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의 생각이 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리고, 내게 옳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틀린 것이 될 수도 있죠. 그래서 가끔은 무엇을 긍정하고, 무엇을 부정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더군요. 삶의 방향을 정하고 저만의 가치관을 찾는 일에 더욱 매달리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역사의 쓸모> 들어가는 글 _ p.5~6
인생의 질문의 순간, 삶의 길을 잃는 순간, 생이 흔들리는 순간, 저자는 역사에게 그 길을 묻는단다.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의 답 또한 역사 속에서 찾아내고, 나아갈 길 또한 역사 속에서 길잡이를 발견한다고 한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저 이 나라에서 태어나고, 이 나라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하는 교양?
아니면 학교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혹은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강제로 외워야 하는 공부의 하나?
정말 깊이 있게 제대로 역사를 궁금해하고, 그 역사 속의 사건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궁금해하고 있었을까.
역사를 그저 '역사'라는 명사로만 받아들이고 알고 있었던 나에게, '역사의 쓸모'는 움직이는 역사, 살아있는 역사, 여전히 흐르고 있는 동사의 '역사'를 일깨워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 바로 역사라는 사실.
우리는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삶을 살아가는 자세 또한 갑자기 꼿꼿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가 들려주는 역사에는 숨이 있다.
죽어있는, 죽어버린 시간의 이야기가 아닌, 살아있는, 여전히 숨 쉬고 존재하는 역사.
단순한 사건의 나열로서의 역사가 아닌, 그 사건 속을 살아냈던 인물들의 눈빛과 숨을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전혀 다른 의미와 무게를 지닌 채 우리에게 다가온다.
죽어있던 역사의 무게는 모래알처럼 허망하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버리곤 하지만, 살아있는 역사의 무게는 단단한 돌처럼 묵직하게 손안에 남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알고 있었던 사건, 안다고 생각했던 역사 속 인물들.
그들이 낯설고, 생경한 느낌으로 다시 찾아온다.
그가 들려주는,
살아서 움직이는 '역사'를 읽어보자.

또한 정약용은 자신이 계속해서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도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지금의 생각을 남기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은 형조에 있는 죄목만 보고 자신을 죄인 정약용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끊임없이 기록하겠다는 것입니다.
출세의 길이 막혔다고, 죄인이 되었다고, 폐족이 되었다고 자포자기하여 손 놓고 있지 않았습니다. 정약용은 형조에 기록된 몇 줄짜리 글로 평가받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글을 남겨 후세의 평가를 받으려 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 <역사의 쓸모> _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_ P.75~76
역사란 무엇인가.
너무 근본적인 질문 같지만 한 번도 진지하고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지나버린 시간들 속에 남겨진 어떤 사건들과 인물들의 나열, 그러니까 어제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 이야기 속에서 교훈을 얻거나 애국심을 기르거나 민족정신 같은 것들을 고양시켜주는 일종의 도구 같기도 했다.
그런 내게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는 뒤통수를 후려치는 아찔함을 선사해주었다.
내가 왜 정약용 선생을 조선 최고의 실학자로 기억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내내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후세에 그런 사람으로 전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그런 사람으로 후세에 남겨지기를 원했다.
실록에 적히는 몇 줄의 글 때문에 천하의 죄인으로 남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 몇 줄의 기록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더 많은 글과 더 많은 기록을 남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하려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오늘 하루가 어떤 역사로 기록되어질지, 몇백 년이 지나 까마득히 먼 후세의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읽히게 될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역사는 지나간 시간이 아닌, 지나버린 기록이 아닌, 오늘의 시간, 오늘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역사에 한 줄의 기록도 남겨지지 않을 나의 하루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뛰어난 사람도, 부지런한 사람도,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사람도 아니다.
너무도 흔하고, 넘치게 많은 '아무개'중 한 명일 뿐이다.
후세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지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내가 죽고 난 후의 평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정약용처럼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서, 그처럼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없어서 그런 나의 오늘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역사 속 인물로 기록되기엔 나는 지나칠 만큼 평범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나는 사실, 그저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역사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나고 남겨지고, 그것이 시간을 건너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내 삶의 기록들이 어떻게 역사가 되어지는지, 지금의 평범함이 어떤 식으로 역사에 영향을 끼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현재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오늘의 시간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의 역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삶의 시간을 넘어 더 먼 시간들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아주 먼 미래에 오늘의 시간들이 어떤 식으로 기록되고 읽히게 될지, 나의 사소한 행동과 말들이 어떻게 남겨질지, 그 모든 오늘에 대한 책임을 우리 모두 나눠지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열악한 환경에서도, 귀양을 가고 핍박을 받던 상황에서도 정약용은 '역사'의 오늘을 누구보다 생생히 또렷하게 살아냈다.
그를 만난 오늘,
우리도 역사를, 지금을, 오늘의 시간을 좀 더 또렷하게 바라봐야겠다.
대단한 기록으로 남겨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엄청난 업적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후세에 '시대를 망하게 한 인물'들 중 하나로 기록되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우리 모두의 앞에는 푸른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누군가는 그저 바라만 보고 누군가는 기꺼이 그 바다를 건널 것입니다. 삶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계기로든 변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꼭 말하고 싶습니다. 삶의 모든 것이 이미 결정 나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도 가능성을 불신하지 말라고. 그러니 우리 쫄지 맙시다. 이미 엉망이라면 바다에 발 한번 담근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저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할 걸음 내딛어보자고요. 어린 활보가 그랬듯이.
___________________ <역사의 쓸모> _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_ P.202
책을 읽으면서 아는 인물의 새로운 면모를 자주 만나게 된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의 업적은 똑같지만,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가짐은 새롭게 읽히곤 한다.
장보고의 일생도 그것 중 하나였다.
장보고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을 통해 비춰진 그의 모습은 익숙한 듯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장보고의 모습뿐 아니라 그 사이사이의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장보고의 모습은 경탄을 자아냈다.
내가 조각조각 알고 있던 그의 모습 위로, 촘촘히 채워지는 그의 새로운 면모들이 그를 좀 더 제대로 바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여전히 칭송받는 사람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묻혀진 사람인 것 같아서 씁쓸함 또한 감출 수 없었다.
어디선가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중국 와 일본의 역사도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맞는가 보다.
우리나라 역사 기록 속에 그는 자신의 모습의 절반도 제대로 적히지 못한 것은 아닐까.
승자의 역사이고, 사대부의 역사인 기록 속에서 인물들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묻혀버리거나 왜곡되고 날조되기도 하기에 조금 더 면밀히, 새로운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볼 필요가 있는가 보다.
그렇게 숨은 인물 중 우리에게는 조금은 덜 알려졌지만 존경할 만한 인물이 있다.
전 생애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대동법 전국 시행을 내내 외쳤던 김육.
이미 들어봤거나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낯설거나 처음 듣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역사를 배우던 시절에는 김육이라는 인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를 제외하고도 외워야 했던 인물이 너무도 많았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생애의 길을 함께 걸으면서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을 왜 더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있는지 안타까웠다.
다행히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김육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건 아니고 '조선왕조실톡'이라는 웹툰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쉽게 쓰인 역사서가 왜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역사서는 왠지 고루하고 지겨울 것만 같고, 흥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찾아읽지도 않게 된다.
그나마 TV 강의를 통해서 여러 명의 역사 강사의 인문학 강의가 인기를 끌고, 인기에 힘입어 여러 채널에서 방송이 되면서 나처럼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도 이야기 앞으로 끌어당겨 놓았다.
나도 참 좋아하며 각각의 강의들을 열심히 보고 듣고 했지만, 어쩐지 책으로까지는 손이 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역사의 쓸모'를 읽으면서 역사 책(?)에 대한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쉽고 재미있고 즐겁게 역사를 이야기해준다면 얼마든지 더 많은 책들을 읽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학생들도 분명 공부의 카테고리를 벗어나 훨씬 더 즐겁고 재미있는 역사를 만날 수 있게 될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두서없이 튀어 오르곤 했다.
살아있는 역사는 살아있는 생각을 불러오는 법인가 보다.
책을 읽으며 깊이 고민하고 내게 맞게 소화하려고 노력했던 몇 가지 생각들에 대해 적어본다.

# 우리 아이들의 꿈에 대해_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도리어 망쳐버리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까닭은 그들의 꿈이 '명사'였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했을 뿐,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고민은 없었던 것이지요.
_________________ <역사의 쓸모> _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_ P.205
큰애가 초등학생이었던 때의 일이다.
학부모 상담을 갔던 내게 선생님이 보여준 우리 아이의 설문지 속 답변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했는지 모른다.
커서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냐고 묻는 질문에 우리 아이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적어놓았다.
대통령, 의사, 판사, 연예인 같은 직업이 아니라 불투명하고 애매한 '행복한 사람'이라는 꿈을 적은 아이를 보며 내가 참 아들을 잘 키웠구나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준 아들에게 너무너무 고마웠다.
꿈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직업을 말한다.
하나의 직업이 '꿈'이 되는 세상이 나는 늘 답답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참 줄기차게 아이의 꿈을 묻는 설문지를 집으로 보내곤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냐, 어떤 직업인이 될 것이냐를 묻는 설문지다.
아이가 원하는 직업과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나란히 적어서 제출해야 한다.
그때마다 나는 늘 '아이가 원하는 직업'이라고 적어보냈다.
아이가 쓴 직업을 똑같이 써서 보내면 될 텐데, 내겐 직업 자체보다 아이가 되고 싶은 어떤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기에 매번 그렇게 적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꿈은 늘 바뀌었다.
유치원 때에는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되고 싶다고 했다.
키가 작은 아들에게 커다란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때는 가수부터 작가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직업들이 등장했다.
다양한 직업을 알게 되고 다양한 꿈을 꾸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된 지금,
우리 아들에게 꿈을 물으면, '모르겠다' 라고 답한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이 될지 모르겠단다.
'행복한 사람'이라는 '동사'의 꿈을 꾸던 아이가 자라면서 '명사'의 꿈을 꾸더니 이제는 아예 꿈이라는 것을 꾸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너무 빨리 꿈을 포기하게 만든다. 너무 빨리 현실을 가르치고, 너무 빨리 직업을 선택하게 만든다.
책 속에서 저자가 지적했던 것처럼, 중학교 때부터 꿈을 선택해서 고등학교 내내 그 꿈을 향해서만 걸어야 간신히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입시 제도가 난감하기 그지없다.
아직은 정확한 직업을 선택하지 않아도 좋을 나이다.
아니,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몰라도 괜찮은 나이다.
현실 따위 내버리고 그저 꿈을 꿈인 채로 꾸기만 해도 좋을 나이다.
그런 나이의 아이에게 직업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사회.
그러니까 아이가 있던 꿈도 잃고 마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 대는 것이다.
무엇이라도 좋다.
직업이 아니면 더 좋다.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길이 있는 사람으로 자라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이 아니라도, 시간이 지나 어느 날이라도 자신의 꿈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꿈이 '명사'가 아닌 '동사'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커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던 아이의 마음이 분명히 살아움직이는 꿈과 만나게 될 것을 믿는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동사의 꿈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학생들도 그랬을 거예요. 어릴 적부터 이렇게 학습이 된 거죠. 누구도 그다음은 질문하지 않아요. 대법원장이 되어서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동사의 꿈을 물어봐야 하는데 명사의 꿈만 듣고 나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러니까 아이들도 거기까지만 생각을 하게 돼요. 그리고 자라면서 꿈을 잃어버립니다.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에 자신에 대해 깊게 고민해야 원하는 삶의 윤곽이 잡히는 법인데 모두 대학 입시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다 보니까 그럴 틈이 없는 거죠.
______________ <역사의 쓸모> _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_ P.211~212

# 미투, 여자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에 대해 _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정신적 유산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우리는 전통이라 부르고 대부분 그것에 따르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죠. 하지만 저는 그 전통이라는 것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당연히 그래 왔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그 기원을 낱낱이 가려본 적 없는 것들을 기꺼이 심판대에 올리고 과연 내가 따를 만한 생각인지를 살펴보는 거지요. 나에게 맞지 않는 생각이라는 판단이 들면 받아들이지 말고, 그 생각이 수정되는 데 힘을 보태면 됩니다.
________________ <역사의 쓸모> _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_ P.249
미투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어느 채널에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당연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조심스럽고, 숨겨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게 된 것이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피해자인 게 더 이상 부끄러울 일이 아닌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피해자에게 더 많은 질타가 쏟아지는 현상이 완벽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많은 것들을 희생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
그래도 수많은 미투가 쏟아지고, 그 미투를 바라보는 시각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긍정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가끔은 나도 공격적인 페미니즘이 싫어서 여자임에도 얼굴이 찌푸려지고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너무 편파적이거나 너무 공격적이어서 피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새로운 세상으로 도약하기 위한 산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옳은 방향으로 세상이 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그 안에서 때로는 옳지 않아 보이거나 과격하고 극단적인 목소리나 행동들도 튀어나오곤 하지만, 결국은 옳은 세상으로 뚫고 나갈 것을 믿는다.
이 챕터의 글을 읽으면서 더더욱 그런 믿음이 단단해졌다.
강경한 목소리에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조근조근하게 미투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만나게 되면 우리의 옳음을 인정받고 있는 것 같아서 안도의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가 억압받았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이다.
해야 할 말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여성을 옭아맸던 케케묵은 관습과 전통을 이제는 버려야 하는 것이다.
조선으로부터 시작된 여성 억압의 역사가 이토록 길었다는 게 더 놀라울 일이다.
이제는 그 시대를 허물고 새로운 시대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 맞다.
나도 모르게 전통에 따라 관습에 따라 그것이 옳은 줄 알고 살아온 시간들이 부끄러워진다.
같은 여자인 내가 여자를 그런 전통의 굴레에 따라 판단하고 정의 내렸던 순간들이 떠올라 씁쓸해진다.
그때는 그것이 맞는 줄 알았다.
그렇게 교육받고 강요받고 자랐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역사가 우리에게 남겨준 폐기물일 뿐이었다.
우리는 재활용도 불가능한 폐기물을 끌어안고 참 오랫동안 잘도 버텨왔다.
조선보다 더 앞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던 역사의 시간을 기억해야겠다.
우리의 뿌리가 그렇지 않았음을, 잘못된 악습이 우리를 오랜 시간 동안 괴롭혀왔음을 인정해고 반성하며,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만들어 가야겠다.
당당한 미투의 그대들이 자랑스럽다.

# 오늘을 사는 우리의 역사, 우리의 자세 _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한 번뿐인 젊음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역사라는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어요? 저는 늘 사람들에게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앞선 시대의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은 만큼 뒤이어 이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주고 싶어요. 그리하여 훗날 눈을 감는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일생으로 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 <역사의 쓸모> _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_ P.226
우당 이회영 선생의 일생에 대해 서술한 챕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 글은 나를 몹시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역사에 무임승차하고 있다.
내가 지금 누리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믿고 살아왔다.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지금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들의 죽음이 있었는지 모르지 않는다.
가장 아픈 시대는 일제강점기라고 생각하는 내게, 빼앗긴 나라를 후손에게 돌려주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투쟁하고 울부짖었던 조상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뻐근하게 아려오고 숙연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시대는 그런 희생을 교과서에서 배우는 시대다.
내가 조국을 위해 투쟁하고 목숨을 버려야 하는 그런 시대가 아닌, 감사의 마음과 존경의 마음을 갖추기만 해도 충분히 삶을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는 시대인 것이다.
안일하고 나태하기 너무 쉬운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지금의 평화가 내내 이어질 것이라고 무한정 믿어버리고 만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앞선 시대의 수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에 살게 된 우리가 뒤이어 살게 될 세대를 위해 무임승차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면, 나는 무엇으로 그것을 지불할 수 있을까.
무임승차인 줄도 모르고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던 부끄러움을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나라의 주인으로서,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제국에서 민국으로, 백성에서 시민으로 변화를 이끌어냈던 사람들이 일제의 폭압에 항일운동으로 맞섰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여러 위험에 무엇으로 맞설 수 있을까요?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선거 참여겠죠. 시민의식이 다른게 아닙니다. 불의에 저항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정신, 법과 도덕을 준수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태도를 이릅니다. 될 대로 되라고 포기한다면, 권리만 찾고 의무는 나 몰라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에게 시민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시민사회가 탄생한 지 100년. 이제 시민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돌아 볼 시간입니다.
____________ <역사의 쓸모> _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_ P.281~282
정치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았던 시간들에 대해 그렇지 않아도 부끄러워하는 요즘이다.
정치를 색안경 쓰고 바라봤던 나의 삐딱함을 반성하는 요즘이다.
유시민 작가님이 '알쓸신잡'에서 들려줬던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내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면, 이 책은 정치에 참여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되어 준다.
내가 잔다르크가 될 수 없다면, 혁명을 이끄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투표를 하고 정치에 참견하면서 나라가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끝없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다.
권리만 찾고 의무는 나 몰라라 하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좀 더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역사의 오늘을 책임진 지금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닐까 싶다.
작은 우리가 모여 나라를 이루고 있듯이, 작은 우리가 모여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우리 아이들의 세상,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살아야 하는 나라를 위해, 조금 더 역사에 눈을 뜨고 오늘의 역사에 깨어있어야겠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여러모로 나를 부끄럽게 만든 책이다.
오늘의 부끄러움이 내일의 용기가 될 수 있기를.
내일을 향한 오늘의 걸음에 어떤 의미가 되어 줄 수 있기를.
내가 잃어버렸던 나침판을 오늘 마주친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