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행방 새소설 3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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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본디 안개처럼 흩어져 있다. 당신이 길을 걷다 어깨나 목덜미가 돌연 서늘하게 식는 걸 느꼈다면 죽음이 스쳐 지나간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죽음은 해당되지 않은 자에겐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는다. 예정된 곳에 다다르면 자기장을 형성시키듯 고요히 주위를 감싼다. 죽음은 아주 천천히 스며들기도 하고 일거에 대상을 삼켜버리기도 한다. 죽음의 표정 같은 건 없다. 그것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죽음은 형체도 근원도 없으므로 막아설 수도, 밀어낼 수도 없다.

그러나 죽음을 불러내는 자들이 있다.

불행히도 그렇다. 죽음을 창조하는 자, 죽음을 가공해내는 자들이 있다. 죽음은 고지식한 논리학자, 성실한 수학자, 부지런한 시종이다. 창조자가 누구든 죽음은 순리대로 움직인다. 요구되는 곳으로 마땅히 몸을 옮겨간다. 신이 예정하지 않은 죽음, 자연이 허락하지 않은 죽음을 만들어내는 자. 그들은 인간이다.

P. 221~222

 

 

 

「 우리 모두가 기억하게 될, 슬픔에 대한 묵직한 기록 」

 

이 책은 우리 모두의 슬픔의 기록이자 아픔의 기록이다.

도처에 널려있는 이해되지 않는 죽음을 향한 또렷한 응시이고, 깊은 물음이기도 하다.

너무 쉽게 사라져버린 목숨들에 대한 의문이고, 사과이기도 하다.

죽음의 예정된 목적지가 아닌, 인간의 탐욕스러운 부름에 의한 죽음의 발걸음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지켜본다.

그렇게 인간이 불러들인 죽음의 종착점을 바라보며 맥없이 울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기록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가 절대 잊어선 안 되는 것들을 단단히 묶어두기 때문이다.

당신과 내가 반드시 기억해야 될 슬픔이 여기에 있다.

 

 

지워진 것에는 지워질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사라진 기억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었다.

P. 8

 

 

누군가에게는 망각만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너무 아픈 상처는, 너무 깊은 슬픔은, 어떤 것으로도 치유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삶이 우리에게 망각을 선물하기도 한다.

 

하지만, 방관자였던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그날의 시간들을.

무책임했던 어른들을.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의 본성을.

그리고 죽음에 빼앗겨 버리고 만, 보드라운 생명들을.

책을 읽는 내내 아이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 주워진 주제에 별로 깐깐하게 굴고 싶진 않지만, 음, 이곳은 집이라고 하기엔 좀, 형편없네요.

_ P. 10

 

 

 

잎이나 곁가지를 한 번도 틔워본 적 없다는 듯 결이 매끈한 초콜릿색 나뭇가지는, 말을 했다.

귀신을 붙이러 간 누나가 아닌, 주혁에게 잡귀가 붙은 모양이다.

까탈스럽고 요구 사항이 많은 나뭇가지와 힘든 길 위에서만 살아갈 수 있었던 주혁의 기묘한 동거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뭇가지, 반은 누군가의 죽음을 본다.

자신과 접촉한 사람이 겪은 죽음이나 겪게 될 죽음을.

덕분에 무당도 없는 신당에서 팔자에도 없는 '신녀'노릇을 하게 된 주혁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알려준다.

 

죽음의 순간을 알고 있다는 것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점집에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간절한' 사람들이다.

거짓말이라도, 사기라도 믿고 싶을 만큼, 희망을 간절히 원하는 절망적인 사람들이 주혁을 찾아왔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 직장 내 시달림에 미칠 것 같은 청년, 할머니의 죽음을 걱정하는 손녀, 동생의 마지막을 알고 싶은 언니.

 

그들이 내려놓은 삶의 무게는 조금도 가볍지 않았다.

선의와 애정과 장난을 빙자한 폭력들.

다른 옷을 뒤집어쓰고 마치 폭력이 아닌 것처럼 우리를 속이려 드는 악의들을 끝없이 마주 보아야 했다.

그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또한 끝없이 자리를 바꾸곤 했다.

피해자의 얼굴로 앞에 앉아 고통을 토로하는 그 얼굴에서조차 가해자의 얼굴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뒤엉킨 폭력과 악의와 상처와 슬픔들.

그들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양면성을, 선의와 악의의 그 얇은 간극의 틈을 보여주려고 하는 듯하다.

어쩌면 선의와 악의는 같은 종이의 앞뒷면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의 민낯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그러나 제보의 절반 정도는 착각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장난과 조롱과 사기의 경계 어디쯤에 있었다. 우철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도 배려도 없이 악질적인 전화를 걸어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_ P. 51

 

아이가 사라진 뒤 우철과 그의 아내는 너무 쉽게 무시당했고 너무 자주 조롱당했고 이 모든 걸 너무 오래 견뎌왔다.

_ P.58

 

 

간절히 아이를 찾아 헤매는 부부에게 세상은 조금도 관대하지 않았다.

너무 쉽게 장난을 치고, 너무 쉽게 외면하고, 너무 쉽게 그들의 간절함을 이용했다.

사람들은 타인의 상처에 무심했고, 잔인했다.

그리고 부부는 아이의 삶을 제멋대로 재단했다.

 

 

 

 

- 네가 정의로운 사람인 것 같아? 네가 기울어진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 같아? 넌 그냥 사회 부적응자일 뿐이야. 다들 그러고 살아. 다들 기울어진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기를 쓰고 버티고 있어. 그만큼의 노력도 해보지 않은 네겐 우리의 성실함을 비난할 권리가 없어.

- 그럼 내가, 뭘 했으면 좋겠는데?

- 아무것도 하지 마. 제발, 가만히 좀 있어.

_ P. 168

 

- 가만히 있으라니. 그거야말로 제가 동생에게 끝없이 강요했던 말 아닌가요. 가만히 있어라,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가만히 있는 게 널 위한 거다. ……결국 제가 동생을 죽인 거예요.

_ P. 181

 

 

아마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명 나와 같은 사건을 떠올렸을 거라 믿는다.

부당해고 노동자의 투쟁과 죽음들.

주류에 편승하지 않고, 부조리를 눈 감지 않는 사람들.

기어코 잘못을 들추고 꼬집어 내는 사람들.

그로 인해 옳은 일을 하면서도 비난받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

그 속에서 죽어간 무고한 목숨과 존중받지 못한 또 다른 목숨들.

 

그리고,

그와는 전혀 다른 색의 죽음인, 세월호.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마치 주문처럼 세월호로 나를 데려간다.

어디 나뿐이랴, 4월 16일을 지나온 모든 사람들이 같은 슬픔을 떠올릴 것이다.

 

책 속에서 터져 나오는 깊은 슬픔의 순간들은 우리를 실제의 어느 날로 자꾸만 데려다 놓는다.

우리가 놓쳐버린 아깝고 아픈 목숨들을 기억하라고 속삭인다.

너무 아파서 망각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나약한 우리의 알량함을 비웃는다.

기억, 해야 한다고.

 

 

 

 

집단 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압박과 위화감을 외부인에게 전달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감정과 확신의 문제를 타인에게 설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타인. 영주는 종종 주혁을 그렇게 느꼈다. 수아와 관련된 일에 대해 주혁은 무지했고 안일했으며 비현실적일 정도로 무책임했다.

_ P. 126

 

주혁과 영주의 아이가 그곳에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곳에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그곳엔 누구의 아이든 있을 수 있었고, 누구의 아이든 죽을 수밖에 없었다.

_ P. 131

 

 

사실 이 책의 큰 축을 이루는 이야기는 주인공인 주혁의 이야기다.

왜 그가 편안할 수 없는 건지, 왜 그는 힘들게 길 위에서 삶을 견뎌야 했던 건지 그의 슬픔들이 곳곳에 묻어있다.

조금도 퇴색되지 못한 채, 고통에서 한 발자국도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그의 발자국이 무성하다.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 슬픔의 무덤에 묻힌 채 그는 자신의 죄의 무게를 그저 견디고 있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고통을 감히 상상이나 해 볼 수 있으려나.

아이를 키우는 나조차도 차마 짐작으로 알 것도 같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책 속의 상실은 소설의 탈을 쓴 실제의 어떤 사건이었기에 '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누군가의 가슴이 떠올라서.

 

여리고 고운 숨들이 화마에 휩싸여 죽어가던 밤.

그 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게 남겨진 사람들의, 어른이라는 이름을 단 우리들의 유일한 사죄의 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욕심으로, 탐욕과 이기심으로, 이제 겨우 점하나 찍은 아이들의 생이 끝나버렸다.

선도 면도 형체를 가진 도형도 되어보지 못한 채, 그렇게 겨우 작고 작은 점하나를 찍고 영영 사라져 버렸다.

너무도 많은 미래들이.

 

 

 

- 사십대엔 말야.

- 입체도형 안에 자기가 원하는 걸 넣을 수 있지. 가족이나 직장처럼 구체적인 것도, 의지나 희망처럼 추상적인 것도 전부. 도형 안엔 가장 소중한 걸 넣어야 해. 그래야 여생 동안 그걸 지키면서 도형을 늘려나갈 수 있거든.

…중략…

-그럼 아저씨의 도형 안엔 뭐가 들어 있어요?

- ……아무것도.

- 아무것도?

- 아무것도 없다, 내 도형 안엔. 도형 자체가 없어.

P. 112 ~ 113

 

 

 

 

 

죽음을 볼 수 있는 안테나이자 안내자인

신비한 나뭇가지 '반'이 마주친 무수한 손들

인간이 만들어낸

죽음들에 대한 단단한 응시

 

 

나뭇가지 반은 이미 겪었거나 앞으로 겪게 될 죽음을 볼 수 있는 존재였다.

그것이 어쩌면 반의 운명이었다.

그런 반에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주인공인 주혁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지현.

 

반은 예정되지 않은 죽음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죽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신이 예정하지 않은 죽음, 자연이 허락하지 않은 죽음', 반이 볼 수 없는 죽음.

그런 죽음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아프다.

 

책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다음의 문장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므로.

 

 

 

 

자음과 모음의 '새소설'시리즈는 처음 읽는다.

다른 출판사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간간이 찾아 읽고는 하는데, 그 시리즈만큼 '자음과 모음'의 이번 시리즈도 단단히 뿌리내려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얇지만, 결단코 얇을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유쾌한듯 하지만 더할 수 없는 슬픔이 담겨있다.

어찌 보면 캐주얼한 글처럼 읽히지만, 단단하고 무겁고 견고한 글이었다.

작가의 이런 응시가 너무 좋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밤은 탄생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거리에 밤의 씨앗을 흘리고, 누군가는 그림자처럼 발끝에 매달린 밤을 지르밟으며 걷고, 누군가는 폐로 스며든 밤의 기척에 뒤척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무섭고 두렵다. 그리고,

슬프다.

 

작가의 말 _ P. 244~245

 

 

'안보윤'

좋은 작가를 알게 되었다.

다음 작품을 설레면서 기다려야겠다.

작가의 단단한 응시가, 문장 속에 숨어 흐르는 선과 악의 엉킴이 인상적인 글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형태로 슬픔의 시간을 추모한다.

글로 슬픔의 알갱이를 빚어 토해내고 있다.

잊지 않고 있다는 것, 타인의 상처에 예민하다는 것, 슬픔을 온전한 방식으로 드러내 보여 준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런 작가들이 있어서 안도가 든다.

 

잊지 말아야 할 슬픔들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꾸만 무뎌지고 무감해져 간다.

고통스럽고 마주보기 어려운 상처라 할지라도 기억해야만 하는 슬픔이 존재한다.

그렇게 다시 잊혀져버리지 않도록, 자꾸만 그 기억들을 '살아있게' 해주는 작가들의 행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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