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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ㅣ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인생이 여행이듯 도시도 여행이다. 인간이 생로병사 하듯 도시도 흥망성쇠 한다. 인간이 그러하듯 도시 역시 끊임없이 그 안에서 생의 에너지를 찾아내고 새로워지고 자라고 변화하며 진화해나가는 존재다. 그래서 흥미진진하다.
도시 3부작을 펴내며_ P.6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도시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애착은 당연한 것일 테지만, 과연 우리는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하루가 다르게 귀퉁이 어딘가라도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는 도시.
날마다 다르게 성장해가고, 조금씩 쇠퇴해가는 도시.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일을 하고 잠에 들며 내일을 꿈꾼다.
우리 생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같이 나이 들고 같이 변화해가는 도시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어제 바뀐 도시의 한 귀퉁이를 우리는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기는 한 것인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도시에 대해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흥미롭고 놀랍다.
몰랐던 이야기, 놓치고 있었던 이야기, 가려져있던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 우리 앞에 데려다 놓는다.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방면으로 해석해서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의 시선이 넓어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도시란 이런 것이구나, 처음으로 도시 자체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이 책은 도시 건축가 김진애의 '도시 3부작'중 첫 번째 책이다.
첫째 권,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둘째 권,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성장하고 기뻐하고 상상하라』
셋째 권, 『우리 도시 예찬: 그 동네 그 거리의 매력을 찾아서』
이렇게 세 권의 책으로 출간된 '도시 3부작'을 통해 그녀가 도시적 삶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하고 통찰한 시선을 우리에게 선물해 준다.
그 첫 번째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으니, 다음 권의 책들이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나머지 책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일단 그 첫 번째 권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 책은 4부로 나뉘어 있는데, 그 안에서도 12가지 콘셉트에 의해 분류되어 있다.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하고 싶을 만큼 이 콘셉트들은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무심히 바라보던 것, 알고 있었지만 지나쳐버렸던 문제점들까지 꼼꼼하게 자각시켜주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도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도시가 이어져가고 있는지, 우리가 도시에서의 삶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책을 통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광장이 지닌 의미, 그 광장이 앞으로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 보전 지구의 진실, 기록과 보존과 보전이 왜 이 도시에 꼭 필요한 의미인지, 여행의 또 다른 의미, 스토리를 가진 도시의 힘, 비무장지대의 올바른 사용법, 공간을 보존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코딩과 디코딩, 부동산을 통한 머니게임, 아파트 공화국보다 더 문제인 단지 공화국, 'ㅂ'자 돌림병, 부정부패의 민낯_ 엘시티(나 같은 건축 무지렁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건물), 신도시와 달동네의 다른 얼굴, 디스토피아로 가지 않기 위한 우리의 노력.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만큼 인상적이고 중요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그렇게 두껍지 않은 한 권의 책 속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우리는 많은 경우 속고 산다. 많은 경우 속은 척하며 산다. 많은 경우 일부러 눈을 감으려 든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많은 거짓말을 하며 산다. 모르는 척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위선적이라서, 위악적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삶이란 게 그러하다. 위선과 거짓말이 없다면 현실은 견딜 수 없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멈추고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3부│머니 게임의 공간 : 현상과 구조_ P.262

읽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거나 현실 속에서 겪었던 고충들이 튀어나올 때면 반갑기도 했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을 경청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다가, 나랑 같은 주파수에서 갑자기 저자의 음성이 들려올 때엔 짜릿해질 수밖에 없었다.
주차장에 대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주차장도 갖추지 않고 건물을 짓나?"가 아니라, "주자장 사용증도 없는데 자동차 등록증을 내주나?"로.
3부│머니 게임의 공간 : 현상과 구조_ P.269
아파트 길가의 좁은 도로에 기어코 빽빽이 주차를 하는 차들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였는데, 취향 저격 사이다 발언을 만나고야 말았다.
진짜 우리나라도 주차장 사용증 없이는 자동차 등록증을 발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이유로(1주택 2대 이상의 차량 보유로 인해 주차장이 부족하거나,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 일조차 귀찮거나) 대로변에 아무렇지 않게 상시 주차를 하는 차량들 때문에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나 아파트 주변에선 아이들이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주차된 차들 때문에 아이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고가 나는 경우가 꽤 있어서 안전 문제도 심각하게 다가온다.
주차에 관련된 저자의 이런저런 의견들에 좋아요, 꾹! 하트, 꾹!
평화 시대의 비무장지대가 과거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공간이 되는 것은 반대다. 대한민국은 너무 잘 잊는다. 아픈 기억이 많아서인지, 감추고 싶은 기억 때문인지 더욱 지우려 들고 완전히 새롭게 인위적 공간을 만들려는 성향이 있다. …중략…
비무장 지대가 얼마나 슬픈 공간이었는지, 얼마나 잔혹하고 치열한 공간이었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2부│감感이 동動하는 순간 : 스토리텔링_ P.183
비무장지대를 앞으로 어떻게 우리가 사용하고 지켜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은 읽을수록 가슴 깊이 와닿았다.
권력에 따라 땅의 의미도 바뀌는 현실 속에서 과연 이상적인 토지의 이용을 실현해 낼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 든다.
그렇지만 비무장지대만큼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장소이고, 잊지 말아야 하는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장소이기에 제발 권력에 휘둘려 함부로 다뤄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예로든 독일의 모습들도 인상적이었다.
철책과 비무장지대가 세계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시금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이 시대 신도시에 빠져 있는 가치는 어떤 것들일까? '복잡성, 비 예측성, 돌발성, 즉흥성, 다양성, 의외성, 개별성, 변화, 개성, 정조'같은 것들이다. 나는 이런 가치들을 달동네에서 발견한다.
4부│도시를 만드는 힘 : 진화와 돌연변이_ P.301
달동네는 달동네만의 정겨움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달동네를 바라보며 신도시에 빠져있는 것들을 아쉬워할 필요 또한 없지 싶다.
나는 신도시가 좋다.
그 단조로움이, 명확함이, 쾌적함과 편리함이 좋다.
낯선 곳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내가 그나마 낯설어도 두렵지는 않는 곳이 있다면 바로 신도시다.
이유는 간단하다. 길을 잃어도 길을 찾기 쉽기 때문이다.
구획별로 나눠진 반듯한 길을 따라 걸으면 반드시 내가 원하는 장소에 도착하게 된다.
사실 나는 심각한 길치다. 그래서 낯선 길, 낯선 동네를 싫어한다.
요즘처럼 구글 지도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길을 잃는다는 것은 공포로 다가왔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진짜 여행을 하게 된다고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심각한 길치로서의 페널티가 주어지지 않은 경우에나 가능한 일 같다.
늘 낯선 곳에선 경직되어 있기 마련이고, 길 위에서 미아가 되어버릴까 봐 두렵기만 했던 시절에는 낯선 길의 아름다움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나도 길을 잃어도 예전처럼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든 찾겠지 싶은 마음으로 한참 느긋해졌지만.)
그래서 내게 신도시는 길 찾기의 유토피아 같은 공간이었다.
세상에 이런 쉬운 도시가 있었다니, 처음 신도시에 살았을 때의 그 감사함을 잊지 못한다.
달동네에 나를 떨어트려 놓는다면 나는 밤새 길을 찾느라 잠들지 못할 테니까.
지금은 신도시에 살고 있지 않지만, 예측 가능한 '신도시'라는 공간이 나는 여전히 좋다.
무엇보다 격렬하게 공감했던 부분 중 하나는 바로 해운대의 '엘시티'였는데, 그 이야기를 쓰자면 너무 많은 비난을 쏟아낼 것만 같아서, 전적으로 격하게 저자의 말 하나하나에 모두 몹시 공감한다고 쓴다.
그 건물이 그곳에 세워져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하면 한숨이 나고 분통이 터지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겠는가.
다들 같은 황당함을 가지고 있을 테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믿는다.
'차이는 존재한다. 세상이란 수많은 차이로 풍성해진다. 차별은 바보짓이다. 세상은 수많은 차별로 불행해진다.'
2부│감感이 동動하는 순간 : 코딩과 디코딩_ P.205

이상하게 여기는 시각은 아주 특별한 능력이다. 인지하고 식별하는 능력이고, 더 나아가 바꾸고 개선하는 역량이다. 일상을 너무도 당연해하는 것,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 것, 그저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애쓰거나 갖은 꾀를 부리는 것으로는 절대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질문하면서 변화의 단서를 찾는다. 이상하게 볼 줄 아는 이방인의 시각을 잃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시민의 태도를 잃지 말자. 좋은 도시적 삶으로 가는 길일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에 지레 패배감을 갖지 않게 만드는 길이다.
3부│머니 게임의 공간 : 현상과 구조_ P.274~275
일상을 너무도 당연해하며 살아왔고,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참거나 회피하며 살아왔다.
무엇이 잘못되었든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애쓸 뿐이었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내가 '왜?'냐고 묻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한 것을 이상한 채로 묵인했기 때문에,
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튀는 것이 싫었다.
앞에 나서는 것이 싫었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눈에 띄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 같은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질문하는 삶, 이방인으로 눈으로 낯설게 바라보는 도시의 일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그녀가 들려주는 도시 이야기에는 '도시'뿐 아니라 '사람' 또한 깊이 자리 잡고 있기에 도시의 생만큼이나 우리들의 삶을 들여다볼 순간들도 많다.
도시의 생과 사람들의 생은 그만큼 깊게 얽혀 흘러간다. 비슷하게 닮은 얼굴을 하고.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뿐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책을 통해 넓어졌음을 고백한다.
아직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을 먼저 살았던 그녀의 넓고 깊은 시선들은 좁고 얕은 나의 시선 앞에 돋보기가 되어주기에 충분했으니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오래 익은 시간은, 그 시간의 힘만으로도 설득력이 생긴다. 언제나 거기에 있었고 언제나 거기에 있을 듯한 안정감을 준다. 과거의 경험은 그대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흩어지기만 하는 것 같은 오늘에 깊이감을 드리운다.
1부│모르는 사람들과 사는 공간 : 기억과 기록_ P.119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이것으로 끝이 났지만 책을 넘어, 나의 도시 이야기를 꺼내본다.
나는 한 번도 도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내게 도시는 영원히 친해지지 않는 타인 같은 존재로 여겨질 뿐이었다.
알 것 같다 싶다가도 모르겠고, 익숙해지다가도 낯선, 속을 보여주지 않는 의뭉스러운 존재였다.
아무리 발붙이고 살아봐도 이방의 낯선 거리를 걷는 생경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십 년을 도시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내게 도시는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이방의 땅이다.
어쩌면 내가 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스토리가 없는 텅 빈 공간을 도시라고 믿으며 그 삭막함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도시가 품은 이야기들, 도시의 숨겨진 얼굴들, 도시가 움직이는 걸음들에 나는 그동안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이 낯설고 배타적인 이방의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 전전긍긍했을 뿐이다.

'도시란 모르는 사람들과 사는 공간'이다. 즉 '익명성'은 도시의 가장 근본적 속성이다.
1부│모르는 사람들과 사는 공간 : 익명성_ P.31
나는 도시의 익명성을 갈망하며 도시로 왔다.
익명성 따윈 조금도 허락되지 않는 시골에서의 삶이 너무 피곤했다.
남의 집 밥숟가락 개수까지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지나친 관심이 싫었다.
누구 집 딸인지, 누구 집 아들인지, 건너건너 죄다 아는 사람인 지독한 친밀성에 숨이 막혔다.
어느 곳에서도 나는 '오롯한 나'로 존중받지 못하고 누구의 딸 혹은 누구의 동생임을 자각한 채 행동해야만 했다.
개성은 억눌러지고 감춰지기 일쑤였고, 늘 꼬리처럼 가족의 이름이 따라붙었다.
어디서든 착실하게, 반듯하게, 예의 바르게, 싸우지 않고, 배려하며 산다는 일은 얼마나 지치고 피곤하고 힘든 일인지….
도시는 내게 익명의 매력으로 유혹해 왔다.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나의 잘못은 그저 나 하나의 잘못으로 이해되는 공간이 주는 자유란 엄청난 것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삶을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훨씬 더 멀어진 거리감이 나를 그저 나로 존재하게 만들었다.
그 자유로움이 기꺼웠지만 완벽한 무관심은 집중된 관심만큼이나 나를 할퀴는 흉기가 되고는 했다.
혼자가 되고 싶어서 낯선 곳에 서 있지만,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진 공포를 감당하기엔 나는 너무 여린 인간이었다.
도시는 그 익명성을 미끼로 나를 끌어들였지만, 매번 차가운 얼굴로 내게서 시선을 돌려버리고는 했다.
익명성이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한참 뒤에서야 깨달았다.
이렇게 저렇게 도시의 삶에 상처받고 나서야.
익명성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또한 외롭게 한다.
우리를 홀가분하게 하지만 때론 부유하게 만든다.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낯선 존재들을 견디는 일이다.

그렇다고 도시가 영영 낯선 공간인 것은 아니다.
책에서 말했듯이 도시에도 길이 있고, 수많은 발자국들이 모여드는 광장이 있다.
길로 쏟아져 나온 우리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얽혀들어간다.
비슷한 시각 같은 길에서, 같은 골목에서, 같은 버스에서 마주치다 어느 순간 익명을 버리고 이웃이 된다.
좀 더 쉽게 익명성을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 도시이긴 하지만, 결국 그 도시에 사람이 모여 '살다'보면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된다.
이 익명의 공간에서 이름을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필터를 씌운 듯 불투명한 얼굴에서 선명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는 시작점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 낯선 무리 속으로 걸어들어가 금세 완벽한 타인의 옷을 뒤집어쓸 수 있다.
그것이 도시라는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특혜이자 슬픔이다.
내게 도시는 아직도 낯선 타인이지만, 오늘 도시의 숨겨진 이름들을 발견했으니 타인의 옷을 벗고 이웃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할 때인 듯하다.
도시와 잘 사귀어 보기로 결정했다.

도시를 완벽하게 미화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냉소적인 비판만 하고 싶지도 않다. 모든 도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모든 문제들이 사라진 도시가 과연 좋은 도시일 것이냐는 의심도 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도시란 없다. 어떤 도시든 불완전하다. 흠결이 있고 아픈 역사, 부끄러운 역사, 슬픈 역사가 있으며 숨긴 이야기나 숨은 사연이 있음을 안다.
프롤로그_ P.12
도시는 우리를 닮았다.
공간이 우리를 닮은 건지, 우리가 공간을 닮은 건지 모호하지만, 분명한 건 닮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모두 이런저런 흠결이 있고, 완벽하지 않아서 불완전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인간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가 간직한 아픈 기억, 부끄러운 기억, 슬픈 기억, 숨긴 이야기들을 이 도시도 똑같이 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앓는 만큼 도시도 함께 앓고, 우리가 발전하는 만큼 도시도 함께 발전한다.
같은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다.
마치 쌍둥이처럼.
나와 꼭 닮은 이 도시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_________ 이 책에 사진이 실려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 저자가 설명하는 어떤 공간에 대한 사진들이 없는 게 너무도 아쉬웠다. 물론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고, 직접 가서 보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책을 읽는 동안 좀 더 빨리 쉽게 그 공간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