은 두뇌의 착각이거나 페로몬의 끌림 같은 것?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랑은 가슴이 시킨 일'이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우리가 그저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것이지 과학적으로 마음을 증명해내긴 어렵다.

사랑도 마찬가지.

형태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잡아둘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믿는다.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꿈꾼다.

 

사랑의 영원을 꿈꾸면서 우리는 불안과 의심을 싹 틔운다.

진짜 우리가 서로의 반쪽일까?

'영원히 사랑했습니다'로 끝나는 동화를 완성시킬 수 있을지, 우리는 늘 불안하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은 소설이 나왔다.

유전자를 매칭해서 서로의 완벽한 상대를 찾아 주는 일.

그것이 가능한 세상이 펼쳐진다.

유전자를 통해 찾아낸 나의 단 한 사람,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겠습니까?

 

 

 

 

'DNA 매치'는 생물학과 화학물질, 과학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과학이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는 시대가 왔다.

사람들은 처음엔 반신반의하지만 곧 DNA를 통해 만난 매치와 사랑에 빠진다.

전율을 느끼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기꺼이 그 사랑에 몸을 던진다.

 

더 이상 사랑을 찾아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고, 새드엔딩으로 끝날지 모를 동화의 마지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 찾아주는 운명의 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DNA를 등록하고 그 상대를 기다린다.

그렇게 완벽한 상대를 만나 결혼을 하고 사랑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DNA 매칭에 대한 믿음은 한없이 굳건해진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존재한다.

DNA 매칭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DNA를 등록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고, 자신의 매치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운명의 단 한 사람이 DNA를 등록하지 않았다면 영영 매치를 찾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매치가 나타날 때까지 그 시간의 공백을 매우려고 사람들은 다른 데이트 상대를 만나지만, 그 상대에 대한 믿음이 없다.

그러니까 DNA가 그 상대가 바로 너의 운명이라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랑이 완성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나의 운명일까를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그저 인터넷으로 받은 결과값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이미 결혼한 부부도, 오랫동안 사랑을 이어온 커플도 그 DNA의 데이터 값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잘 살던 부부가 어느 날 DNA가 정해준 운명의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가정을 깨트리고 떠나는 일이 빈번해진다.

심지어 성적 취향마저 DNA 매칭 앞에 무참히 무너진다.

 

하지만 그 DNA 매칭을 발견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들의 반쪽을 알려주고 있는 과학자이자 사업가인 사람은 말한다.

DNA 매칭의 힘으로 사람들의 편견이 깨지고 있다고.

더 이상 성소수자가 손가락질 받는 일이 없어지고(어차피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DNA에 명시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니까), 피부색에 따라 사람을 가르는 인종차별의 벽도 낮아졌고(매칭은 나라와 인종을 뛰어넘어 이루어진다), 이혼율 또한 낮아졌으니 결과적으론 더 나은 세상을 만든 것이라고 말이다.

 

진짜 과연 그럴까?

더 이상 진정한 나의 반쪽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상처받고 상처 주는 연애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그들은 정말 행복해졌을까?

 

 

 

 

놀랍게도 이 책은 스릴러다.

운명이니 소울메이트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해 보이는 책이 왜 스릴러일까.

어쩌다 사랑이 스릴러가 되어버렸을까.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사랑이 의외로 스릴러적이라는 서늘한 진실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엔 DNA를 등록해 단 하나의 매치를 찾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들의 매치는 때로는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기도 하고, 동성이기도 하며, 거짓말쟁이이거나 연쇄살인마이기도 하다.

그들은 다 각각의 이유로 매치를 찾아간다.

그리고 사랑을 완성하고 싶어 한다.

꽃길만 걸으라고 알려준 DNA 매칭은 그들 앞에 진짜 꽃길을 안내해 줬을까?

과연 DNA가 알려준 답은 진짜 정답이었을까?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완결되었을까?

 

DNA가 정해준 진짜 운명이 따로 있다면, 당신은 지금 잡은 그 손을 놓을 것인가? 놓지 않을 것인가?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늘 전전긍긍하는 우리들에게 '정답만'을 알려주는 곳이 있다면 우리는 그 정답을 궁금해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DNA 매칭을 철석같이 믿는 그들을 우리가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안에 항상 불안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불안을 잠재워줄 정확한 결과값을 외면하기란 참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의 끝을 바라보는 일이 씁쓸했다.

그것이 해피이든 새드이든 상관없이.

 

 

 

 

책장을 덮으며 가장 오랫동안 남았던 생각은 하나였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당신은 상대를 얼마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무것도 모른 채 '운명'의 이름으로, 'DNA'의 힘으로 사랑을 이뤄낼 수 있을까.

상대가 보여주는 빛뿐 아니라 감춰둔 어둠까지 사랑으로 모두 이해해 줄 수 있을까.

 

과연 상대는 무엇을 감춰두고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마음을 쉬게 하는 연습 - 흔들리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야하기 나오키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제대로 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남들보다 현저히 느린 템포로 움직이고, 느릿느릿 삶을 살아가는 편인데, 시간에 쫓겨 내달리는 사람들 마냥 피곤하기만 하다.

충분히 쉬고 있고, 지칠 만큼 일하지도 않는데도, 도대체 왜 매일매일이 피곤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제대로 쉰다는 것'

그것을 할 수 있게 되면, 내가 느끼는 피로감이 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하며 간과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지금을 느끼고 지금을 즐기고 지금으로 의식을 되돌리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정신을 온전히 하나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P.162

 

 

- 지금에 집중하는 것!

 

이 책에는 여러 형태의 마음챙김이 담겨 있는데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가장 큰 맥락은 바로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을 온전히 살아 낸다는 것.

많은 책들에서 그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들 '지금에 집중하라, 지금이 중요하다, 오늘이 모여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런 조언을 참 많이도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온전히 지금에 머무는 일이 왜 이리도 어려운지.

자꾸만 이곳저곳에 쉴 새 없이 마음을 빼앗긴다.

제대로 된 집중을 하지 못한 채, 지금 몸은 이곳에 있지만 정신은 다른 곳에 있기 일쑤이다.

 

이 책에는 감사하게도 그 '집중'에 대한 방법들이 다양하게 담겨있다.

 

우리가 지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먼저 온화한 마음과 건강한 몸을 되찾으라 말한다.

그런 다음 내게 맞는 적당한 삶을 되찾고, 있는 그대로의 감각을 되찾고, 자연 속의 나를 되찾으라 한다.

그렇게 나만의 삶의 템포를 찾아내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삶에 조금 더 성큼 다가서게 되는 게 아닐까.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몇 군데 소개해 보자면,

일단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내 몸에 집중하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몸속의 장기들의 이야기를 다 알아챌 수는 없겠지만,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 근육의 변화, 통증의 정도를 기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일은 건강을 유지하는 것에도 도움이 될 테고, 언제 쉬어야 하는지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함부로 사용했던 몸에 감사를 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행동의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행동에 여운을 남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의 움직임은 모두 소리를 지닌다.

소리뿐 아니라 움직임은 잔상을 남기기도 한다.

바로 그 소리와 잔상의 여운을 끝까지 음미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움직임의 멈춤을 가만히 응시하는 일.

머릿속으로만 그려보아도 움직임의 정갈함을 느낄 수 있다.

늘 소란스럽게 움직이거나 급하게 몸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소음을 줄이고 움직임 끝의 진동까지 갈무리하는 것은 몸을 떠나 마음의 움직임까지 정갈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되어 줄 것 같다.

마치 다도를 할 때의 마음과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다도 또한 지금에 집중하는 마음과 움직임이 가장 중요하니까 말이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만족하지 말고

진짜 자연을 눈으로 감상합니다.

P.154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자연을 가까이하라는 것이다.

하늘을 자주 보고, 자연의 모든 것들에 눈과 귀와 마음을 열고 자연은 느끼는 일.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기계에 너무 얽매여 살아가고 있다.

컴퓨터와 핸드폰을 멀리하면 가끔 바보가 되어 버린다.

예전엔 그렇게도 많은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녔는데, 지금은 정말 가까운 사람의 번호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보 또한 내 머리에 저장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핸드폰을 통해 검색이 가능한 일상을 살게 되면서, 뇌는 점점 게을러진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을 기계에 의존하고 있고, 삶과 시간을 통제당하고 있다.

스마트 기기 없이 하루를 보내는 일이 곤욕스러운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졌다.

 

책을 보다가도 핸드폰의 알림 소리에 금방 집중이 깨어지고 만다.

핸드폰이 살아있는 시간에 나의 집중은 너무 쉽게 박살 나버리고, 그 외에도 많은 기기들이 나의 집중에 딴지를 걸어온다.

그런 것들이 없던 삶이 불행했느냐 물으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제는 스마트 기기가 없는 삶을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어졌다.

물론 장점 또한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시간'에게 그것은 독약과도 같다.

가장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쉬는 동안 우리는 침대에 누워, 혹은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것은 진짜 쉼이 아니지만, 즐거움을 느끼고 있기에 그 시간들을 힐링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쉬었다고 믿었던 시간의 대부분은 핸드폰이 함께 했다.

아무리 쉬어도 나는 피로하고 지쳐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그건 쉬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천천히 걸었어야 했다.

바람은 느끼고, 계절을 느끼고, 하늘을 보고, 나뭇잎의 반짝임을 더 많이 느꼈어야 했다.

핸드폰을 놓고 진짜 쉼 속으로 걸어들어가야 했다.

 

자연 속으로 걸어들어가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온전히 느낄 때 평온이 찾아온다.

 

 

 

 

간결한 저자의 말들은 이미 우리가 알거나 느끼고 있었던 것들 일 수도 있다.

그래야 한다는 걸 알지만 하지 못했던, 혹은 놓지 못했던 것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얽매던 것들.

그런 구속으로부터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되찾아 와야 한다.

온전한 나로 돌아와 내 몸과 내 마음과 내 정신에 집중할 때, 우리는 온전한 지금을 살게 되는 것이다.

 

지금에 집중한다는 것이 바로 제대로 쉬는 일이라고 말한다.

번잡한 생각들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지금 하는 일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는 것.

그것이 청소든, 운동이든, 독서든, 차를 마시거나 잠을 자는 일이든 그 순간에 다른 것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온전히 머무를 수 있다면 그 집중의 순간이 우리를 쉬게 하는 열쇠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을 온전히 살아내자.

 

 

하지만 생각해보면 애초에 미래는 지금의 연속이니 우리는 항상 미래의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매분 매초가 미래입니다.

P.1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나와 관계 사이의 균형,

신뢰와 불신 사이의 균형,

경계와 허용치 사이의 균형,

혼자의 외로움과 관계의 괴로움 사이의 균형.

수많은 순간에 무너지지 않고 균형을 찾기 위하여

조금 더 유연해지고, 조금 더 단단해져야 했다.

P.6 _ 프롤로그

 

 

내게 누가 '요즘 당신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관계'라고 답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왜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건지, 예전보다 훨씬 더 잘 참고, 더 잘 견디고, 더 많이 이해하고, 상대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데도 멋모르던 어린 시절보다 지금이 더 사람과의 관계에 힘이 든다.

너무 맞추려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사라져버린 기분.

나는 싫고 좋은 게 너무 분명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흐리멍덩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쳤다.

사람에게.

관계 속에서 제대로 된 균형을 잡지 못해서 허우적대다가 나도, 상대방도 모두 잃어버린 기분.

 

허용치를 한참 넘어버린 '함부로의 말들'이 나를 찌르고, 무수한 '배려 없음'에 지치고, 혼자의 외로움과 관계의 괴로움 사이에서 비틀대다가 호되게 넘어졌다.

다시 또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데, 모든 것이 귀찮고 싫기만 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화를 내야 할 때 웃는 스스로에게 짜증이 난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책의 저자 또한 관계에서 오는 고통 속에서 나와 같은 질문과 고민을 했던 시간이 있었던가 보다.

여전히 답을 모르는 내게,

저자가 지나온 고민의 시간들과 그렇게 찾아낸 질문의 답들이 내게도 필요한 답이기를 바라며 책을 읽었다.

 

 

 

 

특별한 것과 소중한 것은 다르다.

우리 가족, 친구, 연인이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여서

소중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마음을 주어 소중해지는 것처럼,

나 자신과 내가 가진 것을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자존감은 채워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존감이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착각하곤 하지만,

자존감은 특별하지 않더라도 그런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현실을 잊게 하는 마취제가 아닌,

현실에 발을 딛게 하는 안전장치인 것이다.

P.44 _ 제 인생은 특별하지 않지만 소중합니다

 

 

이 책은,

'자존감을 지킨다는 것, 나답게 산다는 것, 타인과 함께 한다는 것, 당당하게 산다는 것, 마음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사랑을 배운다는 것' 이렇게 여섯 챕터로 나뉘어있다.

보통 에세이를 읽을 때 딱히 챕터에 연연하지 않고 책을 읽는 편인데 (그럼에도 앞에서부터 뒤로 읽어나가기는 하지만 때때 뒤섞어 읽기도 한다) 이 책은 다 읽고 나니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을 세우고, 나다움을 되찾고, 타인과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그 속에서 당당하게 살기 위해 마음의 언어를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익히고 나면, 무엇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은 그러니까,

탈진해버린 우리에게 다시 천천히 나를 되찾고, 나를 이해하고, 나를 사랑하도록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지친 내게 목마름을 달래 줄 물을 건네준 후, 천천히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시 삶 속으로, 관계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도록, 그렇게 다시 모든 것을 껴안을 수 있도록, 함께 달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다.

 

 

 

 

 

관계는 두 사람이 하는 공놀이와 같기에

서로 주고받을 때 놀이이고, 즐거움이다.

상대는 내게 공을 던지는데 나는 조금도 받아치지 못하면,

그때부터 놀이가 아닌 폭력이 되고,

상대는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P.204 _일단 표현해야 상대의 진가를 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상처를 주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다 너무 다른 존재들이라 각자의 상처 또한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내겐 전혀 상처가 아닌 말들이 상대에겐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남겨지기도 하고, 상대의 악의 없는 말에 날카롭게 베어 피를 흘리기도 한다.

정답은 없지만, 그래도 해결점은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어 질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분명 좀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런 방법을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이 책에는 위로와 조언이 함께 담겨있다.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그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 그리고 비슷한 고통을 느끼고 있을 누군가를 위한 위로와 조언이 담백하게 이어진다.

너무 얕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그래서 더 좋았다.

질문의 무게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 같아서.

 

물론 이 책에도 위트는 존재한다.

작가 그린 일러스트가 요즘 말로 '핵사이다'다.

 

 

 

 

 

진지하게 글을 읽다가 마지막 일러스트와 마주치면 풋! 웃음이 나기도 하고, '그래 그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야' 하고 격하게 공감하게 되기도 한다.

진지와 유머를 적절하게 섞어 그 유명한 단짠단짠의 공식을 완벽하게 만들어 냈다.

작가는 균형을 그렇게 맞추고 싶어 하더니,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의 균형, 진지와 유머 사이의 균형마저 제대로 맞추게 되었나 보다.

내 삶의 균형도 이렇게 딱 ~ 맞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읽으며 그 균형을 찾기 위해서 고민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어떤 것의 무게가 다 다를 테니, 내 안의 저울 위에 무엇을 얼마큼 올려야 할지 더 깊이 생각해봐야겠다.

기어코 나도 그 균형을 찾아내 마음이 좀 더 여유로워지고 단단해지기를 기대한다.

 

 

 

 

상대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착각은

거절이나 불쾌감을 예방할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을 줄 수도 있지만,

실재하지 않았던 갈등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P.107 _ 상대의 마음을 안다는 착각

 

 

짐작하지 말자.

오늘도 열심히 자신이 만들어 낸 허구의 짐작을 철석같이 믿으며 상대방을 오해하고 미워하는 당신.

이제 그만!, 그건 진실이 아니다.

(내 주위에도 있다. 모든 이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이. 심지어 그중 어느 것도 상대방으로부터 확인된 사실이 없는데도 자신이 상상한 상대의 모습을 진실이라고 확고히 믿는 사람이.)

착각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상대방은 전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도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을 확고하게 믿으며 스스로에게 상처 입히지 말자.

그 시간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내 감정에 귀를 기울이며 나를 사랑하자.

 

나는 오롯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니까.

 

 

 

「나를 지키면서도 갈등은 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간관계 처방전」

 

작가의 시간은 내게도 넉넉한 위로로 남았다.

또한 작가가 찾아낸 평온에 가닿기 위해 나 또한 여러모로 균형 찾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경계와 허용치를 세우고, 정중하게 내 감정을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아마도 이 책은 여러 번 다시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아니, 읽어야 할 것 같다.

읽다 보면 나도 'NO'를 제대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만 같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인간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다. 결국 모두 죽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도 죽는다. 그러다 결국 열 사망, 즉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열평형 상태에 도달해 우주가 종말을 맞는 날이 올 테고, 그때가 되면 우주의 모든 변화가 멈추고 별들이 사멸하며 오로지 무한하고 생명이 없고 얼어붙은 텅 빈 공동만 남을 것이다. 그토록 요란하고 오만하던 인간의 삶도 영원히 무의미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런 진실을 알고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살아간다. 그러나 바쁘고 행복하게 일분일초를, 한 시간을, 하루를 보내는 사이에도 그 텅 빈 구멍은 사라지지 않고 늘 우리 위를 맴돈다. 누군가 그 시커먼 구멍을 알아차리고 똑바로 쳐다보다가 깊은 절망에 빠져들 수도 있다.

P.13 _ 「서문」 첫 줄부터...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두려움에 대한 치료법이 바로 이야기다."

 

이야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이야기를 우리가 만들어 내는 이유, 그것은 근원적인 인간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던가.

 

언젠가는 완전히 소멸되어 버릴지 모른 삶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자 우리는 매일 희망적이고 아름답고 영원할 것 같은 이야기에 몰두한다.

때로는 더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에도 심취하지만, 그것은 또 그 나름대로의 백신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야기는 왜 시작되었고, 어디에서부터 왔고, 어떻게 이어져서 우리 삶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 책은 뇌과학과 심리학적 시선으로 해석해 주고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의 뇌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내가 보는 모든 것이 뇌가 만들어낸 환각 속 세계이고, 그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인과관계를 연결해가는지, '마음'이라는던지 '가치관'같은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고 외부 세계와 부딪혔을 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뇌과학적 풀이가 몹시도 흥미로웠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책으로 옮겨 갔을 때, 책 속 인물에 대입되었을 때 어떻게 써야 독자들이 흥미를 느끼고 몰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뇌는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항상 예기치 못한 상황을 경계한다. 뜻밖의 변화가 위험을 불러오고 우리의 목숨을 노릴 수도 있기 때문인데, 한편 그런 변화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뜻밖의 변화라는 우주의 갈라진 틈새로 미래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변화는 희망이자 약속이고 더 나은 내일로 가는 굴곡진 여정이다. 삶에서 예기치 못한 변화와 맞닥뜨릴 때 우리는 알고 싶어 한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좋은 변화일까 나쁜 변화일까? 예상 밖의 변화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 호기심이야말로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독자가 느껴야 하는 감정이다.

 

P.31_ 1장, 만들어진 세계

 

 

 

 

 

인과관계는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보여줘야 하고, 설명하기보다는 암시해야 한다. 아니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식어버리고 독자나 관객은 지루해진다. 나아가 이들이 이야기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 독자나 관객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유롭게 예상하고 방금 그 일이 왜 일어났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자기만의 감정과 해석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설명에 빈틈을 남겨둬 독자나 관객이 이야기에 끼어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P.81 _ 1장. 만들어진 세계

 

 

 

나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이기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예시들을 독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야기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방식에 무엇보다도 동감하게 된다.

흥미를 이끌어내는 포인트라든지, 나의 상상이 필요 없을 만큼 모든 것이 친절하게 설명된 책을 읽을 때의 지루함, 열린 결말에 대한 다양한 독자들의 해석에서 오는 재미와 궁금증.

책을 통한 사색과 고민과 깨달음과 공명.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서양의 서사와 동양의 서사에 대한 비교였다.

개인주의적 성향과 공동체적 성향의 극명한 비교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에 새삼 놀랐다.

서양의 작품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영웅서사를 많이 접했는데 우리와 다르다는 것에 방점을 찍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영화들은 주인공이 많은 사람을 구하고 죽는 고귀한 희생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너무 익숙해서 이상하다고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이었다.

 

"서양에서는 악에 맞서 싸우고 진실이 승리하고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 동양에서는 자기를 희생해서 가족과 공동체와 국가를 지키는 사람이 영웅이 된다." _ p.113

 

그렇다면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와 만나야 하지 않을까?

익숙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넘어서, 다른 세상의 다른 이야기를 더 많이 만나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학습되어 온 가치관이 다르고, 이해의 방향과 결도 다른 진짜 타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낯설고 이질적인 이야기와도 끊임없이 부딪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이 책의 마지막 즈음에 가면 이야기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나오는데,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분명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말한다.

어떤 이야기를 접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서 조금 다른 이해의 폭이 보여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김 숨 작가의 '한 명'을 읽었거나 영화 '귀향'을 본 사람은 위안부 관련 기사나 사건들에 훨씬 더 깊은 공감과 분노를 표출할 것이다.

소외되거나 묻혀있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우리가 읽거나 보았을 때, 그동안 관심조차 없던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소리를 내고, 배타적이었던 마음이 따뜻한 공감으로 돌아서게 된다.

 

혐오의 시대라고 불리는 현대의 시간을 살아가는데 우리에게 '이야기'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다름을 인정할 때, 우리는 혐오로부터 한 발자국 더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조금도 틀리지 않고 옳기만 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들 자신의 옳음을 굳건히 믿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너무 굳건한 편견은 때론 깨트려야만 한다.

나와 다른, 혹은 나와 닮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을 따라 걷다 보면 내가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보다 더 넓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야기의 탄생」

책을 덮고 나니 정말 제목이 찰떡같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정말 이야기의 탄생을 보여준다.

뇌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탄생, 글로 쓰여진 이야기의 탄생, 인물을 통해 보여지는 이야기의 탄생.

뇌과학적으로 우리 뇌 속에서 오늘도 일어나는 이야기의 탄생과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의 탄생을 씨실과 날실로 촘촘 엮어 매끄럽고 탄탄한 한 권의 책이 탄생되었다.

뇌과학과 심리학과 이미 세상에 나온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토록 매끄럽게 엮어냈다는 점이 놀랍다.

 

우리나라 작가가 우리나라의 작품들을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의 탄생을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마저 든다.

아무래도 외국 작가라서 대부분 서양의 서사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기에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물론 동서양의 이야기의 다른 점에 대해서도 책에서 다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 한국은 없다.

심리학자인 교수님의 말이 실려있어서 되려 놀라기도 했지만.

 

 

꼭 작가가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부록으로 '신성한 결함의 접근법'을 통해 진짜 글쓰기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긴 하지만, 오로지 독자의 자리에서 읽어도 충분히 흥미로운 책이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에게도, 그 이야기에 매번 빠져드는 사람에게도, 이야기의 탄생은 우리가 이야기에 이토록 이끌리는 이유에 대해 알려주고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