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나와 관계 사이의 균형,

신뢰와 불신 사이의 균형,

경계와 허용치 사이의 균형,

혼자의 외로움과 관계의 괴로움 사이의 균형.

수많은 순간에 무너지지 않고 균형을 찾기 위하여

조금 더 유연해지고, 조금 더 단단해져야 했다.

P.6 _ 프롤로그

 

 

내게 누가 '요즘 당신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관계'라고 답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왜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건지, 예전보다 훨씬 더 잘 참고, 더 잘 견디고, 더 많이 이해하고, 상대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데도 멋모르던 어린 시절보다 지금이 더 사람과의 관계에 힘이 든다.

너무 맞추려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사라져버린 기분.

나는 싫고 좋은 게 너무 분명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흐리멍덩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쳤다.

사람에게.

관계 속에서 제대로 된 균형을 잡지 못해서 허우적대다가 나도, 상대방도 모두 잃어버린 기분.

 

허용치를 한참 넘어버린 '함부로의 말들'이 나를 찌르고, 무수한 '배려 없음'에 지치고, 혼자의 외로움과 관계의 괴로움 사이에서 비틀대다가 호되게 넘어졌다.

다시 또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데, 모든 것이 귀찮고 싫기만 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화를 내야 할 때 웃는 스스로에게 짜증이 난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책의 저자 또한 관계에서 오는 고통 속에서 나와 같은 질문과 고민을 했던 시간이 있었던가 보다.

여전히 답을 모르는 내게,

저자가 지나온 고민의 시간들과 그렇게 찾아낸 질문의 답들이 내게도 필요한 답이기를 바라며 책을 읽었다.

 

 

 

 

특별한 것과 소중한 것은 다르다.

우리 가족, 친구, 연인이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여서

소중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마음을 주어 소중해지는 것처럼,

나 자신과 내가 가진 것을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자존감은 채워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존감이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착각하곤 하지만,

자존감은 특별하지 않더라도 그런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현실을 잊게 하는 마취제가 아닌,

현실에 발을 딛게 하는 안전장치인 것이다.

P.44 _ 제 인생은 특별하지 않지만 소중합니다

 

 

이 책은,

'자존감을 지킨다는 것, 나답게 산다는 것, 타인과 함께 한다는 것, 당당하게 산다는 것, 마음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사랑을 배운다는 것' 이렇게 여섯 챕터로 나뉘어있다.

보통 에세이를 읽을 때 딱히 챕터에 연연하지 않고 책을 읽는 편인데 (그럼에도 앞에서부터 뒤로 읽어나가기는 하지만 때때 뒤섞어 읽기도 한다) 이 책은 다 읽고 나니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을 세우고, 나다움을 되찾고, 타인과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그 속에서 당당하게 살기 위해 마음의 언어를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익히고 나면, 무엇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은 그러니까,

탈진해버린 우리에게 다시 천천히 나를 되찾고, 나를 이해하고, 나를 사랑하도록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지친 내게 목마름을 달래 줄 물을 건네준 후, 천천히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시 삶 속으로, 관계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도록, 그렇게 다시 모든 것을 껴안을 수 있도록, 함께 달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다.

 

 

 

 

 

관계는 두 사람이 하는 공놀이와 같기에

서로 주고받을 때 놀이이고, 즐거움이다.

상대는 내게 공을 던지는데 나는 조금도 받아치지 못하면,

그때부터 놀이가 아닌 폭력이 되고,

상대는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P.204 _일단 표현해야 상대의 진가를 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상처를 주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다 너무 다른 존재들이라 각자의 상처 또한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내겐 전혀 상처가 아닌 말들이 상대에겐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남겨지기도 하고, 상대의 악의 없는 말에 날카롭게 베어 피를 흘리기도 한다.

정답은 없지만, 그래도 해결점은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어 질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분명 좀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런 방법을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이 책에는 위로와 조언이 함께 담겨있다.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그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 그리고 비슷한 고통을 느끼고 있을 누군가를 위한 위로와 조언이 담백하게 이어진다.

너무 얕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그래서 더 좋았다.

질문의 무게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 같아서.

 

물론 이 책에도 위트는 존재한다.

작가 그린 일러스트가 요즘 말로 '핵사이다'다.

 

 

 

 

 

진지하게 글을 읽다가 마지막 일러스트와 마주치면 풋! 웃음이 나기도 하고, '그래 그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야' 하고 격하게 공감하게 되기도 한다.

진지와 유머를 적절하게 섞어 그 유명한 단짠단짠의 공식을 완벽하게 만들어 냈다.

작가는 균형을 그렇게 맞추고 싶어 하더니,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의 균형, 진지와 유머 사이의 균형마저 제대로 맞추게 되었나 보다.

내 삶의 균형도 이렇게 딱 ~ 맞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읽으며 그 균형을 찾기 위해서 고민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어떤 것의 무게가 다 다를 테니, 내 안의 저울 위에 무엇을 얼마큼 올려야 할지 더 깊이 생각해봐야겠다.

기어코 나도 그 균형을 찾아내 마음이 좀 더 여유로워지고 단단해지기를 기대한다.

 

 

 

 

상대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착각은

거절이나 불쾌감을 예방할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을 줄 수도 있지만,

실재하지 않았던 갈등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P.107 _ 상대의 마음을 안다는 착각

 

 

짐작하지 말자.

오늘도 열심히 자신이 만들어 낸 허구의 짐작을 철석같이 믿으며 상대방을 오해하고 미워하는 당신.

이제 그만!, 그건 진실이 아니다.

(내 주위에도 있다. 모든 이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이. 심지어 그중 어느 것도 상대방으로부터 확인된 사실이 없는데도 자신이 상상한 상대의 모습을 진실이라고 확고히 믿는 사람이.)

착각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상대방은 전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도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을 확고하게 믿으며 스스로에게 상처 입히지 말자.

그 시간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내 감정에 귀를 기울이며 나를 사랑하자.

 

나는 오롯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니까.

 

 

 

「나를 지키면서도 갈등은 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간관계 처방전」

 

작가의 시간은 내게도 넉넉한 위로로 남았다.

또한 작가가 찾아낸 평온에 가닿기 위해 나 또한 여러모로 균형 찾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경계와 허용치를 세우고, 정중하게 내 감정을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아마도 이 책은 여러 번 다시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아니, 읽어야 할 것 같다.

읽다 보면 나도 'NO'를 제대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만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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