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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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다. 결국 모두 죽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도 죽는다. 그러다 결국 열 사망, 즉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열평형 상태에 도달해 우주가 종말을 맞는 날이 올 테고, 그때가 되면 우주의 모든 변화가 멈추고 별들이 사멸하며 오로지 무한하고 생명이 없고 얼어붙은 텅 빈 공동만 남을 것이다. 그토록 요란하고 오만하던 인간의 삶도 영원히 무의미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런 진실을 알고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살아간다. 그러나 바쁘고 행복하게 일분일초를, 한 시간을, 하루를 보내는 사이에도 그 텅 빈 구멍은 사라지지 않고 늘 우리 위를 맴돈다. 누군가 그 시커먼 구멍을 알아차리고 똑바로 쳐다보다가 깊은 절망에 빠져들 수도 있다.

P.13 _ 「서문」 첫 줄부터...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두려움에 대한 치료법이 바로 이야기다."

 

이야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이야기를 우리가 만들어 내는 이유, 그것은 근원적인 인간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던가.

 

언젠가는 완전히 소멸되어 버릴지 모른 삶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자 우리는 매일 희망적이고 아름답고 영원할 것 같은 이야기에 몰두한다.

때로는 더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에도 심취하지만, 그것은 또 그 나름대로의 백신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야기는 왜 시작되었고, 어디에서부터 왔고, 어떻게 이어져서 우리 삶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 책은 뇌과학과 심리학적 시선으로 해석해 주고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의 뇌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내가 보는 모든 것이 뇌가 만들어낸 환각 속 세계이고, 그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인과관계를 연결해가는지, '마음'이라는던지 '가치관'같은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고 외부 세계와 부딪혔을 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뇌과학적 풀이가 몹시도 흥미로웠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책으로 옮겨 갔을 때, 책 속 인물에 대입되었을 때 어떻게 써야 독자들이 흥미를 느끼고 몰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뇌는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항상 예기치 못한 상황을 경계한다. 뜻밖의 변화가 위험을 불러오고 우리의 목숨을 노릴 수도 있기 때문인데, 한편 그런 변화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뜻밖의 변화라는 우주의 갈라진 틈새로 미래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변화는 희망이자 약속이고 더 나은 내일로 가는 굴곡진 여정이다. 삶에서 예기치 못한 변화와 맞닥뜨릴 때 우리는 알고 싶어 한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좋은 변화일까 나쁜 변화일까? 예상 밖의 변화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 호기심이야말로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독자가 느껴야 하는 감정이다.

 

P.31_ 1장, 만들어진 세계

 

 

 

 

 

인과관계는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보여줘야 하고, 설명하기보다는 암시해야 한다. 아니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식어버리고 독자나 관객은 지루해진다. 나아가 이들이 이야기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 독자나 관객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유롭게 예상하고 방금 그 일이 왜 일어났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자기만의 감정과 해석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설명에 빈틈을 남겨둬 독자나 관객이 이야기에 끼어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P.81 _ 1장. 만들어진 세계

 

 

 

나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이기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예시들을 독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야기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방식에 무엇보다도 동감하게 된다.

흥미를 이끌어내는 포인트라든지, 나의 상상이 필요 없을 만큼 모든 것이 친절하게 설명된 책을 읽을 때의 지루함, 열린 결말에 대한 다양한 독자들의 해석에서 오는 재미와 궁금증.

책을 통한 사색과 고민과 깨달음과 공명.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서양의 서사와 동양의 서사에 대한 비교였다.

개인주의적 성향과 공동체적 성향의 극명한 비교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에 새삼 놀랐다.

서양의 작품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영웅서사를 많이 접했는데 우리와 다르다는 것에 방점을 찍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영화들은 주인공이 많은 사람을 구하고 죽는 고귀한 희생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너무 익숙해서 이상하다고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이었다.

 

"서양에서는 악에 맞서 싸우고 진실이 승리하고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 동양에서는 자기를 희생해서 가족과 공동체와 국가를 지키는 사람이 영웅이 된다." _ p.113

 

그렇다면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와 만나야 하지 않을까?

익숙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넘어서, 다른 세상의 다른 이야기를 더 많이 만나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학습되어 온 가치관이 다르고, 이해의 방향과 결도 다른 진짜 타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낯설고 이질적인 이야기와도 끊임없이 부딪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이 책의 마지막 즈음에 가면 이야기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나오는데,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분명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말한다.

어떤 이야기를 접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서 조금 다른 이해의 폭이 보여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김 숨 작가의 '한 명'을 읽었거나 영화 '귀향'을 본 사람은 위안부 관련 기사나 사건들에 훨씬 더 깊은 공감과 분노를 표출할 것이다.

소외되거나 묻혀있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우리가 읽거나 보았을 때, 그동안 관심조차 없던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소리를 내고, 배타적이었던 마음이 따뜻한 공감으로 돌아서게 된다.

 

혐오의 시대라고 불리는 현대의 시간을 살아가는데 우리에게 '이야기'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다름을 인정할 때, 우리는 혐오로부터 한 발자국 더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조금도 틀리지 않고 옳기만 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들 자신의 옳음을 굳건히 믿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너무 굳건한 편견은 때론 깨트려야만 한다.

나와 다른, 혹은 나와 닮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을 따라 걷다 보면 내가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보다 더 넓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야기의 탄생」

책을 덮고 나니 정말 제목이 찰떡같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정말 이야기의 탄생을 보여준다.

뇌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탄생, 글로 쓰여진 이야기의 탄생, 인물을 통해 보여지는 이야기의 탄생.

뇌과학적으로 우리 뇌 속에서 오늘도 일어나는 이야기의 탄생과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의 탄생을 씨실과 날실로 촘촘 엮어 매끄럽고 탄탄한 한 권의 책이 탄생되었다.

뇌과학과 심리학과 이미 세상에 나온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토록 매끄럽게 엮어냈다는 점이 놀랍다.

 

우리나라 작가가 우리나라의 작품들을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의 탄생을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마저 든다.

아무래도 외국 작가라서 대부분 서양의 서사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기에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물론 동서양의 이야기의 다른 점에 대해서도 책에서 다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 한국은 없다.

심리학자인 교수님의 말이 실려있어서 되려 놀라기도 했지만.

 

 

꼭 작가가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부록으로 '신성한 결함의 접근법'을 통해 진짜 글쓰기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긴 하지만, 오로지 독자의 자리에서 읽어도 충분히 흥미로운 책이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에게도, 그 이야기에 매번 빠져드는 사람에게도, 이야기의 탄생은 우리가 이야기에 이토록 이끌리는 이유에 대해 알려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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