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사람은 비밀을 품고 죽는다. 빅 엔젤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가장 끔찍한 사실을 안전하게 숨긴 채로 죽을 테니까. 삶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또한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긴 투쟁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었고, 그건 결코 죄가 아니었다. 다만 그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_ p.466

 

 

암 선고를 받고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는 빅 엔젤.

그는 수많은 가족을 거느린 가장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아버지였다.

마지막 생일파티를 성대하게 치르고 싶었던 빅 엔젤이 성대한 생일 파티를 준비했지만, 생일 파티 일주일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만다.

가족들은 빅 엔젤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비워두었고,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의 시간을 내기는 어려웠기에 빅 엔젤은 큰 결단을 내리고야 만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일주일 미루는 것.

너무도 황당한 일이었으나, 가족들을 위해서는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장례식과 생일파티는 연달아 치러지게 된다.

가족들은 누군가를 영원히 떠나보내는 장례식과 누군가가 태어난 날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생일파티를 연이어 겪어야만 했다.

슬픔과 기쁨의 시간, 애도와 축하의 시간이 그렇게 시곗바늘의 흐름에 따라 뒤바뀌어 진행된다.

이보다 더한 블랙 코미디가 있을까.

 

하지만, 빅 엔젤의 생일은 오로지 축하의 시간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빅 엔젤은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그 죽음이 오늘 일지 내일일지 그보다 더 먼 시간이 흐른 뒤일지, 그곳에 모인 누구도 알 수 없었기에 파티는 즐거우면서도 슬픈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왜 빅 엔젤은 그토록 생일 파티에 집착했을까.

죽음을 코앞에 둔 그에게 생일 파티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

의아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생일 파티의 과장된 떠들썩함과 엄청난 대가족인 빅 엔젤의 가족들의 이야기들이 뒤엉켜 혼란스러움을 이끌어 냈다.

이 수많은 등장인물은 무엇이지?

너무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지닌 가족들.

그들이 보여주는 가치관과 삶의 모습들은 때로는 황당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따뜻했다.

가족이라고 해서 우리는 서로를 다 알지 못한다.

각자의 비밀이 있고, 각자의 상처가 있고, 각자의 슬픔이 있다.

그 모든 것들을 가족이라고 해서 모두 공유할 수도 없고, 모두 이해받을 수도 없다.

때로는 비밀은 비밀인 채로 묻혀야 아름다운 법이기도 하다.

그들은 각자의 상처와 슬픔과 비밀들을 간직한 채 그곳에 모였다.

빅 엔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적어도 빅 엔젤을 그 모든 이들을 한곳에 불러 모을 만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한곳에 모여,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해간다.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털어놓기도 하고, 오래된 상처를 위로받기도 하며, 가족의 의미를 다시 깨달아 간다.

빅 엔젤은 어쩌면, 그들에게 가족을 돌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용서를 구하기도 했고, 마음 속 비밀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가족의 진정한 결합이었으리라.

너무도 멀어져 버린 가족들의 마음의 거리를 힘껏 당겨놓고 싶었으리라.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남겨진 가족들을 걱정했으니까.

마지막까지 진정한 아버지로 빅 엔젤은 생을 끝마치고 싶었던가 보다.

 

 

 

시끌벅적하고 유머러스한 느낌을 가득 풍기는 책이지만, 70년을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가 오랜 시간 빅 엔젤로 살면서 해야만 했던 일들, 하고 싶었던 일들, 감추어야 했던 비밀들을 죽음을 마주하고서야 우리는 듣게 된다.

그의 후회와 슬픔과 상처와 고통을.

그의 기쁨과 행복과 만족과 즐거움을.

한 사람의 인생 속에 얼마나 많은 삶이 존재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노년의 죽음을 여러 번 지켜보았다.

그 삶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 채 놓쳐버렸다.

할머니가 아빠가 엄마가 그 많은 이야기들을 내게 해주었다면, 나는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내가 놓쳐버린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빅 엔젤은 어떤 삶을 살아왔든, 분명 죽음의 순간에는 행복한 사람으로 죽게 될 것을 믿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애도를 받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았을 리 없으니까.

우리 생의 마지막이 다들 이런 모습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만나,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진다면.

우리 모두의 생의 마지막 생일은 꼭 빅 엔젤처럼 사랑하는 이들로 북적이기를 빌어본다.

 

 

 

책을 다 읽고 아쉬웠던 점은,

내가 멕시코식 유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영어와 스페인어를 오가는 언어적 유희를 알아차리기엔 난 너무 영어와도 스페인어와도 먼 사람이었다.

게다가 멕시코와 미국의 역사를 모르니 글의 저변에 깔린 역사적 풍자들 또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만이 이해하는 두 나라의 적대적 감정 같은 것들, 살아가면서 몸으로 체득해가는 그런 감정들. 먼 나라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해서는 알기 어려운 어떤 것들. 그것들을 해석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외국에서 책에 쏟아진 찬사를 긍정하려면 근본적으로 역사적 지식과 언어적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아름다움과 재미를 나는 놓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더 이해해보고 싶고, 더 웃고 싶고, 재치 있는 문장에 무릎을 탁 치고 싶은데... 내게 그만큼의 해석 능력이 없었다.

책을 읽고 나서도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가 놓쳐버린 어떤 것들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