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내일 1~2 세트 - 전2권
라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은 어렵다.

특히나 그것이 좋아하는 어떤 것이라면 더더욱 그 기다림의 길이가 길게만 여겨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여간해선 연재 글을 보지 않는다.

다음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작가는 작가대로 온 힘을 다하겠지만, 독자는 그 시간의 텀을 견뎌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재미있을수록 내일의 이야기를 기다리기가 힘이 든다.

누군가 밤새 내 곁에서 그 뒷이야기들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게 된다.

 

오랜만에 연재 중인,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읽었다.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책 한 권당 한 사람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음권을 기다리기가 좀 더 수월하게 느껴진다.

물론 큰 이야기의 축이 존재하지만 하나하나의 단편적인 이야기에서도 깊은 울림을 주고 생각의 길을 넓혀주니 그다음의 이야기를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리게 되나 보다.

 

이제 시작인 두 권의 책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들이 쓰일지 모르겠지만,

내 기다림의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 같은 책을 만났다.

 

지금도 연재 중인 웹툰, 『내일』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늘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내일을 이야기한다.

오늘에서 멈춰버리고 싶은 사람들,

오늘만 살고 싶은 사람들,

내일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내일의 생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저승사자가 찾아간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려 하는 사람들을 설득한다.

여기서 생을 멈추지 말라고, 계속 걸어야 한다고, 내일로 내일로, 끝없이 더 걸어야 한다고.

죽지 말라고, 살라고, 살고 싶지 않으냐고, 당신의 생의 끝은 오늘이 아니라고.

 

그들의 이야기에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생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질문하고 싶어진다.

왜, 왜냐고.

무엇 때문에 스스로 삶을 놓으려 했냐고.

무엇이 당신을 그토록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했느냐고.

오늘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게 만든 당신의 상처는 무엇이냐고.

 

자살하는 사람들은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살고 싶었던 거란다.

너무너무 누구보다 더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란다.

살고 싶었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던 어느 하루, 그들은 누구보다 내일을 꿈꿨노라 고백하지도 못한 채 삶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고통과 슬픔과 절망에 등 떠밀려 생에서 사로 자꾸만 뒷걸음질 치다 결국 그렇게 죽음의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생으로 잡아당기는 저승사자라니,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그런데 작가가 그걸 해냈다.

죽음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일을 하는 그들에게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일을 맡긴 것이다.

이보다 아이러니한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 놀랍게도 그들은 정말 열심히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을 설득한다.

진심을 다해 그들을 안타까워하고, 연민한다.

 

 

 

 

1권에서는 취업 준비생인 최준웅이 구련과 임륭구를 만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쩌다 얼떨결에 그들과 얽혀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버린 준웅.

그 앞에 다시 나타난 그들은 자신을 저승사자라고 소개한다.

원래 준웅의 생은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있는데 그들의 실수 때문에 식물인간 상태로 3년을 보내게 되어버렸다.

나름의 자구책으로 그들이 내민 카드는 비정규직 저승사자로 취직해 자신들과 함께 일하는 것.

그들과 함께 일해주는 대신 식물인간에서 깨어나는 시기를 앞당겨 준다는 조건을 내건다.

 

그렇게 준웅은 산자도 죽은 자도 아닌 채 저승사자의 업무를 맡게 된다.

 

그런데 이 저승사자들, 좀 이상하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게 아닌, 죽겠다는 사람을 뜯어말리러 다닌다.

스토커처럼 쫓아다니고, 그 사람의 삶의 자취를 더듬어 과거를 알아내고, 죽으려는 이유를 알아낸 후 자살하려는 순간 그들 앞에 나타나 자살하지 않도록 돕는다.

화를 내거나 질책하기도 하고, 다독이고 다정히 어루만져 위로해 준다.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절박한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다시 생으로 걸음하도록 등 떠밀어 주는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녀는 학원폭력의 피해자이다.

친했던 친구들에게 가장 심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소녀.

그 시달림과 괴롭힘이 그녀를 자꾸만 죽음으로 다가서게 밀어붙인다.

까마득한 절망과 끝없는 냉대가 사람을 얼마나 죽고 싶게 만드는지 너무 잘 보여준다.

 

 

 

"사실은 … 사실은 저 죽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지금이 싫어서 그랬던 거지…

살고 싶었단 말이에요…."

 

 

사실은 살고 싶었던 그 아이의 외침이 오랫동안 귓가에 울릴 것만 같다.

 

어느 날 아파트 고층에서 뛰어내린 아이들의 기사를 접하게 될 때마다 그 안타까움과 허망함을 이루 말하기 어렵다.

아이를 둘이나 키우는 엄마라서 ... 그런 기사가 더더욱 힘이 든다.

무엇이 그 아이를 뛰어내리게 만들었을까.

죽음의 대한 공포,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을 감수하게 만드는 그 무엇.

그것을 몰라주었다는 자책감.

또한 친구를 죽음에 이르도록 괴롭히면서도 죄책감이 없는 가해자들.

무엇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모두 어른의 책임이 아닐까.

남의 고통에 무감해지도록 변질되어가는 사회.

연민과 공감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늘 더 아프다.

그리고 부끄럽다. 어른이라는 나의 자리가.

 

 

 

 

2권에서는 새로운 저승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말고, 아주 현대적인 저승의 모습이랄까.

색다른 저승을 보여주고, 주인공인 두 저승사자의 숨겨진 스토리도 살짝 맛 보여준다.

책 전체 이야기의 큰 축이 되어줄 것 같은 그들의 지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다음권은 언제 나오나요?ㅜㅜ )

 

 

 

두 번째 이야기는 어느 재수생이 주인공이다.

고등학교 땐 공부를 잘했던 아이였는데 대학 진학에 실패한 한 번의 경험이 결국 그를 갉아먹고 있다.

큰 좌절과 실패를 경험해 본 적 없는 그에게 대학입시에 성공한 대학생 친구들의 모습은 깊은 좌절과 상실감을 가져다줬다.

 

점점 바닥으로 추락하는 자신감은 스스로를 못난 사람으로 규정짓게 만들고, 자괴감과 열등감은 의지를 꺾어 무기력한 상태로 끌어내린다.

 

지금의 사회가 젊은 청춘을 그렇게 내몰고 있다.

재수생이 아니라도, 대학생이나 취준생들 또한 그런 박탈의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열심히 죽을 만큼 노력해도 탈락을 맛보는 현실.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따라 걷고 싶어도 그 길이 보이지 않아 방황하는 청춘들.

어찌 한 사람의 이야기일까.

우리 모두의 이야기겠지.

 

 

 

 

청춘의 좌절은 때로 삶의 가장 큰 무기가 되어주기도 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의 부모님.

단단하고 굳건해 보이는 그분들도 청춘의 시절, 누구보다 깊이 상실과 좌절의 경험을 겪었던 분들이다.

갈 길을 잃고 헤매던 시간들이 그분들에게도 존재했을 것이다.

그런 시간들을 걸어 지금에 이르신 부모님의 등을 바라보면 우리가 오늘 갈 길을 잃었어도 다시 길을 찾아 헤매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한참 울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자식에서 부모가 되었고, 흔들려도 되는 나이에서 버텨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내 부모님의 걸음,

그리고 내 아이들의 걸음.

그 사이에서 나는 뒤돌아볼 줄 모르는 무정한 자식이 되기도 했었고, 한없이 무정한 등을 바라보고 걸어야 하는 부모가 되기도 한다.

 

좋은 자식은 못되었을망정,

좋은 부모는 되어봐야 하지 않을까.

 

자식이라는 이름은 늘 그렇게 이기적이고 무정하지만, 부모라는 자리는 늘 그렇게 인내하고 이해하는 자리일 테니까 말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자식의 자리를 잃었지만, 부모의 자리를 배우고 있는 나에게 주인공의 아버지의 모습은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또한 그렇게 오늘을 버티고 있을 남편이 생각나서 더 많이 울컥하고 눈물이 났던가 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에게 존경을.

 

감사합니다, 나의 아버지.

 

 

 

 

가볍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하지만 너무도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다.

발 디딜 곳이 죽음뿐인 사람들이 어떻게 가벼울 수 있겠는가.

웹툰 특유의 위트와 가벼움으로 포장하려 해도 삶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래서 이 이야기는 사랑받을 수밖에 없겠다.

우리들이 숨겨둔 가장 깊은 곳의 이야기니까.

말하지 못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한 그 어둠 속 상처받은 우리를 다독여주는 이야기이기에.

살다가 딱 죽고만 싶은 순간이 어디 한번뿐이겠는가.

그 한 걸음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십 대의 청소년에게는 그들만의 공감과 깨달음을 줄 테고,

이십 대의 청춘에게는 위로와 다독임이 되어줄 것 같다.

그리고 부모의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지금 아이들이 겪는 현실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해줄 공감의 책이 되어 줄 거라고 믿는다.

아이와 함께 읽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물꼬를 터줄 것 같은 책이라 부모와 아이에게 함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나와 남편이 함께 읽었고,

이제 아이에게 읽으라고 권해줄 예정이다.

그리고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내가 모르는 지금의 아이들이 겪는 고민과 상처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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